166.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복귀를 꿈꾸다
2년 후.
“자, 준비가 끝났으면 이제 위로 올라가자.”
문진이 원생들에게 출발을 알렸다.
그러자 동진수가 도련 소속의 원생들과 함께 앞장서서 토굴을 뚫기 시작했다.
문진 일행은 2년 동안 지상으로 나가지 못했다.
토벌대의 진영이 있던 곳에 축기기 이상의 공허체들이 자리를 잡고 배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나서야 지상의 공허체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제는 고작해야 연신기 수준의 공허체 몇 마리만 오가는 상황이었다.
“다섯 마리의 연신기 공허체가 있다. 올라가는 즉시 합격을 해서 빠르게 처리하자. 각 별좌가 소속 행자를 이끌고 처리하면 되겠지.”
“알았다.”
“그렇게 하지.”
“걱정하지 마.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문진의 말에 별좌들이 제각각 대답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서던 동진수가 도련 소속의 원생들을 이끌고 먼저 뛰쳐나가고, 뒤를 이어 일심벌의 구관아와 법정회의 향보아, 일원맹의 장화련, 선련의 양청이 뒤를 따랐다.
뒤에 남은 문진은 행자들이 싸움을 하는 중에 재빨리 둔술을 펼쳐 2년 동안 그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토벌대의 진영을 보호하던 결계의 축을 회수했다.
2년 동안 살피며 준비를 한 끝에 연신기 수준으로 결계의 축인 진법 기둥을 회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을 마친 문진은 다시 둔술을 펼쳐 지상 가까운 곳으로 온 후에 시치미를 떼고 토굴을 벗어났다.
그 사이 별좌들은 다섯 마리의 연신기 공허체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문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다. 그럼 이제부터 이 혼돈역 안에서 다른 토벌대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돈역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전송진이라도.”
문진의 말에 별좌와 행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이미 의논이 된 사항이라 이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까?”
양청이 물었다.
문진은 결계가 깨어진 토벌대 진영을 둘러보며 말했다.
“각자 흩어져서 일정 거리를 수색하기로 하자. 그 뒤에 다시 모여서 방향을 정하는 것이 좋겠지. 그리고 이곳에 혹시라도 다른 토벌대에 대한 정보를 얻을 빌미가 남아 있는지도 살피고.”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럼 나는 먼저.”
문진의 말에 향보아가 법정회 소속을 이끌고 한 쪽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후 남은 네 별좌가 각각의 행자들을 이끌고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떠나던 구관아가 문진에게 함께 갈 것을 권했지만 문진은 홀로 폐허를 수색하겠다며 남았다.
“으음, 다행히 효과가 사라진 법기들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군.”
문진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이십칠결방 법기를 사용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문진은 제각각 흩어져 나뒹구는 방어 법기들을 발견했다.
“스무 개 정도는 멀쩡하게 남았군. 하긴 이십칠결방 법기 진법이 깨질 때, 각 법기들의 연계를 끊어서 낱개로 보면 하찮게 보이긴 하겠지.”
자신의 의도가 그런대로 맞아 들어간 것을 기뻐하며 문진이 나뒹구는 법기들을 수습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에 의념을 불어넣어 상태를 살폈다.
“역시 극멸기의 사나운 공격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스물일곱으로 나누어 흡수한 까닭에 원래 모습이 사라졌어. 이대로는 공격의 효과가 없겠어.”
그저 극멸기가 보관되어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것은 이전에 문진이 다른 공허체를 상대하며 사용했던 삼결방 법기의 상태와 같았다.
‘여기 담긴 극멸기를 발동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법기 자체로 극멸기를 발동하는 것이 아니라 법기를 연결하는 술식과 진법을 바꾸면······.’
그 또한 2년 동안 궁리를 거듭해서 이미 방법을 만들어 놓았다.
다만 그렇게 되면 문진이 극멸기를 사용하게 되는 셈이라, 자칫 큰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뭐, 들키지만 않으면 될 일이지. 극멸기가 들어 있는 법기를 잘 숨기기만 하면 문제없겠지.’
고계 수사가 저계 수사의 공간낭을 엿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공간낭 속의 법기까지 세밀히 살피진 않을 것이다.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결국 아공간에 있는 본체의 도움을 받으면 될 일이었다.
아공간을 여는 기운이 이미 일곱 대륙에 공적으로 등록된 상태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본체인 건우가 마음만 먹으면 위문진이 있는 곳으로 아공간을 열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움직임을 따라서 본체도 따라 다녀야 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지.’
정말 급하면 본체가 열어주는 아공간으로 몸을 피할 수도 있고, 의심받을 물품을 아공간에 숨길 수도 있다.
하지만 아공간을 한 번 열 때마다 공적을 감시하는 술식이나 진법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특별한 일이 아니면 아공간을 열 일은 없을 것이다.
“으음. 저 쪽이 토벌 대장과 고계 수사들이 머물던 곳이고, 이 쪽이 전송진이 있던 곳이었지.”
문진은 법기들을 수습한 후, 곧바로 폐허 수색에 나섰다.
그리고 폐기된 전송진을 살피다가 다른 토벌대 진영으로 연결된 전송진 술식을 발견했다.
물론 전송진은 이미 파괴되어 다시 작동할 수 없었지만 전송진이 향하는 방향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이쪽이 가장 가깝군. 다른 세 곳은 너무 멀고.”
문진이 알아낸 다른 토벌대 진영은 모두 네 곳이었다.
문진은 그 내용을 작은 옥간에 옮겨 담은 후에, 옥간에 살짝 변형을 가했다.
마치 폐허에 오래 묻혀 있었던 것처럼.
* * *
“오오옷! 풀어냈다.”
양청이 환호성을 올리며 주먹을 꽉 쥐고 흔들었다.
그런 그의 손에는 문진이 주워 온 옥간이 들려 있었다.
“정말? 그래서 전송 위치를 파악해 냈어?”
장화련이 곧바로 양청에게 달려가 옥간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양청이 복원한 옥간의 내용을 살폈다.
“으음. 두 곳?”
장화련은 양청이 옥간에 두 곳의 전송 위치를 복원한 것을 확인했다.
“그래, 더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이상은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아.”
양청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느냔 표정으로 으스대듯 말했다.
그런 양청의 모습에 장화련도 고개를 끄덕이며 옥간을 향보아에게 넘겼다.
옥간은 그 후, 동진수와 구관아의 손을 거쳐서 문진의 손에 들어갔다.
“양청이 이런 쪽으로 재주가 뛰어난 줄은 몰랐군. 어쨌거나 수고했다.”
문진은 자신이 만든 옥간을 일행에게 보이고 그 안에서 전송진의 전송 위치를 찾아 내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양청이 제일 먼저 그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두 곳 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먼저 가야겠지?”
양청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문진을 보며 물었다.
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옥간을 꺼내 들었다.
“이전 토벌대장의 숙소 부근에서 발견한 지도다. 이곳 주변의 지형을 담아 둔 것이지. 물론 지형 변화가 간혹 일어나는 혼돈역이라 온전히 믿긴 어렵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거다. 이걸 바탕으로 양청이 찾아 낸 전송 위치를 찾아가면 되겠다.”
지도에는 위험한 괴수나 지형 등에 대한 내용만 담겨 있을 뿐, 다른 토벌대에 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토벌대의 위치를 특정하게 되었으니 지도를 보며 그곳으로 가면 되리라.
“그럼 망설일 것이 뭐가 있어? 어서 출발하자.”
“맞아. 솔직히 이 근방에는 공허체도 거의 없어. 있어봐야 연신기 수준이고, 혹여 축기기 수준의 공허체가 있다고 해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
“하지만 축기기 수준의 공허체가 다수 나타나거나 혹은 성단기 공허체가 나타나면 정말 위험할 거다. 그러니 최대한 조심해서 이동해야 해.”
“그건 관아 말이 맞아. 서두르다가 자칫하면 한 방에 몰살을 당할 수도 있어.”
동진수와 향보아가 출발을 재촉하자 구관아와 장화련이 조심스럽게 움직일 것을 주장했다.
어쨌건 목적지가 정해진 이상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문진을 포함한 마흔일곱의 연신기 원생들이 본격적으로 혼돈역으로 나섰다.
지금까지는 고작해야 토벌대 진영 안에서 잡일만 하던 그들이 혼돈역의 온전한 야생으로 던져진 것이다.
* * *
-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요.
“그러냐?”
- 완전 쪼렙이잖아요. 훅 하고 불면 날아갈.
“그래서 내가 문진과 너를 마주치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지.”
- 어머나 왜요?
“루야 네가 문진을 얼마나 놀려먹겠냐? 문진이 나고, 내가 문진인데 경지가 한참이나 낮은 문진을 나 대신 실컷 놀려 먹겠지.”
- 호호호, 설마 그러겠어요?
“응, 설마 그럴 거 같다.”
- 쳇.
“그나저나 수미세계와는 여전히 연결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네.”
- 그래도 수련 성과는 좀 있잖아요. 이제 머지 않아서 화신기 완경에 드실 거 아니에요?
“고작 종이 한 장의 벽이라도 그것을 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명확히 다르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완경의 경지가 아직은 내 것이 되지 못하는구나.”
- 그럼 문진이 익히는 것들을 함께 고민해 보시면 어때요?
“그건 별로 생각이 없다. 어차피 이후에 문진과 내가 하나가 되면 모두 내 것이 될 텐데, 문진과 내가 같은 것을 고민할 이유는 없지.”
- 솔직히 유혼술로 나뉜 영혼이 온전히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좀 아쉽죠. 연결이 되어 있었으면 생각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그랬으면 의념 수련을 따로 할 수가 없었겠지.”
- 그건 그러네요.
“문진의 일은 문진에게 맡기고 나는 삼백육십성광검에 숨겨진 공법을 익히는데 집중해야지.”
- 그나저나 신기해요. 이쪽 세상으로 온 이후에 백팔검 이후의 검공이 드러나다니 말이죠.
“그거야 이쪽 세상이 영계와의 연결이 강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영계에 있는 검선의 본명 법보와 내가 가진 삼백육십성광검의 공명이 짙어긴 결과가 그렇게 나온 거고.”
- 검선도 건우 님이 그의 검공을 훔쳐 배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요?
“이미 그 경지가 지고하니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모를 수도 있고.”
- 어쨌거나 자그마치 입령기 경지 이상의 검공을 공짜로 얻었으니 대박이 터진 거죠.
“지금은 대가 없이 얻은 듯 하지만 이후에 이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는 모르는 일이지. 그래도 일단 입령기 수준을 넘어서는 검공이니 익히고 볼 일이긴 한데, 문제는 그 현묘한 진의를 좀처럼 파악하기 어렵다는 거겠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눈을 감고 검공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검공을 살피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어 화신기 후기를 완성하고 이제 완경을 눈앞에 두었다.
어쩌면 화신기 완경에 이르면 또 검공의 해석에도 새로운 길이 열릴지 모른다.
그렇게 지금 건우의 검공 수련은 선순환을 이루며 계속되고 있었다.
- 헤엥, 심심해.
건우가 묵상에 빠지자 루야는 다시 아공간 입구를 투명하게 만들어 문진을 살피기 시작했다.
혼원석의 힘을 빌려 화신기에 오르고 중기까지 성장했지만 거기서 막혀 버린 루야였다.
루야가 흡수한 혼원석의 성장 한계가 화신기 중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따로 할 일이 없는 루야는 때때로 아공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괴뢰들의 일을 살피고, 용랑이나 혈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일이었다.
창조적인 일에는 재주가 별로 없는 루야라 그 외에는 문진을 통해 바깥 세상을 살피는 것이 낙이었다.
- 어머? 저것들이 깜찍한 짓을 하려고 하네?
그런 루야의 눈에 한 무리의 원생이 모의를 하는 것이 보였다.
당연히 루야가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은 문진이 그들을 살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