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64화 (164/499)

163. 혼돈역이 다르다

토벌전 참가를 신청하고 다시 몇 달이 지난 후, 문진은 동기들과 함께 전송진을 타게 되었다.

인솔자는 원보영이라는 성단기의 수사로 수련원 지도 수사들 중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는 수련원의 원생 마흔일곱을 데리고 전송진을 탔는데, 중간에 세 곳의 전송진을 경유해서 목적지에 닿았다.

‘으음. 여긴 기운이 다르다.’

문진은 네 번째 전송이 이루어진 직후, 영기에 묘한 기운이 뒤섞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다. 이곳이 바로 토벌전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문진의 느낌을 확인해 주듯 원보영 수사가 원생들을 향해 말했다.

문진의 동기들 중에도 영기에 섞인 미약한 이질감을 느낀 이들이 있는지 의식을 집중해서 살피는 이들이 몇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원생들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었다.

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눈여겨 두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이제 너희에게 이곳에 대한 설명을 해 주겠다.”

원보영이 말했다.

지금까지는 정확한 목적지도 모르고 움직였던 문진 등이었다.

혹시 모를 정보 유출을 막는다는 취지였다.

“이곳은 멸계와 우리 인계의 경계에 해당하는 곳이다. 하지만 단순한 경계 구역과는 다르다. 이곳은 혼돈을 품은 특이한 기운이 있어 영기와 극멸기가 공존할 수 있다.”

“극멸기와 영기가 공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원보영의 말에 키 작은 소동 모습의 수사가 말했다.

그는 수련원에서 법정회에 속한 원생을 이끄는 향보아란 수사였다.

향보아는 아주 어린 나이에 기연을 만나 연신기가 되었다는데, 그 때문에 어린아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원래 영기와 극멸기는 상극이라 서로 상충하며 또한 상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혼돈의 기운이 영기와 극멸기의 충돌을 막아준다.”

“······.”

원보영이 설명을 했지만 알아듣는 원생은 없는 듯 했다.

그저 멀뚱히 다음 설명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이런 곳에선 영기와 극멸기가 공존하며 갖가지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기이한 일들 중에는 매우 뛰어난 수련 자원들이 자라거나 혹은 만들어지는 일도 적지 않다.”

“영기와 극멸기가 혼돈의 기운과 만나서 특별한 영역을 만들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럼 당연히 이곳은 저희 인계나 저쪽 멸계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겠습니다.”

문진이 원보영의 말을 듣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

“바로 그러하다. 그 때문에 인계와 멸계의 직접적인 싸움은 사실상 이런 혼돈역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진다. 인계나 멸계나, 혼돈역을 많이 차지할수록 힘을 키우기가 쉬워지는 까닭이다.”

원보영은 잠시 원생들을 훑어보며 말을 끊었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곳은 근래에 새로 만들어진 혼돈역이라 아직 주인이 명확하지 않다. 이번 토벌전은 바로 이곳을 차지하려는 멸계 놈들을 물리치고 이곳 혼돈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문진은 혼돈역(混沌域)이란 말이 이전에 있던 곳과는 다르게 쓰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쪽 세상의 혼돈역은 영기와 극멸기가 공존할 수 있는 특이 영역을 말했다.

게다가 혼돈역이란 곳이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자, 모두들 나를 따르거라. 이제 토벌전을 이끄실 선배님을 뵙고 너희의 배치를 정해야 할 것이니.”

원보영은 대충 설명을 마치고는 원생들을 이끌고 전송진이 있는 동부를 벗어났다.

동부 밖으로 나서며 몇 개의 금제를 지나자 드디어 바깥이 나왔다.

“어? 저것도 전송진 같은데?”

“그러게? 전송진의 수가 굉장히 많아.”

동부 밖으로 나서며 주변을 살필 수 있게 되자 원생들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 말대로 동부 밖, 넓은 분지에는 곳곳에 전송진들이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송진으로 수사들이 들어가고 또는 나오곤 했다.

“저기 봐! 부상자들이다!”

양청이 문득 한 곳의 전송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그 전송진에서는 십여 명의 수사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팔다리를 잃거나 혹은 정신을 잃은 이들이 예닐곱 끼어 있었다.

죽지 않았으니 치료가 되기는 하겠지만, 막상 그런 부상자들을 보니 토벌전의 위험이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자, 이리 오거라. 너희가 배치될 곳으로 가야 하니.”

그 사이에 원보영은 동부 밖에서 기다리던 수사에게 옥간 하나를 받아 내용을 확인하고 원생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원생들을 데리고 분지의 전송진 중에 한 곳으로 이동했다.

“이 전송진이 바로 혼돈역으로 들어가는 전송진이다. 혼돈역으로 들어가는 전송진은 멀리서 설치할 수 없다. 바로 이렇게 혼돈역과 직접 닿게 해야 전송진을 만들 수 있다.”

“대사부님, 그럼 혼돈역이란 곳은 금지나 결계 혹은 밀역처럼 공간을 분리해 둔 것입니까?”

문진이 문득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성단기의 원보영은 축기기 지도 수사들에 비해서 한 단계 경지가 높아 대사부라 불렀다.

“혼돈역은 어디선가 혼돈의 기운이 흘러나와 영기와 극멸기를 혼합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그렇게 뒤섞인 기운이 머무는 공간을 혼돈역이라 하지. 그런데 이 혼돈역은 만들어지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 공간을 봉인하여 모습을 감춘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원보영은 원생들에게 가르침을 내리려는 듯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봉인 전에 흘러나온 혼돈의 기운이 흩어지기 전에 이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할 수 있겠지. 다만 그런 정보가 멸계 놈들에게 흘러간 것은 아쉬운 일이다만.”

원보영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전송진을 지키는 수사를 향해 옥간 하나를 날려 보냈다.

전송진을 지키는 수가는 그 옥간의 내용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원보영은 원생들과 함께 전송진에 올랐다.

* * *

후우우우우웅!

“컥!”

“쿨럭! 쿨럭!”

“커어어억!”

“아악!”

커다란 공동의 전송진이 빛을 발하며 원보영과 원생 무리를 토해 놓았다.

그리고 그 순간 연신기 완경의 원생들이 하나같이 목을 잡고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지르고 기침을 했다.

그나마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은 문진과 몇몇의 원생들뿐이었다.

“오호라, 싹수가 보이는 녀석들이 제법 되는구나. 너, 너, 너!”

그런 원생들을 향해 전송진 밖의 한 수사가 손에 든 작살로 토악질을 하지 않고 버티는 원생들을 가리켰다.

그는 겉모습이 매우 사나웠는데 작살과 그물을 든 모습이 바다의 거친 어부를 떠올리게 했다.

“네? 저 말씀입니까?”

그 수사의 지적에 제일 먼저 문진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래, 바로 너. 네가 이제부터 여기 있는 녀석들의 수좌다. 이름이 무엇이냐?”

그 수사는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문진를 곧바로 수좌로 정하고 이름을 물었다.

고작 연신기 수사의 위계를 정하는 일인데 깊이 따지고 들 일도 아니었다.

전송진을 거쳐 처음으로 혼돈역의 기운을 접했음에도 동행 중에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무리의 수좌로 정하는 것에 별 문제는 없다 싶었다.

“위문진이라 합니다.”

“그래, 위문진. 네가 이제부터 그 녀석들을 책임져라. 그리고 너, 너, 너.”

“네, 구관아입니다.”

“양청입니다.”

“향보아입니다.”

“장화련······.”

“동진수······.”

이어서 그는 그나마 나아 보이는 다른 몇을 가리켰는데, 어김없이 한 무리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원생들이었다.

지적을 받은 원생들은 깜짝 놀라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위문진이 수좌, 너희 다섯은 별좌. 그 아래는 모두 행자다. 알겠느냐?”

어부 수사는 그렇게 원생들의 신분을 나누고 확인하듯 물었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진을 향해 옥간과 공간낭 하나를 날렸다.

문진은 날아오는 옥간과 공간낭을 가볍게 받아들었다.

“거기에 보면 너희가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받을 공헌 점수에 대한 내용도 알 수 있을 테니 그에 따르면 된다. 너는 어서 아이들을 이끌어라.”

그 어부 수사는 문진에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곧바로 둔광과 함께 어디론가 모습을 감췄다.

문진은 주변을 살펴 인솔자인 원보영을 찾았지만 그 역시 어디로 간 것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전송진 밖으로 나와. 이곳에 머물다간 무슨 경을 칠지 몰라. 선배님들이 전송진을 쓰려는데 우리가 방해가 되면 곤란하잖아.”

문진은 원생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전송진 밖으로 나가 어부 수사가 던진 옥간의 내용을 살폈다.

옥간에는 문진 일행을 하나로 묶어 임무를 부여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면 혼돈역에서 전투를 벌이는 수사들이 많이 있는데, 그 수발을 드는 것이 원생들의 일이었다.

주어진 임무는 진법의 유지 보수, 약초밭의 관리, 기초적인 제련과 연단 기초 작업 등이었다.

“막노동판의 십장 역할인가? 아, 그보다는 수가 좀 많네. 마흔여섯을 부려야 하니.”

문진이 고개를 저으며 공간낭을 열어 한 무더기의 옥간을 꺼냈다.

“자, 이것들을 하나씩 가지고 가서 연화를 시켜. 이게 없으면 공헌점수를 받을 수 없다. 공헌 점수는 이곳에서 세운 공에 따라 받는 점수고, 점수가 많으면 그것으로 다른 것들과 교환을 할 수도 있다.”

문진의 손짓에 옥간들이 원생들에게 하나씩 날아갔다.

겨우 정신을 차린 원생들은 헬쓱한 얼굴로 문진이 배급하는 옥간들을 받았다.

“거기 옥간에 보면 대충 임무에 대한 내용도 있을 거다. 하지만 모든 일의 끝은 내가 보고를 하고 공헌점수를 받아와야 끝이 난다.”

“그런데 이건 좀 그렇지 않나? 왜 우리가 한 일의 공헌 점수를 문진 네가 모두 받아서 나눈다는 거지?”

“양청 말이 맞다. 어째서 네가 수좌가 된단 말이냐?”

문진의 말에 곧바로 양청과 동진수가 반발을 했다.

양청은 수련원에서 선련(仙聯)의 무리를 이끌고 있었고, 동진수는 도련(道聯)의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문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둘을 번갈아 노려봤다.

“그것이 억울하면 너희가 수좌가 되었으면 될 일이다. 너희는 지금 선배님의 일처리가 못마땅하다는 것이냐?”

“어? 아니 그, 그게······.”

“하, 하지만······.”

“불만이 있으면 선배님을 찾아가서 수좌를 바꿔달라고 해라. 수좌를 두고 공헌점수를 통합하는 것은 일을 간소화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 마흔일곱에게 하나하나 공헌 점수를 정산해 주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주고 알아서 나누라 하는 것이 일이 쉽겠지. 그래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 잡비 정도에 불과하니 더더욱.”

문진의 말에 원생들은 자신들이 받은 옥간의 내용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최하위 계급에 속하는 연신기의 원생들.

그들이 공헌점수를 받아봐야 의미 있는 숫자는 되지 못한다.

그러니 토벌대의 관리자들이 수좌와 별좌를 만들어서 하급자들을 통제하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수좌와 별좌는 그 직위에 따른 쥐꼬리 같은 공헌점수가 더 있고, 점수 분배의 주도권도 가지고 있었다.

“자, 그만 움직이자. 이곳은 토벌전이 벌어지는 이십 여 전장 중에 한 곳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문진은 원생들의 처지를 상기시키며 그들을 이끌고 전송진 동부를 벗어나 그들이 머물 전각을 찾아갔다.

전각은 안에는 문이 없이 격벽식으로 나누어진 개인 공간들만 있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사실 그보다 훨씬 나은 환경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경지별로 구분을 주다보니 제일 낮은 연신기들의 거처가 그런 모양이 되었다.

문진은 거처에 도착하자마자 양청, 구관아, 동진수, 향보아, 장화련 등의 별좌를 모아서 일을 분배했다.

약초밭을 가꾸고 수확을 하는 일, 죽은 마수나 공허체 등의 부산물을 다듬는 일, 제련이나 연단에 필요한 밑 작업을 하는 일 등등.

연신기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작업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질보다는 양.

상동강 소성의 수련원생들에게 맡겨진 일들은 대부분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게 문진 일행의 혼돈역 적응이 시작되었다.

* * *

콰르르릉! 꽈릉!

“커억! 피, 피해라! 영체가 멸계 수사다!”

“어찌 결계가 뚫렸다는 말이냐!”

“처, 첩자로 들어온 멸계 수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허어! 이런 일이! 모두 나서라. 영체기 중기인 듯 보이니, 나와 함께 성단기 아이들이 나서면 어찌 버틸 수는 있을 터!”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문진 일행의 적응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들이 전장에 도착하고 며칠 되지도 않아서 본진에 영체기 멸계 수사와 공허체들이 금제를 뚫고 들어온 것이다.

“어, 어떻게 하지?”

“어쩌긴, 죽기 싫으면 싸워야지.”

“그, 그렇긴 하지만 대부분의 공허체들이 축기기 이상인데?”

“그렇다고 이대로 죽어? 응?”

“저기, 수좌! 어떻게 할 거야?”

일이 벌어지자 한 곳에 모인 원생들.

그 중에 별좌들이 따로 모여 의논하다가 문진을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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