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63화 (163/499)

162. 토벌전 참가를 결정하다

장경각의 전각은 모두 여섯 채로 나누어져 있었다.

문진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전각을 먼저 들렀다.

‘기본 공법들. 아주 기초적인 것들만 모아 둔 곳이다. 게다가 따로 종류를 구분한 것도 아니야.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면 어떤 종류든 가리지 않고 모아뒀어.’

그래서 장경각을 찾는 이들도 처음 방문할 때에만 한 번, 훑어보고 이후론 관심을 끊는 곳이다.

‘하지만 기본이란 것은 곧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는 말이 되는 거지. 게다가 한 부분씩 잘라서 써 먹기에도 좋고.’

어차피 있는 그대로를 쓸 일은 없다.

이후에 그가 익힐 무명공의 결과물을 조합하는데 필요한 부분들을 모을 수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이것들을 모두 살펴보는 것이지.’

이미 있는 공법을 마치 새로 만들어 낸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그 구성 요소를 기본 공법들에게 찾아내는 것.

문진은 그것을 위해서 장경각의 모든 것을 머리에 담아 두기로 했다.

수사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망각이 없는 삶을 산다.

아무리 오래 된 일이라도 기억 깊은 곳에 묻어 뒀다가 되살릴 수 있는 것이 수사들이다.

문진이 여기서 기억한 것들은 이후 그가 창안하는 여러 공법이나 술식, 금제, 진법 따위의 핑계로 요긴할 것이다.

“이상한 짓을 하는구나.”

첫 번째 전각에 머문 지 나흘이 지났을 때, 누군가 문진의 집중을 깨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비단 옷을 차려 입은 그는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연신기 완경의 수사였다.

“나한테 한 말인 거 같은데? 맞아?”

문진이 그 수사를 보며 물었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데 그것을 방해 받은 상황이 언짢은 그였다.

“네가 위문진이라면 맞다. 네게 한 말이다.”

“나는 너를 모르는데 너는 나를 아는 모양이지?”

“나는 양청이라 한다. 내 이름은 들어 봤겠지?”

“양청? 글쎄, 들어 본 기억이 없는데?”

“뭐? 나를 몰라? 진관국 선련(仙連)의 상동강 수련원 책임자인 나를?”

“선련의 책임자? 선련이면 진관국 수사들의 친목 모임 중에 하나 아니었나?”

“알고는 있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그런 선련에서 이런 소성의 수련원에까지 책임자를 뒀다고?”

“네가 두문불출하며 수련에만 힘쓴다고 하더니 수도계의 정세에는 어두운 모양이구나. 선련, 일심벌, 도련, 법정회, 일원맹 등의 이름은 아느냐?”

“수사들이 모인 단체라고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

“쯧, 이 세력들은 우리 진관국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일곱 대륙 전체에 퍼져 있다. 비록 친목 단체라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대륙의 수도계의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나라가 있고, 대륙을 대표하는 회의가 있는데 친목단체가?”

“국가나 대륙 대표에 그 세력에 속한 사람들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냐.”

“뭐, 결국 패거리를 지어서 힘 싸움을 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소리네. 그리고 너는 그 중에 선련이란 곳의 말단인 거고.”

“마, 말단이라니!”

“왜? 네 밑에 이곳 수련원의 원생들이 몇 있는 모양이지? 하지만 그래봐야 고작 연신기의 저계 수사일 뿐. 도대체 그 한 줌도 되지 않는 권력으로 뭘 할 수가 있을까?”

문진은 양청을 보며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고작 그 수준으로 선련이란 무리를 내세워 호가호위라니!

“네가 이번에 세신환으로 빠르게 연신기 완경에 이른 것을 잊었느냐. 그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성장 속도가 달라진다. 그것을 안다면 단체의 힘을 무시할 수 없을 터!”

“결국 나보고 네가 이끄는 선련에 들어오란 소리를 하려는 거냐?”

“웃기는 소리. 누가 너를 그냥 받아준다고 하더냐. 나는 그저 네게 스스로를 증명할 기회를 주려고 할 뿐이다.”

“하! 그러니까 네 밑으로 들어갈 기회를 줄 테니, 알아서 재주를 보여 보라고?”

문진은 기가 막힌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곧 양청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일 없다. 선련이고 뭐고 관심 없으니까 이만 물러나 줄래? 나는 지금 할 일이 많아서 바쁘다.”

“뭐? 관심이 없다고?”

양청은 냉담한 문진의 반응에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냔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은 할 일이 많아서 바빠, 그러니 나중에 이야기를 하자고. 장경각을 모두 돌아본 후에.”

문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조금 전에 살피고 있던 옥간에 다시 의념을 집중하려 했다.

“이런 곳에 있는 기본 공법 따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일이란 말이냐? 우리 선련에 들기만 하면 고계 수사들의 수련 공법이나 비기를 얼마든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마다하고 고작 소성의 수련원 장경각이나 뒤적거리겠다고?”

양청은 어떻게든 문진의 마음을 돌리려는 듯이 말이 길어졌다.

하지만 문진은 양청에게 관심을 끊고 다시 옥간을 살폈다.

마침 그 옥간의 내용 중에 일부가 앞으로 만들 수련 공법에 요긴하게 쓰일 만 했던 것이다.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양청이 그런 건우를 보며 노기를 드러냈다.

우우웅!

양청의 의념이 깃든 영기가 문진을 억누르며 압력을 가해왔다.

문진이 살피고 있던 옥간을 사가에 올려놓으며 양청에게 고개를 돌렸다.

“분명 관심이 없다고 했다. 네 말대로라면 너는 그 대단한 선련을 지원을 받고도 고작 연신기 완경에 불과하지 않나? 그런 재주를 가지고 나에게 무얼 내세우겠다는 거지?”

“뭐? 뭐라고!”

문진의 말에 양청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고계 수사의 수련 공법이 좋기야 좋겠지. 하지만 기본도 없이 그런 것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을 성 싶으냐? 그런 것을 겉멋이라고 한다.”

문진은 양청에게 그렇게 쏘아붙이곤 의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자 문진의 의념이 양청의 의념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유혼결을 익히는 문진의 의념은 그 자체로 한 등급 위의 수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룰 수 있는 의념의 양이 비슷해도 그 질이 확연히 다르니 양청이 문진의 무력시위를 감당하지 못했다.

“으으윽!”

“나는 내 일이 바쁘니 방해를 받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만 물러나라.”

문진은 의념 싸움으로 양청을 압도한 후, 다시 의념을 갈무리하며 말했고, 양청은 대꾸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그 사건은 곧바로 장경각을 드나들 수 있는 연신기 완경의 원생들에게 알려졌다.

원생들의 여러 파벌에서 그 상황을 남모르게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건 그 후로 문진을 파벌로 끌어들이려는 접촉은 모습을 감췄다.

문진이 특정 단체에 소속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문진의 장경각 생활이 안정을 찾아갈 즈음, 수련원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 *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문진이 오랜만에 장경각을 나서서 수련원 본관의 지도 수사를 찾았다.

“그래. 내 너에게 알려줄 것이 있어 불렀느니라.”

지도 수사가 방 안에서 문진을 맞아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문진은 의자에 앉으며 지도 수사를 바라봤다.

“너도 알겠지만 소성의 수련원에서 자격을 갖춘 원생들은 대성의 수련원으로 올라가게 된다.”

“네, 알고 있습니다. 축기기의 경지에 오르면 대성의 수련원으로 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구나. 하지만 꼭 축기기가 되지 않아도 대성 수련원으로 갈 방법이 있느니라.”

“그렇습니까?”

“크게 궁금하지는 않은 표정이구나.”

담담한 문진의 반응에 지도 수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아직 수련의 길에 들어온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서두를 이유가 있겠습니까. 연신기 완경에 굳이 대성 수련원에 갈 이유가 없다 생각합니다.”

“이유가 없다?”

“이곳 장경각에 비치된 내용들도 아직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는데, 대성의 수련원을 욕심낼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하. 그래? 하지만 대성 수련원은 어차피 거쳐 가야 할 과정이니라. 빠르게 갈 수 있다면 그리 하는 것이 좋지.”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않겠느냐. 이곳보다 수련 여건이 좋은 곳이니 옮길 수 있으면 옮기는 것이 좋다.”

“그렇기는 하겠지만 조금 늦어진다 하여도 크게 연연할 것은 없다 싶었습니다만.”

“네 수련 성취가 무척 빠르니 그럴 수도 있긴 하겠구나.”

“······.”

“그럼 일단 들어만 두거라.”

“네, 스승님.”

지도 수사는 굳이 문진에게 무언가를 강권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길이 있으면 알려는 주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들은 멸계의 공허체와 존망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 이것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네.”

“그 때문에 상급 수련원으로 올라가는데 공허체를 토벌하는 것에 대한 성과로 가산점을 준다.”

“공허체를 토벌하면 성취가 모라자라도 상급 수련원으로 갈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네가 축기기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멸계 공허체의 토벌 공로가 하나도 없다면 상급 수련원으로 갈 수 없다.”

“네? 그건 처음 듣는 이야깁니다.”

“소성 수련원에서 대성 수련원으로 갈 때에는 크게 따지지 않았기에 모를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사정이 조금 바뀌었다.”

“사정이 바뀌었다 하심은?”

“이제는 연신기 완경에서 축기기 초기의 원생도 공허체 토벌의 공이 있어야 상급 수련원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으음. 그렇게 되었군요.”

“그래서 물어보려는 것이다. 이번에 원생들을 대상으로 공허체 토벌전에 참가할 이들을 모으고 있는데 너는 어찌하려는가 하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제자 문진은 당연히 공허체 토벌에 참가할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수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이 모두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함인데, 그 첫 번째가 멸계와 싸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허어, 그렇지. 네가 죽음의 고비에서 연신기가 되며 그런 꿈을 꾸었다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것을 꿈이라 여기지 않고 천명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흐음. 네 뜻이 가상하구나. 알겠다. 그러면 내 너의 이름도 토벌전 참가 명단에 올려두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것이 고마울 일은 아니다. 네 목숨을 걸어야 할 위험한 길이 될 테니.”

“······.”

“하지만 보상은 클 것이다. 공을 세운 만큼 선배님들이나 어르신들께서 합당한 보상을 주실 것이니.”

지도 수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문진을 되돌려 보냈다.

지도 수사의 방을 나선 문진은 곧바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갖가지 법기와 법부를 만들며 토벌전 참가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런 문진을 연신기 완경의 졸업반 원생들이 다시 찾기 시작했다.

“너도 토벌전에 가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싸움에 나서는데 혼자 보다는 무리를 이루는 것이 유리한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

“그야 그렇겠지.”

“그러니 너도 우리 선련과 함께 하자는 것이다.”

“너희 선련과?”

문진은 토벌전에서 함께 하자며 찾아온 양청의 모습에 속으로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만남에서 그렇게 면박을 당했는데 다시 찾아와 토벌전을 함께 하자고 하다니.

뭔가 숨은 뜻이 있지 않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녀석들도 모두 제각각 무리를 짓는데 너만 홀로 떨어져 있을 것이니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다.”

“걱정은 무슨. 그래봐야 우리같은 저계 수사들이 직접 싸울 일은 거의 없을 텐데.”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까딱하면 상급 공허체를 만나서 한 번에 죽어 나가기도 하는 곳이 토벌전이다. 그런 때에 우리끼리라도 뭉쳐서 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

“상급 공허체가 나타난다면 그것으로 끝이지. 우리끼리 모여 봐야 표적밖에 더 될까. 그런 때에는 도리어 무리를 짓고 있는 것이 더 위험할 거 같은데?”

“그래서 너는 결국 혼자 움직이겠다는 말이냐?”

“그건 나중에 토벌전에 가서 상황을 보고 결정할 문제지. 여기서 우리끼리 무리를 지어봐야 의미가 있을까?”

“으음.”

문진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양청이었다.

그런 양청을 향해 문진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 방어 법기나 몇 개 구해 두는 것이 어때?”

“뭐? 뭐라고?”

“이번에 내 방어법기 세 개를 연계해서 축기기 수사의 공격까지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냈는데 관심 없어?”

“추, 축기기 선배님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그렇지. 이건 아직 시험을 해 본 건 아닌데, 일단 공법상으론 그 정도 위력이 있단 말이지.”

“으음.”

“거기다가 알지? 내 법기는 공격을 흡수해서 반격까지 할 수 있다는 거.”

“그, 그럼 축기기 수준의 공격을 흡수해서 그걸로 공격도 할 수 있다고?”

“그렇지! 게다가 내 법기의 또 다른 특징!”

“고, 공격을 증폭하기까지 한다고 했지.”

양청은 문진의 말을 들으며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날부터 문진의 거처에는 여러 파벌의 원생들이 드나들며 문진의 법기와 그 법기를 이용한 연계 술식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수련원이 시끄러워지자 결국 지도 수사들까지 나섰다.

지도 수사들은 몇 번의 검증을 끝내고 문진의 법기와 그 법기의 연계가 문진이 말했던 것과 유사한 효과가 있음을 공증해 주었다.

연신기 수사가 축기기 수사의 공격을 막고 두 배 가까운 힘으로 반격할 수 있는 법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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