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62화 (162/499)

161. 연신기를 완성하고 장경각으로

세신환(洗身丸)은 말 그대로 몸을 씻어 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세신환을 복용하면 몸 안의 속기(俗氣)가 빠져 나가고, 그 자리를 영기로 채우기 쉬워진다.

문진은 세신환을 먹고 영기 수련을 시작했다.

지금껏 문진은 기본적인 영기 수련 공법만 익히고 있었는데, 이는 무명공을 익히기 위한 사전 준비였다.

무명공은 그가 알고 있는 가장 뛰어난 수련 공법이었다.

무명공은 그 바탕이 되는 수련 자원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말은 귀한 수련 자원으로 무명공을 시작하면 그 끝이 무궁하리란 것이다.

지금은 귀한 재료를 구할 수도 없고 무명공을 함부로 드러낼 수도 없어서 기본 수련 공법만 사용하는 중이었다.

다만 진염결은 여러 가지의 기본적인 의념 수련 공법을 참고해서 만든 명상법이라고 지도 수사들에게 허락을 받고 익히는 중이었다.

지도 수사들도 문진이 만들었다는 진염결에 잠시 관심을 가졌지만 수련 과정에서 겪는 고통이 너무 커서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영혼을 쥐어짜는 것과 같은 고통을 감수할 정도로 대단한 성과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도 수사들이 보기엔 잘못 만들어진 명상법처럼 보였지만 그게 또 수련자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라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허락한 상황이었다.

수도자의 수련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유를 주는 것이 수련원의 방침이기도 했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

‘으음. 확실히 이 몸은 영기 감응력이 뛰어나다. 게다가 영근(靈根)도 토(土), 금(金)의 이영근(二靈根)이라 수련 경지도 빨리 올릴 수 있다.’

위문진은 두 개의 영근을 지닌 이영근의 인재였다.

원래 건우가 여덟 개의 영근을 지녔던 것에 비하면 축복받은 자질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분혼을 했음에도 아공간은 쓸 수 없다는 것이 문제지. 본체로는 아공간을 열 수 있지만 분혼으로는 그게 안 된다는 말이지.’

때문에 문진의 의념공간은 완벽히 다른 수사들의 그것과 같았다.

그래서 이전 건우의 몸으로 했던 수련보다는 조금 더 어려운 수련을 해야 했다.

아공간에서 의념을 자유롭게 움직였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관념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의념 공간을 다루어야 했다.

‘그래도 화신기 후기의 경험과 지식이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의식의 힘과 의념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건우는 세신환의 기운이 몸을 씻어 내는 것을 의식의 힘으로 관조하며 몸의 변화를 살피고 있었다.

세신환의 기운이 속세의 기운을 씻어 내면, 그곳으로 영기를 흘려 넣는다.

‘확실히 내가 의념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긴 하구나. 세신환 하나로 몸 안의 탁기를 거의 모두 쓸어 냈어. 게다가 세신환이 지나는 곳에 곧바로 영기를 밀어 넣을 수 있는 것도 나니까 할 수 있는 일이지.’

누구나 문진처럼 할 수 있었다면 세신환 하나에 연신기 완경의 수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을 것이다.

‘세신환은 잘 만들어진 보조 단약이지만 연신기 수사들은 그것의 효과를 모두 활용할 능력이 없지.’

그만큼 세밀하고 또 강력한 의념이 필요했다.

그런데 문진은 건우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 의념 사용에 익숙했고, 기이하게 그 의념의 힘이 강건하기까지 했다.

‘이건 연구를 좀 해 봐야 할 일이야. 문진의 의념은 일반 연신기 수사들에 비해서 몇 배는 강해.’

이것은 의념의 양의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히 의념의 전체적인 양은 아직 다른 연신기 중기의 수사들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진염결을 수련중이지만 그 성과를 맺기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은 같아도 강도에 차이가 있었다.

‘밀도가 높다고 해야 하나? 공기와 물? 그 정도로 차이가 나지는 않겠지만 느낌이 비슷해. 마치 축기기 수사의 의념 강도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야.’

이전부터 조금씩 의심하던 것이지만 지금 막, 세신환의 힘으로 연신기 중기에 들어선 문진은 이제 그것을 확신했다.

자신의 의념은 한 단계 경지가 높은 수사의 그것과 비견할 정도로 강력했다.

‘본체였을 때에는 질보다 양으로 밀어붙였지. 진염결을 익혀 의념의 양이 많았고, 수미산의 수련경지가 오를 때마다 아공간이 넓어지면서 의념 공간도 넓어졌으니까.’

그랬다.

건우의 경우에는 의념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덕분에 의념으로 장악할 수 있는 범위도 넓었고.

하지만 문진의 경우에는 의념 자체가 이질적이었다.

‘이게 설마 유혼결의 숨겨진 효과일까? 그래서 이렇게 의념을 단련해서 본체와 합일하면 그만큼 의념이 강해진다는 것이었나?’

문진은 연신기 중기에 오르는 법열 속에서 문득 유혼결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되면 인계와 영계, 선계에서 한 번씩 유혼결을 수련하게 되면 그 의념의 차이가 얼마나 크게 날까.

게다가 건우가 다시 수미산에서의 수련으로 아공간이 확장되기라도 하면?

‘의념의 단련은 유혼결로, 의념 공간의 확장은 진염결과 아공간 확장으로. 이건 뭐, 거의 치트키 수준이네.’

문진은 연신기 중기에 오르는 법열과는 또 다른 기쁨을 느끼며 활짝 웃었다.

그렇게 문진의 수련은 계속 이어졌고, 한동안 문진의 모습이 수련원에서 보이지 않아 그의 법기를 구하려는 이들을 애타게 만들었다.

* * *

“연신기 완경이라니!”

“놀랍군. 고작 2년을 두문불출하더니 연신기 완경이 되어 나왔어.”

“세신환과 축기단을 얻었다더니, 그 덕을 톡톡히 본 모양이군.”

“연신기야 빠르면 십여 년에 초기에서 완경까지 오르는 일도 더러 있지. 하지만 고작 5년도 되지 않아서 완경이라니. 대단하군.”

문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지도 수사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안녕하십니까. 스승님. 그 동안 수련을 하느라 거처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그래. 우리야 늘 그렇지. 그런데 너는 그 동안 크게 성장을 했구나.”

“모두가 사부님들과 수련원의 덕분입니다. 세신환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네 자질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그래서 본각에 찾아온 이유가 따로 있느냐?”

“사부님들께 성취를 보여드리기도 하고, 장경각을 본격적으로 드나들 생각이라 허락을 구하고자 합니다.”

“허락이야 이미 2년 전에 해 주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장경각을 이용 하거라. 그리고 최대한 빨리 축기에 올라 대성의 수련원으로 올라가야지.”

“네, 그렇지 않아도 그걸 위해서 장경각을 살피려 합니다.”

“너는 완성된 공법들보다는 네가 새로운 공법을 만들거나 발견하기를 좋아하는구나.”

“그 모두가 공부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가 갈 길은 네가 찾아 가는 것이지. 우리야 그저 도움이 될 조언이나 할 뿐이고. 그래, 들어가 보거라.”

“네, 사부님.”

문진은 수련원의 본각에서 만난 한 무리의 지도 수사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장경각을 찾아갔다.

원래 장경각에 드나들 수 있게 허락을 받았을 때에 곧바로 오고 싶었던 곳이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세신환의 효과에 빠져서 결국 연신기 완경이 되어서야 장경각을 찾게 되었다.

‘만만찮은 결계와 금제들이 작동하고 있군. 영체기 급은 되는 것 같은데?’

문진의 수준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진법 금제와 보호 결계들이 장경각 입구에 가득했다.

게다가 입구를 지나면 한 번의 공간 분리가 일어났다.

“으음. 이렇게 되어 있단 말이지?”

장경각 입구로 들어서니 곧바로 커다란 게시판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장경각에 속한 몇 전각들의 위치와 각 전각에 소장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문진은 그 게시판을 보며 의념을 집중했다.

수사들에게 정보를 전하는데 게시판 따위를 쓰는 것은 너무 수준이 낮았다.

그럼 당연히 게시판에 뭔가 숨겨진 것이 더 있으리라.

“역시!”

문진은 잠시 정신을 집중해서 게시판을 살피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게시판의 내용은 틀린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 의념을 집중해서 겨우 알아낼 수 있도록 장경각에서도 가치가 있는 것을 따로 숨겨둔 것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전각의 어느 서가에서 어떤 옥간을 살피면 그 옥간의 깊은 곳에 귀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내용을 몰라도 운이 좋아 그 옥간을 살피다가 그 안에서 숨겨진 내용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우연에 기대기보다는 게시판에서 미리 알고 들어가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들만 살필 것은 아니지.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것이라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가치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는 무명공을 바닥부터 새롭게 만들어 내야 한다. 적어도 무명공을 익히는 개연성 정도는 짜 둬야 나중에 딴 소리가 나오지 않지.’

그렇다고 이후에 무명공을 공개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

만약 자신의 공법을 내 놓아야 한다면 그것은 무명공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 낼 어떤 공법일 것이다.

근간이 되는 무명공은 절대 드러낼 수 없었다.

건우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막 게시판을 떠나려는 때였다.

노란 색의 둔광과 함께 수사 하나가 건우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신기 완경의 수준으로 둔술을 펼치다니.

문진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이네?”

그 수사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문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보기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 수사였다.

겉으로 드러난 특징은 따로 없었고, 그저 꽤나 미인형의 얼굴을 가진 인간 수사였다.

“장경각에 처음으로 들어왔다. 위문진이라 한다.”

“위문진? 아, 그 법기? 한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그새 연신기 완경이 되어서 장경각에 들어왔네?”

“······.”

“아, 맞다. 나는 구관아(??鵝)라 한다.”

문진이 달리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쳐다보니 구관아가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장경각을 둘러보려 하는데, 따로 할 말이 있나?”

하지만 문진은 구관아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이 용건을 물었다.

“어? 아니, 그냥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건데?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함께 삼합하 대성의 수련원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려고······.”

“물론 나도 빨리 축기에 올라 대성의 수련원으로 가고 싶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장경각에서 공부를 하려는 것이고.”

“으응,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라는 말이야?”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용건이 없으면 내 볼 일을 보고 싶다는 거지.”

“호호호. 그래? 그럼 그렇게 해. 그런데 조심해야 할 거야.”

“응?”

문진은 구관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짧게 되물었다.

“모르는 모양인데, 장경각에선 때로 크게 싸움이 일어나기도 해. 지내보면 알겠지만 조만간 수련원을 떠나야 할 녀석들, 그러니까 나이가 차서 쫓겨날 놈들이 못난 짓을 하곤 하지.”

“아, 무슨 말인지 알겠네. 하지만 내겐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문진은 소매를 털어 양손에 둥근 패 모양의 법기 하나씩을 쥐어 들었다.

“어? 그거?”

구관아가 문진의 법기를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공격은 몰라도 방어라면 자신 있지. 게다가 이 법기는 이거 말고도 몇 개가 더 있기도 하고.”

문진은 몇 번 패를 들고 이리저리 비추는 시늉을 하고는 천천히 가장 가까운 전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음에 또 보자. 지금은 우선 장경각 전체를 돌아보는 일이 급해서.”

“으응, 그래. 다, 다음에 보자.”

구관아는 멀어지는 문진의 등에 대고 팔랑팔랑 손짓을 하며 인사를 던졌다.

그리고 문진이 완전히 전각 안으로 모습을 감춘 후였다.

허공이 일렁거리며 몇 명의 수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조금 전에 문진이 패를 들고 겨누었던 바로 그 방향에서 나왔다.

“저거 꽤나 감이 좋은 놈인데?”

“그러게, 우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지?”

“신기하네. 은폐 진법이 그렇게 쉽게 들킬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흐응, 실력이 있다는 소리지. 이러면 저 녀석을 끌어들여야 하는 거 아닐까?”

“그건 좀 두고 보자. 다른 녀석들도 간보기를 하고 나면 어떻게든 결정이 되겠지. 괜찮은 녀석이면 다들 영입 경쟁을 할 거고 아니면.”

“그럼 뭐, 그냥 대충 신경 끄는 거지.”

“그래, 그런 거지.”

구관아를 중심으로 여덟 명의 원생들이 한바탕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는 또 다른 원생이 몸을 감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상동강 수련원의 원생 파벌들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