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60화 (160/499)

159. 연신기 초기 위문진의 기행

“아버님, 소자 꿈에서 신선을 만났습니다.”

“뭐라? 신선?”

“본디 소자가 수도계와 연이 깊은데 그것을 외면하니 몸에 병이든 것이라 했습니다. 그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으나 신선께서 불쌍히 여겨 다시 속세로 돌려보내니, 반드시 수도계에 들어 세상에 도움이 되라 하셨습니다.”

“그게, 그게 진정이냐?”

“그렇습니다. 죽다 살아난 제가 아닙니까. 분명히 신선께서 도움을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그 신선께서 너를 찾아 오시기로 했더냐?”

“그것은 아닙니다. 제 길을 알려 주시는 것만으로 크게 천기를 거스른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제 길을 제가 알아서 가야 할 듯 합니다. 그러니 아버님께서 도움을 주십시오.”

“네 말은 수도 문파와 연을 맺어 달라는 거로구나.”

“힘든 일이겠지만 애써주십시오.”

“알았다. 내 방도를 찾아 보마.”

위씨 가문의 가수 위정호는 죽었다가 살아난 큰 아들의 부탁을 외면하지 못했다.

게다가 집안에서 수사가 나오면 그 집안 역시 수도계의 그늘에서 번성할 수 있다.

그러니 집안을 위해서도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수도계에 입문한 후로는 자식을 자식이라 하지 못하고, 또 다시 얼굴을 보는 것도 어렵다.

이젠 없는 자식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어찌 하다보면 문진이로부터 우리 위씨 가문이 수도 문파로 크게 일어설 수도 있음이다.’

위문진이 높은 경지에 이르고, 그 후로 위씨 가문에서 수사의 자질을 지닌 후예들이 연이어 태어난다면, 위씨 가문이 수도 문파가 되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가주 위정호는 그 후, 이리저리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여 상동강(上東江) 소성(小城)을 다스리는 수도문파에 청을 넣을 수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수사의 자질을 가진 듯하다며 그것을 살펴 줄 수 있는지 물은 것인데, 그 청을 하는데만 수천 금의 재물이 들어갔다.

그리고 다행히 위정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소성의 관리가 위씨 가문으로 직접 찾아왔다.

간혹 청을 넣어도 무시하고 넘기는 경우도 있다는데 다행히 수사가 발걸음을 한 것이다.

“오호, 이런 경우가 있단 말인가.”

소성의 관리인 축기기 초기의 수사는 위문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신선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위정호가 창백한 안색으로 물었다.

“아니다. 네 아들은 수련 자질이 무척 뛰어나구나. 따로 공법을 익힌 것도 없이 영기를 몸에 받아들였구나. 오호라, 그래서 얼마 전에 죽다 살았던 게로군?”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신선님.”

“영기란 우리들 수도자들이 다루는 특별한 기운이다. 그것을 범인인 저 아이가 몸에 담았으니 탈이 크게 났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어찌 그 고비를 넘기긴 한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었을 것을.”

“꿈에 노신선이 나타나셔서 죽음에서 되돌려 보냈다고······.”

“그것은 진실로 신선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 다만 영기를 몸에 품고 드디어 수도계에 발을 디디게 되니 그로서 처음으로 무량한 법열(法悅)을 느끼며 환상을 본 것이지.”

“그, 그렇습니까?”

“어쨌거나 영기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수사의 길에 들어섰음을 자각한 것이니 좋은 일이다. 그 덕분에 이렇게 우리와 연을 맺게 되지 않았느냐.”

“그렇군요. 실로 그렇습니다.”

위정호는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신선이란 존재는 수백, 수천 년을 살며 신비한 도술을 부리는 이들이다.

겉모습이야 어떠하든 범인이 감히 잣대를 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좋아. 저 아이는 내가 데리고 가겠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알고 있겠지만 저 아이가 우리 상동강(上東江) 소성의 수련원에 들게 되면, 그 때부터 속세와의 연은 끊어지는 것이다. 그건 알고 있겠지?”

“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들에게 좋은 일이니 그리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알면 되었다. 이후로 저 아이를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너와 네 아들, 그리고 손자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서 우리 상동강 소성에서 너희를 돌보아 줄 것이다. 너희는 그 동안 소성의 이름을 앞세워도 된다.”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불의하거나 법을 어기는 짓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절대로 소성에 누가 되는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위정호는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며 그 숫자만큼 약속을 거듭했다.

신선이 말한 조건을 지키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렇더라도 소성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은 무척 큰 힘이다.

적어도 손자가 죽을 때까지는 위씨 가문이 위기에 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위문진이 그 사이에 경지를 높여 집안을 돌보아 줄 수도 있다.

가끔 후손들 중에 수련 자질이 있는 아이를 찾아 조금만 이끌어 주더라도 그게 어딘가.

위정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기뻐하다가 문득 아들의 얼굴을 보고 찬 물을 맞은 듯이 정신이 들었다.

“문진아.”

아들을 부르는 위정호의 목소리에 애틋함과 미안함, 부끄러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가문을 버리고 제 갈 길을 떠나는 것이니 도리어 제가 송구해야 할 일이지요.”

“아니다, 아니야.”

“하지만 이것이 저와 아버님, 나아가서는 집안의 가솔들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그건 아시지요?”

“그럼, 그럼. 알고 있고 말고.”

“그러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 경사가 아닙니까. 잔치를 벌여 축하를 할 일입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마.”

위정호가 고개를 끄덕일 때에 소성의 관리인 축기기 수사가 손을 들었다.

“되었다. 아이야, 너는 지금 떠나야 하니 쓸데없는 속세의 정은 이제 잊도록 해라.”

“지금 바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위정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너희들의 일에 내가 신경쓰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냐?”

그런 위정호의 말에 관리 수사가 살짝 노여움을 드러냈다.

그러자 위씨 가문 전체가 기묘한 압력에 휩싸였다.

“노여움을 푸시지요. 제가 지금 당장 따라 나서겠습니다. 그저 떠나면 그만인데 굳이 이런 일에 신경을 쓰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때, 위문진이 급히 무릎걸음으로 나서며 관리 수사의 앞에 엎드렸다.

“그래, 그렇지. 너만 떠나면 될 일을······.”

관리 수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손을 저어 영기를 일으켜 위문진을 감쌌다.

그리고 곧바로 둔술을 펼쳐 위문진을 데리고 노전현의 입구로 이동했다.

번뜩이는 둔광과 함께 수사와 아들이 모두 사라지자 위정호가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가 급히 안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위씨 가문에서는 위문진의 수도계 입문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이로서 근방의 모든 사람들이 위씨 가문이 소성의 비호를 받게 되었음을 알았다.

* * *

피이이잉!

퍼벙!

“윽!”

위문진은 수련원의 한적한 곳에 홀로 앉아 의념 수련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날아온 바람 화살을 맞고 신음소리를 냈다.

“이야, 수련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지? 그냥 눈만 감고 있었나?”

“그랬겠지. 그게 아니면 어떻게 사형의 바람 화살을 저렇게 막아낼 수 있었겠어?”

“맞아. 저 녀석은 항상 저렇게 눈을 감고 수련을 하는 척 하며 농땡이를 부리고 있는 거지.”

“그 흔한 공격 공법은 하나도 익히지 않고, 고작 방어 술법 하나만 익히고 있다지?”

“그것도 처음엔 익히지 않았다가 우리들 때문에 익혔다고 사부님들께 하소연을 했다더군.”

“고작 하는 짓이 사부들에게 하소연이라니 웃긴 일이지. 자고로 수도계의 수사라면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지.”

“호호호. 그래서 방어 술법을 익히긴 했잖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기가 어려웠을 테니까.”

위문진에게 바람 화살을 날린 원생과 그를 따르는 예닐곱의 원생들이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위문진은 그런 원생들의 등장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진염결을 극성으로 펼쳐 의념이 모두 고갈된 상태였다.

방금 바람 화살을 막았던 것은 사실 완전히 고갈된 의념을 다시 한 번 쥐어짠 결과였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다시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만약 저들이 그를 공격한다면 방어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방어 술법을 펼쳐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때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위문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제 저들은 그를 상대로 갖가지 술법들을 시험하려 할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번 그래왔으니 당연할 일로 여기고 망설이지도 않겠지만, 지금의 그는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정을 해야겠군.’

위문진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일행을 이끌고 있는 십대 후반의 아이를 향해 말했다.

“강 사형, 어쩐 일로 소제를 찾아 왔는지 알겠지만 지금은 때가 좋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의념이 완전히 고갈되어 한 올의 영기도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괜히 자신을 공격하거나 하지 말라는 뜻이다.

구차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호? 의념이 완전히 고갈되었다고?”

강일진, 강 사형이라 불린 수련원생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강 사형.”

위문진이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더 잘 된 거 아냐? 너는 항상 방어술만 펼쳤는데, 지금처럼 의념이 고갈된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버티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겠어? 멸계의 공허체와 싸우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고.”

“맞아. 강 사형의 말대로 문진이 너도 공허체를 상대로 싸우는 연습을 해야지.”

“그래, 때마침 의념이 고갈된 상태에서 공허체를 만난 거야. 그러니 재주껏 상황을 벗어나 보라고.”

강일진이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말하자, 다른 원생들도 그에 동조하며 문진을 압박했다.

위문진은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이것들은 의념 고갈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말인가? 아니 애초에 의념이 완전히 고갈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없겠지. 그러니 이따위 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

수사들도 수련을 하거나 영기를 쓰다보며 의념이 고갈되는 일을 겪곤 한다.

하지만 그 때도 진염결을 극성으로 펼친 것만큼 의념을 고갈시키진 못한다.

애초에 자신의 의념을 그토록 완전하게 끌어내어 사용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의념의 완전한 고갈에서 수사가 겪는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저리 말하는 것이다.

‘이거 곤란한데? 이러다가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어.’

지금은 범인보다 조금 튼튼한 몸뚱이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상태였다.

영기를 쓰지 못하는 수사란 바로 그런 꼴인 것이다.

아무리 연신기 초기, 중기의 애송이들이 하는 공격이라도 지금의 위문진에겐 극히 위험했다.

“자, 받아봐라!”

“문진아, 나도 간다!”

“호호호, 이번에 내 비검 공법이 조금 성장했어요. 맛 봐 주세요.”

그리고 위문진의 당혹감과는 상관없이 강일진 무리의 공격이 그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위문진이 이를 부득 갈았다.

“귀찮은 것이야 감수하면 그만이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바에야, 나도 더는 참을 이유가 없다!”

위문진은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는 소매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서 강일진 무리를 향해 내밀었다.

그러자 그 옥패에서 작은 삿갓 모양의 반투명한 황금색 방패가 떠오르더니 강일진 무리의 공격을 모두 삼켜 버렸다.

“어엇?”

“저게 뭐야?”

“어떻게 된 거지?”

갑작스런 상황에 강일진을 비롯한 수련원생이 깜짝 놀라 허둥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위문진이 만든 황금색 방패에서 조금 전에 사라진 공격들이 되돌아 나와 주인에게 날아갔다.

그런데 그 위력이 이번보다 곱은 더 강해진 상태였다.

퍼벅! 푸욱! 콰광! 퍼버벅!

“끄윽!”

“아악!”

“꺄아아악!”

“으어어어어 사, 살려······.”

“히이이익!”

제가 날린 공격을 곱으로 되돌려 받은 수련원생들은 모두 그 공격을 막지 못했다.

때문에 대부분이 크게 부상을 입고 나뒹굴었다.

그나마 위문진을 염려해서 손속에 사정을 두었던 원생 둘만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그 순간 허공에서 둔광이 번뜩이며 수련원의 지도 수사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위문진이 펼친 황금빛 방패를 발견하고 눈빛이 반짝였다.

“어찌 된 일이냐!”

그가 그나마 멀쩡하게 서 있는 강일진 무리의 두 원생에게 물었다.

두 원생은 감히 지도 수사에게 거짓을 고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고해 바쳤다.

“이런 어리석은 것들! 감히 다른 수련자의 수련을 방해해?!”

지도 수사는 크게 노여워했다.

싸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수련을 방해한 것이 문제였다.

서로 이야기만 된다면 한 명이 다수를 상대로 겨룰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강일진 무리가 수련중인 위문진을 공격하여 벌어진 일이다.

“너는 어찌 법기를 사용하였느냐?”

지도 수사는 위문진에게 법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서 물었다.

원생의 다툼에서 법부도 아닌 법기가 등장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었다.

“의념이 모두 고갈되어 법부조차 쓸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법기에 담긴 영기에 의존한 것입니다.”

위문진은 그렇게 대답했고, 지도 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다툼에 네 잘못은 없다 하겠구나. 하지만 네가 가진 그 법기는 무엇이냐. 어디서 난 것이지?”

결국 위문진이 숨기고 싶었던 것을 물어오는 지도 수사였다.

위문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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