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아, 씨앙! 이러면 주먹이 답이지
“이제 어찌 하면 되는가?”
건우가 물었다.
“뭐라?”
건우의 물음에 그를 둘러싼 영체기 수사 하나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 않은가. 갑자기 이러 핍박을 받으니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 물어 보는 것이지.”
“이런 태도는 또 처음이군. 너는 지금 위험인물로 신고를 당한 상황이다. 그것을 모르느냐?”
“음, 사실 나는 지금 상황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곳 수도계의 상황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곳 수도계를 모른다고?”
“나는 사실 이곳이 아닌 다른 인계의 출신이다. 공간 균열에 빠졌다가 계(界)를 넘어 이쪽으로 오게 되었지.”
“공간 균열로 계를 넘었다고?”
“그래.”
“그게 말이 되느냐? 고작 영체기 수준으로 공간 균열을 견디고 계를 넘다니,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허면, 화신기면 되겠느냐?”
상대의 반응에 건우가 숨겼던 유잠공의 기운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자 건우의 경지가 화신기 초기의 경지로 높아졌다.
“어엇?”
“화신기!”
건우의 변화에 그를 포위한 영체기 수사들이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이러면 말이 되겠느냐?”
건우는 다시 영체기 수사들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영체기 수사들은 감히 건우의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한 모습으로 우물쭈물 했다.
영체기와 화신기의 차이가 극명하니 감히 대거리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때였다.
건우의 감각에 평토성의 중앙성으로부터 두 명의 수사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성주님!”
“국사(國師)어른!”
두 명의 수사는 모두가 화신기 수사였고, 그들이 나타나자 영체기 수사들이 급급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이런 일이 있나. 화신기 멸계수사라니.”
먼저 머리에 푸른 관을 쓴 수사가 적대적인 눈빛으로 건우를 보며 말했다.
그 경지는 화신기 초기로 유잠의 경지와 비슷했다.
“나는 멸계수사가 아니다.”
건우가 그를 보며 딱 잘라 말했다.
“아니라고?”
“그렇다.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계에서 공간 균열에 휘말려 이쪽 세상으로 왔을 뿐이다.”
“고작 공간 균열로 어찌 계를 넘는단 말이냐.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네가 모르진 않을 텐데?”
푸른 관을 쓴 수사의 태도는 극단적이었다.
건우의 말을 이해하거나 수용할 의지는 전혀 없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구나.”
“뭐라? 네가 감히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시끄럽다! 그럼 너는 그렇다고 치고, 그 옆에 계신 분은 어떠십니까? 수사께서도 역시 곁에 있는 저 애송이와 같은 생각이십니까?”
건우가 특이하게 녹색 수염을 기르고 있는 노인을 보며 물었다.
그 녹색 수염의 수사는 건우도 경지를 짐작할 수 없는 상대였다.
화신기 완경이라고 해도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그가 경지를 알 수 없는 상대라니.
자연스럽게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언행이 조심스러웠다.
“허어, 숨겨 놓은 경지가 더 있구나. 화신기 후기이더냐?”
녹색 수염 수사가 건우가 숨긴 경지를 들춰냈다.
“부끄럽습니다. 이리 쉽게 들통이 나다니 말입니다.”
건우는 머쓱하게 웃으며 녹염(綠髥-녹색수염) 수사의 말을 인정했다.
그러자 녹염 수사 곁에 있던 화신기 초기 수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구, 국사어른, 저 놈이 정말로 화신기 후기란 말입니까?”
“쯧! 자중하시게. 어찌 그리 오만방자하단 말인가. 내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저 수사가 자네의 그런 행동을 마냥 지켜보기만 했을 거 같은가?!”
그런 수사를 녹염수사가 혀를 차며 나무랐다.
그러자 파란 관의 수사는 찔끔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국사셨습니까? 국사라 하면 한 나라의 스승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건우가 녹염 수사를 보며 물었다.
“그렇지. 내가 이 제윤국(醍胤國)의 국사 손진(孫珍)이라네. 그런데 자네는 정말 다른 인계에서 온 것이 확실한가?”
“손 수사셨습니까. 저는 유잠이라 합니다.”
“유잠?”
“제가 있는 곳에서는 다른 이름을 몇 개 더 쓰기는 했습니다만, 이곳에 와서는 유잠이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결국 다른 계에서 왔음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로군.”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원하신다면 영혼을 걸고 제 말이 사실임을 맹세할 수도 있습니다.”
“으음. 자네가 멸계수사만 아니라면 그게 나쁘지 않은 수이기는 하지만, 원래 멸계수사들이 거짓 맹약을 쉬이 하는 터라, 그것으론 스스로를 증명하기 어렵겠군.”
“그렇습니까? 그러면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스스로 떳떳하니 어느 정도까지는 증명에 응할 생각도 있습니다만.”
“웃기는 소리. 국사어른, 마땅히 추혼술을 펼쳐서 저 말의 진위를 가려야 할 것입니다.”
건우의 말에 평토성의 성주로 보이는 푸른 관의 수사가 국사 손진을 보며 엉뚱한 주장을 펼쳤다.
“으음. 확실히 추혼술 만한 방법이 없기는 하지.”
그런데 그 말에 손진이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손 수사. 지금 추혼술이 괜찮은 방법이라 한 겁니까?”
그런 손진을 향해 건우가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스스로 다른 계에서 왔다지만 그것을 증명할 마땅한 방법이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수많은 멸계수사를 상대하며 알아낸 바에 의하면 추혼술 외에 그들의 진위를 가리고 확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네.”
“그럼 여쭙겠습니다. 그 추혼술이란 것을 당하면 제가 별다른 피해 없이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건우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손진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얼마간의 손해를 보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 네 영혼과 영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해야 할 것인데,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평토성 성주가 건우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그런 평토성 성주의 행동에 손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나무랐다.
“조용히 하지 못할까! 지금 네가 나설 때가 아님을 모르느냐!”
하지만 손진이 그렇게 화를 내거나 말거나 건우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였다.
“그 놈은 내가 순순히 추혼술을 받아들이는 것을 막고 싶은 모양이군요. 손 수사께서 추혼술의 후유증이 없거나 크지 않다고 했으면 순순히 추혼술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증명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저 애송이가 그것을 막았으니 이제 어쩌겠습니까?”
어차피 후유증이 크지 않다고 해도 추혼술 따위를 받을 생각은 없었던 건우였다.
그럼에도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은 평토성주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려는 소소한 복수였다.
“으음. 곤란하군. 멸계수사로 의심스러운 고계 수사를 못 본 척을 할 수는 없으니 말이네.”
“그렇습니까?”
“자네가 다른 계에서 의도치 않게 넘어오게 되었음을 온전히 믿기는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자네를 제압해서 확인을 해 봐야겠네.”
“과격하군요.”
“멸계와는 타협이 있을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멸계수사를 밝혀 낼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만들었어야 하지요. 그랬으면 억울할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보십시오. 국사 어른. 저 놈이 하는 말이 바로 멸계수사들의 말이 아닙니까. 항상 억울하다 하고, 피해자라 하고, 조작된 것이라 하지만 추혼술을 당하면 열에 아홉은 스스로 멸계수사임을 토설하지 않습니까.”
건우의 말에 평토성주가 다시 기가 살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말에 손진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건 뭐, 방법이 없네. 이렇게 되면 결국 힘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나?’
건우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국사라는 손진 수사를 살폈다.
‘화신기 완경의 벽을 깬 듯 보인다.’
아무리 살펴도 손진 수사는 화신기 완경 이상의 경지에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손 수사께서는 화신기를 넘어선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게 가능한 것이었습니까?”
건우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손진에게 물었다.
“뻔히 아는 사실을 묻는 것은 네가 이곳 사람이 아님을 꾸미려는 위장이냐?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이냐. 하긴 의미 없는 질문이긴 하겠구나. 그래도 어렵게 물어본 것 같으니 답을 해 주마. 화신기 너머의 경지를 입령기라 한다. 화신에서 령(靈)으로 성장하는 것을 말하지.”
“그것이 인계에서 가능하긴 한 것입니까?”
“이곳이 보통 인계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겠느냐. 아주 약간이라도 영계에 걸쳤으니 그 덕분에 화신기의 벽에 금을 낼 수 있었지. 물론 온전히 입령기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히 존경스럽습니다. 지금껏 만난 수사들 중에서 가장 지고한 경지에 오르신 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건우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존경의 염을 표했다.
“속지 마십시오. 저건 전부 연극일 뿐입니다. 멸계수사 놈의 수작임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 건우를 보며 평토성주가 소리를 질렀다.
건우는 그 평토성주의 모습에 거품을 물고 짖는 개를 떠올렸다.
그것도 꼬리를 배에 착 붙이고 버지럭 거리며 짖는 개.
“허어, 나도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게. 자네가 억울한 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이 아이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훨씬 높으니 어쩌겠는가. 직접 잡아 확인을 할 수밖에.”
“그렇게 되면 제 영체와 영혼이 크게 훼손될 것인데, 저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손진은 될 수 있으면 부드럽게 말을 했지만, 그 내용은 건우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건우가 결심했던 대로 한 바탕 싸움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네가 거부한다고 바뀔 상황은 아니지 않겠느냐. 화신기 후기의 경지를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입령기를 엿본 나에게 비할 바는 아니니라.”
손진은 건우의 저항 의지를 가볍게 비웃으며 허공에 손을 저었다.
그 순간 건우는 주변의 천지영기가 모두 손진의 의식에 물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건우가 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영기 밖에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절대 싸울 수 없겠지. 의념 싸움에서 완전히 지고 만 거다.’
손진의 의념이 건우의 의념을 가볍게 찍어 누르며 천지 영기에 대한 장악력을 빼앗아 갔다.
그러니 화신기 수사라도 뭔가 해 볼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입령기 수사의 의념은 내가 아공간에서 쓰는 의념과 비슷한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거군.’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은 아공간 안에서 의념을 사용하면 거의 권능에 비길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입령기를 엿봤다는 손진은 경지 차이로 그것을 쉽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그는 급히 아공간에서 성해룡주(星蟹龍珠)를 소환해 들었다.
그리고 그 성해룡주의 기운을 이용해서 아공간을 현실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이 방법이 아니고는 입령기를 엿봤다는 손진의 의념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건우가 성해룡결공법을 펼치기 시작하자 외모가 원래 건우의 모습을 바뀌었다.
“저 보십시오. 저 놈이 저렇게 정체를 감추고 있지 않았습니까. 멸계수사가 분명합니다.”
그 모습에 평토성주가 또 한 번 의기양양하게 고함을 질렀다.
“시끄럽다! 감히 지금 상황에 네 따위가 끼어 든다는 말이냐!”
그런 평토성주에게 손진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 역시 건우가 펼치는 아공간의 위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건우가 아공간을 구현해내자 그 안에서 손진의 의념이 크게 위축되고 천지 영기에 대한 장악도 대다수 빼앗기고 말았다.
손진은 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찌, 이럴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