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56화 (156/499)

155. 평토성(平土城)에서 세상을 읽다

‘신기한 일이군.’

건우는 수레의 앞자리에 앉아서 다섯 수사들의 모습을 살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들은 수레를 타고 평토성으로 이동하는 동안에 서로가 가진 이런저런 재화나 법부, 법기, 공법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교환이 때로는 어느 누군가가 크게 이득을 보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다.

어떤 법부는 누구에게 꼭 필요하니 그에게 헐값에 넘기고, 어떤 법기는 누군가의 공법과 어울리니 무상으로 건네기도 했다.

게다가 서로가 익힌 공법을 서로 교류하며 연구하고 보완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건우는 다시 한 번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이 거북함을 느꼈다.

‘애초에 저 신 수사란 녀석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수사 둘이 잠력을 폭발시켜 그를 구하려 했었지.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물론 아주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과거엔 그런 것이 가능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오래전, 인간으로 살아갈 때에나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이었다.

대천세계로 넘어와 수도자가 된 이후로, 누군가를 위한 희생 따위는 개도 안 줄 일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이곳은 이전에 내가 있던 인계와는 전혀 다르다. 서로 돕고, 배려하며,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일까?’

그는 한 달 가까이 좁은 수레 안에서 다섯 수사를 관찰하며 그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쪽 수도계에선 서로 돕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선배님.”

그 때, 천씨 성을 가진 수사가 건우를 불렀다.

그가 바로 다섯 수사 중에서 가장 늙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성단기 중기의 수사였다.

“무슨 일이냐?”

“조심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여쭐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선배님께서는 언젠가 입영계가 이루어 질 것이라 믿으시는지요? 아니 그러니까 멸계의 토벌파에 속하셨겠지요?”

“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건우는 천 수사가 말하는 입영계의 의미도 알 수 없었지만 모르는 척 대화를 이어갔다.

“저, 그러니까 선배님께서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이미 수명이 다할 때가 되었습니다. 성단기 후기에라도 오르면 수명이 좀 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영체기에 올라 극적인 수명 연장을 하긴 어렵지요.”

“어렵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희망이 크다 하긴 어렵겠지요. 결국 제 수명이 다하기 전에 입영계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대답을 바라고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그저 멸계를 밀어내고 승리한 후, 이 세상이 영계로 승격하는 것을 바라기에는 제게 남은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말씀이지요.”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를 모르겠구나.”

건우는 천 수사에게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척 놀라고 있었다.

입영계란 것이 이 세상 전체가 영계로 들어가는 것이란 말인가?

천 수사의 말대로라면 지금 이 세상을 침략한 멸계를 물리치게 되면 이곳 인계가 영계가 된다는 말이 분명했다.

‘인계가 영계가 된다고? 그렇게 되는 수도 있단 말인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사 하나가 영계로 비승하는데도 엄청난 고난을 뚫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하고도 영계 비승에 실패하는 수사들이 흔하다.

그 과정이 대천겁에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이곳 인계 전체, 즉 세상 하나가 영계로 편입될 수 있단다.

건우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지금까지 이해가 되지 않던 수사들의 모습이 그럴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 거군. 이는 수도계 수사뿐만이 아니라 하찮은 초목이나 금수(禽獸), 충어(蟲魚)는 물론이고 범인(凡人)들까지 영계로 끌어올려지는 일이다. 그러니 모두가 힘을 모아서 멸계와 싸울 수 있었겠지.’

어쨌거나 입영계의 열매가 맺히기만 하면 모두 그 이득을 볼 수 있다.

싸움에 승리하기만 하면 모두가 영계에 속하게 된다.

그러니 집단주의나 전체주의 같은 것이 힘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그저 입영계를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멸계 토벌파의 선배님을 뵙게 되니, 입영계를 위한 준비가 어찌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고작 영체기 중기에 불과한 내가 어찌 그런 것을 알겠느냐. 화신기 선배님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데.”

건우는 손을 저어 천 수사를 물리치며 그렇게 입영계나 그에 대한 준비에 대해서 언급을 피했다.

“역시 그렇겠지요. 이미 멸계와 싸워 온 것이 수 백 만년이 흘렀는데 고작 몇 년 사이에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겠지요.”

두 손을 모아 건우에게 인사를 올린 천 수사는 결국 그렇게 실망스런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 뒤, 건우는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겉으로 태연한 척 하고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무척 복잡했다.

‘그것이 정말일까? 멸계를 완전히 몰아내면 이곳 세상이 영계와 연결된다는 것이?’

의심부터 들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누군가 고도의 술책을 부려서 이곳 세상에 그릇된 믿음을 퍼트린 것이 아닐까? 멸계와 싸워서 이겨도 결국 변하는 것은 없을 수도······.’

수도계에서 믿을 것은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에 새기며 살아온 그였다.

그런 그로서는 지금 이쪽 세상에 널리 퍼진 집단, 단체, 전체 따위를 우선하는 기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확실히 냄새가 난다. 어떤 놈이 이쪽 세상 전체를 엉뚱한 믿음으로 물들이고 이용해 먹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건우의 고민은 그런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론은 앞으로 자신의 경지를 드러내는 데 더욱 신중해야겠다는 결심을 이끌어 냈다.

한 세상 전체를 좌우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무조건 몸을 사려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건우가 퍼트린 의식에 다수의 수사들이 감지되었다.

드디어 평토성에 도착한 것이다.

* * *

건우에게 구함을 받은 다섯 수사는 평토성에 도착하자마자 보고를 위해서 관리를 찾아갔다.

이곳 세상은 수사들이 전면에 나서서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니 평토성의 성주와 그 휘하의 관리들 역시 모두가 수사들이었다.

건우는 다섯 수사가 임무 과정을 보고하기 위해 가야 한다는 말에 아무 조건 없이 그들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그는 홀로 평토성을 돌아다니며 수사들이 몰린 곳을 찾아 다녔다.

평토성에는 수사들을 위한 상설 시장과 상점들이 제법 많이 있었고, 상품도 괜찮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건우는 당장 뭔가를 구입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평토성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그러던 중, 건우는 한동안 머물 거처가 필요함을 느끼고 객관 하나를 찾아 들었다.

몇 개의 객관들 중에서 중급 정도로 보이는 그곳은 유운(流雲)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십이비승봉 밀역과 은밀역에서 인연이 있었던 유운 수사를 떠올려 택한 객관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유잠의 모습을 한 건우가 객관 안으로 들어서자 연신기 중기의 수사가 건우를 맞이했다.

“내가 이곳이 처음이라 어찌 운영이 되는지 모르는데 설명을 좀 해 주겠느냐?”

건우가 그 수사에게 객관 이용에 대해서 물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희 유운 객관이라고 다른 곳과 다를 것은 없습니다. 모든 손님들께 개인 공간을 내어 드리지만 그 규모는 각기 다릅니다.”

“그렇다면 내가 쓰기에 적당한 곳은 어느 정도 되겠느냐?”

영체기 중기의 수준을 드러내며 건우가 물었다.

“저희 유운 객관에서는 가장 좋은 곳이라도 고작 3층 전각이 있을 뿐입니다. 그곳에 잡일을 돌봐 줄 일꾼을 세 명 정도 붙여 드릴 수 있고요.”

“그렇구나. 그럼 그 전각이란 곳은 어떤 곳이냐?”

“진법으로 만든 독립 공간입니다. 그곳에 머무신다면 출입패를 드릴 것이고, 그 출입패가 손님의 손에 있는 이상, 다른 이들은 그곳을 드나들 수 없습니다.”

“물론 너희가 비상용으로 가진 패가 있겠지?”

“그렇습니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이니까요.”

“좋다. 그럼 그 전각 하나를 빌리기로 하자꾸나.”

“그럼 일꾼들은 어찌할까요?”

“되었다. 나는 홀로 있는 것이 좋다. 누군가 곁에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에 숙박계를 써 주시겠습니까?”

건우가 객관에 머물기로 결정하자 접객 직원인 그 연신기 수사가 은은한 금빛 종이를 내밀었다.

“으음? 이것이 무엇이냐?”

건우가 처음 보는 종이에 놀라며 물었다.

그 종이에는 매우 정교한 술식들이 짜여 있었다.

“이것을 모르십니까?”

건우의 물음에 연신기 수사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굉장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건우를 보고 있었다.

“모른다.”

건우가 대답했다.

“이것은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숙박부입니다. 여기에 이름을 적으시고 영기를 불어 넣어 주시면 그로서 신분 확인 과정이 시작됩니다.”

“으음. 나는 이곳 대륙 출신이 아니다만? 공간 균열에 빠져서 이곳 평토성과 멸계의 경계 지역에 떨어졌다가 오늘에야 겨우 이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 신분을 어찌 확인한단 말이냐?”

건우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접객 직원을 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 세상에 근본이 없는 수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손님의 신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점차 범위를 넓혀서 일곱 대륙 전체를 살필 수도 있습니다.”

“뭐라?”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혹시 손님께서 멸계수사일 가능성도 있는 일이니 말입니다.”

“멸계수사? 그는 또 무엇이냐?”

“네? 멸계수사를 모른단 말입니까?”

건우의 말에 직원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고, 그 순간 은밀한 영기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건우는 그 파동이 눈앞에 있는 연신기 수사의 수작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지금 보낸 신호는 무엇이었더냐?”

건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묻고 있지는 않느냐, 무슨 신호였느냐고.”

“의심스러운 존재가 나타났음을 성에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으음. 내가 그리 의심스러웠단 말이냐?”

“도무지 아시는 것이 없으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경우는 대부분 신분을 감추고 멸계를 위해서 암약하는 멸계수사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듣자니 멸계수사란 것이 일종의 첩자 같은 것인 모양이구나.”

“모르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저 추측이니라. 그런데 그런 첩자가 나처럼 단순한 정보조차 몰라서 이리 어수룩하게 행동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쨌거나 기본적인 지식도 알지 못하는 영체기 중기의 수사라는 것은 분명치 않습니까. 멸계수사가 아니더라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흐음. 내가 이미 공간 균열로 엉뚱한 곳에 이르렀다 말했는데도?”

“그렇다면 손님의 신분을 정확하게 확인하면 그만입니다.”

“신분 확인이 되지 않으면 어찌 되는냐?”

“그야 당연히 멸계수사로 판정이 되겠지요.”

“으음. 그것 참, 곤란하구나. 나는 멸계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지만 또 그렇다고 내 스스로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그 때였다.

객관 밖으로 여러 수사들의 기운이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하나같이 영체기 중, 후기의 수사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넓은 포위망을 만든 후에 일부가 객관으로 접근하는 중이었다.

“그것 참, 곤란한 상황이 되었구나.”

건우는 접객 직원을 살짝 노려보고는 칠채 둔광을 떨치며 객관 밖,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으음.”

그리고 그 즉시 여러 수사들이 그를 에워싸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 참,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군.”

건우가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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