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아, 이런···.
검선의 허상이 건우를 향해 검을 뻗었다.
그리고 그 검에서 서른여섯 개의 검이 쏟아져 나왔다.
건우 역시 검결지로 성광검을 가리키며 서른여섯 개의 검을 뽑아 검선의 허상을 향해 날려 보냈다.
차차차차차차창!
둘이 날린 검들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별빛 광채를 어지럽게 뿌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검선의 허상과 건우가 동시에 서른여섯 개의 검을 다시 회수해서 자신의 검에 합쳐 넣었다.
“이게 끝은 아니겠지요?”
건우가 검선의 허상을 보며 물었다.
그 물음에 검선의 허상은 희미하게 웃으며 이번에는 검을 빠르게 내찔렀다.
이번에 날아온 검의 숫자는 일흔두 개였다.
건우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성광검에 의념을 불어 넣어 검선을 향해 반격을 시도했다.
양쪽에서 일흔두 개 씩.
모두 백마흔네 개의 별빛 검들이 화려하게 충돌하며 허공을 화려한 별빛으로 수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검선과 건우의 겨룸은 무승부가 되었다.
“아직 관문이 깨어지지 않았소이다. 해 수사 힘을 내시는 것이오이다.”
학겸이 여전히 통로를 막고 있는 마지막 허상 관문을 확인하며 말했다.
건우도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검선은 아직 마지막 수를 남겨 놓고 있었다.
“이제 어찌하시려오?”
건우가 허상 검선을 보며 물었고, 검선의 허상은 대답이라도 하듯이 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다시 검선의 검에서 다수의 검들이 건우를 향해 휘몰아쳤다.
그 수는 모두 일흔다섯.
원래 검선이 남긴 유산을 완성하면 일흔두 개의 검이 중첩된다.
그러데 검선의 허상이 일흔다섯 개의 검을 날렸으니 이것은 분명유산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원래라면 완성된 유산으로 일흔두 개의 검을 막고 나머지 세 개의 검을 건우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건우가 완성한 검선의 유산이 일흔두 개의 검을 중첩한 것일 때의 일.
건우가 피식 웃으며 검결지를 내뻗었다.
그러자 성광검에서 백여덟 개의 검이 허상의 검선을 향해 쏘아졌다.
그 중에 일흔다섯 개는 허상의 검선이 막아냈지만 나머지는 모두 허상의 검선을 꿰뚫었다.
“오오, 대단하오이다. 백여덟 개의 중첩이라니!”
건우의 바로 곁에 있던 학겸이 놀라며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검선의 허상이 사라지며 동시에 영계 비승로를 막고 있던 허상의 관문이 산산조각 났다.
마지막 관문이 뚫린 것이다.
파차차차차차차창!
“열렸다!”
“드디어!”
“멈춰라! 내가 먼저다!”
“순서가 어디 있답니까? 능력껏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순간 수사들이 일제히 유산을 챙겨 영계 비승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것은 건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건우는 허상의 검선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가 사라지는 순간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다른 수사들보다 관문이 깨어지는 순간도 조금이나마 먼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열두 유산이 만든 영계 비승로(飛昇路)에 가장 먼저 닿을 수 있었다.
‘내가 먼저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고작 한 걸음 정도의 차이지만 자신이 가장 앞서 있었다.
물론 영계 비승로를 얼마나 오래 거쳐야 영계에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쨌건 영계로 올라가는 과정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먼저 갑니···.”
퍼벙!
“커억!”
그는 한껏 기뻐하며 다른 수사들에게 인사를 하고 영계 비승로에 몸을 던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의 몸은 비승로 입구에서 엄청난 반발을 받으며 뒤로 튕겨지고 말았다.
“어? 무슨? 어찌된 일이오이··· 까아!”
바로 뒤따라오던 학겸이 놀라며 건우에게 물어보다가 다음 순간 영계 비승로 안으로 쑤욱 들어가 버렸다.
그 때문에 학겸의 말끝이 뭉그러지며 잠시의 간격을 두고 전해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건우가 튕겨지던 몸을 바로 세우고 다시 영계 비승로로 날아들며 중얼거렸다.
그 때 건우는 이미 열두 수사들 중에서 꼴찌로 밀려 있었다.
바로 앞에 궁선의 유산에서 태어난 예예가 있었는데 건우가 비승로 입구에 닿기 전에 예예까지 비승로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건우는 다시 한 번 비승로 입구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으며 튕겨졌다.
투둥!
“도대체 왜?!”
자신만 입장에 거듭 실패하자 건우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런 건우를 비승로에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수사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돌아봤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되돌아와 건우를 도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건우는 영계 비승로 입구에서 망연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 통로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영계 비승로 입구에 손을 대고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수미산!”
그 순간 그는 아공간의 수미산에서 엄청난 반발력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수미산 때문에 영계 비승로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분명했다.
“크하하하. 아쉽군. 길 가야 내가 먼저 올라가 터를 닦아 놓으마. 조만간 올라와 나를 찾으면 너에게 마땅히 한 잔의 술을 내어 주겠다.”
저만치 앞서가던 종선생이 건우를 돌아보며 외치고 있었다.
의외로 비승로 안쪽의 수사들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매우 힘겨운 모습으로 영계 비승로를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었다.
“하아, 이렇게 되면 이거 나가린데······.”
건우는 한숨을 쉬며 방법을 찾았지만 수미산이 문제인 상황이라 수를 찾지 못하고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였다.
콰지지지지지직!
갑자기 영계 비승로 전체가 강력한 충격에 뒤흔들렸다.
“뭐지?”
건우는 깜짝 놀라며 영계 비승로를 공격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광!
그 때, 다시 한 번의 공격이 있었다.
“성광!”
건우는 두 번째 공격을 살펴 공격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짐작해 냈다.
“성광하역의 노괴! 그녀가 복수를 하는 것이군.”
과거 건우가 성광하주에게서 성광철(星光鐵)을 취한 바가 있었다.
그 때 그는 성광하주의 약점을 잡아서 크게 이익을 보았는데, 성광역주가 그것을 잊지 않고 지금 순간에 복수를 해 온 것이다.
“내 성광검에 깃든 성광의 기운을 따라서 영계 비승진법의 진로를 추적했겠군. 그것을 바탕으로 영계 비승로에 타격을 주는 것이고.”
성광하주는 사실상 화신기를 넘어선 존재였다.
다만 그녀는 극광성(極光城)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약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손해를 크게 봤다.
그런 그녀가 결국 건우의 영계 비승을 방해할 목적으로 영계 비승로를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콰과과과과광!
쿠르르르르르!
결국 다시 한 번의 성광 공격이 이어졌고, 그 공격에 영계 비승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에 다급해진 것은 비승로 안에 있던 수사들이었다.
그들은 영계에 닿지도 못한 상태에서 통로가 무너지는 횡액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신기까지 오른 그들도 쉽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무어라 의논하던 그들은 제각각의 둔광을 남기고 영계 비승로에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건우는 그들이 영계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너지는 공간에 묻히지 않고 어디론가 몸을 피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으음?”
그런데 그 중에 한 명의 예외가 있었다.
예예 수사가 비승로를 거꾸로 되짚어 건우가 있는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원래 비승로에서도 제일 뒤처져 있었기에 비승로 입구에서 가깝기는 했다.
그래서 차라리 비승로를 벗어나는 쪽으로 선택을 한 것인 듯 보였다.
건우는 그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영계로 간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라면 이쪽 인계로 다시 넘어오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예예의 선택이 뜻밖에 상황을 만들어 냈다.
예예가 비승로 입구를 되돌아 나오는 순간 불안하던 비승로가 결국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때문에 안전하게 있던 건우까지 영계 비승로의 폭발에 휘말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게 무슨!”
그냥 있었으면 영계 비승로 밖에 있었던 건우는 낙생역에 남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예예가 영계 비승로와 건우가 있는 공간을 연결해 버렸다.
그리고 때마침 그와 동시에 일어난 영계 비승로의 폭발.
건우는 엄청난 공간 균열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다급하게 아공간으로 몸을 피했다.
공간 균열은 화신기 수사라도 맨 몸으로는 견딜 수 없는 재앙이었다.
그러니 다급한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아공간 뿐이었던 것이다.
- 무슨 일이에요? 영계에 닿았어요?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건우가 만약을 걱정해서 아공간 입구를 닫아놓고, 루야에게도 밖을 살피지못하게 했기에 루야는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젠장, 아공간까지 닫혔네.”
건우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으며 탄식했다.
그리고 그런 건우의 시선은 허공에 떠 있는 수미산을 노려보고 있었다.
- 무슨 일이에요? 수미산이 이상하게 진동을 하고 그러던데요.
루야가 물었다.
“내가 영계로 들어가는 걸 저 빌어먹을 산이 막아버렸다.”
건우가 그렇게 설명했지만 루야도 ‘이게 무슨 소리?’ 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 아공간이 막혔어.”
- 아, 그 말씀도 하셨죠. 아공간이 막혔다고요. 그런데 그건 지금 아공간을 열 수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 그래도 아공간이 없어진 것은 아니네요. 여기 이렇게 아공간이 있고, 건우 님도 무사하시니까요.
“음, 대신에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었지.”
- 걱정하지 마세요. 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잖아요.
“그래. 그렇긴 하지. 알까기 당해서 대천세계로 날아올 때도 이랬지. 음,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공간이 제 멋대로 깨지고 비틀렸으니 인계를 벗어나서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 상황일 수도 있겠네.”
- 네? 그럼 혹시 다른 세상으로 튕겨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설마 그렇기야 하려고.”
건우도 그렇게 대답했지만 사실 자신은 없었다.
세상 자체를 넘나드는 것이 그렇게 쉬울 거 같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아주 없다곤 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건우의 걱정은 시간이 지나서 다시 아공간 입구를 열 수 있게 될 때까지 이어졌다.
* * *
“고약한 것. 네가 무사히 영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더냐? 어림도 없는 일이지. 아무렴.”
성광하역의 극광성 중심에서 성광하주가 밝게 웃으며 만족스러운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계로 올라가는 통로는 임시로 연결된 관이라고 봐야 하지. 그런데 그게 박살나면? 호호호, 대부분 아무것도 없는 암흑 공간으로 떨어지고 말지. 정말 운이 좋다면 영계로 갈 수도 있겠지만 성광검을 지닌 놈은 절대로 불가능하지.”
성광하주는 건우가 비승로 안에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원래는 비승로 안에 있는 건우의 성광검과 성광하주의 공격이 서로 공명하며 훨씬 강력한 공격이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건우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바람에 성광하주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덕분에 다른 수사들도 몸을 피할 여유를 얻을 수 있었고.
“놈, 운이 좋다면 다른 인계로 떨어질 수도 있을 게다. 인계로 떨어질 때까지 암흑 공간에서 버틸 수 있어야겠지만 호호호홋.”
성광하주는 그렇게 오랜만에 속이 시원해지도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성광하주의 밝은 표정은 그 후로도 오래도록 이어졌다.
유산을 추적하는 술법을 아무리 펼쳐봐도 십이비선의 유산은 단 하나도 술법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열두 유산이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의미였고, 건우 역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지, 그 놈은 유산의 기운을 숨기는 재주가 뛰어나니 혹시 그렇게 한 것일 수도 있겠어. 음 이렇게 되면 회회전이나 만은사에 그 놈에 대한 정보 수집을 의뢰해야겠네.”
성광하주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지만 건우가 이쪽 세상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
그리고 회회전과 만은사를 통해 건우의 종적을 찾았다.
하지만 그 때, 건우는 이미 낯선 곳에 도착해서 주변 파악에 나서고 있었다.
비록 그가 이전까지 있었던 그 인계는 아니었지만.
“젠장, 천지 영기의 수준을 보면 인계가 분명하네. 그런데 미묘하게 천지 영기의 양이 많아. 여긴 내가 있던 그 인계가 아니야. 분명히.”
건우는 그렇게 천지영기를 가늠해서 자신이 다른 인계에 도착했음을 알아냈다.
그렇게 건우의 새로운 인계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