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52화 (152/499)

151. 시간이 흘러 진법이 발동하다

30년 후.

“드디어 낙생역 전체에 금제가 펼쳐지오이다. 이제 준비가 끝난 것이오이다.”

학겸이 마지막으로 진법의 축을 활성화 시키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가 낙생역 중앙 황토 대지에 펼친 수사들의 인신진법(人身陣法)이 드디어 발동되었다.

여기엔 영체기 수사만 수십 명이 들어갔고, 성단기는 수 천이나 희생이 되었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금 진법이 발동하는 순간, 낙생역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수사들이 진법에 기운을 제공하는 살아 있는 영석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쉬지 않고 공법 수련을 하며 빼앗긴 영기를 보충하지 않으면 목내이처럼 말라 죽을 것이다.

그 동안 적화존과 소량진 등이 법문 설법을 핑계로 낙생역 수사들에게 각인을 새겨 넣은 것이다.

그 때문에 각인을 받은 수사들은 학겸의 진법 발동과 함께 영기 공급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낙생역의 많은 수사들이 이상을 느끼고 빠져나가는 영기를 보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유산을 이용한 영계 비승진을 펼치기로 합시다.”

학겸이 낙생역을 봉쇄하는 진법을 발동하자 곧바로 마선의 유산자 조호가 나섰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결실을 맺을 때가 되었다.

한 자리에 모인 열두 명의 수사들 모두 은연중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오래 전에 이 학겸이 여러 수사들에게 열두 유산을 이용한 영계 비승진에 대한 내용을 전했을 것이오이다. 지금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할 분은 없으실 것으로 믿으오이다.”

“그런 걱정은 할 것 없소. 모두가 화신기에 이른 자들인데 고작 그 간단한 진법 하나를 섭렵하지 못했겠소?”

“차라리 유산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할 것을 걱정해야 할 일이지만 조예령 수사도 황금주판을 완벽하게 복원한 마당에 그런 걱정은 있을 수 없겠지요.”

“옳아요. 누가 감히 이 중요한 일에 태만할 수 있겠어요. 이 조예령도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어요.”

수사들은 저마다 어서 시작하자며 서둘렀다.

학겸도 더는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들이 영계 비승진을 펼치는 곳에 방해꾼이 등장할 일은 절대 없었다.

낙생역 전체를 봉인한 것은 물론이고, 이 황토 대지에 펼쳐진 진법도 충분히 강력했다.

화신기 수사들이 다수 몰려오는 이변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계 비승진을 펼치고 결과를 확인할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들어가시오이다.”

학겸이 결국 진법의 핵을 향해 손을 휘저어 통로를 열었다.

그리고 그가 먼저 앞서 진법의 중심으로 들어서자 나머지 수사들이 곧바로 뒤따랐다.

“여기가 이 학겸의 자리이오이다. 다른 분들도 자신들의 자리를 찾으시기 바라오이다.”

진법 중앙에 숨겨져 있던 공간은 의외로 단출했다.

지름이 30미터 정도 되는 원형의 석판만 존재하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진법으로 폐쇄된 곳이라 일렁거리는 진법의 기운이 벽과 천정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여기로군.”

“제 자리는 이곳이네요.”

“크음.”

수사들은 빠르게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원형의 석판 테두리를 따라서 열두 방위를 점하고 자리잡은 수사들.

건우 역시 해(亥)의 방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막상 보면 그 자리가 곧 학겸, 즉 자(子)의 바로 곁이었다.

“이제 유산의 기운을 진법에 불어넣으시오이다. 아시겠지만 이 때에 각각 유산의 기운을 운용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오이다. 이를 명심하시오이다.”

학겸이 마지막으로 주의를 주고는 혜선의 유산인 커다란 책을 앞으로 내밀어 가슴 높이에 띄웠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서 유산의 기운을 바닥의 돌판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선 불선이 커다란 지팡이를 세워 놓고 유산의 기운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마선의 유산과 약선의 유산인 마귀상의 패와 호로병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십이 비선의 유산들이 모두 완성된 모습을 드러내고 열두 방위에 자리를 잡았다.

우우우우우우웅!

쿠과과과과과과!

“크읏!”

“어엇?”

“긴장하시는 것이오이다. 진을 이루는 기운이 흔들리면 안 되는 것이오이다. 드디어 영계로 통하는 통로가 열리는 것이오이다.”

잠시 은은하게 흐르던 기운이 갑작스럽게 증폭되자 수사들이 깜짝 놀랐다.

그런 수사들에게 학겸이 고함을 질러 당황을 수습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보람이 있었는지 석판에 모이는 기운이 다시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그 직후!

“드디어 신호가 온다!”

“오오오!”

“첫 번째 관문이 나타났소!”

바닥의 돌판에서 짙은 영기가 위로 치솟으며 하늘에 통하는 길을 열었다.

그런데 통로를 가로막으며 기괴한 문자들이 가득한 허상의 막이 생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영계 비승 통로의 첫 번째 관문으로 혜선의 유산을 지닌 학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었다.

“이리도 복잡하고 심오하다니 놀라울 따름이오이다. 하지만 그 해답 역시 이곳에 들어 있으리이다!”

학겸이 혜선의 유산인 거대한 책에 의념을 가득 불어 넣었다.

그러자 그 책의 표면에 허상의 관문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문자가 떠오르더니 하나씩 표지에서 벗어나 허상 관문의 문자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서로 대응되는 문자가 상쇄되며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혜선의 유산으로도 모든 문자를 지워내진 못했다.

혜선의 유산에 더 이상 문자가 떠오르지 않는데도 남은 문자가 다섯이나 있었다.

학겸은 그에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이 직접 영기를 응결하여 남아 있는 글자 다섯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문자를 허상 관문의 문자에 하나씩 대입했다.

“쿨럭! 쿨럭! 울컥!”

학겸이 만든 문자들은 허상 관문의 문자와 맞아 떨어지며 하나씩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때마다 학겸은 큰 내상을 입는 듯이 피를 토했다.

하지만 어쨌건 학겸은 마지막 문자까지 지웠고, 그와 동시에 첫 번째 허상 관문이 깨어졌다.

파차차차차창!

“오오오, 성공입니다.”

“학겸 수사, 고생했습니다.”

“호호호. 드디어 첫 관문을 지났어요.”

“이렇게만 합시다.”

첫 관문 돌파에 수사들 모두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중에 학겸은 창백한 안색으로 영단을 입에 털어 넣고 조용히 내상을 다스렸다.

그리고 그렇게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중에도 수사들은 열두 유산을 통해서 진법을 유지하는 것은 한 시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두 번째 허상 관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황금빛이 찬란한 불상의 모습이었다.

그 불상은 적화존을 바라보며 경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이에 적화존 역시 반가부좌를 하고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맺은 후 맞서서 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상 관문의 불상과 불선의 유산인 선장에서 황금 광채가 뿜어져 나와 서로 섞이며 사라졌다.

하지만 그 겨룸 역시 허상 관문의 불상이 승리했다.

선장의 황금빛이 사라진 후에도 불상은 여전히 황금빛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학겸과 마찬가지로 적화존 역시 스스로 황금빛을 만들어 내어 허상 관문의 불상과 겨루었다.

경을 외우는 적화존의 코와 눈에서 피가 흘러 그의 앞섶을 적셨다.

하지만 결국 학겸이 그랬던 것처럼 적화존 역시 두 번째 관문을 깨트렸다.

황금빛이 모두 사라진 석상이 씻은 듯이 사라지자 관문 역시 살얼음 깨지듯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좋다. 다음은 나다!”

이번에는 마선의 유산을 이은 조호가 나섰고, 그는 마기가 가득한 패를 이용해서 허상 관문이 뿜는 마기를 상쇄했다.

그리고 그 역시 마지막에는 본신의 능력을 뽑아 내어 마지막 마기를 없애는 것으로 관문을 돌파했다.

이후로 약선의 유산을 이은 소량진, 부선의 동약철, 독선의 사갈요선, 비선의 호루 등으로 이어지며 차례로 영계 비승로의 허상 관문을 깨트려 나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산의 힘을 빌려 관문을 깨다가 조금 모자란 부분은 본신의 힘을 보태어 해결했다.

하지만 이후 혈선의 유산을 이은 화공공이나 금선의 조예령은 유산의 힘만으로 관문을 깨트리는 특별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다시 궁선의 유산에서 태어난 영족 예예의 순서가 되었다.

“천 개의 화살은 천 개의 표적을 맞추고, 한 개의 화살은 하나의 표적을 맞춘다. 하지만 궁극은 시위를 당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내 바람은 항상 이와 같으니 언제나 시위를 당기지 않을 수 있을까.”

예예는 뭔가에 홀린 듯이 거대각궁의 시위를 당기며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당긴 시위를 놓지도 않았는데 무수한 화살이 허상 관문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화살들은 허상관문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깨트렸다.

“천 개의 화살.”

예예가 말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당기고 있던 시위를 놓았다.

그러자 이번에은 단 하나의 화살이 빛처럼 날아가 마침 허상 관문에서 모습을 드러낸 화살촉을 맞춰 박살냈다.

관문에서 화살이 날아오기도 전에 먼저 제압한 것이다.

“당기지 않은 시위.”

또 다시 예예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순간 허상의 관문에서 소름끼치는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이, 이게 무슨?”

“허상 관문이 어찌하여 다른 우리들에게까지 영향을 준단 말인가?”

“이건 나도 모르는 일이오이다. 시간을 두고 파헤쳐 봐야 알 일이오이다.”

“모두 견디세요. 혹여 유산의 제어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날 수도 있어요.”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지!”

“아무렴. 여기까지 어찌 왔는데.”

수사들이 궁선의 허상 관문이 뿜어내는 기운에 저마다 힘들어 할 때, 예예는 태연한 얼굴로 거대각궁을 가슴 높이에 띄우고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은 마치 싸움을 포기한 듯 보였다.

“무얼 하는 거냐? 어서 저 관문을 깨트려!”

참지 못한 동약철이 다급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의 구릿빛 동체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이 꿈틀러리고 이마에 솟은 두 개의 뿔에서 은은하게 붉은 기운이 솟아났다.

만약 이번 일이 이렇게 실패하면 예예를 무슨 일이 있어도 찢어 죽이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예예는 아무 말도 없이 고요하게 서서 눈을 감을 뿐이었다.

거대각궁에서 태어나 영족이 된 예예의 모습은 거대각궁의 활대에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미인을 닮아 있었다.

건우는 문득 남자 옷을 입고 있는 예예가 사실은 여자가 아닐까 하는 헛된 생각을 잠시 했다.

“어엇!”

“저런!”

그런데 다음 순간 허상의 관문에서 투명한 화살 하나가 벼락처럼 쏘아져 나와 예예의 가슴을 관통했다.

휘청!

예예가 그 충격에 몸을 비틀거렸다.

하지만 의외로 다음 상황은 이어지지 않았다.

예예는 쓰러지지 않았고, 도리어 허상 관문이 산산조각 나며 깨졌다.

파차차차차창!

“어? 이게 무슨?”

“이게 어찌된 일이오이까. 관문이 깨어지다니.”

“그럼 이렇게 통과를 하는 건가요?”

“기이한 일이군요. 이런 식으로 관문을 뚫을 수도 있었다니.”

“그거야 궁선의 유산을 이은 예예 수사가 알아서 할 일이었지. 그걸 두고 알지도 못하면서 나서긴!”

마지막으로 종선생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음 순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박혀 있던 괴뢰심(傀儡心)을 뽑아내어 앞쪽에 띄운 상태였는데, 그의 관문이 시작되자 그 괴뢰심을 향해 관문에서 허상 하나가 내려왔다.

그리고 그 괴뢰심을 취해서 하나의 괴뢰로 거듭났다.

종선생의 괴뢰심을 취한 괴뢰는 겉으로 보기엔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십대 후반의 미청년의 모습을 한 괴뢰는 가슴 한 가운데에 맥동하는 괴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수사들은 모두가 종 선생이 어떻게 관문을 깰 것인지 궁금하여 한눈 팔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종선생은 괴뢰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도리어 괴뢰와 손을 잡았다.

서로 악수하듯 손을 마주 잡은 미청년 괴뢰와 종선생.

다음 순간!

털썩!

“아악!”

“어어엇!”

종선생이 끈 떨어진 지푸라기 인형처럼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에 모든 수사들이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동시에 영계 비승진의 흐름이 엉키며 통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아, 이렇게 끝이 난다고?”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찌!”

“말도 안 됩니다. 종 선생이 일을 다 망치다니!”

“그토록 오만방자하더니 재주가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았단······.”

“그만!”

몇 명의 수사들이 종 선생을 험담하는 중에 갑자기 미청년 괴뢰가 손을 들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 괴뢰심을 꺼내어 허공에 띄운 후, 종선생이 서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무, 무슨?”

“설마? 종선생?”

“종선생이 몸을 바꾸었다고?”

수사들이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사이 미청년 괴뢰는 손을 뻗어 쓰러진 종선생의 몸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챙기고 마지막으로 종선생의 몸에 남은 기운들 모두를 수습했다.

“자, 다들 상황 파악이 된 듯 하니 더는 이 몸에 대한 험담을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다른 수사들을 훑어 보며 그렇게 경고했다.

파차차차차창!

동시에 종선생이 맡았던 열한 번째의 허상 관문이 산산조각나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하나.

모두의 시선이 건우에게로 집중되었다.

길우몽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는 오른손 검결지로 검선의 유산인 성광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열두 번째 허상 관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관문 앞에서 허허로운 모습의 청수한 늙은 수사가 한 손에 검을 들고 건우를 노려봤다.

“검선!”

건우는 문득 그 늙은 수사가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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