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십이비선의 유산주가 한 자리에 모이다
행금주는 자신의 최후를 예감하고 곧바로 황금주판을 움직여 저항하려 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열두 명의 수사들은 그 하나하나가 행금주와 버금가는 이들이었다.
더구나 행금주를 상대하는 수사들은 하나같이 행금주가 황금주판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이미 연화를 끝마쳐 본명법보처럼 쓸 수 있게 된 황금주판이지만 행금주는 뜻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했다.
이미 보호 결계를 만드는 축으로 삼은 터라 그것을 해지하는 것부터 해야 하는데, 행금주는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
“크아아아악!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다. 영계, 영계가 눈앞에 있었는데······.”
“쯧쯔. 행 수사, 당신의 도량이 너무 좁은 것이 문제였소이다. 그러게 손해도 좀 보고 그래야지, 어찌 이득만 보겠다고 끝까지 저울질을 하셨소이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렇게 곤란한 처지에서 도움을 구했으면 응당 그에 합당한 대가를 제시했어야지요.”
“그저 자신이 없으면 열두 유산이 모두 모이지 못한다는 것만 믿고 너무 방자하게 군 것이 문제였지요.”
학겸의 말에 적화존과 소량진이 맞장구를 쳤다.
그 사이에 행금주는 육신은 물론이고 영체까지 갈기갈기 찢겨 쓰러지고 말았다.
- 너희가! 너희가 감히 나를···, 억울하······.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영체 상태가 되어서도 마지막까지 억울하다는 소리만 하던 행금주는 끝내 영체까지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마선의 유산을 이은 조호(趙壺)란 수사와 혈선의 유산을 이은 화공공이 나란히 행금주의 육신과 영체 조각을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금선의 유산인 황금주판을 제외한 행금주 소유의 나머지 재물들은 공동으로 만든 보관함에 넣어 학겸의 손으로 들어갔다.
이후 일행들이 적절하게 분배를 할 예정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화공공과 조호는 행금주의 육신과 영체를 나눠 가진 것으로 분배에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조예령은 황금주판을 받을 것이니 모든 분배에서 제외되었다.
“확실히 화신기 열두 명이 모이니 한 명을 어찌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군. 그러니 길 수사도 조심해야 할 거야.”
행금주의 처리를 끝마치자 종 선생이 건우를 노려보며 경고하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금선의 유산을 욕심낼 일은 없을 테니. 자,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지읍시다. 모두들 돌아가 있으면 내가 곧바로 가짜 유산과 진짜를 바꾼 후에 뒤따르겠습니다.”
건우는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겨우 앞으로 나섰다.
이미 그의 아공간에 학겸에게 받은 가짜 유산이 들어 있었다.
그것과 진짜 황금 주판을 바꾼 후에 보호 결계가 무너지기 전에 낙생역으로 돌아가면 일은 거의 마무리가 된다.
이미 건우가 마지막에 남아 그렇게 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야 건우가 감추고 싶은 것을 들키지 않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사실 건우가 딴 곳으로 도망갈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행금주가 오래도록 갇혀 있던 이곳에서 건우가 홀로 빠져나가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이곳이 괴물의 뱃속인 것도 그렇지만 밖에는 금선의 유산을 노리는 수사들이 한가득 몰려와 있었다.
여기서 홀로 도망가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들 가시지요.”
건우가 미적거리는 수사들을 재촉했다.
저들이 가지 않으면 건우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시간을 끌수록 상황은 나빠질 것이고.
“흠흠. 모두들 전송진에 오르시는 것이오이다. 괜한 일로 불화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 않으시겠소이까.”
결국 학겸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고 일행과 함께 전송진을 통해 사라졌다.
“자, 그럼 나는 파밍을 좀 해 볼까? 행금주 그 자가 자신의 재물을 어디 꼬불쳐 둔 것이 있을 거 같단 말이지. 황금 주판 말고도 더 있을 거야. 분명히.”
수사들이 모두 사라지자, 건우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었다.
“역시! 뭔가 있을 줄 알았지.”
건우는 잠시 후 행금주가 만든 결계 밖에 법보와 공간낭 따위가 떠도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행금주의 것은 아니고 이 거대한 괴물이 잡아먹은 수사들과 마수, 괴수, 요수 등등의 흔적들이었다.
“그냥 두고 갈까 했지만 아무래도 위험한 놈이 된 거 같으니 해결을 하고 떠나야겠군.”
건우는 황금주판이 만드는 보호 결계 밖에 있는 것들을 챙기려니 어쩔 수 없이 바다 같은 거대 괴물을 상대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는 결심이 서자마자 곧바로 아공간에서 법장두를 꺼내들었다.
생기 법칙이 깃들어 있는 지팡이의 머리.
건우는 그것을 직접 조작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괴물이 가지고 있는 무한 증식의 힘은 사실상 과거 건우가 혼돈역을 지나서 낙생역으로 오는 중에 황황충(晃蝗蟲)을 상대할 때 썼던 생기 법칙에서 나왔다.
그 때, 몇 마리의 황황충이 생기 법칙에 노출이 되고도 몸을 빼서 도망을 갔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친 황황충들도 오래지 않아서 생기 법칙을 견디지 못하고 몸이 터져 죽었다.
그런데 그렇게 죽지 못하고 하필 다른 마수의 먹이가 된 것들도 몇 마리가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 몇 마리의 황황충을 먹은 마수들도 결국 다시 생기 법칙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우연에 우연이 겹치며 황황충을 먹은 마서(魔鼠)가 마수 독수리의 밥이 되고, 그 독수리가 다시 거대 부유 해파리의 먹이가 되었다.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해파리가 결국 생기법칙을 견디며 무한 증식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거대 바다 괴물은 사실상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거대 해파리였다.
“살짝 생기 법칙을 더해 주기만 하더라도 균형이 무너져 죽고 말겠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결국 하나의 생명체이니 과도한 생기 법칙의 저주를 피하진 못할 것이다. 아울러서 나는 이쪽에 모여 있는 보물들을 챙길 수 있을 거고.”
자그마치 화신기 수사들 수십 명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있는 괴물.
그런 재앙을 건우 자신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도의상으로라도 해결을 해 주는 것이 옳았다.
더구나 그런 중에 귀한 보물을 줍줍할 수 있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뭔가.
스스스스슷!
건우가 법장두를 내밀어 황금주판의 보호 결계를 뚫었다.
금선의 유산이라지만 법칙의 힘을 견딜 수는 없었다.
결국 법장두가 결계 밖의 해파리 몸체와 닿았고, 그러자 곧바로 해파리의 몸체가 조금씩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건우는 그렇게 녹아내린 해파라의 몸통에서 보물들을 빠르게 챙겨 보호 결계로 돌와왔다.
공간낭이 다섯 개에 온갖 마수, 괴수, 요수의 부산물이 가득했다.
“좋군.”
건우는 법장두를 다시 아공간 깊은 곳에 안치하고 기분 좋게 웃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허공에 박혀 있는 황금주판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황금주판은 건우의 손길에 부르르 떨며 뽑혀져 나왔고, 그 즉시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건우의 손에는 진짜 황금 주판과 바꾼 가짜가 들려 있었다.
건우는 그것을 원래 황금 주판이 있던 곳에 던져 넣고는 곧바로 학겸의 전송진에 몸을 실었다.
건우가 전송진에 올라 영기를 부여하자 곧바로 진이 발동하며 그를 낙생역의 대응진으로 옮겨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건우가 사라진 자리에는 조금 전까지 있었던 전송진이 아침볕에 녹는 서리처럼 사라졌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
가짜 황금 주판이 보호 결계의 축을 대신해서인지 보호 결계의 크기가 수십 분의 일로 줄어들었고, 거대 해파리는 건우가 밀어넣은 생기 법칙 때문에 광란의 몸짓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금선의 유산을 노리고 거대 해파리와 싸우던 수사들에게도 횡액이 닥쳤다.
거대 해파리가 이전보다 훨씬 포악한 모습으로 그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을 벌인 건우는 낙생역의 대응진을 나와 그를 기다리던 열한 명의 수사와 재회하고 있었다.
“많이 늦었구려?”
부선(斧仙)의 유산을 이은 동약철이 의심의 눈빛을 하고 건우를 바라봤다.
다른 수사들 역시 예상보다 늦은 건우의 복귀에 서늘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뭐, 행금주 그 자가 어디 따로 숨긴 보물이 없는지 좀 찾아 봤습니다. 그러다가 결계 밖에 공간낭 몇 개가 떠도는 것을 보고 그것을 챙기느라 좀 늦었지요.”
“어허! 해 수사. 그게 무슨 말씀이오이까. 그런 개인적인 일로 우리의 대계에 문제가 생기면 어찌 책임을 지실 것이오이까?”
“학겸 수사, 걱정할 거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확실히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학겸 수사께서 해야 할 일을 하시지요.”
학겸의 추궁에 건우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이 받아쳤다.
그러자 여러 수사들이 불쾌한 듯이 표정이 사나워졌다.
“좋아요. 해 수사께서 일을 망친 것이 아니라면 문제될 일은 아니지요. 우리도 이미 금선의 유산이 여전히 원래 위치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해 수사께서 금선의 유산을 우리에게 건네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그 때, 오매불망 금선의 유산이 손에 들어오기를 바라던 조예령이 앞으로 나섰다.
금선의 유산만 계획대로 가지고 왔다면 다른 것은 어찌 되어도 좋다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뭐 일단은 길 가가 일을 망친 것도 아닌데 우리가 그를 추궁하는 것도 이상하지. 어서 금선의 유산을 확인하고 조 수사가 내놓기로 했던 보물들을 나눕시다. 아울러서 행금주 수사의 재물도 분배를 하고.”
“그렇지요. 아울러서 이참에 우리들 모두가 작은 교류회를 열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거 좋지.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것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호호호. 저도 적극적으로 찬성이에요. 행금주의 보물과 조 수사의 보물, 거기에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보물들을 더하면 어지간한 교류회보다 성대할 것이 분명해요.”
종 선생이 먼저 운을 띄우고 적화존과 소량진이 맞장구를 쳤다.
마지막으론 화공공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교류회의 진행을 추진했다.
그것은 건우 역시 바라던 것이었고, 다른 수사들도 마다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자 건우의 작은 일탈에 대한 추궁은 유야무야 덮여지고 말았다.
* * *
교류회의 시작은 조예령이 내놓기로 했던 보물들의 분배부터였다.
그리고 그러자면 조예령에게 금선의 유산을 넘겨줘야 했다.
하지만 유산이 건우의 아공간에서 나오게 되면 유산을 추적하는 이들이 바로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학겸이 특별한 진법 공간을 만들었다.
“아시겠지만 이 진법 공간에서는 사흘 동안 유산의 기운을 감출 수 있으오이다. 그러니 능라께서는 금선의 유산을 확인하고 열한 개의 보물을 내어 주시면 되오이다.”
모든 수사들이 학겸의 차단 결계 밖에 모여 있었다.
건우는 그런 수사들을 두고 진법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수사들이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그 때는 이미 금선의 유산인 황금 주판이 진법 공간 중앙에 두둥실 떠 있었다.
“확인해 보십시오.”
건우가 조예령을 보며 말했고, 조예령은 황금주판에 가까이 다가가 손을 올려 영기를 불어 넣었다.
“아, 맞아요. 확실히 금선의 유산이에요. 다만 너무 많은 주판을 소진시켜서 새로 그것을 채워 넣어야 하겠군요.”
조예령은 기뻐하다가 또다른 한편으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금선의 유산을 다시 성장시키는 것과 다름없는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쨌거나 조예령은 금선의 유산을 확인했다.
그러니 당연히 그녀가 그 대가를 내어 놓을 때였다.
조예령은 수사들이 재촉하기 전에 소매 속에서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내 놓았다.
그녀가 상자를 바닥에 놓자, 뚜껑이 열리며 내용물이 드러났다.
“오오, 모두 있군. 조 수사가 말했던 열한 가지의 보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어 있어.”
적화공이 곧바로 상자 안의 물건들을 의념으로 확인하고 감탄하듯 말했다.
“저는 약속을 지켰어요. 그럼 이건 제가 챙겨도 되겠지요?”
조예령은 그렇게 말을 하며 황금주판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만은사의 이름으로 금선의 유산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다고 했으니 그것을 믿으오이다. 하지만 만약 앞으로 20년 이내에 조 수사의 손에 들어간 금선의 유산이 발각되면······.”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학겸 수사도 알지 않나요? 자유롭게 장소를 바꾸진 못하지만 일정 장소에 유산의 기운을 감추게 하는 술법을 펼치는 것은 가능해요. 학겸 수사는 이런 진법을 펼칠 수 있고, 우리 만은사는 못할 거 같은가요?”
조예령의 말에 학겸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자신은 고작 사흘 정도 유산의 기운을 감출 진법을 선보였는데 만은사에선 그보다 훨씬 효과가 좋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니.
자손심이 상한 것이다.
“자자, 시간이 없어요. 이제 제 손에 황금주판이 들어왔고, 여러분은 보물을 앞에 두었지요. 제가 내 놓은 것과 행금주 수사의 것들까지요.”
조예령은 학겸이 입술을 깨무는 것을 못 본척하며 보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조 수사, 그대도 교류회에 참가하고 싶은 모양이군요?”
화공공이 조예령이 시간이 없다고 한 뜻 알겠다는 듯이 물었다.
“네 맞아요. 사실 행금주 수사의 보물도 궁금하고, 여기 다른 분들의 보물도 궁금하죠. 그 중에 제게 도움이 될 것도 있을 거고, 이 황금주판을 복구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있을 수도······. 안 그래요?”
조예령은 그렇게 말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은 황금주판을 얻기 전보다 훨씬 생기가 넘치며 유혹적이었다.
“자, 그럼 일단 조 수사의 보물부터 나눕시다. 그리고 행금주 수사의 재물도 확인을 하고.”
결국 부선의 유산주 동약철이 나서며 첨예한 눈치 경쟁과 함께 보물 나누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