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50화 (150/499)

149. 금선의 유산주를 바꾸기로 하다

‘으음?’

건우는 아공간 밖이 소란스러워 지는 것을 느끼고 깊은 심상 수련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지?”

- 밖에 수사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많이?”

- 열한 명인 거 보면 아무래도 십이비선의 유산주들이 모두 모인 거 같아요.

“내가 심상 수련에 들어간 것이 20년 정도 지난 거 같은데?”

- 네. 20년 하고 일곱 달이 더 지났죠.

“그 사이에 누구 다른 수사들은 다녀가지 않았던 거냐?”

- 대갈장군이 진법의 축을 세운다고 제물이 될 수사들을 데리고 오가긴 했어요. 하지만 건우 님을 찾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럼 학겸도 금선 유산주를 도우러 가지 않았다는 말이네?

- 그건 모르죠. 5년 정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때도 있었으니까요.

“5년으론 금선의 유산이 묶여 있다는 혼돈역 깊은 곳을 오가긴 어렵지. 10년은 들여야 왕복이 가능할 걸?”

- 그래요? 그럼 대갈장군도 금선의 유산에 대해선 관여하지 않은 모양이죠 뭐.

“아니다. 그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지. 수도계에 알려지지 않은 공법이며 비기가 어디 한둘 이겠느냐. 학겸이 진법에 능하니 어쩌면 행금주란 수사가 있는 곳까지 전송진을 뚫었을 수도 있지.”

건우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십이비선의 유산주 모두가 모였다면 금선의 유산에 대한 문제는 마무리가 되었다고 봐야 했다

건우는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서 아공간 입구를 넓게 열어 황토 대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살폈다.

“수사들의 수는 모두 열하나. 저들이 모두 유산의 주인이라면 나만 빠진 셈이군.”

건우가 보니 불선과 약선의 유산을 이은 쌍선과 혜선의 유산을 이은 혜선이 보이고, 괴뢰선의 유산을 이은 종선생도 보였다.

그 외에 건우가 알아볼 수 있는 인물로는 뜻밖에도 회회전의 화공공이 있었다.

그녀도 십이비선의 유산 중에 하나를 끝까지 지켜낸 모양이었다.

“험험. 이보시오 해 수사. 학겸이오이다.”

건우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 학겸이 앞으로 나서서 허공을 보며 말을 시작했다.

“이 학겸이 그 동안 해 수사께 여러 번 연락을 취하려 했으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였소이다.”

건우가 아공간 안에만 있으니 학겸이 유산을 이용해서 전하는 전신(傳信) 술법도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토록 전신 술법이 통하지 않음은 해수사께서 한 곳에 은둔하여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란 결론이 나왔소이다. 그래서 그 장소를 고민하니 결국 이곳에 계실 확률이 높다고 보았소이다.”

“거 학겸 수사는 구차한 이야기를 더 할 필요가 없소. 길가야, 네가 만약 여기 있다면 당장 모습을 드러내거라.”

학겸이 건우에게 구구절절 설명을 시작하자 종선생이 그것을 끊어내며 나섰다.

“이미 너와 내가 약속했던 대로 영계 비승을 위한 이번 일에는 서로 도움을 주기로 하였던 바, 지금 상황도 그에 합당하다. 우리는 지금부터 금선의 유산을 취하기 위해 동행을 할 것이고, 그것이 계획대로 된다면 곧바로 영계 비승 진법을 펼칠 것이다.”

종선생은 그렇게 말을 시작하고 빠르게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이곳에 모인 열한 명의 수사들 중에 한 사람은 만은사의 능라인 조예령이란 여자였다.

만은사의 능라란, 만은사의 가장 높은 직책에 해당하는데 그 능라(綾羅) 조예령이 금선의 유산주를 제외한 다른 열한 명의 유산주에게 예물을 내 놓았다.

그 열한 가지의 예물은 엄청난 보물이었고, 그것을 확인한 유산주들은 그녀 조예령에게 금선의 유산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미 다수가 그리 결정을 내렸으니 건우도 마땅히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학겸이 금선의 유산주인 행금주에게 진법을 만들게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학겸의 전송진에 대응하는 진법이다.

이제 행금주가 그 진법을 거의 완성했으니 이쪽에서 모두가 그곳으로 넘어간 후, 행금주에게서 금선의 유산을 빼앗아 조예령에게 주도록 하자.

그리고 그곳에 가짜 금선의 유산을 남겨두고 진짜는 건우가 숨겨서 다시 낙생역으로 돌아오면 된다.

물론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전송진을 이용할 것이니 시간이 걸릴 것도 없다.

“이제 알아들었느냐? 사정이 이러하니 너는 응당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와 뜻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종선생은 거침없이 그렇게 상황 설명과 함께 강압적인 주장을 펼치고 말을 끊었다.

“호호호. 그리 말씀을 하시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만약 이곳에 해 수사께서 계시다면 제가 다시 말씀을 드리겠어요. 제가 바로 만은사의 능라 조예령이에요.”

그런데 종 선생의 말이 끝나자 한 명의 여성 수사가 나서서 허공 여기저기를 향해 손을 모아 인사를 하며 말했다.

“이번 행사가 해 수사로선 내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칫 해 수사의 특별한 능력이 들킬 우려가 있지요. 유산은 물론이고 해 수사 본인을 완벽하게 숨겨주는 그런 능력 말입니다.”

조예령은 건우가 걱정하는 바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학겸 수사께서는 이곳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하시지만 사실 이곳 이외에도 여러 곳을 찾아갈 생각이고, 우리들 유산주가 모두 모여 해 수사를 기다린다는 소문도 낙생역 전체에 낼 생각입니다. 그러니 때에 맞춰 그곳으로 오신다면 해 수사의 능력을 들킬 염려는 줄겠지요.”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예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저들 앞에서 아공간 사용을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만 아니라면.

‘하지만 행금주가 있는 곳에 도착한 후에는?’

행금주에게 금선의 유산을 빼앗아 낙생역으로 돌아오면?

그곳에 가짜를 두고 온다고 해도 낙생역에 또 다른 유물이 나타난 것을 들키게 된다.

그건 어떻게 하려고?

“금선의 유산을 해 수사께 맡기는 것에 대한 문제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조예령은 건우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유산은 학겸 수사가 낙생역 전체에 진법을 펼칠 때까지 해 수사께 맡겨 놓을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금제 따위는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열두 명이 함께 움직일 것인데 금제를 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해 수사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 유산을 숨기고 뺄 때에는 해 수사만의 공간을 보장해 주겠습니다. 그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조예령의 말이 길어지는 것이 답답했는지 또 다른 수사가 끼어들어다.

그는 이전에 본 적이 있었던 조인족 호루(昊鏤)로 비선의 유산을 이은 수사였다.

“큼, 이쯤 했으면 알아들었을 것이니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갑시다. 길 가 그 놈이 꼭 여기 있으란 법도 없고.”

건우를 회유하기 위해 준비한 이야기를 모두 했다 싶었는지 종 선생이 나섰다.

그러자 다른 수사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둔광을 번뜩이며 모습을 감췄다.

“자, 이것은 이번 일에 대해 정리한 내용이오이다. 능라 조예령 수사가 어떤 보물들을 내어 놓았는지도 들어 있고, 우리가 만날 회합 장소와 날짜도 들어 있으오이다. 반드시 나오시리라 믿으오이다.”

마지막으로 학겸이 떠나기 전에 금옥으로 된 옥간 하나를 남겼다.

건우는 그것이 이전에도 그와 비슷한 옥간을 받았던 적이 있었기에 얼마 후, 그 옥간을 아공간으로 끌어 들였다.

“으음. 별다른 수작은 부리지 않은 것 같군.”

옥간을 자세히 살폈지만 이번 일에 대한 이야기만 자세히 들어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 내용 중에는 건우가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만은사 능라 조예령이 내 놓았다는 열한 가지의 보물이 바로 그것이었다.

“음, 독룡의 진혈? 신수거원의 진혈? 칠채선호접의 날개가루?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셋은 탐이 나는군.”

- 네? 독룡의 진혈이요? 그건 용랑에게 큰 도움이 되겠네요. 신수거원의 피는 혈원에게 좋겠고. 칠채선호접의 날개가루는 건우 님이 익히신 유잠공을 성장시키는데 필요하고요.

“그래, 만은사의 직책 중에서 가장 높은 능라라 하더니 가진 것이 많은 모양이구나. 이런 보물들을 열한 개나 꺼내 놓다니.”

- 확률 높은 영계 비승의 기회를 얻는 건데 보물이 아깝겠어요? 솔직히 영계 비승만 할 수 있다면 인계의 모든 것은 버릴 수도 있을 걸요?

“하긴 그것도 그렇지. 그나저나 열한 개 중에서 이 세 가지는 꼭 가졌으면 좋겠는데······.”

- 기회를 보다보면 손에 넣을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아직 보물들을 나눠 가진 것은 아니라면서요?

“금선의 유산을 받지도 않고 보물부터 내 줄 정도로 조예령이 어리숙하진 않았겠지.”

- 그러니 기회는 아직 있는 거잖아요.

“어째, 조예령을 쓱싹 해 버리라는 말로 들린다만?”

- 뭐, 보물을 가진 것이 죄가 아니겠어요?

“너도 이젠 수사 마인드를 제대로 갖췄구나? 하하하.”

- 그렇다고 제가 꼭 그렇게 하라는 건 아니죠. 보물들을 나눌 때, 교류회 비슷한 방법으로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도 있잖아요. 셋 중에 하나는 보상으로 받고, 나머지 둘은 교환으로 얻는 방법도 있다고요.

“그럼 그런 방법부터 말을 하지, 어째 쓱싹하는 것부터 이야기를 했을까?”

- 제가 언제욧!

“아니면 말고. 자, 어쨌거나 이 옥간에 적힌 장소로 가야 하니 출발을 서둘러야겠구나.”

- 벌써요?

“일찍 가서 무슨 수작을 부리지 않았는가 확인을 해야지.”

- 아, 네······.

* * *

“크으윽! 이게 무슨 짓이오!”

행금주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영기의 압력에 손끝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항의했다.

그런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유산주 열한 명과 예비 유산주인 조예령.

건우가 이들과 합류한 후, 곧바로 계획이 진행되었다.

학겸은 행금주에게 연락을 보내서 전송진에 대응할 진을 발동하게 했고, 그 진이 발동되자마자 열두 명의 화신기 수사들이 한꺼번에 공간 이동을 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행금주의 결계 안이었다.

“그리 계산이 서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모두 몰려왔다면 이유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터!”

행금주의 항변에 궁선의 유산을 이은 예예(刈叡)라는 수사가 매몰찬 음성으로 말했다.

예예는 뜻밖에도 특별한 출신을 가진 수사였다.

그는 궁선의 유산인 거대각궁(巨大角弓)이 완성되면서 탄생한 영족(靈族)이었다.

사물에 영성이 깃들며 탄생하는 종족이 영족인데 어쩌다보니 궁선의 유산이 완성되면서 거기에 영성이 깃들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 예예는 영특하게도 영성이 생긴 후로도 그것을 숨기고 몰래 힘을 길렀다.

원래 궁선의 유산을 지녔던 수사는 끝없이 영석과 수련 자원을 갈구하는 거대각궁에게 그것들을 구해주느라 허리가 휘었다.

그렇게 힘을 기른 예예는 결국 주인이었던 화신기 수사를 이길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본색을 드러냈다.

그 후로 주인이었던 그 화신기 수사가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어느 순간 궁선의 유산이 영족이 되었다는 사실만 널리 알려졌을 뿐이다.

‘생긴 것은 예쁘장한데 성격이 거칠고 또 냉정하다. 거기에 언행에 거침이 없다.’

그 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예예는 그런 수사였다.

그러니 지금도 행금주를 매몰차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허어어, 이럴 수는 없다. 어찌 이런단 말이냐. 도대체 어째서?”

행금주는 예예의 말에 상황을 짐작한 듯 했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나 역시 이번 일로 엄청난 보물을 내 놓아야 했으니.”

그 때, 만은사 능라 조예령이 측은한 눈빛으로 행금주를 보며 말했다.

“엄청난 보물? 고작 그것으로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고?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내가 금선의 유산을 이었다. 금선은 세상의 보물을 모두 가지고 있던 가장 부유한 수사였다. 그 유산을 취한 내가 얼마나 부유할 지를 떠들면 입만 아플 뿐이다.”

행금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수사들을 보며 말했다.

“저 수사가 무엇을 내 놓았다 하더라도 나는 그보다 더한 것을 내어줄 수 있다. 그런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학겸 수사, 왜 나에겐 의논조차 하지 않았소?”

행금주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학겸이 나섰다.

“그럴 의향이 있었으면 애초에 행 수사께서 도움에 대한 대가를 거론하셨어야 하지 않으오이까. 어찌 지금껏 그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셨소이까? 그렇게 욕심을 부리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오이까.”

결국은 행금주가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다.

금선의 부를 물려받았지만 그걸 제대로 쓸 능력은 없는 무능한 자였던 것이다.

“아쉽군요. 황금주판의 알이 고작 절반도 남지 않았네요.”

그 때, 조예령이 허공을 보며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행금주가 결계를 치기 위해서 축으로 사용한 황금 주판에 주판알이 고작 스무 개 정도만 남아 있었다.

이 순간에도 결계를 유지하느라 또 하나의 주판알이 금이 가며 기운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행금주가 지금껏 이곳, 거대한 바다 괴물의 내부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황금 주판의 힘이었던 것이다.

“자, 그만 정리하고 갑시다. 이렇게 시간을 끌 일이 아닙니다.”

“맞아요. 이곳은 무척 위험한 곳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무한히 증식하는 존재가 생겼는지 모를 일이군요.”

종선생의 말에 화공공 역시 동감을 표했다.

그리고 곧바로 행금주에 대한 처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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