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49화 (149/499)

148.  학겸이 그린 그림에 건우를 초대하다

낙생역에 소문이 났다.

금선의 유산이 한 곳에서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소문을 들은 이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렸지만 혼돈역으로 뛰어드는 수사는 거의 없었다.

오래도록 혼돈역에 고립되어 살아온 낙생역의 수사들은 혼돈역의 무서움을 너무도 잘 알았다.

게다가 혼돈역을 어느 정도라도 돌아다니려면 적어도 영체기 수준은 되어야 할 텐데, 그런 수준의 수사도 낙생역엔 드물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금선의 유산을 향해서 움직이는 이들은 외부에서 유산을 쫓아 들어온 외부 수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이 그렇게 되는 모양이군.”

건우는 여전히 학겸의 진법 중앙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었다.

특별히 밖으로 나가서 일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언제가 되었건 십이비선의 유산들은 모두 이곳에 모일 것이다.

그리고 영계 비승의 진법을 펼칠 즈음이면 이곳은 학겸의 진법 덕분에 가장 안전한 곳이 되어 있을 것이다.

- 분명히 학겸 그 대갈장군이 수를 썼을 거예요.

“소문을 냈을 거란 말이지?”

- 그렇겠죠.

“이미 유산을 가진 이들은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냐?”

- 괜히 위험한 곳으로 찾아갈 이유가 없잖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학겸 그 자라면 또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 무슨 다른 수라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모르겠지만 어쩐지 유산을 노리는 다른 수사들을 이용하는 건 너무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방법인 거 같아서 말이지.”

- 그런 말 모르세요? 단순한 것이 최고라는.

“뭐, 그럴 수도······.”

건우는 대답을 하다말고 아공간 입구를 통해 밖을 내다봤다.

그곳에는 루야에 의해서 대갈장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학겸이 서 있었다.

“이보시오, 해 수사. 아직 이곳에 있으오이까?”

갑자기 나타난 학겸은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건우를 불렀다.

건우는 학겸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지 긴장하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학겸이 영기를 끌어 올려 황토 평원의 진법을 살짝 가동했다.

우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러자 엄청난 기운이 일어나며 황토 평원 전체의 공간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건우는 혹시라도 자신의 아공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며 학겸을 지켜봤다.

“보시오 해 수사. 이 몸이 진법을 일으켜 그 누구도 이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지 않았소이까. 그러니 이 학겸을 믿고 잠시 대화를 해 주시오이다.”

학겸은 건우에게 대화를 요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우는 자신이 진법 안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학겸에게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으음. 정말로 조심성이 넘치는 분이오이다. 그럼 이대로 이 학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가오리다.”

학겸은 연신 주위를 살피면서도 끝까지 건우가 근처에 있다고 믿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지금 많은 수사들이 금선의 유산을 찾아 움직이고 있으오이다. 그것은 알고 계실 것이오이다.”

진법 안에서만 머무는 건우가 그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학겸은 건우가 외부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 말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 학겸이 이곳으로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소이다. 그러니 해 수사도 이 학겸의 일을 거의 아시지 않으오이까.”

생각해보면 그런 면도 있었다.

학겸은 매번 이곳에 들어와 수사들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우가 이곳에 머물고 있음을 의심하는 학겸으로선 의외의 행동이었다.

학겸은 지금까지의 그런 행동을 건우에게 일부러 전해주고 있었다며 생색을 내는 것이다.

“우리 십이비선의 유산주들은 영계 비승의 진법을 발동하고, 또 함께 비승의 고난을 이겨나가야 하오이다. 그러니 당연히 해 수사를 따돌리기 보다는 모두가 알아야 할 정보를 전하는 것이 좋겠다 여긴 것이오이다.”

건우는 아공간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말 그런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라고 해도 덕분에 외부 소식을 많이 전해 들었음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해 수사께서 이 학겸을 좀 도와주시기를 청하오이다.”

- 건우 님, 도대체 저 대갈장군이 뭘 도와달라고 하는 걸까요?

학겸의 간절한 음성에 루야가 궁금한 듯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모르지. 그런데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없진 않아.”

- 그게 뭔데요?

“뭐긴, 금선의 유산에 대한 거겠지. 그거 외에 화신기 수사인 학겸이 도움을 청할 일이 뭐가 있겠어?”

- 지금 다른 수사들이 금선의 유산이 있는 혼돈역으로 뛰어들고 있잖아요. 그것도 대부분이 화신기 수사라면서요?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데 굳이 학겸이 끼어들 이유가 있어요?

“없지. 없는 거 같은데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야.”

건우는 화신기 수사의 촉으로 학겸이 뭔가 일을 꾸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아공간 밖으로 나가 학겸을 만날 생각은 없었다.

“사실 지금 금선의 유산주가 조금 곤란한 상황인 듯 하오이다.”

학겸이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건우는 한가지 놓치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저 놈, 저 학겸은 금선의 유산주와 대화를 할 수 있다.”

- 네? 그게 무슨······. 아! 그러네요. 자(子) 수사는 다른 열한 명의 유산주들과 소통이 가능하지요?

“그래. 그러니 그 쪽의 상황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이가 바로 저 학겸이지.”

건우는 그것을 떠올리자 학겸의 말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금선의 유산주는 행금주라는 수사이오이다. 그런데 이 수사가 기이한 곳에 말이 묶여 있으오이다.”

학겸은 이제 금선 유산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낙생역에 있던 대부분의 화신기 수사들이 금선의 유산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오이다. 그 말은······.”

“낙생역에 영계 비승을 방해할 놈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뜻이군.”

건우가 아공간 안에서 그렇게 말했고, 학겸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귀찮은 것들이 제 발로 낙생역을 떠났으니 이제 낙생역의 진법을 발동시키기엔 더없이 좋은 상황이이오다.”

건우가 있거나 말거나 학겸을 초지일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법을 발동시키기 전에 반드시 열두 개의 유산이 모두 이곳에 모여야 한다는 것이 문제가 되오이다. 해 수사께서도 제 말 뜻을 아실 것이오이다.”

건우는 아공간에서 말을 들으며 대충 학겸의 계획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짐작은 학겸의 이어진 말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지금 많은 수사들이 행금주를 찾아 떠났소이다. 이 때에 우리가 먼저 그를 찾아 이곳으로 데리고 오면 어떻겠소이까. 아울러 행금주가 있던 곳으로 몰려간 수사들을 그곳에 붙잡아 둘 수 있다면, 그렇다면 더 없이 좋지 않겠소이까?”

“금선의 유산에 몰린 이들을 그곳에 붙잡아 두는 것이 중요하겠지. 금선의 유산이야 누가 주인이 되어도 상관이 없는 일일 것이고.”

건우는 문제의 핵심을 알아차렸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많은 화신기 수사들을 속여서 그 자리에 붙잡아 둔다는 걸까?

“이 학겸에게 금선의 유산을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있으오이다. 유산을 추적하는 수 많은 방법들이 나왔지만 그런 술법으로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오이다.”

- 십이 비선의 가짜 유산을 만들 수 있다는 거네요? 하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에요? 술법을 펼치면 두 개의 유산이 있다는 사실이 금방 들통이 날 텐데요?

루야가 학겸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건우도 학겸이 가짜를 만들어서 어찌 쓰려는지 궁금했다.

“해 수사, 행금주에게 가서 그의 유산을 해 수사께서 잠시 맡아 주시고, 가짜를 만들어 그 자리에 두고 오면 될 일이오이다.”

“뭐? 나에게 금선의 유산을 맡겨?”

“해 수사께서는 유산을 감쪽같이 숨기는 재주가 있으시니 금선의 유산을 감추어 이곳으로 돌아오면 그만이 아니겠으오이까.”

- 뭐래는 거예요? 그 행금주가 미쳤다고 자신의 유산을 다른 수사에게 넘기겠어요?

“일이 그렇게만 되면 방해자들을 완전히 떨쳐내고 낙생역의 진법도 무사히 발동을 할 수 있을 것이오이다. 그러니 이 학겸, 해 수사의 도움을 간절히 청하오이다.”

학겸이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을 향해서 깊이 허리를 굽혔다.

- 그 쪽 아닌데? 대갈장군이 헛짚었네요. 그런데 건우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계획은 좋은데 내가 나서서 얻을 이익이 없다.”

- 우와, 그 사이에 손익 계산을 다 하셨어요? 그런데 왜 손해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우선은 내가 가진 아공간을 들킬 가능성이 있다. 거기다가 금선의 유산을 내게 그냥 맡기진 않을 테니 뭔가 금제를 가하겠지.”

- 그럴까요?

“나라도 그렇게 할 거다. 십이 비선의 유산이 어디 허투루 내돌릴 물건이더냐?”

- 음, 그건 그러네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유산은 이곳에 다 모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열두 유산주들이 모인다면 다른 화신기 수사들이 떼를 지어도 충분히 감당할 만 할 것이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것이 최선이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런 중에도 학겸은 계속 건우를 설득하기 위해서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이전에 했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들뿐이었다.

“그것 참, 곤란하오이다. 해 수사께서 도움을 주시면 일이 쉬워질 것인데 이리 매몰차게 이 학겸의 청을 무시하시다니 말이오이다.”

결국 학겸도 혼자 떠들기에 지쳤는지 그렇게 말을 하고는 훌쩍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건우도 학겸이 어디로 어떻게 모습을 감췄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이 황토 대지의 진법 공간에 대한 학겸의 장악력이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기회가 나쁘진 않은데······.”

학겸이 모습을 감추자 건우가 고민스런 표정을 지었다.

- 가 봐야 손해라면서요? 설마 대갈장군의 수작에 넘어가실 거예요?

“수작?”

- 그렇잖아요. 여기까지 와서 구구절절 떠든 이유가 뭐겠어요? 그게 다 건우 님을 끌어내려는 수작이죠.

“그렇겠지.”

- 그런데 여기서 건우 님이 움직이시면 그게 대갈장군의 수작에 넘어간 것이 아니면 뭐겠어요?

“하하하. 재미있구나. 확실히 루야 네 말이 맞긴 하다. 어떻게 움직이든 움직인 것은 움직인 것이 되겠구나.”

- 그러니까 그냥 여기서 조용히 기다리시는 것이 좋겠어요.

“옳다. 모든 일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지. 두고 보면 또 알아서 일이 진행되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건우는 루야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금선의 유산 하나만 부족한 상황이라 마음이 급해진 면이 없지 않았다.

“때가 되면 다시 찾겠지. 지금은 그냥 연구하던 것에나 더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

건우가 아공간 입구를 닫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의념을 일으켜 성광검을 불러냈다.

요즈음 건우는 자신이 만들어 낸 삼백육십성광검에서 뜻밖의 비밀을 찾아내고 거기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가부좌를 한 다리 위에 모습을 드러낸 성광검은 수수하게 생겼지만 은은하게 성광이 흘러 신묘한 느낌을 주었다.

건우는 그 성광검에 의념을 집중하며 검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검선의 흔적을 더듬었다.

원래 검선의 검은 일흔두 개였기에 그 일흔두 개의 검에 검선의 비의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건우는 백여덟 번째의 검을 살피는 중이었다.

검선의 비의를 모두 수습하고 일흔두 개의 검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 후, 묘하게도 일흔세 번째 검에서 새로운 공법의 일부를 발견했던 것이다.

‘일흔세 번째부터 백여덟 번째까지 이어지는 공법. 서른여섯 개의 검에 또 다른 공법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지. 이건 원래 유산에 있을 공법은 절대 아니지. 지금 내 수준에서는 펼치기에 부담이 너무 커. 이건 인계에서 펼칠 수 없을 거야.’

건우는 새로 발견한 검의 공법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천지영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것은 인계 수준의 천지영기론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연히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영계의 공법이라 봐야 할 것이었다.

‘그래도 이걸 제대로 익혀두면 최악의 순간 상황을 뒤집을 한 수가 될 수는 있겠지. 그 대가가 어마어마 하겠지만.’

당장 펼치지는 못해도 익혀 두긴 해야 할 터였다.

건우는 심상수련을 통해 일백여덟 개의 검을 사용하는 검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건우를 끌어내려는 학겸의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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