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머리 쓰는 것들은 다 그렇지, 뭔 수작이냐?
건우의 눈에 불선(佛仙)의 유산을 수습한 적화존(赤和尊)은 포대화상처럼 보였다.
원래 포대화상은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온 모습으로 법장(法杖) 하나를 들고 커다란 포대자루를 메고 있다.
적화존은 포대자루가 없는 것을 제외하면 건우가 알고 있는 포대화상을 꼭 닮은 모습이었다.
“유잠이라는 산수입니다. 두 분의 일을 도울 수 있을까 찾아왔다고 합니다.”
건우를 안내한 영체기 수사가 적화존과 소량진 앞에 깊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영체기 초기인데 어째 묘한 구석이 있군.”
적화존이 의념을 끌어 올려 번뜩이는 눈으로 유잠을 살피며 말했다.
“확실히 묘한 구석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저 녀석이 익히고 있는 공법 때문일 거 같소. 아이야, 네가 익힌 공법이 무엇이냐?”
적화존의 말에 소량진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소량진의 모습은 밭 가는 늙은 농부처럼 보였는데 어깨와 턱, 귀밑, 옆머리와 정수리 등에 식물의 싹들이 돋아나 있었다.
“제가 익힌 공법의 이름은 유잠공이라 합니다. 칠채선호접(七彩仙蝴蝶)이라는 신비한 나비의 날개 가루를 이용해서 공법을 익혔습니다.”
“그래? 칠채선호접이라 나는 들은 바가 없군. 혹시 적화존은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칠채선호접(七彩仙蝴蝶)은 인계에선 찾기 어려운 영물이지요. 영계나 선계에서 찾아야 할 신비로운 나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귀한 것의 날개 가루를 어찌 얻어서 공법을 익혔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이야 너는 아는 바가 있으면 말을 해 보거라.”
적화존이 유잠을 보며 말했다.
“저는 그저 스승의 은혜를 입었을 뿐입니다. 과거 스승께서 건우 어르신의 은혜를 입어 공법과 날개 가루를 얻었는데 마침 스승의 공법이 유잠공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상황이라 저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그럼 네 스승은 유잠공을 익히지 못했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불선 어르신. 그 때문에 스승님께선 성단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로군. 성단기 스승이 영체기 제자를 키웠으니.”
건우의 말에 약선(藥仙) 소량진(召粮振)이 중얼거렸고, 유잠의 모습을 한 건우는 스승을 회상하기라도 하듯 감격스런 눈빛으로 허공을 잠시 바라봤다.
“그래, 이제 보니 알겠군. 칠채선호접(七彩仙蝴蝶)이 원래 신비로운 나비로 일곱 색의 다채로움이 사람들을 현혹하기를 잘 한다 했지. 아마도 유잠, 네 기운이 묘한 이유가 거기에 있겠구나.”
적화존이 유심히 유잠을 살피다가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봐도 유잠의 경지가 영체기 수준인 것은 분명해 보이니 신경이 쓰이는 묘함은 칠채선호접(七彩仙蝴蝶)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에 소량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소량진은 사실 처음 유잠을 봤을 때부터 호감을 가졌는데, 그것은 나비가 원래부터 초목과 친근하기 때문이었다.
소량진이 약선의 유산을 이어 목속성의 기운이 풍부한데, 거기에 칠채선호접(七彩仙蝴蝶)의 기운이 매우 잘 어울렸던 것이다.
“그런데 네가 제련에 재주가 있다고?”
문득 적화존이 유잠을 보며 물었다.
그 사이에 유잠을 데리고 온 영체기 수사가 적화존 등에게 정보를 준 모양이었다.
“그저 가소로운 재주일 뿐입니다. 사실 성단기 수준으로는 뛰어나다 하겠지만 영체기 수준으론 고만고만할 뿐입니다.”
유잠은 적화존을 보며 겸양을 보였다.
적화존은 그런 유잠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길게 자라서 양쪽으로 늘어진 적화존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말은 그리 해도 네 눈빛에 담긴 자신감은 대단하구나.”
“송구스럽습니다.”
“일단 너에게 과제를 내어 줄 것이다. 그것을 어찌 수행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너를 어찌 쓸지 결정을 해야겠지.”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좋다.”
적화존은 그래도 뒤로 빼지 않는 유잠의 태도에 어느 정도 마음이 풀렸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그 때, 소량진이 유잠을 보며 물었다.
“너는 제련에만 재주가 있느냐? 네 몸에서 초목의 향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들을 다루는 데도 능할 것 같다만?”
“연단(鍊丹)에도 작은 재주가 있기는 합니다 약선 어르신.”
유잠이 소량진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지!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나도 네게 과제를 내어주마. 잘 할 수 있겠지?”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몸은 하나지만 못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유잠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 뒤 유잠은 쌍선의 배려로 쌍선봉 한 곳에 동부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쌍선은 유잠에서 각각 과제를 내어 주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 두 과제가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이것들은 기초 재료들이다. 그리고 이게 쓰이는 상위 재료 중에는 진법을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이 있지.”
건우는 쌍선에게 받은 과제를 두고 그런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사실 그것은 건우 이외에 쌍선봉에 머무는 다른 수사들의 작업물들을 함께 고려한 결과였다.
주로 성단기 수준의 수사들이 쌍선봉에 머물며 쌍선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결과물을 조합해보면 대부분 진법 구축과 연관이 있었다.
물론 성단기 수사들이 만들어낸 것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
그 다음으로 몇 단계를 더 거쳐서 최고급의 진법 재료가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지. 이 정도면 낙생역에 들어온 모든 수사들이 이곳에서 진법 재료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고작 유잠의 모습을 하고 몇 달 떠도는 사이에 알게 된 정보를 다른 화신기 수사들이 모를까?
“이런 짓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어차피 유산주들이 쌍선과 자(子)의 수작을 짐작하지 못할 수가 없는데?”
건우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쌍선봉의 존재 이유를 궁리해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건우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쌍선과 자(子)가 벌이는 일의 실체를 파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 * *
‘역시 쌍선이 자(子)에게 진법 재료를 공급하고 있었군.’
건우는 유잠의 모습으로 쌍선봉에 머문 지 1년 만에 드디어 쌍선과 자(子)의 연결 고리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고리를 따라서 자(子)가 진법을 만들고 있는 곳까지 찾아올 수 있었다.
비록 자의는 아니었지만.
‘설마하니 쌍선봉의 미끼가 유산주를 꼬시려는 것이 아니라 일반 수사들을 꾀려는 것일 줄은 몰랐지.’
건우는 슬그머니 주변 상황을 살피며 정신을 잃은 척 꼼짝도 않고 있었다.
1년 만에 자(子)가 진법을 만드는 곳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유잠은 영과 육이 모두 제압된 상태로 옮겨진 것이었다.
쌍선봉에서 과제 수행에 몰두하던 며칠 전, 적화존에 의해서 제압이 된 유잠이었다.
적화존과 소량진은 자신들을 찾아 쌍선봉에 온 수사들에게 과제를 주고 머물게 한 후에 그 수사들의 뒷조사를 했다.
그 조사를 통해 사라져도 탈이 없을 것 같은 수사들을 추린 것이다.
그 후에는 그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긴다며 회유해서 주변 정리를 하게 했다.
유잠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서 대가가 높은 중요한 일을 맡게 되었다.
당연히 그런 수사들은 쌍선이 따로 비밀스럽게 마련한 곳으로 이동을 해야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쌍선봉의 다른 수사들이 부러워하는 눈빛을 받으며 비밀 장소로 이동한 순간 영체와 영혼이 제압을 당한 것이다.
물론 유잠은 겉으로만 제압을 당한 상태였지만 함께 이동한 모든 수사들이 같은 꼴이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고, 그 결과가 자(子)의 진법 공간이었다.
“이번에는 영체기 둘이 끼어 있소이다. 성단기 녀석들도 열넷이나 되니 많이 부족하진 않을 겝니다.”
“쯧, 그래도 목표를 채우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것 참, 학겸(學謙) 수사는 성격도 급하시오. 어차피 지금 데리고 오는 놈들로 뼈대를 세우고, 이후에 낙생역에 있는 어린 것들 모두를 끌어다가 살을 입힐 것이 아니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의 계획에 따르면 지금 밀어 넣는 아이들로 진법의 뼈대를 세우기엔 충분한데, 설마 학겸 수사께서 딴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적화존의 말에 소량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학겸을 노려봤다.
학겸 수사는 머리의 크기가 일반인의 두 배는 되는 모습으로 그 큰 머리 때문에 왜소증 환자처럼 보이는 이였다.
원래 그의 몸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비율과 다르지 않은 정상적인 모습인데, 머리가 워낙 커서 그런 착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는 금색 표지를 가진 커다란 책을 품에 안고 있었는데, 그 금색 표지는 쉬지 않고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어떨 때에는 흔하디흔한 범인들의 문자가 떠오르고, 어떤 때에는 워낙 오래 되어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고어(古語)의 문자가 떠올랐다.
바로 혜선의 유산이 완성된 모습이 그 책이었던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그리고 이 학겸이 수작을 부린다면 그리 얄팍한 꾀를 내겠소이까? 이 학겸의 머릿속에는 수 천 모사(謀士)의 방책들이 들어 있소이다. 고작 그대들의 의심을 살 만한 일을 꾸밀 정도로 미련하진 않지요.”
“끄응.”
“그리 말을 하니 또 그런 것도 같지만, 그 조차도 계산해서 어리숙하게 일을 꾸몄을 수도 있지 않겠소?”
“그래서 소 수사께서 지금 이 학겸과 지략 대결이라도 해 보시겠다는 말씀이오이까? 이미 몇 번을 말씀드렸지만 이 학겸이 두 수사를 속이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지요.”
“그 말이 진실이기를 바라오.”
“어차피 학겸 수사에게 협조하기로 했으니 내친걸음이긴 하오. 하지만 이 소량진은 학겸 수사를 항상 지켜볼 것이오.”
“그야 소 수사의 뜻대로 하실 일이지요. 그리고 적화존께서도 얼마든 의심하고 살피셔도 됩니다. 이 학겸, 다른 일을 꾸미지도 않겠거니와 꾸민다고 하면 어찌 두 분께 들킬 어리숙한 짓을 하겠습니까.”
“이거 원, 믿으란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그러게 말입니다.”
“어차피 못 믿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냥 의심하고 의심하시라는 말이오이다. 다만 확신하지 못하면 계속 협조를 해 주셔야지요.”
학겸의 말에 적화존과 소량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해 봐야 답이 나오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만하고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잠시 침묵이 돌던 어느 순간 학겸이 쌍선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쌍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이 제압해서 데리고 온 수사들을 허공에 띄우고 학겸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우는 그들이 가까이 오자 곧바로 의식을 줄이고 대신에 아공간 입구를 열어 루야를 통해 주변을 살피게 했다.
* * *
- 우와, 독하네요. 어떻게 살아있는 수사들을 진의 축으로 쓸 생각을 하죠?
‘진의 축이 아니라, 진 전체를 수사들을 이용해서 만드는 거야. 지금은 진의 축만 우리 같은 수사들을 쓰고 있지만 이후에는 진 전체를 낙생역의 수사들을 갈아 넣어 완성하려는 거지.’
건우는 학겸과 적화존, 소량진에게 끌려서 진법 내부를 오래도록 움직였다.
그가 제일 마지막으로 진법의 축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열네 명의 성단기 수사와 한 명의 영체기 수사가 진법의 축으로 세워졌다.
루야는 그 과정을 모두 살폈고, 학겸과 쌍선이 건우를 진법의 축으로 세우고 사라진 후, 건우가 그 과정을 살폈다.
그 결과 루야는 파악하지 못했던 진의 실체를 건우가 어느 정도 파악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 낙생역의 모든 수사들을 진법의 재료로 쓴다는 말이에요?
‘그래. 보아하니, 지금 이곳은 낙생역의 중심이다. 쌍선봉을 동쪽 끝에 치우치게 해서 다른 이들의 의심을 피하고, 정작 진법은 낙생역 중앙에 세우고 있는 것이지.’
- 그래서 여기 진법이 발동하면 낙생역 전체가 진법의 범위에 든다는 거군요?
‘옳다. 그리 되면 낙생역의 수사들 대부분이 진법의 재료가 되겠지. 물론 그걸 위해서 그 수사들에게 일종의 증표를 찍어야 하겠지만 그야 학겸과 쌍선이 나서면 어렵지 않을 일이지.’
- 어떻게요?
‘세 놈들이 나서서 가르침을 전파한다고 나서면 수사들 중에서 그 자리에 참가하지 않을 이들이 몇이나 되겠느냐. 게다가 그것을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몇 번 거듭하되 같은 내용이라면?’
- 이미 참석한 이들이 다른 이들에게 양보를 하겠군요? 그렇게 되면 수도 문파에서도 그 설법을 듣지 않는 이들이 드물 테고요.
‘그렇게 수사들에게 수작을 부린다면 진법이 발동했을 때, 그들 모두가 재료가 될 것이다.’
- 무섭군요.
‘그런데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도대체 왜 이런 진법을 만드는 가 하는 것이다.’
- 네? 영계 비승을 위해서 만드는 진법이 아닌 건가요?
루야가 건우의 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게 아닌 것이 문제지. 이것은 비승과는 연관이 없는 진법이야. 아직 진법의 실체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해서 그 진의를 알 수가 없다.’
- 그럼 이제부터 진법을 하나하나 파헤쳐 봐야겠네요?
‘음. 학겸의 이목을 속이고 진법을 살피자면 쉽지는 않겠지만, 시도는 해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이 진법 안에서 학겸을 상대하는 것을 절대 피해야 할 것이다. 이곳은 학겸의 공간이니까.’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진법의 축에서 몸을 빼내기 시작했다.
유잠으로 변장한 건우의 몸은 지금 백여 미터가 넘는 커다란 금속 기둥에 박혀 있는 상태였다.
정확히는 유잠의 영체를 그 금속 기둥에 합쳐 놓은 것이다.
그런 상태로 진법의 축이 된 수사들은 진법을 통해서 하나로 묶여 군체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학겸이 존재하면 그 많은 수사들의 군체의식을 통제하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진법이 발동되지 않은 상태라서 군체 의식이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건우가 빠져 나가도 당장 학겸이 알아차리지는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건우가 완전히 진법의 축에서 사라지면 학겸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금방일 것이다.
그래서 건우는 자신이 빠져나온 자리에 괴뢰 하나를 심어 학겸의 눈을 속였다.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진법이 발동할 때까지는 학겸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진 못할 것이다.
‘어디 도대체 어떤 진법인지 한 번 보자.’
유잠이 기둥에서 몸을 빼더니 훌쩍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넓은 황토의 대지가 펼쳐진 진법 공간 여기저기에 수사를 녹여 넣은 진법의 축들이 불규칙하게 서 있었다.
건우는 그런 축들을 살피며 그 안에서 규칙을 찾으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