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46화 (146/499)

146. 유잠(孺蠶)이 된 건우의 밀행

건우는 낙생역(落生域)과 혼돈역의 경계에서 십이비선의 유산을 추적하는 진법을 발동했다.

진법은 부양도에 설치해 부양도를 불러내면 언제든 진법을 이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나를 빼고도 벌써 다섯 개가 근처에 있군. 혜선(慧仙), 불선(佛仙), 약선(藥仙), 괴뢰선(傀儡仙), 혈선(血仙). 다른 유산들은 진법이 잡히지 않으나 낙생역을 향해 오고 있는 중이겠지.”

건우는 적어도 몇 백 년 이내로는 십이비선의 유산이 모두 낙생역으로 모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진법은 어디에 펼친다는 건지 모르겠군.”

자(子)라는 수사가 낙생역에 진법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정확한 위치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낙생역에서 진법의 위치를 알아봐야 하는데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정체를 숨기고 돌아다녀야 되겠군.”

건우는 열두 명의 유산주들 중에서 유일하게 유산을 추적하는 술법을 막을 수 있었다.

이미 검선의 유산이 낙생역에 닿았다는 것은 들통이 났겠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성광검을 아공간에 숨기고 낙생역을 돌아다녀 볼 생각이었다.

아마도 다시 사라진 검선의 유산 때문에 다른 유산주들이 바짝 긴장할 것이 분명했다.

* * *

“요즘 같아서는 수련 동부에 머리를 박고 바깥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좋을 텐데.”

“하하하. 이 유잠(孺蠶)도 그리 생각하기는 했소이다만. 또 달리보자면 이 또한 기회가 아니겠소이까. 낙생역에 이리 많은 선배 어르신들이 오시는 경우가 어디 흔하겠습니까?”

“으음. 그건 그렇습니다. 몇 백 년 전에 건우라는 화신기 어르신이 다녀가신 후로 우리 낙생역의 전반전인 수도 경지가 크게 올랐지요.”

“이 유잠이 하는 말이 그것입니다. 그 건우 어르신의 아량이 오죽이나 컸습니까? 나야 직접 뵙지는 못하고 그저 스승님께 듣기만 했던 것이지만.”

“오오, 산수라 하셨는데 유잠 수사의 스승께서 건우 어르신을 직접 뵈었단 말입니까?”

“그 때, 산수들 사이에서도 서로 힘을 모아서 그 분께 바칠 수련 자원을 모으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승님도 다른 산수들 몇 분과 힘을 모아 자원을 모으고 결국 덕분에 지금의 이 유잠이 있게 된 것이지요.”

“하하하. 어쩐지 산수라면서 성단기 후기라는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이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려.”

“그렇지요. 스승님과 건우 어르신의 인연이 없었다면 어찌 지금의 제가 있었겠습니까.”

유잠은 그리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건우라는 화신기 수사와의 작은 인연을 어떻게든 내세우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마주 앉은 수사는 전혀 고까워하지 않았다.

낙생역에서 건우는 그야말로 지고한 위치에 있는 고계 수사였다.

지금은 비록 그 건우와 직접 얼굴을 마주했던 수사들 대부분이 죽고 없지만 그 건우란 화신기 수사가 낙생역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그로부터 지금 낙생역의 영체기 수사들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우의 얼굴을 본 이들 중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영체기 경지에 오른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영체기 수사들은 하나같이 건우의 은혜로 그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은 사실 유잠으로 변장하고 있는 건우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지금의 낙생역은 어떻게 보면 건우를 시조로 섬기는 거대 문파와 비슷했다.

각기 다른 문파나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그들 모두가 건우라는 화신기 수사를 떠받드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그런 중에 유잠으로 변장한 건우가 자신과 건우가 인연이 있음을 들먹이는 꼴이었다.

“그런데 유잠 수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벌써 여러 분의 화신기 어르신들께서 이곳에 들어와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같은 저계 수사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저 이 유잠은 그 어르신들 중에 누구라도 연이 닿으면 손발이 닿도록 받들어서 깨달음의 편린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유잠 수사는 진취적인 면이 있으십니다. 다들 전전긍긍하며 걱정을 하는 중인데, 유잠 수사께서는 직접 나서서 어르신들을 만날 생각을 하다니요.”

“사실 저 같은 성단기 수사 따위가 어르신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 분들께서 손짓으로 부리는 괴뢰 하나가 저보다 경지가 높은 경우도 많을 텐데요.”

“그리 말씀을 하시니 그도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어찌저찌 쌍선께서 허드렛일이라도 할 수사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곳으로 가 보려고 합니다.”

“오오, 유잠 수사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그런 소문이 있습니까?”

유잠의 말에 맞은편 수사가 밝은 얼굴로 물었다.

유잠은 그런 모습에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도 속으로는 혀를 차고 있었다.

‘이거 이렇게 소식이 늦어서야 이 녀석에겐 별로 얻을 것이 없겠어.’

건우는 미색이 뛰어난 20대 초반의 인간 수사로 변신을 하고 유잠이란 이름을 쓰고 있었다.

건우는 유잠으로 변신을 하기 위해서 새로이 무명공을 익혔다.

무명공은 격이 높은 존재의 진혈이나 기운을 가지고 수련을 하는 공법이다.

건우는 성해룡의 여의주 기운을 이용해서 무명공을 익힌 덕분에 성해룡결공법을 얻었다.

그처럼 무명공은 어떤 진혈과 기운을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묘한 수련공법인데, 이번에 건우는 칠채선호접(七彩仙蝴蝶) 이라는 신비한 나비의 날개가루를 얻어서 그것으로 무명공을 익혔다.

그 결과 성취가 무척 낮기는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새로운 공법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유잠공이었다.

유잠(孺蠶)이란 어린누에란 뜻으로 유잠공은 무명공에 칠채선호접(七彩仙蝴蝶)의 기운을 온전하게 담지 못해서 만들어진 불완전한 공법인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썩어도 준치라고 무명공에서 만들어진 유잠공은 칠채선호접(七彩仙蝴蝶)의 미약한 기운만 품었음에도 성단기 후기로 변장하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유잠 수사께서는 그 십이비선의 비승진법에 대해서 혹시 들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건우가 내심 쭉정이를 잡았다고 혀를 차고 있는데 문득 맞은편 수사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건우의 눈빛이 반짝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지금 낙생역을 떠돌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자(子)가 펼치는 진법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눈앞의 수사가 그에 대해서 뭔가 아는 듯이 말을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비승진법이라니요? 막구(莫邱) 수사께서 뭔가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하하하. 역시 관심을 가지실 줄 알았습니다. 이게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아니 무얼 그리 뜸을 들이십니까? 정확한 것이 아니라면 말을 아낄 것이 뭐가 있답니까.”

“그것 참, 성격도 급하십니다 그려. 알았습니다. 지금 말씀을 드립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유잠 수사께서 쌍선이 계신 곳으로 간다하니 하는 말입니다.”

“쌍선과 비승진법이 연관이 있습니까?”

“거 성격하고는. 어찌 그리 급한 성격으로 성단기 후기까지 올랐답니까?”

“이보시오 막구 수사!”

“알았소이다. 잘 들으시오 쌍선의 뒤에 또 다른 어르신이 있다고 하오이다. 지금 낙생역에 쌍선의 이름이 드높지만 실제로 그 뒤에 또 다른 어르신이 있어서 비승진법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오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허, 그것 참. 유잠 수사. 우리는 고작해야 한미한 성단기의 수사일 뿐입니다. 이런 우리가 어찌 화신기 고계 어르신들의 사정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천기도 완벽히 숨기지 못하는 것이 세상 일이 아닙니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그러니까 사실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유잠 수사께서 쌍선을 찾아간다 하니 일러 드리는 말입니다. 하지만 혹여 운이 좋아 쌍선의 수발을 들게 되더라도 너무 깊이 관여하지는 마시라고요.”

“그건 또 왜······?”

“어허, 이리 답답하십니다. 고작 성단기 주제에 어르신들의 다툼에 끼어들기라도 하시렵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러니 괜한 불똥이 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깁니다. 내 유잠 수사에게 수련에 도움이 될 자원을 얻는 신세를 크게 진 마당이라 이리 일러 드리는 것입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확실히 과욕은 곧 죽음이지요. 영체기도 못 된 제가 화신기 어르신들 일에 기웃거릴 일은 아니지요.”

“쯧, 그러면서도 눈에는 욕심이 가득하십니다 그려.”

“하하하. 그렇습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깜냥도 되지 않는 비승진법에 기웃거리진 않을 겁니다. 저는 그저 제 수련에 도움이 될 작은 거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바랄 뿐이지요.”

“하기는 산수 스승을 모셨으니 그런 성향인 것도 이해는 합니다.”

“자자, 그럼 막구 수사.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사도 어서 빨리 제가 드린 것을 확인하고 싶으실 테니.”

“하하하. 그것 참 제 속을 훤히 들여다 보십니다 그려.”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쌍선 어르신들이 계신 곳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르겠습니다.”

“수도계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이 막구 역시, 유잠 수사를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럼 이만.”

유잠은 짧게 막구에게 인사를 하고는 칠색의 둔광을 남기고 사라졌다.

“유잠 수사의 공법은 참으로 화려하군. 특이하기도 하고.”

칠채선호접의 기운이 담긴 공법이라 일곱 색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빛이 특징인 유잠공이었다.

고작 성단기라 아직 그 깊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막구는 그저 화려한 빛이라 하면서도 뭔가 기묘한 느낌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직감이 유잠공이 지닌 무궁한 가능성을 엿본 때문이지만 정작 막구 본인의 정신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낙생역에 몇 명의 화신기 수사가 들어와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건우 역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건우 자신까지 여섯 명의 유산주가 낙생역에 있는 것은 분명했다.

“여섯 중에 거처가 확실하게 알려진 두 명의 수사를 쌍선이라 부르는 거지.

불선과 약선의 유산을 지닌 축(丑)과 묘(卯) 수사.

하지만 그들은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 적화존과 소량진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들은 낙생역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커다란 산을 차지하고 동부(洞府)를 세웠다.

때문에 봉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산이 이름은 쌍선봉이라 불리고 있었다.

건우는 막구와 헤어진 후 석 달 만에 쌍선봉이 있는 산 아래에 도착했다.

“무슨 용무로 이곳에 왔는가?”

건우가 산문(山門)에 다가가자 성단기 수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그 수사의 오른 소매에는 불(佛), 왼쪽 소매에는 약(藥)이란 법문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그것으로 그의 소속을 알 수 있었다.

적화존과 소량진은 이곳에 자리를 잡은 후에 낙생역의 수사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의 소매에 각각의 법문을 새기게 하고 심부름을 시켰다.

눈앞에 나타난 수사의 소매가 바로 그런 이들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쌍선께서 산수들에게 일거리를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네.”

건우는 용무를 묻는 수사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상대는 성단기 중기 정도의 수사였다.

같은 성단기지만 용잠으로 변장한 건우의 경지가 조금 더 높으니 말을 높일 수는 없는 일이다.

“역시 용무는 그것인가? 그렇다면 특기가 무엇인가? 혹여 약초를 잘 기르거나 제련에 재주가 있는가?”

“마침 스승님께 배운 것이 있어 제련(製鍊)에 재주가 좀 있는 편이지.”

“그래? 그렇다면 잘 되었군. 자네는 그럼 적화존 어르신의 일을 도우면 되겠어.”

“그런가? 그럼 소량진 어르신은 약초 재배를 잘 해야 하는 것이군?”

“그렇지.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또 두 분께서 특별히 내어 주시는 일거리가 있네. 그것은 누구나 응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 성과가 좋으면 응당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네.”

“그렇군.”

“어쨌거나 일단 소속은 적화존 어르신 쪽으로 하고, 이후 실력을 인정받으면 나처럼 불약, 혹은 약불의 이름을 달 수 있게 될 거다.”

수사가 소매를 흔들었다.

“음? 그럼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

“어허! 아무 성과도 없이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나?”

“내 듣기로는······.”

“생각이 없으면 그냥 물러나면 될 일이지 무슨 말이 그리 많은가!”

“이것 참, 텃새가 심한 것 같은데? 일처리를 이리 하는 것을 어르신들께서도 아시는지 모르겠군.”

건우는 돌아가는 상황이 들은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적화존과 소량진에서 일을 일임 받은 이들의 장난질 때문임도 짐작했다.

아마도 책임자들이 자신들의 공을 부풀리기 위해서 휘하의 수사들을 착취하는 것이리라.

“담이 크구나! 지금 예서 시비를 거는 것이냐?”

건우의 말이 거슬렸는지 또 다른 수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수사는 영체기 초기의 수사였는데 건우는 그 수사를 보고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건우가 낙생역에 머물고 있을 때, 건우에게 수련 자원을 모아와 바치던 이들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건우는 모르는 척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인사는 되었다. 그런데 네가 지금 내 일처리를 두고 왈가왈부 한 것이냐?”

그는 건우의 인사를 받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소매를 휘둘러 건우를 압박하며 노여움을 드러냈다.

“그것 참.”

건우는 그 모습에 살짝 혀를 차며 칠채선호접(七彩仙蝴蝶)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유잠공의 기운이 올올이 풀려나며 일곱 빛깔의 광체가 건우를 휘감았다.

“어어어?”

그 모습에 앞서 나왔던 성단기 수사는 물론이고 뒤이어 나온 영체기 수사가 깜짝 놀라며 눈이 커졌다.

건우가 살짝 영체의 기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곳 상황이 엉뚱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건우 역시 어느 정도는 권력을 지니는 것이 일을 보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체기 초기의 경지를 드러낸 것이다.

“쯧, 쌍선 선배님들을 뵐 때까지는 상황을 살피려 했더니 이리 귀찮은 일을 다 겪게 되는군.”

건우가 불쾌하다는 듯이 두 수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두 수사 중에 영체기 수사를 보며 다그쳤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선배님들께 안내나 하시오.”

그 말에 영체기 수사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혹시라도 눈앞의 수사가 쌍선을 만난 자리에서 고자질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가자는데 뭘 하시오?”

다시 건우가 그를 채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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