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건우 지가 싸놓고 모르는 큰 똥과 다시 만난 종 선생
꾸물텅! 꾸물텅! 꾸물텅!
그것은 넓은 바다와 같았다.
짙은 생기와 혼돈의 기운을 함께 품고 있는 대해(大海).
하지만 원래 이곳은 혼돈역 중에서도 깊은 내륙지역으로 바다가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 바다 위에서 행금주(倖金宙)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는 십이비선 중에 금선(金仙)의 유산을 얻어 비전을 수습한 수사로 신(申)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자(子)로부터 낙생역에 진법을 펼치겠다는 말을 듣고 고심 끝에 낙생역을 찾아 혼돈역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그런데 비행 법보를 타고 작은 바다를 건너던 중에 그 바다가 사실은 바다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 넓은 바다가 사실은 하나의 생명체였던 것.
촤촤촤촤촤촤!
“이런! 고약한!”
행금주가 수면에서 치솟는 물의 창을 보고 황금주판을 뒤집어 휘둘렀다.
그러자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과 꼭 닮은 황금주판 비행 법보에서 주판알들이 쏟아져 내리며 치솟는 물의 창과 충돌했다.
촤좍! 촤좍! 촤좍!
물의 창은 기세 좋게 솟구치다가 황금 주판알에 맞아 흩어지며 수면으로 다시 떨어졌다.
하지만 수면에서 솟구치는 물의 창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없어진 만큼 다시 솟아나는 물의 창.
행금주가 이마를 찌푸리는 것은 이런 일이 벌써 보름 이상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행 법보가 올라갈 수 있는 최대 높이로 상승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물의 창은 능히 거기까지 날아와 비행 법보를 위협했다.
“쉬지도 않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구나.”
행금주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보름 동안 바다 괴수와 싸우고 있는 그였다.
이 바다 괴수의 공격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하지는 않아도 화신기 수사인 행금주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막지 않고 그대로 맞아줄 수준은 아니면서 또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정도, 딱 그런 공격이 쉬지 않고 계속 되었다.
행금주는 빠르게 바다를 벗어나기 위해 무리해서 공간 이동도 몇 번 해 보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바다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행금주는 낙생역으로 향하면서 그 주위의 혼돈역에 대해서 최대한 알아보았다.
당연히 대략적인 지도도 만들어서 가지고 온 참이다.
그 지도에는 원래 이쪽에 바다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 이 바다를 발견했을 때에는 새로 바다가 생긴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생긴지 오래 되지 않았으니 그리 넓지도 않으리라 생각하고 가로지를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상급 비행 법보를 가지고도 몇 달을 날았음에도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근래에는 몇 번이나 장거리 공간 이동까지 해 봤는데도 바다를 벗어나지 못했다.
“고약하군. 아주 고약해.”
행금주는 다시 한 번 황금 주판을 흔들어 영기를 뿌려대며 중얼거렸다.
보름이 넘도록 괴상한 바다 괴수와 싸우느라 그의 심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아무리 화신기 수사라도 비슷한 급의 괴수와 장기간 싸우는 일이 쉬울 수가 없다.
그는 조금씩 힘이 딸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행금주가 손에 들고 있는 황금 주판을 바라봤다.
십이비선 중에서 금선의 유산이었다.
금선은 재물을 쌓아 그것으로 십이비선의 일좌를 차지한 수사였다.
행금주가 바라보는 황금 주판, 그 하나하나의 주판알에는 금선이 남겨 놓은 법보, 법부들이 들어 있었다.
금선은 그 주판알 하나만 제대로 써도 화신기 수사 하나를 능히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 주판알이 한 줄에 다섯 개 씩, 아홉 줄이 있으니 마흔다섯 알인 셈이다.
“후우, 아깝군. 아까워!”
행금주가 깊은 한숨을 쉬고는 마흔다섯 개의 주판알 중에 하나를 엄지와 검지로 잡아 당겼다.
그러자 스르륵 떨어져 나오는 황금 주판 알.
행금주는 그 주판 알 하나를 비행 법보 밑, 수면으로 향해 던졌다.
포옹!
쩍! 쩌저저적! 쩌쩌쩌쩍!
작은 주판 알은 수면에 떨어져 작은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가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주판알을 중심으로 엄청난 냉기가 발생하며 바다 괴수를 얼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기세가 심상치 않은 것이 도무지 냉기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냉기는 행금주의 시야가 닿는 모든 범위를 꽁꽁 얼리고, 바다 괴물 수면 수십 수 만 장 아래까지 얼음으로 만들었다.
“끄응, 아까워. 아까워. 저걸 다시 만들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화를 퍼부어야 한다는 거냐고.”
행금주가 꽁꽁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몇 번이나 아쉬움을 토해냈다.
“이 괴물이 뭔지는 몰라도 몸이 물로 되어 있으니 이제 전체가 얼어붙었을 것이다. 저 얼음은 적어도 수 만 년은 녹지 않을 것이니 그 후에 되살아나거나 말거나 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지.”
행금주는 주판 알 하나를 낭비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앞으로 여러 날을 더 싸우다가 뒤는게 쓰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일 거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리고 다시 거대 주판 비행 법보를 움직여 낙생역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행금주의 주판 비행 법보가 자리를 떠난 후.
쩌적! 쩌저적!
꽁꽁 얼어붙어 있던 수면에서 작은 균열이 생겨나며 생기가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균열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으며 바다 전체로 퍼져 나갔다.
* * *
“네, 이 노옴!”
상대의 호통에 건우는 난감한 표정으로 눈앞의 수사를 바라봤다.
“으음. 종선생!”
건우를 보며 분노를 터트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종 선생이었다.
그의 곁에는 예의 갱과 굴, 두 석상괴뢰가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과거에 비해서 품은 기운이 훨씬 강해져 있었다.
건우는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두 괴뢰가 품고 있는 법칙의 힘은 두려웠다.
건우가 권능을 쓸 수는 있지만 그 권능보다 위에 있는 것이 법칙이었다.
비록 온전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갱과 굴, 두 석상괴뢰가 품고 있는 법칙의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종 선생과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이곳에서 너를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 네 놈이 오기까지 절치부심하며 손꼽아 기다렸다.”
종선생은 당장에라도 건우를 씹어 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이런 곳에서 종선생을 만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종 선생이 이곳에 있는 것입니까?”
건우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자(子)의 일방적인 선언 후에 건우는 즉시 낙생역으로 움직였다.
이미 자(子)가 낙생역에서 일을 꾸미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래도 늦게 갈수록 상황 파악이나 대처가 어려워 질 거라 판단했다.
그래서 건우는 그 즉시 망천유역(忘川流域)을 떠나 이곳 낙생역(落生域)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 낙생역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 갑작스럽게 종선생이 건우의 앞을 막아서며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다.
“네 놈이 감히 내 보물들을 모두 훔쳐가고도 그리 태연해? 내 앞에서?”
종 선생이 건우를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건우는 딱히 변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가 종선생의 보물을 훔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그 때는 서로가 적이었던 상황인데, 내가 종 선생의 보물을 훔친 것이 무에 그리 큰 잘못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언제 일인데 지금 와서 그리 열을 내고 그러십니까?”
“뭐? 뭐라? 이런 뻔뻔한 놈을 봤나!”
“어차피 지난 일이고, 그때의 일 덕분에 종 선생도 이득을 보지 않았습니까?”
“이득이라고?”
“당시 종 선생이 머리에 쓰고 있던 혈관모의 금제를 풀어준 것이 누굽니까? 우리들이 아니었습니까?”
“크하하하. 우리들? 네가 그 때 나와 싸웠던 놈들을 네 일행이라고 끌어들이는 것이냐?”
종 선생은 건우의 억지에 기가 막힌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건우가 다른 수사들과 힘을 모았다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저 건우는 빈틈을 잘 노려서 이득만 챙겼었다.
그런데 일행이라니.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후에야 어찌 되었건 처음에는 우리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현원보고로 들어간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내가 혈관모의 제약을 벗어난 것에는 네 놈의 공도 있다? 그런 말이냐?”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종 선생이 있기까지 이 길 모의 공이 작다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길 모는 무슨! 네 놈이 건우라는 놈임을 모를 것 같으냐?”
“으음.”
“이미 네 놈이 건우란 이름과 길우몽이란 이름을 교활하게 바꿔 쓴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다. 게다가 내가 너를 어찌 찾았을 거 같으냐? 네 놈이 가진 검선의 유산만 쉬지 않고 추적한 결과니라.”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찌 종 선생이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곳 낙생역에 있을 수가 있습니까?”
건우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크하하하. 너는 이것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종 선생이 앞섶을 젖혀 가슴을 내보이며 물었다.
그의 가슴에는 커다란 영석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 영석이 크기만 큰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아 봤다.
“으음. 괴뢰심(傀儡心)? 혹시 그것이 유산입니까?”
건우가 보기에 종 선생의 가슴에 박혀 잇는 영석은 괴뢰의 심장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토록 범상치 않은 괴뢰의 심장은 십이비선의 유산 중에 괴뢰선의 유산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크하하하. 눈치는 있는 놈이로구나. 그래 옳다. 괴뢰선의 유산이다. 운이 좋게도 괴뢰선의 유산이 내 손에 들어왔지. 그러니 이곳 낙생역으로 유산을 지닌 놈들이 올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었지.”
“그렇군요. 하지만 종 선생이 어찌 그리 나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길 모에 대한 소문이 그리 자세히 났습니까?”
“그 놈, 말이 많구나. 쯧, 십이비선의 유산 중에 가장 유난한 것이 검선의 유산이다. 당연히 그것이 나타났을 때부터 유산주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을 모았을 수밖에 없지. 덕분에 나도 네 놈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건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십이비선의 유산을 지닌 수사들 중에서 가장 뒤쳐진 듯이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내 손에서 검선의 유산이라도 빼앗아 가시렵니까? 아니면 둘이 생사결을 한 번 치러 보시겠습니까?”
“뭐라? 생사결?”
건우의 말에 종 선생이 얼굴을 찡그리며 어이없음에 화난 표정을 더하여 지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것을 보면서도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내 손에 유명을 달리한 화신기 수사가 한 둘이 아닙니다. 비록 화신기가 된 것은 오래지 않았지만 나는 종 선생이 크게 두렵지는 않습니다.”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종 선생의 저 두 석상괴뢰 갱과 굴이 법칙의 힘을 가진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법칙의 힘이란 것이 직접 닿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저 두 석상괴뢰가 과연 저에게 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라고 숨겨둔 한 수가 없겠습니까?”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오랜만에 법장두(法杖頭)를 꺼내 들었다.
나무로 된 지팡이의 머리.
법장의 머리라 해서 법장두라 부르는 그것은 미약하지만 생기 법칙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그, 그것은?”
종 선생도 법장두가 심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아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운이 좋아서 얻은 기물입니다만, 종 선생께서는 감당이 되시겠습니까?”
“크크크. 그래 과연 자신할 만하구나. 하지만 그 법칙이 과연 나에게 통하겠느냐? 아니면 이 갱과 굴에게 통하겠느냐?”
종 선생은 건우의 말에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종 선생과 저 석상 둘이 괴뢰란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칙의 힘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뭐라?”
“어차피 괴뢰라 하더라도 영체를 만들었으면 이 생기 법칙을 피하긴 어렵지요. 종 선생이 평범한 괴뢰는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가슴에 있는 그 괴뢰선의 유산은 더더욱 일반적인 것이 아니지요. 저는 당연히 이 생기 법칙이 종 선생에게 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으으음!”
건우의 대답에 종 선생의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상태로 종 선생은 건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복잡해 보이는 눈빛이 한참 건우를 향해 있었다.
“제법이구나. 너는 내가 술(戌)임을 아느냐?”
그러다가 건우에게 뜬금없는 말을 물어보는 종 선생이었다.
“술(戌)이면 제 옆자리가 되겠습니다. 제가 해(亥)이니 말입니다.”
“가까운 자리에 서게 될 텐데 묵은 감정을 남겨둬서 좋을 것은 없겠지.”
“허면 지난 일은 모두 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끄응. 뻔뻔한 놈. 하지만 네 말대로 하자. 그 때는 큰일이었지만 지금은 작은 일도 되지 못하게 되었으니.”
“고맙습니다.”
“일단 이렇게 일을 풀었지만, 네가 배신을 하는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겠지. 하지만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기로 하자꾸나.”
“영계 비승을 위해서는 서로 돕자는 말씀이지요?”
“그래.”
“좋습니다. 그리 하시지요. 고맙습니다. 종 선생.”
“끄응. 어쩌다가 저런 녀석과······. 에잉, 다음에 보자.”
종 선생은 끝내 못마땅한 듯이 투덜거리며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동시에 갱과 굴, 두 석상괴뢰 역시 종 선생을 따라 사라졌다.
“이거 일이 묘하게 돌아가네. 저 종 선생은 무슨 생각으로 동맹 따위를 제안한 걸까. 그것 참 모를 일이네.”
홀로 남은 건우는 고개를 저으며 낙생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부양도는 이미 며칠 전에 출도령패로 돌려보내고 직접 둔광을 펼치며 낙생역으로 가던 건우였다.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는 움직임이었다.
“이제부터 성광검을 아공간에 넣어서 혼란을 좀 줄 생각이었는데 하필 간발의 차이로 종선생을 만나다니 쯧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