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41화 (141/499)

141. 검선의 유산을 완성하다

꾸우우우우웅!

“허어, 그 놈, 꽤나 용을 쓰는구나.”

허공에 우뚝 선 건우가 손바닥을 뒤집으며 의념을 집중했다.

그러자 깊은 바다 속에서 길이가 백 장은 되는 고래가 물 밖으로 끌려 나왔다.

피부 곳곳에 따개비가 붙어 있는 그 고래는 심해대경(深海大鯨)이라 불리는 거대 고래였다.

이 심해대경은 이름 그대로 심해에 사는 큰 고래로 날 때부터 영기를 몸에 쌓을 수 있는 특이한 동물이었다.

그런 특징 때문에 이 심해대경은 높은 확률로 영성을 얻어서 수사가 되곤 했다.

보통 성단기나 영체기 정도에 영성을 얻어 원래 모습을 벗어나니 그 때부터는 심해대경이란 이름을 쓸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제대로 된 심해대경한유(深海大鯨寒油)를 얻는 것이 어렵다.

질 좋은 심해대경한유는 영체기 혹은 화신기 정도의 영기를 몸에 쌓은 심해대경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전에 영성을 얻어 수사가 되면서 본모습을 잃어버리니 그렇지 않은 심해대경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건우는 검선의 유산을 성장시키는 과정에 그것을 담금질하기 위해서 반드시 질 좋은 심해대경한유(深海大鯨寒油)가 필요했다.

건우는 그 때문에 만은사를 통해서 심해대경에 대한 정보를 구했고, 확률이 높은 몇 곳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조건에 맞는 심해대경을 찾은 것이다.

“이 놈아! 그만 버둥거려라. 내가 너를 찾느라 2백 년을 떠돌아 다녔다.”

꾸우우우우웅! 꾸우우우우웅!

건우가 의념을 집중해서 심해대경을 허공에 띄우자 심해대경이 퍼덕거리며 묵직한 울음을 토해냈다.

“쯧, 살려줄 테니 그만 멈추거라.”

건우가 그런 심해대경을 향해 다시 한 번 의념을 집중하며 사념을 전했다.

그러자 심해대경이 버둥거리던 몸짓을 멈추었다.

살려준다는 말에 일말의 희망을 가진 것이다.

“그래도 화신기급 영기를 쌓은 녀석이라 말귀는 알아듣는구나.”

건우가 눈치를 살피고 있는 심해대경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건우의 머리 위에는 성해룡주가 떠 있었다.

지금 건우가 심해대경을 잡은 곳은 아공간 중에서 수속성 영역이 현실화 된 곳이었다.

바다 위에 수속성 영역을 불러내어 겹치고 거기에 심해대경을 유인했다.

밖에서라면 화신기 급의 영기를 품은 심해대경을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영성이 트이지 않은 심해 대경을 유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아공간 영역에 들어온 심해대경을 제압하기는 더욱 쉬웠다.

“네가 이렇게 잡힌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이다. 제압이 되지 않았으면 죽여서라도 네 기름을 얻었을 테니까.”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의념을 이용해서 심해대경에게서 한유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심해대경한유(深海大鯨寒油)는 곧 심해대경의 몸에 쌓인 영기였다.

심해대경은 영기를 기름 형태로 몸에 쌓는 동물이었던 것이다.

“네게도 기회가 될 것이다. 네 몸의 기름이 빠져 나가 성단기 정도까지 경지가 떨어지게 되면 다시 영체기와 화신기 단계를 거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경지를 돌파할 때마다 영성을 얻을 기회가 크게 생기지 않느냐.”

건우는 영기를 빼앗기자 버둥거리려는 심해대경을 그렇게 타일렀다.

그러자 심해대경의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비록 경지가 크게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영성을 얻을 기회를 다시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낫다는 것을 심해대경의 본능이 알아차린 것이다.

고작 영기를 내어주고 다시 영성을 얻을 기회를 받는 것인데 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건우가 활짝 웃으며 다시 심해대경의 기름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심해대경에겐 전혀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그 몸에 쌓인 영기만 뽑아내는 건우.

의념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걸림돌이 될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건우는 심해대경에서 흘러나온 기름을 곧바로 아공간 깊은 곳에 보관했다.

흘러나는 족족 어디론가 사라지는 기름들.

심해대경은 오래지 않아서 백 장에 이르는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어 결국 십여 장, 즉 30미터 정도의 크기로 줄었다.

그러는 동안에 몸에 붙어 영기를 빨아먹던 기생생물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고 매끄러운 피부가 드러났다.

흑청색의 등과 하얀색의 배가 드러난 심해대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녀석. 수고했다.”

건우가 성단기 급으로 영기가 줄어든 심해대경을 다시 바다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아공간에서 영단 하나를 꺼내어 심해대경에게 날려 보냈다.

“이것을 제대로 흡수하면 오래지 않아서 영체기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영성을 획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게고.”

건우가 날린 영단은 곧바로 심해대경의 이마에 맞고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수속성의 영기를 품은 영단이기도 했지만 거기에 더해서 지능을 올리고 총기를 더해주는 효과도 있는 영단이었다.

그러니 영단을 복용한 덕분에 이전보다는 영성을 얻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꾸우우우우웅! 꾸우우우웅!

심해대경은 영단이 몸속으로 들어오자 곧바로 자맥질을 하며 깊은 바다 속으로 내려갔다.

“성격이 온순한 녀석이라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이군.”

“마수나 요수 같은 것이 아니어서요?”

건우의 혼잣말에 루야가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현실에 아공간을 불러내면 루야 역시 현실의 아공간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심해대경이 비록 몸에 영기를 쌓기는 하지만 수도계에 속한 역천의 존재가 아니다. 심해대경의 몸에 영기가 쌓이는 것은 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그런 것이라 순리에 속한다.”

“그래서 굳이 죽이지 않은 거라고요?”

“내가 비록 역천의 길을 걷고 있지만 굳이 순리를 거스를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들을 굳이 해할 이유가 없지.”

“영물이나 마물, 요물, 요수, 마수 따위는 잘 잡으시잖아요.”

“심해대경은 그런 것들과 달리 그저 덩치가 큰 동물에 지나지 않지.”

“그렇게 많은 영기를 품었는데요?”

“그래, 이상하지만 심해대경과 같은 동물은 그럼에도 순천의 존재란 말이지. 물론 수사가 되면 그 순간부터 역천의 존재가 되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건우 님은 조금 이상해요. 다른 수사들은 범인이고 뭐고 따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잖아요.”

“그저 나만의 기준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 될 수 있으면 그러려고 할 뿐.”

“빠져 나갈 길은 항상 마련을 해 두시는군요?”

“음?”

“아니에요. 그런데 이제 검선의 유산을 성장시킬 준비는 다 끝이 난 건가요?”

“목속성와 금속성이 결합된 재료를 찾지 못했으니 아직은 아니지. 게다가 다른 기본 재료들도 부족한 것이 많고.”

“하급 재료들이야 사도천의 애들이 준비를 해 뒀겠죠. 벌써 2백 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 사이에 그 정도도 준비를 못했겠어요?”

“그래. 만은사에서도 사도천에 별 문제는 없다고 했으니 어느 정도 기대해도 되겠지.”

“그러니까요. 그럼 남은 건 속성이 결합된 재룐데, 그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루야는 또 몇 년을 떠돌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음, 그게 좀 문제긴 하다. 만은사에서도 그 두 종류의 속성이 균일하게 결합된 상급 자원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

“그래요?”

“하급 재료로는 여럿 있는데 내가 원하는 수준은 없더구나. 상급 이상의 속성 영기가 결합된 자원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쉽지 않은 조건이지. 하지만 만은사에서조차 하나도 찾아내지 못할 줄은 몰랐다.”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부양도를 타고 망천유역(忘川流域)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직접 합성을 해 봐야지.”

“직접 만드신다고요?”

“목속성과 금속성의 영기를 상급 영석 수준으로 품은 것들은 그래도 구할 방법이 있겠지. 그것들을 구해서 직접 합성해 볼 생각이다.”

“으음, 극화조연단로를 이용하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겠네요. 하지만 어떤 재료들을 섞을 거냐가 뭣보다 중요하겠어요.”

“그렇기는 하지.”

“좋아요. 이 루야가 도와줄게요. 아공간을 밖으로 소환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 부양도 대전에 아공간을 소환하고 거기서 연단과 재련을 하면 되겠네요.”

“어차피 망천유역(忘川流域)으로 돌아가려면 못해도 50년은 걸린다. 그것도 중간에 부양도의 전송진을 써야 그 정도로 줄일 수 있겠지. 그 시간동안 재료 합성을 하면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만.”

“이동 중에 일반 재료들도 모아 봐요. 그러다보면 망천유역에 닿기 전에 검선의 유산을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되면 좋겠지.”

“그러니까요.”

“그래, 일단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자. 너도 들어가고.”

“네, 알았어요.”

“이제부턴 망천유역으로 돌아가는 것을 우선으로 부양도를 움직일 것이니 그리 알고.”

“네, 건우님. 나중에 봐요.”

루야는 손을 흔들며 아공간으로 모습을 감췄고, 건우도 성해룡주의 권능을 해지하고 성해룡결공법을 풀어버렸다.

성해룡주가 허공으로 흩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즉시 출도령패를 이용해서 부양도를 호출해 올라탄 건우가 빠르게 한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건우가 사라진 망망대해 깊은 곳에는 화신기 수준에 올랐다가 성단기로 떨어진 심해대경이 유유히 헤엄치며 다시 영기를 모으고 있었다.

* * *

성광철(星光鐵)에서 별빛이 흘러나온다.

그 성광철은 극화조연단로의 열기에 붉게 달궈진 상태로 검선의 유산인 검날에 스며들었다.

휘리릭! 치지지지지지직!

성광철을 흡수한 검선의 유산이 곧바로 심해대경한유(深海大鯨寒油)가 담겨 있는 항아리로 날아들어 뜨거운 몸체를 식혔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극화조연단로의 불길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그 곁으로 또 하나의 성광철이 날아와 함께 극화조연단로의 열기에 몸을 달궜다.

얼마쯤 지났을까, 검선의 유산과 성광철이 붉게 달아오르자 성광철이 검선의 유산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다시 심해대경한유를 이용해서 몸을 식히는 검선의 유산.

이후에는 그와 같은 과정이 계속 반복되었다.

“성광철의 양이 많았던 것이 정말 다행이네요. 설마하니 성광철의 양에 따라서 담금질 횟수가 달라질 줄은 몰랐어요.”

“아마 과거의 검선도 이만큼 많은 담금질을 하지는 못했을 거다.”

건우가 루야의 말에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검선의 유산을 완성시키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 극화조연단로 안에는 목속성과 금속성이 결합된 액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액체는 극화조연단로의 열기에 섞여 검선의 유산에 녹아드는 중이었다.

목속성의 생명력과 금속성의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특이 속성의 힘이 검선의 유산을 깨우는 것이다.

“원래부터 검선의 유산은 생명체나 다름없는 녀석이었지. 목속성과 금속성이 결합된 특이 속성은 사실상 질긴 생명력이라고 볼 수 있을 거야. 그게 검선의 유산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는 거지.”

“살아있는 검이란 말이잖아요.”

“그렇지. 그리고 그건 아마도 영기나 영보 수준의 본명법보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성질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지금 건우 님께서 검선의 본명법보를 복원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것도 영기나 영보 수준의 본명법보를요?”

건우의 말에 루야가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를 재확인하듯 반복하며 다시 물었다.

“짐작일 뿐이지만 확률은 매우 높다. 아무리 연구를 해 봐도 그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아.”

“그렇게 완성을 했는데 나중에 검선이 주인이라고 나서면 빼앗기게 되는 거 아녜요?”

루야는 마음속에 담아 뒀던 불안을 건우에게 털어 놓았다.

건우가 검선의 유산을 완벽하게 연화시켜 장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항상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해.”

“왜요?”

“영계 비승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솔직히 이 정도 수고로 영계 비승의 길을 열 수 있다면 나중에 유산을 빼앗긴다 해도 아깝지 않은 일이지. 아니 한 번 길을 열고 유산이 파괴된다고 해도 유산을 완성시켰을 걸?”

“생각해보면 그렇긴 하네요.”

“그리고 유산을 완성하고 나면 뭔가 있을 거야. 아직 그게 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요?”

“어쩌면 유산을 완벽하게 연화할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까 유산을 완성시키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받아들여. 그게 속이 편할 거야.”

“네에. 확실히 건우 님 말씀이 맞네요.”

“자, 이제 곧 삼백예순 번의 담금질이 끝나. 그러면 담금질도 끝이 나는 거지.”

“검 하나에 삼백예순 개의 검이 들어 있는 거네요? 그것도 성광철로 된 검이요.”

“솔직히 나도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 나올지는 가늠이 되지 않아. 성광철을 이용한 담금질을 너무 많이 했다 싶기도 하고.”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마지막 담금질을 위해 검선의 유산을 움직였다.

극화조연단로 위에서 검날과 성광철을 달구고 그 둘을 하나로 만든다.

그리고 심해대경한유에 성광철을 머금은 검날을 넣어 담금질을 한다.

“이제 마지막이죠?”

“그래! 마지막 과정이다.”

건우가 루야의 물음에 답하며 심해대경한유에서 검날을 뽑아 극화조연단로에 꽂아 넣었다.

이전처럼 극화조연단로의 열기로 달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연단로 안쪽에 검날을 넣고 뚜껑까지 닫아 버린 건우였다.

우우우우우우웅! 우우웅!

뚜껑을 닫자 연단로의 표면에 극화조가 나타나 날개짓을 하기 시작했다.

건우는 의념을 집중해서 연단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봤다.

목속성과 금속성이 결합된 액체에서 강력한 생기가 끓어올랐다.

그리고 그 생기는 그대로 검선의 유산인 검날에 스며들었고, 검날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생명을 일깨웠다.

지이이이이이이잉!

검날에 잠들어 있던 생명이 깨어나며 검선의 유산이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목속성과 금속성이 결합된 액체에서 생기가 모두 빠져나간 후, 그 액체는 검의 슴베 부분에 뭉치더니 손잡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으음.”

건우가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극화조연단로의 표면에 두 손을 올렸다.

검이 완전히 완성되기 전에 자신의 의지를 심어둬야 한다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건우의 시도는 3년이 흘러 극화조연단로의 열기가 모두 식을 때까지 이어졌고, 유산의 완성과 함께 끝났다.

“축하드려요. 건우 님.”

짙은 녹색의 손잡이가 있는 검을 소환하자 루야가 건우에게 축하 인사를 했다.

녹색 손잡이 끝에는 별빛을 머금은 삼척 길이의 날이 곧게 뻗어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그 검이 바로 검선의 유산이 완성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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