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성광철 포포(包抱), 응 줍줍이야. 그런데 뒷골이 서늘하네
“성광철! 그것을 내 놓으란 말이냐?”
성광하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간을 뒤흔들었다.
“어렵습니까?”
“너는 성광철이 어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느냐?”
“오랜 세월 쇠(金)에 성광지력이 모여서 완성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쇠의 양에는 크게 제한이 없어서 한 번 만들어 질 때에 대량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알긴 아는구나. 네 말대로 한 번에 대량으로 만들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양이 늘어나면 들어가는 수고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습니까?”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인계에서 성광철을 만들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성광철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이곳 극광성이 유일하다 할 만큼. 게다가 성광철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만5천년이다.”
“으음.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그래서 영계가 아니면 좀처럼 만들 수 없는 것이 성광철이지. 물론 아주 작은 양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수 백 만 년, 혹은 수 천 만년의 시간이면 그런 일이 한 두 번 일어날 수도 있겠지.”
결국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란 소리다.
“그래서 성광하주께서는 성광철을 내어줄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길우몽의 얼굴을 한 건우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미안한 대답이지만, 그렇다! 나에겐 성광철의 여유분이 없다.”
“으음. 곤란하군요.”
건우가 신음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는······.”
쿠르르르르릉! 콰과과곽!
“감히!!”
성광하주는 건우에게 충고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팽창하는 숲의 용트림에 분노성을 터트렸다.
휘리리리링 휘리리리리링!
그와 함께 극광의 베일이 춤을 추며 강렬한 성광을 머금었다.
그리고 그 극광과 건우의 숲이 거칠게 부딪히며 싸움을 벌였다.
계속해서 팽창하는 숲, 그리고 그것을 막아서며 갈아내는 극광.
이전처럼 공간 장악력을 두고 건우와 성광하주의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다.
‘앞으로는 어렵다!’
건우는 어느 정도 숲을 확장시키다가 극광성의 앞쪽으로 갈수록 성광하주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옆과 뒤쪽으로 숲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건우가 넓히는 숲은 목속성 영기가 풍부한 아공간 영역의 일부였다.
현실로 나온 숲에선 건우의 의지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입령기에 버금간다는 성광하주조차도 숲 안에 있는 건우를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극광성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약해지는 성광하주의 권능은 옆과 뒤로 확장되는 건우의 숲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특히 뒤쪽은 무인지경으로 극광을 휩쓸어 흩어버리며 숲이 뻗어갔다.
“머, 멈춰라!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성광하주는 그런 숲의 확장을 멈추려 했지만 건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건우는 숲의 확장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부분을 만났다.
앞쪽도 아닌 뒤쪽에서 느껴진 저항.
건우의 의식이 곧바로 그곳을 훑었다.
그리고 건우의 입에는 밝은 미소가 걸렸다.
“하하하. 이런, 성광철로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려. 이 기둥은 보아하니 진법의 일부인 듯 싶습니다만?”
건우의 몸이 곧바로 숲의 끄트머리, 성광철 기둥으로 이동했다.
어른 대여섯은 손을 잡아야 둘레를 두를 수 있을 정도로 굵은 성광철 기둥.
그 기둥은 별빛을 뿜어내며 건우의 숲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건우의 말처럼 성광하주가 만든 진법의 일부였다.
“멈추거라. 네가 원하는 성광철을 내어 주겠다!”
건우가 그 기둥에 손을 대려 하자 다급한 성광하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굳이 받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냥 이것을 뽑아 가면 될 일이지요.”
“네 이놈!”
“그리 화를 낼 이유가 있습니까? 어차피 처음부터 이리 될 일이 아니었습니까? 힘이 없으면 원하는 것이 있어도 얻지 못하는 것이 수도계의 이치, 다르게 말하면 힘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정녕, 나와 생사결을 하겠다는 말이냐?”
“고작 진법 기둥 몇 개를 두고 설마 성광하주께서 저와 생사결을 하시겠습니까?”
“뭐라? 하나도 아니고 몇 개?”
“보아하니 성광하주께선 지금 계신 곳에서 움직이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만약 움직이면 손해가 매우 크겠지요. 그러니 지금도 그리 말로만 떠들고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너, 이 노옴! 그래서 진법의 축을 몇 개나 뽑아가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한 성광철을 주시겠습니까?”
“······.”
성광하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욕심이 넘쳐흐르는 저 핏덩이 수사를 만족시킬 성광철이 있을까?
있다고 한들 그것을 내어주면 저 놈이 그냥 물러날까?
성광하주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적당히 해야 할 것이다. 결국 내가 몸을 일으키면 네 알량한 목숨은 한 줌의 핏물로 녹아내릴 것이니.”
성광하주의 목소리가 울리며 극광의 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이전까지 밝고 찬란했던 성광이 지금은 음울한 붉은 빛으로 변해 있었다.
“흉성의 빛?”
건우가 그런 극광의 변화에 흠칫하며 중얼거렸다.
별들 중에서도 흉조를 나타내는 별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빛깔과 느낌과 기운.
그것이 지금 성광하주의 극광에 담겨진 것이다.
“성광하주께서 그리 노여워하시니 이 후배의 간이 다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후배는 그저 변두리만 돌며 기둥 몇 개만 뽑아 가겠습니다.”
건우가 흉성의 빛이 두렵다는 듯이 몸을 살짝 떨고는 숲의 영역을 뒤쪽으로 물리는 동시에 좌우로 넓혔다.
극광성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던 것을 뒤로 물리며 줄어든 극광의 압력만큼 좌우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오오라. 저기도 또 다른 기둥이 있습니다? 아, 이쪽에도 하나 더 있을 것 같군요.”
그리고 건우는 그렇게 숲의 넓이를 넓힌 덕분에 진의 축들을 새로 찾아냈다.
성광하주는 이후로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불길한 색깔의 극광만 출렁거릴 뿐이었다.
건우는 그런 성광하주를 경계하면서도 일곱 개의 성광철 기둥을 손에 넣었다.
어떻게든 숲으로 기둥을 감싸기만 하면 기둥은 진법과의 연계가 끊어지고 만다.
그런 식으로 기둥 일곱 개를 취하자 숲을 둘러싼 극광의 영역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쯤 하고 돌아가야 하겠군요. 선배의 분노에 제 영체까지 위축되고 있습니다.”
건우가 숲의 규모를 처음처럼 십여 리 크기로 줄이며 말했다.
하지만 성광하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흉성의 빛을 머금은 극광이 돌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침으로 변해서 숲을 향해 쏟아졌다.
“허엇!”
건우도 그 흉흉한 기세에 깜짝 놀라며 의념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 숲을 지키려 애썼다.
하지만 흉성의 빛을 머금은 침들은 이전까지의 공격과는 격이 달랐다.
그 침들은 건우가 펼친 의념의 힘을 뚫고 들어왔다.
비록 침 하나 깊이 정도만 뚫고 들어올 수 있었지만 그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또 쉬지 않고 이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건우의 의념공간이 마치 물살에 쓸려가는 모래벽처럼 깎여 나가며 숲의 영역이 줄어들었다.
“네 놈이 망쳐놓은 극광성의 일부를 포기하고 하는 공격이다. 이것을 견뎌 낸다면 네가 얻은 일곱 개의 기둥은 네 것이다. 하지만 견디지 못한다면 영체는 물론 영혼까지 성광에 녹아 없어질 것이다.”
건우가 깜짝 놀라며 방어에 힘쓰는데 성광하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건우는 그것이 성광하주의 마지막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성광하주는 그 말을 끝으로 극광성을 폐쇄해 버린 것이다.
“이런!”
건우는 다급해졌다.
원래 건우가 일곱 개의 기둥을 취한 것은 나름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수준이라 생각한 숫자였다.
성광하주의 극광성 외곽 기둥은 모두 열 둘.
그 중에 일곱을 취했지만 다섯이 남았다.
그리고 그 다섯이면 진법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은 될 것이다.
건우가 계산하기론 분명 그랬다.
그러니 일곱 개까지는 손해를 보더라도 성광하주가 참을 거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성광하주가 다섯 개의 기둥까지 포기했다.
당연히 외곽 진법은 무너졌고, 다섯 개의 기둥은 쓸모가 없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포기한 힘을 하나로 모아서 지금 건우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성격 지랄이네. 손해를 보더라도 나를 죽이고 싶다는 건가?”
솔직히 계산적으로 생각하면 굳이 이럴 필요가 없었다.
일곱 개의 기둥을 내어주고 다섯 개를 지키는 것이 이득이다.
그리고 이후에 진법을 변화시켜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만들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걸 포기하고 자신을 죽이려 하다니!
“이거 잘못하면 정말 크게 당하겠는데?”
건우는 은행나무가 품고 있는 성해룡주를 손으로 불러왔다.
구슬에 들어 있는 용이 바들바들 떨면서 기운이 흩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만큼 아공간을 현실에 불러내고 유지하는 것이 큰 부담이란 소리다.
“곤란하군.”
건우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흉성의 빛을 머금은 침들이 비처럼 끝도 없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 뒤로 새로운 뭔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흉성(凶星).
길게 꼬리를 끌며 내리치는 혜성(彗星) 하나가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흉성의 침들은 맛보기에 불과할 뿐, 혜성이 날아들기 전의 부스러기에 불과했다고 할까.
“저건 그냥은 못 막아!”
건우는 곧바로 계산이 섰다.
“제 앞마당에 혜성 소환이라니, 미쳤군. 루야! 나와 봐!”
건우가 머리를 흔들며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러자 건우 앞에 루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첫 나들이가 무척 극적이네요.”
루야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혜성을 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돕기나 해!”
건우가 그런 루야에게 고함을 질렀다.
“네네, 지금 가요.”
그러자 루야가 곧바로 손가락만큼 작게 변해서 성해룡주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용의 머리에 올라탔다.
“시작한다.”
건우는 루야가 준비를 마치자 성해룡주를 머리 위로 들러 올렸다.
건우는 10리 크기의 숲을 빠르게 축소시켜 절반으로 줄였다.
카라라라라랑 카라라라라라!
그리고 그 직후부터 흉성의 빛을 머금은 침들이 건우의 의념을 조금도 침범하지 못했다.
쿠와와와와왕!
곧이어 떨어진 흉성의 빛을 머금은 혜성.
하지만 그 혜성도 건우의 숲, 그 의념공간을 어쩌지 못하고 굉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흉성의 빛과 다섯 개의 성광철 기둥으로 만들어진 혜성의 공격이 완벽하게 막혔다.
“좋았어!”
건우가 그 모습에 환호성을 올렸다.
루야가 건우의 의념공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비장의 한 수였다.
루야를 성해룡과 동조시켜 성해룡의 권능 자체를 건우의 의념공간에서 사용하는 방법이 성공한 것이다.
이것은 성해룡의 권능으로 아공간을 현실에 불러내는 것과는 달랐다.
성해룡의 권능인 공간에 대한 간섭 능력을 건우가 의념공간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의념 공간에서 제 마음껏 쓸 수 있는 권능.
이것은 성해룡에게 권능을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건우 자신의 권능을 쓰는 것과 같았다.
“아아아, 저는 이만 들어갈래요.”
“그래.”
건우는 거의 죽을 것처럼 기운이 빠진 루야를 서둘러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동시에 성해룡주도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졌다.
당연히 그 권능으로 유지되던 아공간도 모습을 감췄다.
“휴우, 위력은 좋은데 오래 쓸 수 없는 게 아쉽네. 루야가 화신기가 되면 조금 더 오래 쓸 수 있으려나?”
건우는 한숨을 쉬면서 주변을 살폈다.
저 앞쪽에 극광성이 보였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단단한 모습이었다.
완전히 외부와 차단해 버린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쯧, 이래서 또 하나의 적을 만들었나? 뭐, 보아하니 저 곳에 묶여 있는 모양이니 다시 얽힐 일은 없겠지. 성광철도 넘칠 정도로 얻었고.”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부양도를 불러내어 훌쩍 올라탔다.
그리고 한 순간 부양도의 모습이 허공에서 씻은 듯이 사라졌다.
부양도에 설치된 전송진을 이용해서 성광하역의 역간 전송진으로 이동한 것이다.
처음 성광하역에 도착해서 부양도를 불러냈을 때, 그곳의 좌표를 전송진에 기록해 둔 덕을 보았다.
성광하주에게 밉보인 상황이니 서둘러 성광하역을 떠나려는 건우였다.
* * *
“감히! 감히!”
성광하주는 화를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영계로 비승할 준비를 마쳤다.
그럼에도 그녀가 영계로 오르지 않은 것은 이곳 성광하역의 성광지력이 무척 탐났기 때문이다.
영계로 오른다고 해도 이만한 수련 장소를 찾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성광지력만 있다면 굳이 영계가 아니어도 실력을 쌓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서 진법을 완성하면 성광하역 전체는 아니어도 일부는 영계로 가지고 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만든 것이 극광성이었다.
극광성은 성광하주의 본명법보로 그녀가 영계로 올라갈 때에 영계로 옮겨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고작 작은 집 하나의 크기였던 것이 오랜 세월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는 수백 리의 크기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극광성에 더해질 영역의 삼할을 날려버렸다.
그러니 성광하주의 분노가 어떠할까.
“두고 보거라. 언젠가 크게 후회하는 날이 있을 것이니!”
별빛으로 가린 성광하주의 얼굴에서 서슬처럼 시린 눈빛이 흘러나왔다.
“으음, 웬 한기가 이리? 으스스 하네.”
그 시간 건우는 성광하역을 떠나는 역간 전송진에 오르며 어깨를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