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성광하주(星光河主)는 넘사벽 노괴?
우뚝!
걸음을 옮기던 건우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즉시 건우의 몸이 검은 색으로 바뀌며 용의 비늘이 돋아났다.
그 뿐만이 아니라 황금색 삿갓이 부풀어 올랐다가 피부에 덮였고, 머리 위에 은행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광하주, 의도가 뭡니까? 수사의 살의가 피부를 저미고 있소이다.”
건우가 극광이 갈라져 만들어진 길 앞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감이 좋은 후배로군. 안타깝게도 거기서 멈춰 버렸어.”
건우의 말에 뜻 모를 성광하주의 중얼거림이 뒤따랐다.
그녀는 건우가 더 안쪽 깊은 곳으로 들어오기를 바랐다는 안타까움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면 나도 수사를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건우가 한층 나오금강체술의 기운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하회탈 같은 길우몽의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후배가 혀가 거칠구나. 내가 그 혀를 뽑아 다듬어 줄까?”
성광하주가 냉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뜻이 호의적일 수 없으니 자연히 건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렇게 나오면 나도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는 없는데? 성광하주, 도대체 나를 이리 대하는 이유가 뭐냐?”
건우의 입에서 반말이 흘러나왔다.
이제 상대를 존중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감히 무례하게 군 것은 네 놈이 먼저였음을 모르느냐?”
“무례? 성광하주 네가 나를 어찌 안다고 무례를 따지지? 무례하기로 따지면 후배 운운하며 나를 얕잡아 본 네가 먼저겠지.”
“뭐라?! 천겁 한 번도 겪지 않은 주제에 감히 나에게 그 따위 말을 해?”
건우의 말에 성광하주가 버럭 화를 냈다.
건우는 성광하주가 자신의 천겁 이력을 알아낸 것에 속으로 놀랐다.
“내가 천겁을 넘었는지 아닌지 네가 어찌 알지? 그리고 천겁을 몇 번 겪었는지는 또 뭐가 중요하지? 언제부터 수도계에서 살아온 나이가 중요해졌냐는 말이다.”
건우는 도리어 뻔뻔스럽게 나갔다.
어제의 스승이 오늘의 동기가 되고, 내일의 후배가 될 수도 있는 곳이 수도계다.
그런데 그런 수도계에서 나이 운운이라니.
“우습지도 않구나. 너는 화신기라고 모두 같은 화신기라 생각하느냐? 하긴 그러니 이리 천둥벌거숭이처럼 까불고 있는 것이겠지!”
“성광하주, 정말 끝까지 해 보자는 것인가!”
성광하주의 놀림에 건우가 분노를 터트렸다.
그리고 작정한 듯이 성해룡결공법의 용주(龍珠)를 만들어 냈다.
용이 들어 있는 구슬은 두둥실 떠올라 건우 머리 위의 반투명한 은행나무 가지 사이로 들어갔다.
“으음? 성광?”
그 모습에 성광하주가 살짝 놀란 목소리를 냈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인사(人士)인지 한 번 보자꾸나.”
건우가 작정하고 불러낸 용주를 통해서 성해룡의 권능을 사용했다.
파지지직! 파직! 콰드드득!
건우가 있는 곳은 극광이 갈라져 길이 드러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 숲이 들어서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울울창창한 숲은 그 크기가 수십 리에 해당할 정도로 컸다.
그런 숲이 건우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것이다.
“이, 이게 무슨? 감히 내 극광성(極光城)에서 난동을 부려?”
성광하주가 그 모습에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숲에 밀려나던 극광이 짙어지며 숲을 다시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감히 나와 싸워보자고? 그것도 영역 장악력으로?!”
콰지지직! 콰득! 콰득! 쿠구구궁!
성광하주의 능력이 대단했는지 숲의 범위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크음. 제법 힘을 쓰는구나.”
성광하주의 힘에 극광이 요동치자 숲이 빠르게 줄어드는 모습에 건우가 조금 놀란 듯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건우는 다시 강력한 의념을 끌어 올려 숲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지금 건우와 성광하주의 싸움은 의념으로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을 겨루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건우로선 무척 경악할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성해룡의 권능은 공간을 다루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양도에 적용하여 공간이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성해룡주(星蟹龍珠)의 공간 권능을 사용하는 작은 예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권능 사용은 바로 지금처럼 아공간의 일부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성해룡주를 이용한 공간 권능은 아공간의 일부를 현실로 불러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러낸 공간은 의념공간과 같이 건우가 주인인 공간이 된다.
그런 곳에서 싸운다면 아공간에서 적을 상대하는 것과 같은데 그 어떤 적이 무서울까.
성해룡주(星蟹龍珠)의 공간 권능을 이용해서 소환한 아공간 위에서라면 화신기 수십 명이 있어도 두려울 것이 없는 건우였다.
한 번에 수십 리를 이동하는 능력이 있더라도 건우가 주인인 공간에서는 제대로 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일단 걸리기만 하면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에서 적을 상대할 수 있다.
그랬는데, 지금 성광하주가 그런 건우와 공간 장악력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광하주의 능력이 범상치 않음을 뜻했다.
“도대체 네 놈은 뭐란 말이냐? 감이 어떻게 극광성에서 이런 힘을 쓸 수 있지?”
그런데 갑자기 성광하주가 믿을 수 없다는 뜻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놀랍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성광하주, 너의 재주가 정말 대단하구나.”
절대적인 장악력을 지닌 의념공간의 일부가 성광하주의 힘에 무너진다.
일반적으로 의념을 사용해서 장악한 공간을 빼앗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성해룡주로 불러낸 공간은 의념공간 그 자체인 것이다.
그것을 훼손하다니.
건우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성광하주의 능력이 정말 궁금했다.
“잠시 멈추는 것이 어떠냐? 네 권능이 나에게 뒤지지 않는 것 같으니 겨룸을 멈추고 화해의 길을 찾아봄이 어떠냐?”
그 때, 성광하주가 갑자기 자세를 낮추어 건우에게 화해를 청했다.
건우는 그런 성광하주의 제안에 의심이 들었지만 상황을 잠시 멈추는 것이 손해 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좋아. 일단 확장은 멈추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숲을 고정시켰다.
그러자 성광하주 역시 몰아치던 극광을 멈추고 더는 건우의 숲을 범하지 않았다.
“너는 분명히 천겁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어린 녀석이 분명하다.”
다툼이 멈추자 성광하주가 대뜸 그렇게 말했다.
건우는 시비를 거는 것 같은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 나빠할 것은 없을 거다. 나는 이미 대천겁만 세 번을 거친 몸이다. 이런 내가 소천겁 한 번 거치지 않은 너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지.”
그러자 성광하주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건우는 대천겁 세 번이란 말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천겁은 3천년에 한 번씩 겪고, 네 번의 소천겁 후에 대천겁 한 번을 겪는다.
그러니 대천겁 세 번을 겪자면 못해도 4만 5천 년을 살아야 한다.
그것도 천겁의 주기가 빠른 편인 인간의 경우에 그런 것이고 천겁 주기가 느린 몇몇 종족의 경우엔 수 십 만년을 살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보면 같은 화신기라도 성광하주가 건우를 후배 취급을 하거나 혹은 어린아이 취급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래 살아서 좋겠소.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건우가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라. 지금 네 녀석이 내 나이를 알게 되니 대놓고 반말은 하지 못하지 않느냐. 그것만 해도 의미가 없다 하진 못하지.”
“뭐, 솔직히 대천겁을 넘긴 선배라면 인정을 해 줘야하지 않겠소? 백에 한 명도 넘기 어렵다는 대천겁인데.”
“호호호. 하지만 영계에선 대천겁을 몇 번이나 넘긴 화신기 수사들이 제법 많다. 영계는 인계에 비해서 천겁을 넘기가 쉬운 편이지. 그래서 모두들 영계 비승을 바라는 것이 아니더냐.”
“그렇··· 습니까?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성광하주에게 말을 높이기로 했다.
대천겁 세 번을 넘긴 수사라면 그 정도 존중을 해 줄 수 있다고 마음속에서 타협을 본 것이다.
게다가 평소에는 듣기 어려운 영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으니 그 정도 대우야 해 줄 수 있었다.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그 사이에 처신을 바꾸다니.”
“싸울 때에는 다시 싸우더라도 그 전까지는 굳이 분위기를 망칠 이유가 없지요.”
“그것 참, 이상한 녀석이구나. 보통 수사들과는 달라.”
“그렇습니까?”
“그런데 내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음, 뭐가 궁금하십니까?”
“어찌 네가 그리 강력한 권능을 쓸 수 있는 것이냐? 딱 보아도 권능은 저 용의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네가 빌려 쓰는 것이 아니냐.”
“그것을 다 알아보셨습니까?”
“고작 인계의 수사 따위가 권능을 얻을 수는 없지. 그러니 권능을 쓸 방법이야 빌려 쓰는 수밖에 더 있겠느냐. 그런 방법이야 귀하긴 해도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아신다는데 숨길 것이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성해룡의 권능을 제가 빌려 쓰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런데 어찌 그리 강력하지? 나는 도무지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성광하주는 질문인 듯 아닌 듯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건우는 잠시 성광하주의 말이 이어지지 앉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강력한 권능을 쓰는 방법까지야 선배님께 알려드릴 수 없지요. 설마 그런 비법까지 시시콜콜 털어놓기를 기대하지는 않으시겠지요?”
“흥! 물론이다. 그저 놀랍다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선배님의 권능도 무서운 것이 아닙니까. 제 권능이 선배의 권능에 제대로 막혔는데 말입니다.”
“지금 너와 나를 비교하는 것이냐? 이곳이 영계라면 입령기(入靈期)에 오르고도 남았을 나다. 내가 인계의 제약으로 화신기에 머물러 있다고 네 놈이 나와 견주려 들어?”
“입령기라 하셨습니까?”
건우가 성광하주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화신기 수사가 영계에 올라 경지를 한 단계 더 올리면 그것이 입령이다.
그리고 그 후로 성령기를 거쳐 대령기에 이르면 선계로 오를 자격을 얻는다.
물론 대령기가 되어도 결국 선계에 오르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그 중에 극히 일부만 선계로 올라 불로불사의 존재가 된다.
건우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그런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성광하주가 스스로 입령기의 존재라 하는 것이다.
“흥, 이제 놀라느냐?”
“입령이란 경지에 대해 명칭만 들었을 뿐, 그 이상은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런 경지라 하시니 어찌 놀라지 않겠습니까?”
건우가 혀에 꿀을 바른 듯이 공손하게 말했다.
“수작 부릴 것 없다. 그래봐야 네 놈과 이리 실랑이를 벌이는 신세일 뿐인데. 나를 추켜세워 봐야 네 놈도 덩달아 올라가는 꼴이 아니냐. 제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이냐?”
“아, 아닙니다. 설마 그렇겠습니까?”
“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네 놈이 그리 강한 권능을 지녔으니 너와 싸워 봐야 내가 얻을 것이 뭐가 있겠느냐. 버릇을 고치려다가 오히려 나만 우스운 꼴이 되었구나.”
성광하주는 조금 맥이 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 되면 제가 사죄라도 청해야 하는 것입니까?”
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시끄럽다. 더는 방자하게 굴지 말거라. 너와 다퉈봐야 귀찮을 뿐이라 이리 넘어가는 것일 뿐, 내가 너를 아주 어쩌지 못할 것은 아니니.”
“음, 그렇습니까?”
성광하주의 노성에 건우의 표정이 진지하게 굳었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너그러운 처사에 감사드립니다.”
“흥, 약삭빠른 놈 같으니.”
“하하하.”
“명심하거라. 이곳 극광성은 성광하역의 모든 성광지력이 모이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그 성광지력 모두를 장악할 수 있다.”
“······.”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극광성 한정으로 이 몸의 능력은 영계의 입령기 수사에 뒤지지 않는다. 네 놈이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그거 약점 아닙니까? 말씀만 들으면 성 밖에서는 크게 힘을 쓰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만.”
“어차피 나는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니 상관없다. 그리고 굳이 밖으로 나서지 않아도 성광하역의 어디든 화신기 수준의 힘이야 얼마든 쓸 수 있고.”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극광성에 있는 이상 자신이 위험할 일은 없다는 자신감이다.
게다가 밖으로 나서지 않아도 화신기 수사 정도의 능력으로 성광하역을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건우는 다시 한 번 성광하주와 싸우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목적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선배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부탁이 있습니다.”
건우가 표정을 가다듬고 극광이 현란한 허공을 향해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네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겠지. 그래서 원하는 것이 뭐냐?”
“성광철입니다. 선배님께 그것을 구하고자 왔습니다.”
“으음, 성광철!”
건우의 말에 극광이 요란하게 출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