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성광하역(星光河域)으로 가다
“용랑과 혈원, 너희에게 사도천(死渡川)을 맡기마.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재료 준비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구도 주인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혈원, 사도천 구석구석을 살펴서 주인님께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겠습니다.”
“그래, 문제가 있으면 둘이 힘을 모아서 해결하고, 혹시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물러나 나를 기다려라.”
“네,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주인님.”
건우는 용랑과 혈원에게 당부를 마치고 부양도를 출발시켰다.
혈원이 만은사에서 성광철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건우가 그것을 얻기 위해서 길을 나서는 것이다.
이전 같으면 용랑과 혈원도 아공간에 함께 데리고 가면 그만이지만, 이제는 굴형문과 타형문을 비롯한 사도천 4대 수도문파가 있었다.
그것들을 그냥 방치하고 오래도록 자리를 비우긴 어려웠다.
그래서 영체기의 용랑과 혈원을 대리인으로 세워서 남겨 놓는 것이다.
용랑은 4대 수도문파를 부려서 건우에게 필요한 수련 자원들을 모을 것이고, 혈원은 그런 용랑을 도우면서 직접 자원 채취에 나설 것이다.
혈원은 문파 관리 같은 복잡한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에 직접 움직여 사냥을 하거나 자원 채취를 하는 것을 즐겨했다.
그래서 용랑에게 문파 관리를 맡기고 혈원은 그런 용랑을 돕도록 한 것이다.
* * *
건우는 부양도의 7층 건물 대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성해룡결공법(星蟹龍結功法)을 운용했다.
부양도는 건우가 정해 놓은 방향으로 쉬지 않고 날아가는 중이었다.
부양도 곳곳에는 성단기 급의 괴뢰들이 포진하고 있고, 영체기급 수사와도 공방을 벌일 수 있는 금제들이 겹겹이 깔려 있었다.
그러니 화신기 수사나 그에 준하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은 이상은 건우가 직접 나설 일은 없을 터였다.
그래서 공법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는 것이다.
아공간에 비하면 수련 성과가 낮지만 이동 중에는 아공간에 들어가 있을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무명의 공법이 성해룡의 기운을 품어서 성해룡결공법(星蟹龍結功法)이 되었다. 성해룡은 오랜 세월 별빛을 축적하여 용이 된 게(蟹)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방어력이 뛰어나다. 물리적인 방어력은 물론이고 별빛 덕분에 술법에 대한 방어력도 뛰어나지. 하지만 고작 그것으로 성해룡결공법의 가치를 논할 수는 없다.’
흑마원의 흑성성패력 공법이 혈원에게 이어졌다.
그리고 혈원의 흑성성패력 공법 역시 상대를 쇠약하게 만드는 권능이 있었다.
건우는 혈원의 흑성성패력 공법을 통해서 수사들이 다룰 수 있는 힘 중에 권능이 있음을 알아냈다.
건우도 지금에 와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는 것이지만, 이 대천세계의 수도계에는 수도계 존재들이 사용하는 힘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영기를 이용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수사들 모두가 바로 이 영기를 이용한 힘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경지가 올라가면 드디어 천지영기를 쓰게 되는데 이것은 영기의 확장형이다.
천지영기는 원래 일반적인 수사들은 감히 손댈 수 없는 것이지만 화신기 정도가 되면 강력한 의념과 영기에 적합하게 새로 바뀐 신체 덕으로 천지영기를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일반적인 영기를 사용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대한 위력을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영기나 천지영기를 사용하는 방법 중에 특별한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권능이다.
‘자신이 장악한 영역 안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힘을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권능이지. 흑성성패력 공법의 쇠약 능력도 권능이라 할 수 있는 거고.’
권능은 개체가 지니는 특별한 힘이다.
이것은 그만한 자격이 되는 존재에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으로, 그만한 자격이란 천지법칙이 인정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흑성성이 상대를 쇠약하게 만드는 권능을 가진 것은 천지법칙이 그 자격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럼 흑성성보다 격이 높은 성해룡에게 권능이 없을까?
당연히 성해룡에게도 권능이 있었다.
아니 애초에 건우가 익힌 무명 공법은 권능을 지닐 격이 없는 진혈이나 기운으로는 익히는 것이 불가능한 공법이었다.
당연히 성해룡도 권능이 있는데 건우가 권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건우는 부양도가 이동하는 동안에 그 문제를 풀어볼 요량이었다.
‘문제는 내가 온전한 성해룡이 되지 못하는 것에 있다. 권능은 나의 것이 아니라 성해룡의 것이라 내가 아닌 성해룡이 써야 한다.’
건우는 다행히 이미 원인을 파악하고 있었다.
흑마원이나 혈원이 흑성성패력 공법을 통해서 쇠약의 권능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흑성성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지법칙이 그들을 흑성성으로 인정하고 권능이 발현되도록 해 주었다.
하지만 건우는 아무리 성해룡결공법(星蟹龍結功法)을 끌어 올려도 온전한 성해룡이 되지 못했다.
그것이 건우가 성해룡의 권능을 쓰지 못하는 이유였다.
건우가 성해룡결공법을 궁구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인간인 건우는 온전한 성해룡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성해룡결공법은 애초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공법을 깊이 파고들다보면 반드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밖에서는 괴뢰들과 부양도의 공방결계가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에 대전에서는 건우의 고심이 깊어졌다.
* * *
“헉, 화, 화신기 선배님께서 오셨군.”
역간(域間) 전송진을 담당하는 관리 수사가 가부좌를 하고 수련을 하다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수사는 흐릿한 둔광만 남기고 수련동부에서 모습을 감췄다.
“어서 오십시오. 선배님.”
그리고 그가 나타난 곳은 전송진 앞이었다.
“네가 이곳의 담당자냐?”
급히 나와서 인사를 하는 영체기 중기의 수사에게 건우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선배님. 제가 이곳 성광하역(星光河域)의 전송진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망천유역(忘川流域)에서 온 건우라 한다.”
“후배가 어리석어 망천유역을 알지 못합니다. 송구합니다.‘
수사가 건우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망천유역을 모르니 건우 역시 모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곳 성광하(星光河)는 건우가 대천세계에 처음 떨어졌던 다도해역보다 작은 역이었다.
그런 곳에 있는 영체기 수사가 다른 역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되었다. 망천유역에서 이곳에 오려면 거쳐야 할 역이 세 곳이나 된다. 네가 그런 먼 곳의 역(域)까지 알 수는 없겠지.”
“송구스럽습니다.”
“내가 굳이 여기서 너를 기다린 것은 물어볼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문하십시오. 뭐든 알고 있는 것이라면 숨기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래야겠지.”
건우의 말에 영체기 수사가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혹시라도 이 화신기 수사가 깽판을 치기라도 하면 성광하역(星光河域)에 그것을 막을 수사는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한 명의 수사가 반드시 나서 준다는 보장도 없으니 어떻게든 노여움을 사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듣자니 이 성광하에 주인이 있다지?”
“네?”
“성광하주(星光河主)라 불린다던데?”
“그, 그렇습니다. 그런 분이 계십니다.”
“그래, 너도 아는 모양이구나?”
“네, 선배님. 성광하주님을 모르는 수사는 성광하역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민할 것이 없겠구나. 너는 나에게 그 성광하주가 있는 곳을 알려주면 된다.”
건우의 말에 수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건우가 묻는 성광하주의 거처는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성광하역 수사들 중에 그것을 모르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지상으로 올라가시면 별빛이 한 곳으로 모여드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으로 가시면 성광하주를 만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래? 그것 참 쉽구나. 그런데 내가 듣기로 이곳 성광하역에 있는 대부분의 수사들이 비슷한 공법을 익히고 있다지?”
“그렇습니다. 선배님.”
“그것이 성광지력, 즉 별빛의 힘을 쌓는 것이고?”
“네, 선배님.”
건우는 고분고분 대답하는 수사를 지그시 내려 보았다.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있어 자연스럽게 내려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우의 시선은 그 수사의 뒤통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곳.
수사의 몸에 흐르는 영기와 그 영기의 근원이 되는 영체를 보는 중이었다.
건우의 관찰 대상이 된 수사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를 해칠 생각은 없으니 가만히 있거라. 이곳 성광하역에서 익힌다는 공법이 궁금해 그러는 것이다.”
건우는 그렇게 수사를 진정시키고는 더욱 세밀하게 영기와 영체를 살폈다.
그리고 눈앞의 수사가 지닌 독특한 영기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좋구나!”
“네?”
건우의 말에 수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별의 빛에 대한 궁금증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너를 보니 성광하주를 만나면 내 궁금증이 풀리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 감축드립니다.”
“음, 어디 보자.”
건우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하다가 허공에 손을 저어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영체기 수사에게 내밀었다.
“받거라.”
“이, 이게······.”
“내 질문에 답을 해 준 대가다.”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건우가 내민 목곽을 받아들며 영체기 수사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건우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수사는 깜짝 놀라다가 슬그머니 손에 든 목곽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 별빛을 머금은 영단 하나가 들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꽤나 등급이 높은 영단이고 그 안에 담긴 성광이 꽤나 강력했다.
아마도 자신이 잘 흡수하면 한 단계 경지를 올려 영체기 후기에 닿을 수 있을 듯 싶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향해 길게 읍을 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 * *
“훗, 그래. 네가 그걸 얼마나 받아들이는지는 돌아가는 길에 확인 해 보겠다.”
전송진을 지키는 수사에게는 들리지 않을 혼잣말을 하며 건우가 피식 웃었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성해룡결공법(星蟹龍結功法)을 궁구하던 건우는 성광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그것을 아공간의 루야에게도 전했는데, 루야가 그것을 바탕으로 영단을 만들어 냈다.
건우가 던져 준 목곽 안의 영단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영단은 루야가 떠올린 비방으로 만들었고, 단 한 번도 직접 써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전송진의 영체기 수사는 루야가 만든 영단의 임상실험 대상이 되었다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루야의 실력을 생각하면 큰 부작용은 없겠지.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고. 역량이 부족하면 욕심도 부리지 말아야 하는 법이니까.”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새로 불러낸 부양도의 속도를 높였다.
부양도가 날아가는 하늘 위로 성광하역(星光河域)의 밤하늘이 찬란하게 펼쳐져 있었다.
다른 역들에 비해서 백 배는 많아 보이는 별들이 하늘에 가득했다.
별들이 그렇게 많기 때문에 유독 별빛이 풍부하고 또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공법이 발달한 성광하역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낮이 존재하지 않고 항상 밤만 존재하는 역이기도 했다.
“조금 서둘러 볼까?”
최대한 부양도의 속도를 높여 놓은 건우가 문득 중얼거리더니 대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러자 건우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번져 나왔다.
잠시 후, 그 빛은 조금씩 형체를 갖추더니 작은 구슬이 되었는데 그 구슬 안에는 용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건우가 그 구슬에 의념을 집중하자 구슬 안의 용이 눈빛을 빛내며 스스로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 빛은 7층 건물 밖으로 번져 나가더니 부양도 전체를 휘감았다.
꽈르르릉! 꽈르릉! 꽈릉! 꽈릉!
다음 순간, 부양도가 일곱 번에 걸쳐서 공간 이동을 했다.
한 번에 10만리, 일곱 번에 70만 리의 거리를 잠깐 사이에 이동한 것이다.
“좋군. 성해룡의 권능은 역시 활용할 데가 많아.”
건우가 대전 안에서 공간을 건너뛰는 부양도의 움직임을 살피며 무릎을 쳤다.
스스로 성해룡이 되기는 어려우니 결국 대체할 수단으로 만들어 낸 것이 구슬 속에 들어 있는 용이었다.
성해룡결공법으로 만들어낸 구슬은 그 자체로 용의 기운이나 다름이 없고, 그것으로 용의 형상을 빚었으니 그 용은 성해룡의 권능을 품었다.
당연히 그것에 의지를 부여하는 것은 건우였으니 건우의 뜻에 따라 성해룡의 권능이 움직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구슬 속의 용이 미약해서 권능 역시 부족하다는 점이지만 그것은 건우의 성해룡결공법의 수련 경지가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문제였다.
“성해룡의 권능이 공간을 다루는 것이라 나와는 상성이 아주 잘 맞지.”
성광하역으로 오는 긴 시간동안 적잖은 성과가 있었다.
이제는 어떤 화신기 수사를 만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우였다.
그래서 성광하주를 만나러 가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성광하주! 망천유역에서 온 건우라 하오이다. 그대에게 볼 일이 있으니 길을 열어주시오.”
성광하주의 거처에 도착한 후, 건우가 이렇게 당당하게 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그런 자신감 덕분이었다.
성광하역의 모든 별빛이 모여서 쏟아지는 곳.
그 별빛이 극광(極光)의 장막을 겹겹이 드리워 벽을 쌓은 곳에 이른 건우가 그렇게 성광하주를 찾았다.
“혈기 넘치는 후배가 찾아 온 모양이구나. 그 용기가 가상하니 어디 얼굴이나 보자꾸나.”
건우의 외침에 빛이 너울거리는 장벽 안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건우는 히죽 웃으며 때마침 갈라져 길을 만드는 빛의 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