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응, 너희는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의 제물이야
“이보시오 수사. 우리가 잘못했소이다.”
“그렇소. 정말 잘못했소이다. 어찌 우리가 살아날 길이 없겠소?”
건우의 물음에 굴형과 타형이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하는 목소리를 냈다.
건우는 그런 두 삼목족 수사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리고 천라패갑방패 안에 들어 있는 검선의 유산을 살폈다.
‘당장 한 번 정도는 쓸 수 있겠군.’
어찌어찌 그 정도 여유는 생긴 것 같았다.
그렇다면 삼목족 수사 둘을 두려워 할 이유는 없어졌다.
그런 사실을 확인한 건우의 머리가 영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살려달라고? 너희가 이유도 없이 나를 잡아 죽이고 영체까지 먹어치우려 해 놓고?”
“수, 수사. 수사가 우리를 죽여 봐야 얻을 것이 뭐가 있겠소. 고작해야 우리들이 가진 공간낭이 전부 아니겠소. 여기 내 공간낭을 드리리다. 그리고 우리 굴형문의 모든 것을 내어 드리겠소.”
“나 또한 마찬가지요. 여기 내 공간낭이 있소. 그리고 내가 세운 타형문 역시 수사의 뜻대로 하시오.”
굴형과 타형이 스스로 공간낭을 건우에게 날려 보내며 애원했다.
건우는 그 모습에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차피 이들을 죽이고, 이들의 죄를 근거로 삼목족 넷이 세운 수도 문파를 모두 차지할 생각이었다.
화신기 수사가 세우고 번성시킨 네 개의 수도문파라면 건우의 뒷바라지를 하는데 제법 쓸모가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 굴형과 타형이란 놈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파를 들어 바치겠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를 죽인 후에 차지해도 될 문파들이다. 그것들을 차지하는데 굳이 너희가 필요할 거 같으냐?”
“수사,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의 제자들은 모두 우리의 금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으면 제자들 역시 적잖은 수련상의 피해를 입게 됩니다.”
“맞습니다. 일꾼을 써도 제대로 된 것들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굴형과 타형이 다시 한 번 건우를 향해서 자신들이 필요한 이유를 떠들었다.
건우는 살짝 마음이 동한 듯 턱을 쓰다듬으며 뜸을 들였다.
그러다가 뭔가 결심을 한 듯이 두 삼목족 수사를 보며 말했다.
“좋다. 너희가 정말로 그런 마음이라면 기회를 주도록 하마.”
“저, 정말입니까?”
“고, 고맙습니다 수사.”
건우의 말에 굴형과 타형이 죽다 살아난 듯이 몇 번이나 건우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그냥 살려줄 수는 없다. 그건 너희도 이해를 하겠지?”
건우가 그런 둘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두 삼목족 수사는 이미 각오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죽는 것 보다는 살아서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생각만 가득한 두 삼목족이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한다면 기회는 올 것이다.
정 안 된다면 눈앞의 수사가 영계 비승을 할 때까지 버티면 된다.
영계로 비승한 후에야 인계에 남은 자신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고로 수도계의 역사를 보면 그런 식으로 금제에서 벗어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처하는 수사들의 마지막 탈출구이기도 했다.
“좋다. 그럼 망설일 것 없겠지.”
건우는 두 삼목족 수사의 대답을 듣자마자 그렇게 말을 하고는 부양도의 7층 건물을 향해 손바닥을 뒤집었다.
그러자 건물 안에서 수 백 개의 괴뢰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건물 앞마당에 진법을 그리기 시작했다.
건우는 빠르게 새겨지는 진법을 표정 없는 얼굴로 무심히 지켜봤다.
하지만 굴형과 타형은 진법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괴뢰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뇌리에 새겨 넣고 있었다.
지금 만들어지는 것이 그들에게 걸릴 금제와 연관된 진법일 텐데, 그것을 소홀히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건우는 그런 두 삼목족 수사의 모습을 보면서도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몇 시간 후, 드디어 부양도 위에 거대한 진법이 완성되었다.
굴형과 타형은 처음부터 지켜봤지만 도무지 그 진법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다.
“자, 너희는 저곳과 저곳에 각각 자리를 잡고 서거라.”
건우가 두 삼목족 수사에게 진법에 위치할 자리를 정해 주었다.
굴형과 타형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일임을 깨닫고 건우가 가리키는 자리에 가서 섰다.
그러자 건우가 다시 손바닥을 뒤집어 여덟 개의 검은 뼈를 소환했다.
그 중에 하나는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바로 그 뼈였다.
건우는 그 여덟 개의 뼈를 허공에 던져 진법 곳곳으로 날려 꽂아 넣었다.
그러자 곧바로 진법에 강대한 마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건우가 두 수사에게 물었다.
“너희는 금제를 받아들이겠느냐?”
“그, 그렇습니다.”
“바, 받아들이겠습니다.”
건우의 물음에 두 수사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스스로 영체의 일부로 진법에 각인을 하거라.”
건우의 말은 영체의 기운을 써서 스스로 진법을 받아들이라는 뜻이었다.
두 수사는 그 말을 알아듣고 잠시 머뭇거렸다.
“싫다는 것이냐?”
그런 두 수사에게 묻는 건우의 목소리가 싸늘했다.
그리고 그런 건우의 머리 위로 황금색의 삿갓 형상이 떠올랐다.
두 삼목족 수사는 그 삿갓 형상이 보이면 곧바로 날아들던 손잡이 없는 검을 떠올리고 다급하게 외쳤다.
“아닙니다. 지금 하겠습니다.”
“하, 하고 있습니다.”
건우의 위협에 굴형과 타형이 다급하게 영체를 움직여 진법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슷!
“어?”
“이, 이게 뭡니까?”
그리고 그 순간 타형과 굴형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진법을 받아들이고 보니 그 진법이 금제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던 것이다.
“보면 알 일이다.”
건우는 둘의 물음에 냉정하게 대답하고 또 다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여덟 개의 면이 있는 기둥 모양 검은 상자였다.
굴형과 타형은 그 기둥의 여덟 면 중에 네 곳에 새겨져 있는 마귀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마, 마귀상?”
“서, 설마?”
그들은 마귀와 연관된 공법을 수련하여 화신기에 이른 이들이었다.
당연히 마귀와 얽힌 것이 길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급히 진법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스스로 진법을 받아들인 터라 쉽게 진법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건우가 그런 시간을 줄 이유는 없었다.
“이것은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이라 한다.”
“마귀팔면호령? 그 호신부(護身符)?”
“마귀의 힘을 빌려 위기를 막는다는 그것을 어찌?”
건우의 말에 굴형과 타형이 마귀팔면호령의 정체를 알아들었다.
그들 역시 마귀와 깊은 관계가 있었기에 마귀팔면호령이라는 귀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근자에 이것에 대해서 조금 연구를 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우가 먹물을 굳힌 것 같은 마귀팔면호령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에 있는 여덟 개의 마귀상은 사실 한 마귀의 힘을 여덟으로 나눠 놓은 것이지. 그 나누어진 힘으로 소유자에게 닥친 위험을 막아주는 것이다.”
“그,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는 그것을 처음 봅니다.”
건우의 말에 굴형과 타형이 비굴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어떻게든 건우의 비위를 맞추려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내가 한 번 이것의 도움을 받았는데 한 번에 네 개의 마귀상이 쓰이고 말았지.”
과거 종 선생의 석상괴뢰인 굴과 갱에게 물어뜯긴 네 개의 마귀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굴형과 타형은 조용히 건우의 말을 들으며 침을 삼키고 있었다.
“어쨌건 그렇게 한 번, 크게 덕을 보고 나니 이게 쓸모가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보는 것처럼 네 면의 마귀상이 비어있지.”
“그럼, 이제 그 빈 곳을 채우려는 것입니까?”
굴형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그래, 그렇지. 내가 이곳 사도천에 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가 컸다. 그런데 네 굴형문의 장로란 놈이 내 일을 망치려 했지.”
건우가 진법에 박혀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 뼈들 중에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당장 그 놈의 목을 치겠습니다.”
굴형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건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지금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지.”
“그, 그렇습니까.”
“어쨌거나 너희가 알기는 해야 하는 일이니 마저 이야기를 해 주마.”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 귀물(鬼物)은 마귀와의 계약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묶인 진법은 바로 그 계약을 위한 진법이지.”
“마귀와의 계약진?”
“서, 설마?”
건우의 말에 굴형과 타형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 마귀팔면호령에 새로운 마귀의 상을 새기려면 마귀를 불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 마귀에게 부탁을 하려면 마땅히 대가를 줘야 하지. 혹여 그것을 모르고 그냥 마귀를 불러냈다가는 소환한 자가 마귀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
“그, 그런! 그렇다면?”
“우, 우리가 제물이란 말이오?!”
굴형과 타형이 건우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일그러진 얼굴로 건우를 노려봤다.
“내가 보기에 지금 이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에 깃든 힘은 고작해야 화신기급 공격을 한두 번 막을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정도라면 영체기급 제물 정도면 가능할 것 같고.”
“그런데 왜 우릴!”
“······.”
“당연히 좋은 제물을 준비할수록 강력한 마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 게다가 앞으로 내가 상대해야 할 적들을 생각하면 고작 화신기급 공격 한 두 번을 막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 정도는 내가 해도 될 일인데.”
“화신기급을 넘어서는 공격, 그래서 수사가 방어할 수 없는 위기를 막을 준비로 그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을 쓰겠다는 소리군. 그걸 위해서 우리를 제물로 쓰는 거고.”
굴형이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타형은 어떻게든 진법을 벗어나려 버둥거리고 있지만 소득 없이 힘만 쓰고 있을 뿐이다.
“알았으면 이만 포기하거라. 이 모든 것이 너희가 자초한 것이니 나를 원망할 것도 없고.”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를 허공을 던져 올렸다.
그러자 굴형과 타형을 묶고 있던 진법에서 마기가 솟구쳐 올라 마귀팔면호령으로 흡수되는가 싶더니 다시 마귀팔면호령에서 하늘로 검은 빛을 쏘아냈다.
쏘아진 빛은 하늘로 올라가다 뭔가에 막힌 듯이 머뭇거리다가 넓게 퍼지며 하늘에 구멍을 만들었다.
노오오오오오오오!
구멍에서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먹처럼 검은 연기가 가득한 구멍 속.
건우는 그 안에 여러 존재들이 뒤엉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 중에 하나가 건우의 마귀팔면호령으로 뭔가를 쏘아 보냈다.
그리고 그 순간 마귀팔면호령의 비어 있던 네 면에 마귀상이 다시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귀팔면호령이 이전처럼 다시 복원이 된 것이다.
하지만 건우는 그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고작 그 정도로? 어림도 없다.”
건우가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을 튕겨 진법에 영기를 쏘아 넣었다.
그러자 진법에서 구멍 쪽으로 흘러가던 기운이 덜컥 막혀 버렸다.
노오오오오! 롸롸롸!
그에 반응하듯 구멍 안에서 감당할 수 없는 괴상한 굉음이 건우를 향해 쏟아졌다.
건우는 슬쩍 천라패갑방패를 끌어 올려 자신을 보호했다.
그러자 구멍에서 날아온 기운이 방패에 막혀서 흩어졌다.
“고작 그 정도로? 꺼져라!”
건우가 다시 구멍을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뭔가 구멍 안에서 섬뜩한 느낌이 흘렀다.
그리고 건우와 실랑이를 하던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콰지지지지지직!
그리고 다음 순간 검은 구멍에서 검붉은 선이 번개처럼 내리쳐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을 파고들었다.
파지지지지지지직!
그리고 그 순간 이전에 새겨져 있던 마귀들의 얼굴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형상이 새겨졌다.
그 새로운 형상은 보는 것만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마귀의 얼굴이었는데 부리부리한 두 눈으로 건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사, 살려······.”
다음 순간 건우가 제대로 반응을 하기도 전에 타형과 굴형이 목내이(木乃伊:미라)처럼 말라가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바닥에 새겼던 진법이 요동치더니 하늘에 난 검은 구멍으로 후루룩 말려들어가 버렸다.
두 삼목족 수사 역시 진법과 함께 구멍으로 빨려들어 사라졌다.
“쯧, 손해를 본 건 아닌지 모르겠군.”
건우가 진법이 사라지고도 허공에 남아 있는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를 영기로 끌어 오며 혀를 찼다.
그리고 당겨온 마귀파면호령의 마귀상을 노려봤다.
“만약에 이번 거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젠가 너를 찾아가 그 목에 개 줄을 채워 줄 것이다.”
즈이이이이이잉!
건우의 말에 마귀팔면호령의 여덟 면을 장식한 마귀상들이 일제히 불길한 소리를 내며 눈을 부라렸다.
“화신기 수사 둘이라. 기대가 되는군.”
그러거나 말거는 건우는 제 할 말을 하고는 마귀팔면호령을 소매에 밀어 넣었다.
이제 건우가 막지 못하는 위험이 닥치면 이 마귀팔면호령이 그 위기를 대신 받아 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남은 것은 멍청한 사조를 둔 죄 많은 문파들에 대한 처분인가?”
건우가 몸을 훌쩍 달려 굴형문의 상공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 순간 굴형문 전체가 건우의 의념에 장악되어 제자들 모두가 꼼짝도 못하고 굳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