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잡았다 요놈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곱게 죽어 줄 수야 없겠지.”
굴형과 또 다른 삼목족 수사가 결의를 다지며 영기를 끌어 모았다.
건우도 그런 두 삼목족을 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처음부터 네 명의 화신기 수사와 정면 승부를 할 생각은 없었다.
사도천에 들어와 상황을 살피다가 우연히 사도천에 있는 거대 수도 문파 네 곳의 화신기 수사들이 모두 삼목족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 뒤에는 그들 넷이 다른 화신기 수사를 협공해서 죽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건우는 처음에는 설마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만은사(萬隱絲)에 떠도는 이야기들 중에도 그런 정황을 의심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구해 볼까 했지만 만은사에게 요구하는 비용이 너무 컸다.
자그마치 화신기 수사 넷과 연관된 정보라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은사에서 정보를 얻는 것은 포기했다.
다만 네 삼목족 화신기 수사에 대한 소문을 일단 사실로 간주하고 조심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건우가 사도천에 들어와 설치해 놓았던 마기 수집진 중에 하나가 박살나는 일이 벌어졌다.
마기를 품은 재료가 필요해서 심혈을 기울여 진법을 설치하고 고계 마수의 뼈를 축으로 삼았다.
그런 진법 여덟 개를 사도천 곳곳에 설치하고 괴뢰로 하여금 그것을 관리하도록 했다.
물론 그 진법들은 모두 특정 세력과는 상관없는 곳에 설치해서 시비가 붙을 일도 피했다.
그런데 건우가 진법을 펼쳐 두고 아공간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고 나와 보니 진법 하나가 박살이 나 있었던 것이다.
건우는 당장 진법을 부수고 마수의 뼈를 훔쳐 간 도둑놈들을 추적했다.
그리고 그것이 굴형문 영체기 장로의 짓임을 알아냈다.
여기서 건우는 잠시 고민을 했다.
굴형문에는 화신기의 개파 조사가 있었다.
물론 단지 굴형문의 화신기 수사 하나만 상대한다면 고민할 것이 없었다.
진염결로 강해진 의식의 힘이라면 고작 화신기 수사 하나 정도는 어떻게든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소문처럼 굴형문의 화신기 수사와 다른 세 문파의 화신기 수사가 동맹을 맺고 있다면 그들 넷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할 수도 있었다.
사도천은 그들의 앞마당이니 한 번에 공간 이동을 해 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
게다가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전신부 따위는 없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일이다.
그러니 굴형을 건드리면 다른 세 문파의 화신기 수사들이 달려올 것도 고려해야 했다.
결코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란 뜻이었다.
하지만 짧은 고민 끝에 건우는 싸움을 결정했다.
어차피 상황이 다급하면 아공간으로 숨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건우에게는 검선의 유산이 있었다.
이전 영체기의 흑마원과 태솔진을 상대한 결과를 생각하면 검선의 유산은 화신기 수사에게도 효과가 있을 듯 했다.
그게 통하지 않으면 몸을 숨기고 하나씩 각개 격파를 하면 될 일.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아공간의 힘을 빌리면 방법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건우가 용감하게 네 명의 화신기 수사와 싸움을 벌이게 된 배경이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기습을 통해서 두 명의 화신기 수사를 격살하는데 성공했다.
검선의 유산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그 결과 이제 남은 것은 둘.
그것도 내상을 입혀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건우도 한동안 검선의 유산은 사용 불가였다.
건우가 화신기에 오르면서 검선의 유산을 더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연속으로 쓰면 고작해야 예닐곱 번 정도인데, 그 기회는 이미 다 썼다고 봐야 했다.
그래도 두 명의 화신기 수사를 잡아냈으니 예상보다 좋은 결과였다.
“화신기 둘과 정면 승부라! 어디 내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을 해 보자꾸나.”
결의를 다지는 두 명의 삼목족 수사를 보며 건우 역시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아공간에서 금속 봉을 꺼내 들었다.
동시에 나오금강체술을 끌어 올리자 건우의 외모가 길우몽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연체술?”
“설마 의념 공법과 연체술 모두를 화신기 수준으로 익혀 냈다고?”
삼목족 수사들이 건우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여유들이 넘치는구나. 생사결 중에 딴 생각을 하다니!”
길우몽의 모습이 된 건우가 금속 봉을 붕붕 휘두르며 두 삼목족 수사를 위협했다.
그런 길우몽의 모습은 과거와 조금 달라져 있었는데, 가장 큰 특징은 흑금색의 피부에 나 있는 비늘이었다.
건우가 용의 기운을 받아들여 성해룡결공법(星蟹龍結功法)을 익히고 화신기가 되면서 나오금강체술에도 그 영향을 끼쳤다.
용의 기운은 나오금강체술까지 화신기로 끌어 올렸고, 그 흔적으로 용린(龍鱗)과 용조(龍爪)를 남겼다.
길우몽의 몸에 드러난 비늘이 바로 그 용린(龍鱗)이었다.
건우도 용린의 성능을 제대로 시험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 놈이 더는 아까의 그 검을 쓰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이 틈에 잡아 죽입시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저 놈을 겁낼 이유가 없습니다.”
굴형과 다른 한 명의 삼목족 수사가 그리 의논을 하고는 각각 마기가 가득한 뼈와 망혼들을 불러내어 건우에게 날려 보냈다.
마기를 품은 뼈들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모두 꺾이고 부러진 뼈들은 날카로운 단면마다 흉흉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뼈들에는 모두 하나 이상의 망혼들이 들러붙어 있었는데 입을 벌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망혼들의 입에서 나오는 음파(音波)는 그것이 닿는 곳을 먼지로 만들고 있었다.
두 삼목족 수사의 공격에 건우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곧바로 본명법보를 끌어 올렸다.
황금색의 삿갓 조개가 화려하게 떠올라 길우몽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조심해라! 저것이 번쩍일 때에 그 검이 나타났다.”
굴형이 그 모습에 바짝 긴장하며 동족에게 경고를 날렸다.
굴형의 말이 아니어도 이미 그 삼목족 수사 역시 수십 겹의 골벽을 펼쳐 자신을 보호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검선의 유산을 다시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천라패갑방패는 단지 방어력을 더하기 위해 불러온 것일 뿐인데 삼목족 수사들이 오해를 한 것이다.
“고작 이런 공격으로 나에게 충격을 줄 수 있을 거 같으냐?”
건우는 마기를 품은 부러진 뼈들과 망혼의 음파 공격에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사납게 금속 봉을 휘둘러 두 삼목족 수사를 공격했다.
동시에 길우몽의 체격은 점점 커져서 백여 미터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이전과 달리 지금 건우의 몸은 화신이라 거체화(巨體化)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게다가 건우가 휘두르는 금속 봉도 몇 번의 개량을 거쳐서 단단하기로 따지면 인계에선 적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 있었다.
건우도 개량을 마치고는 물리적인 힘이라면 인계의 그 무엇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했을 정도였다.
후우우웅! 훙훙훙훙!
타다다다닥! 콰지직! 콰드득!
건우는 봉을 돌려 날아오는 뼈들을 막아내고, 몇 걸음 내디디며 삼목족 수사들에게 거침없이 봉을 휘둘렀다.
삼목족 수사들은 거대해진 건우의 봉을 제각각 골벽을 이용해서 막아 냈는데 한 번 봉에 맞을 때마다 서너 겹의 골벽이 박살났다.
하지만 그렇게 부서진 뼈의 벽들은 곧바로 다시 재생이 되어서 건우의 공격이 큰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물론 삼목족의 공격 역시 건우에게 아무 상처도 주지 못했다.
물리적인 충격은 화신기에 이른 연체술을 뚫지 못했고, 망혼의 음파 공격은 천라패갑방패에 흡수되어 아무 힘도 쓰지 못했다.
삼목족의 두 수사도 그런 상황을 보고 놀라는 중이었다.
물리적인 공격과 마기를 이용한 속성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꽤나 단단한 몸뚱이입니다. 굴형 수사, 이렇게 되면 그것을 쓰십시다.]
[그것이라니 설마?]
[설마는 무슨 설마랍니까? 살아남으려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지요.]
[끄응, 그 말이 옳소이다. 이미 둘이 죽은 마당에 무엇을 망설인단 말입니까.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굴형은 동족과 의념으로 대화를 나누고는 마지막 수단을 동원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서로 눈빛을 맞추더니 갑자기 제 손으로 제 가운데 눈동자를 뽑아냈다.
“크으.”
“끄응.”
굴형이 스스로 눈동자 하나를 뽑았을 때, 다른 삼목족 수사 역시 굴형과 마찬가지로 눈동자 하나를 뽑아냈다.
그리고 둘은 그것을 제 손을 터트리며 술법 하나를 전개했다.
“나와라! 마귀차수(魔鬼叉獸)!”
“크하하하. 나오너라, 마령차수(魔靈叉獸)!”
굴형과 다른 삼목족 수사는 각각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을 불러냈다.
건우는 그들이 무엇을 부르든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으리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봉을 휘두르며 달려들어 둘의 술법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술법의 발현은 생각보다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의 부름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그들의 앞에 뭔가가 부풀어 올랐다.
건우는 그것을 향해 금속 봉을 휘둘렀는데, 짧은 순간에 덩치를 커다랗게 부풀린 그것이 건우의 금속 봉을 쳐 냈다.
까가강! 쿠르르르릉!
거대한 금속 봉을 앞발로 쳐 낸 것은 마귀의 얼굴을 달고 있는 두 마리 기괴한 짐승이었다.
한 마리는 근육이 거창했고, 한 마리는 얼굴을 뺀 나머지가 망혼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귀?”
건우가 그 모습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길우몽의 하회탈 얼굴이 보기 싫을 정도로 구겨졌다.
크와왕! 크롸롸롸뢍!
건우가 그 마귀의 얼굴에 깜짝 놀란 그 순간 두 마리의 마귀 짐승이 건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길우몽의 목에 이빨을 들이대는 두 마리의 짐승.
길우몽이 와락 인상을 쓰며 급히 한쪽은 금속 봉으로 다른 쪽은 맨 손을 내밀어 짐승을 막아갔다.
까강, 콰드득!
크롸뢍! 크왕!
“저, 저게 어떻게!”
“매, 맨 손으로 마령차수의 이빨을 막았다고?”
굴형과 다른 삼목족 수사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희생해서 불러낸 짐승들을 믿고 있었다.
한 마리면 몰라도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화신기 수사는 거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수사는 한 마리의 짐승은 봉으로 막았지만 다른 쪽은 맨 손으로 막아냈다.
마귀의 얼굴을 한 짐승이 앞으로 내밀어진 수사의 손을 거침없이 씹었다.
그런데 막상 짐승의 이빨이 그 손에 상처를 주지 못했다.
크롸롸롸뢍! 끼이이잉!
도리어 맨 손을 물었던 짐승이 앓는 소리를 내며 손을 놓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어라? 이거 생각보다 강한데?”
그 모습에 놀란 것은 삼목족 수사들뿐만이 아니었다.
건우 역시 새삼스런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고 있었다.
용린이 촘촘히 덮여 있는 길우몽의 손, 그 손가락 끝에 용의 손톱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물러나는 마귀짐승의 입에서 피가 흐르는 것은 바로 그 용의 손톱에 상처를 입은 탓이 분명했다.
“좋은데? 이거 생각보다 방어력이 뛰어나.”
길우몽의 얼굴이 활짝 피며 하회탈 얼굴이 밝게 웃었다.
“새끼들! 다 죽었어!”
건우가 금속 봉을 아공간에 던져 넣고 곧바로 두 짐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두 마귀 짐승 역시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이 마주 달려들었다.
크롸뢍! 크와와와왕!
“죽어! 죽어! 죽어라 똥개 새끼들!”
퍼벅! 퍼벅! 콰득! 콰드득!
“간지럽다 이것들아!”
크왕! 크르르륵! 크르르릉! 캥!
“저, 저게 무슨?”
“여, 연체술사가 마귀, 마령차수와 육박전을 할 수도 있는 것이었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어찌 차수를 맨 몸으로 상대한단 말이오? 내 지금까지 그런 연체술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소.”
“하지만 지금 눈앞에 그런 놈이 있지 않소!”
“이거 어쩌면 좋습니까? 마령차수를 불러낸 덕분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탠데 말입니다.”
“저 차수(叉獸)들이 실패하면 그 때는 우리 역시 죽은 목숨이라 봐야지요. 이미 중앙목(中央目)을 희생했으니 마땅히 남은 수단도 없고.”
“하지만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
“이미 최후의 수단을 썼는데 또 무슨 방법이랍니까?”
“영체를 폭발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저 놈을······.”
“하고 싶으면 하십시오. 누가 말린답니까?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혹시 압니까? 굴형 수사가 죽고 나 하나만 남으면 어쩌면 살 길이 생길지 말입니다.”
“이보시오! 타형(拖刑) 수사!”
굴형이 다른 삼목족 수사인 타형에게 고함을 지르며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승산이 없지 않소. 도망갈 길도 없고.”
“끄응, 그래서 목숨을 구걸해 보겠다는 말이오?”
“쓸모를 보여 목숨을 부지하면 후일을 기약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대로 끝이 되는 거요.”
“그것 참, 허허허허허.”
굴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갑작스럽게 두 마리의 짐승이 건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가까이 달려든 순간 두 마리 짐승의 몸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피해를 주지 못하자 몸을 터트려 마지막 공격을 한 것이다.
“본신이 아닌 허상이 소환되었다고 이런 식으로 자폭을 하는 건 반칙인데?”
하지만 폭발이 지나간 후, 길우몽의 모습을 한 건우는 멀쩡한 모습으로 옷을 털어 짐승의 흔적을 털어냈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나자 훌쩍 몸을 날려 두 삼목족 수사의 앞에 내려섰다.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하며 길우몽은 100미터 크기의 거체에서 2미터도 되지 않은 건우의 본모습으로 변했다.
나오금강체술을 어느 정도 풀어 버리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래서? 할 짓은 다 한 거야?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지?”
건우가 굴형과 타형을 보며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