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화신기 건우와 꿈틀거리는 십이비선의 유산
“혈원이 드디어 영체기를 이뤘군.”
- 건우 님이 수련 공법을 내려 주시고 거기에 흑성성의 진혈을 모두 주셨기 때문이죠. 진혈은 아직도 많이 남았으니 영체기 중기나 후기까지는 금방일 거예요.
“용랑도 영체기에 올랐고.”
- 용랑은 진혈의 도움이 없었는데도 용의 영체를 살핀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죠. 그러고 보면 이번 용해천(龍骸川)의 원정은 정말 얻은 것이 많았어요.
“그래, 나도 덕분에 새롭게 성해룡결공법(星蟹龍結功法)을 익히고 화신기에 올랐으니 득이 컸던 원정인 것은 확실하지.”
- 정말 축하드려요. 결국 화신기를 이루셨어요.
“이제는 용해천(龍骸川)을 떠날 때도 된 것이지.”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다.
태솔진을 죽이고 용의 영체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용의 영체를 흡수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흑마원이 가지고 있던 흑성성패력 공법이 답이었던 것이다.
원래 흑마원이 가진 공법은 이름이 없었다.
흑마원의 공법이 흑성성패력 공법이 된 것은 그 공법을 익히면서 흑성성의 진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흑마원이 가지고 있던 공법은 고계의 신수나 성수, 영수 따위의 진혈(眞血) 혹은 진기(眞氣)를 흡수하여 힘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시작을 어떤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그 공법의 위력과 내용이 달라지는 종류였다.
흑마원은 운 좋게 흑성성이라는 태고 마수의 피를 얻어 그 공법을 수련했고, 덕분에 흑성성패력 공법을 얻었다.
하지만 건우는 흑성성의 진혈을 모두 혈원에게 주고 자신은 용의 영체를 사용해서 그 공법을 수련했다.
정확히는 용의 영체에 포함된 용의 진정한 기운, 즉 용의 진기(眞氣)를 사용했다는 말이다.
게다가 건우가 익힌 공법은 흑마원의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뛰어난 것이었다.
건우는 흑마원의 수련 공법에 자신이 이전 낙생역(落生域)에서 얻은 마수 수련 공법을 합쳤다.
흑마원이 그렇게 욕심을 냈던 마수 수련 공법.
그것은 흑마원이 가지고 있던 이름 없는 수련 공법의 일부가 분명했다.
둘을 합치자 그 공법으로 진혈이나 기운을 흡수하는 효율이 배로 늘어나고, 공법 자체의 힘도 훨씬 증가했다.
“성해룡결공법(星蟹龍結功法)은 화신기를 넘어 영계 비승 후에도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 있는 엄청난 공법이지. 게다가 아직 남은 조각들이 더 있을 거 같으니 그것들을 얻는다면 더욱 뛰어난 공법이 될 것이고.”
- 성해룡결공법(星蟹龍結功法). 이름이 이상해요.
“별의 기운을 수련해서 용이 된 게가 성해룡이다. 해(蟹)가 게를 뜻하는 것이지. 이번에 얻었던 영체의 주인이 바로 그 성해룡이고.”
- 그런 용이 영계에서 떨어졌다니 신기하네요.
“그래, 나도 영계의 존재가 인계로 떨어진 것이 이상하긴 하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인계에 영계의 보물들이 나도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지.”
- 아무튼, 축하드려요. 그래서 이제는 수미산겨자씨로 들어가실 건가요? 거기서도 화신기를 이뤄야 하잖아요.
“당장은 아니지. 아무래도 이제는 원래 육신이 완전히 사라지고 영기로 육체를 다시 재구성한 상황이라 조금 긴 안정기가 필요하니까.”
건우는 용의 영체를 흡수하고 화신기에 올랐다.
화신기는 영체기와 달리 원래 가지고 있던 육체가 완전히 사라진다.
대신에 영기를 이용해서 새로운 육체를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화신(化身)이다.
이로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태생의 몸은 드디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데, 그로 인해서 천지의 정상적인 법칙에서도 온전히 벗어나게 된다.
영체를 만들면서 역천의 존재가 되었던 수사가, 이제는 순천의 껍데기까지 완전히 벗어 버린 것이다.
당연히 태어날 때부터 가진 육체의 제약을 벗고 영기로 육체를 구성했기에 영기를 느끼고 다루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화신기가 되면서 일반적인 영기가 아니라 그 근원이랄 수 있는 천지영기를 약간이나마 다룰 수 있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어쨌건 건우도 화신기가 되면서 새롭게 영기로 육체를 재구성했고, 지금은 그것을 안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 그렇군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다시 망천유역(忘川流域)으로 나가실 건가요?
“용해천에서 볼 일이 없으니 나가 봐야겠지. 그리고 이제는 십이비선의 유산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 봐야 할 때가 되었고.”
- 십이비선의 유산이요? 건우 님이 가지고 계신 검선의 유산 말고 다른 것들 말씀인가요?
“그래, 지금까지 여러 수사들이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뭘까?”
- 그야 십이비선의 유산이 영계로 가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그걸 위해서는 반드시 열두 개의 유산이 다 모여야 해.”
- 그렇죠.
“지금까지는 열두 유산을 다 모아봐야 내겐 별 의미가 없었지. 화신기가 아니면 영계로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굳이 검선의 유산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지.”
- 그런데 이제 화신기가 되셨으니 그 열두 유산을 통해서 영계로 올라가실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그러니 나도 이제부터 십이비선의 유산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 봐야지.”
- 와아, 그럼 유산을 노리고 덤벼드는 놈들이 많겠죠? 재미있겠네요. 이젠 어지간해선 건우 님이 몽땅 쓸어버릴 수 있겠죠? 갑자기 그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요. 헤헤헤.
“화신기 수사를 상대로 필승을 장담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이전처럼 마냥 두려워해서 피할 이유는 없을 게다.”
- 에헤헤, 정말 멋져요. 이젠 인계 최강 이잖아요. 정말 축하 드려요.
“그래봐야 네 말대로 인계(人界) 한정이지. 영계(靈界)로 올라가면 더 높은 경지의 수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
- 뭐, 그 때는 또 그 때 상황 봐서 대처를 해야죠.
“그래, 일단 나가보자. 부양도에 탑탑 놈의 전송진을 옮겨 뒀으니 그걸 타면 용해천을 벗어나는 것은 일도 아니지. 탑탑 놈이 전송진에 몇 곳의 이동 지점을 설정해 둔 것도 있고.”
- 정말 기대 되요. 건우 님, 목에 힘 팍! 주세요! 어깨도 쫘악 펴시고! 으헤헤헤.
루야는 이제 건우가 어디 가서 꿇릴 일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되는 듯이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용해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척 기대 되는 듯 흥분했다.
* * *
운해가 가득한 산봉우리 위의 팔각정자.
그 안에 석탁을 마주하고 두 명의 수사가 찻잔을 나누고 있었다.
“어찌 소식은 좀 알아 보셨습니까?”
두 수사 중에 붉은 승복을 입은 푸짐한 체격의 화상(和尙) 수사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건너편 수사에게 물었다.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3백 년 전에 망천유역(忘川流域)의 어딘가에서 검선의 유산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만 확실할 뿐, 그 이후엔 진전이 없습니다.”
대답 하는 이는 초록색 옷을 입은 사십대 수사로 특이하게 어깨와 귀, 머리에 식물의 싹들이 조금씩 자라 있었다.
“그럼 검선의 유산이 다른 역(域)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겠군요?”
뚱뚱한 화상, 즉 승려 수사가 물었다.
“그거야 모르지요. 당시에 곧바로 망천유역의 역간 전송진들에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그 후로 한 번도 종적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초록색 옷의 수사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입니다. 다른 열한 개의 유산들은 모두 추적이 가능한데, 유독 그 검선의 유산만은 완벽하게 모습을 감추지 않습니까.”
“그만큼 봉인이나 금제술이 뛰어난 이가 검선의 유산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 정도로 뛰어난 보물을 이용해서 검선의 유산을 숨겼다는 이야기겠지요.”
“흐음. 이렇게 시간만 흘러서는 곤란한데 말입니다. 이러다가 몇 천 년 정도 나타나지 않으면······.”
뚱뚱한 승려 수사의 가느다란 눈빛에 슬쩍 조급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그 또한 운명일 수밖에요.”
“속도 편하십니다. 소(召) 수사께서는 얼마 전에 천겁을 치르셔서 여유가 넘치시는 모양이지요?”
“왜요, 적화존(赤和尊)께서도 아직 다음 천겁까지는 천 년도 넘게 남지 않았습니까?”
“그 천 년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닌 것이 문제지요.”
적화존은 슬쩍 속을 드러냈다.
천 몇 백 년 후면 적화존은 천겁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적화존의 다섯 번째 천겁, 즉 대천겁이란 사실이다.
인계의 화신기 수사 중에 다섯 번째 천겁인 대천겁을 견디고 살아남는 경우는 백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적화존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천 년이 조금 더 될 뿐이다.
그 사이에 영계로 비승을 하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 적화존에게 십이비선의 유산은 무척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십이비선의 유산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영계 비승을 시도해야 할 경우도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적화존이 확인한 것들 중에 비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십이비선의 유산이었다.
열두 유산이 모두 모이면 영계로 통하는 통로가 활짝 열린다고 했다.
그 통로를 통하면 영계 비승에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데 어찌 욕심이 나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다른 유산들 중에도 주인이 매번 바뀌며 떠도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선의 유산이 나타나도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소 수사라 불린 녹색옷의 수사가 적화존을 보며 말했다.
“아니지요, 일단 열두 개가 모두 모습을 드러내면 일은 빨라질 것입니다. 열하나 일 때와 열둘 일 때는 전혀 달라요.”
적화존은 두툼한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 때였다.
적화존과 소 수사가 동시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동시에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 둘이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십이비선의 유산들이었다.
= 반갑소이다. 나는 십이간지의 자(子)라 불러 주시오. 임의로 십이비선의 유산 중에 혜선(慧仙)의 유산을 얻어 자(子)의 위치에 서게 되었으니.
“이게 무슨 소리요? 소 수사, 혹시 아시겠소?”
“음, 아무래도 이 자(子)라는 수사가 십이비선의 유산을 통해서 뜻을 전달하는 방법을 만들어 낸 모양이오. 적화존.”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오만, 이게 도대체 어찌 된 것인지.”
= 짐작하겠지만 나는 혜선의 유산을 수습하고 그 유산을 통해 적잖은 성취를 보았습니다. 그 덕분에 이렇게 다른 유산의 주인들에게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소 수사, 내가 가진 유산으로는 저 쪽과 대화를 할 수 없는데, 소 수사는 어떠시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전해오는 것을 받을 수만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이 자(子)라는 자가 일방적으로 제 할 말만 한다는 뜻이구려?”
“일단 들어 보십시다.”
= 이후에 조금 더 연구를 하다 보면 서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방법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일단 이렇게 소식만 전하는 것으로 하지요. 아울러서 불선의 유산을 가진 수사는 축(丑)이라 부르겠습니다. 이후에 아시게 되겠지만 열두 유산을 이용한 진법에서 축의 방위에 서게 될 것이라 그렇게 이름을 정했습니다.
“허허, 이 화상은 축(丑)이라 하는데 소 수사는 어떻습니까?”
“저는 약선의 유산을 얻었으니 묘(卯)라 하는군요.”
= 한 번에 오래 연락을 할 수가 없으니 이후에 진법의 영기가 보충되면 다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검선의 유산을 얻은 수사는 해(亥)이고, 조만간 그 유산과도 소통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열두 유산의 주인들 모두가 뜻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연락은 그렇게 끊어졌다.
하지만 적화존과 소량진의 표정은 전에 없이 상기되어 있었다.
십이비선의 유산을 중심으로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이었다.
적화존은 자신이 대천겁을 맞이하기 전에 반드시 십이비선의 유산에 얽힌 일이 모두 해결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 전에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것은 불선(佛仙)의 유산을 얻은 후로 더욱 강화된 육신통(六神通)에 의한 예감이라 믿을 만 한 것이었다.
“허허허. 그것 참, 좋군요. 좋아요. 나쁘지 않습니다.”
적화존은 얼굴가득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연신 무릎을 쳤다.
앞에 앉은 녹색옷의 소량진 역시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 * *
“망천유역(忘川流域)에서 가장 마기(魔氣)가 강한 곳이 사도천(死渡川)이란 말이지?”
“거기로 가실 것입니까?”
“재미있을까요?”
건우의 말에 용랑과 혈원이 물었다.
용랑은 이전 성단기의 외모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혈원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서 키가 3미터에 이르는 검붉은 고릴라가 되어 있었다.
건우가 준 개량된 공법을 이용해서 흑성성의 진혈을 흡수한 결과였다.
흑성성패력 공법을 익힌 혈원은 영체기에 오르면서 핏덩이 같았던 분혼이 영체로 거듭나고 진혈을 이용해서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가 3미터 크기의 검붉은 고릴라 형상인 것이다.
“넷 밖에 남지 않은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의 마귀상을 충전하려면 아무래도 그곳에 가야 할 것 같으니 한 번 가 보려는 것이지.”
건우가 손바닥을 휘저어 마귀팔면호령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한동안 경지를 안정시키며 잡다한 재주들이나 익히고 상한 법부들이나 고칠 생각인데 마침 이것이 떠올랐지. 이제 보니 이 안에 재미있는 구석도 좀 있는 거 같고.”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자 그 때마다 마귀의 얼굴이 사라진 빈자리가 드러났다.
위험할 때에 자동으로 공격을 대신 맞아 준다는 것은 꽤나 요긴한 면이 있다.
그런데 그 위력이 절반으로 줄었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일단 사도천으로 가자. 가면서 법부나 법보들도 다시 손을 좀 보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모시겠습니다.”
“재미있겠습니다. 부양도의 보호는 이 혈원이 책임지겠습니다. 주인님이 귀찮지 않게.”
용랑과 혈원은 건우의 결정에 절대로 반대하는 법이 없다.
그렇게 건우의 부양도는 용랑의 손에 맡겨져 사도천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