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으라차차 위위, 으라차차 태솔진.
-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네요.
“너는 수련이나 하지, 여긴 왜 기웃거려?”
- 의념 수련도 쉴 때는 쉬어 줘야 효율이 높아지는 거죠. 그러니까 수사들이 간혹 수 백 년씩 휴식을 취하고 그러는 거잖아요.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한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게으름이냐!”
- 괜찮아요. 저는 어차피 이곳 아공간에 묶인 몸이라 영체기가 되었어도 천겁에선 살짝 비껴 있는 존재니까요. 저야 건우 님만 무사하시면 영원 불멸이라서요.
“괜히 너에게 인공영체를 준 거 같다. 줘 봐야 쓸 곳도 없는데.”
- 그래도 제가 이렇게 멋진 몸을 가지게 되었잖아요.
“그 몸을 쓸 곳은 있고?”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루야는 인공영체와 혼원석을 모두 흡수했다.
그 결과 영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수준이 영체기 수사와 비슷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공간 밖으로 나설 수가 없으니 결국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는 셈이었다.
“왜 그러세요? 멋지지 않아요? 그저 정보집합체로 광체(光體)만 있을 때보단 훨씬 좋잖아요.”
루야는 이등신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도 좋다고 제 자리에서 빙빙 맴을 돌았다.
머리와 몸의 크기가 1:1을 이루는 완벽한 이등신 체형의 귀여운 여아의 모습.
건우는 그냥 웃고 말았다.
어차피 루야가 뭔가 해 주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끝까지 함께 가게 될 동반자에 대한 의리로 수사의 격을 갖추게 해 준 것 뿐.
- 보세요. 본격적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루야가 잠시 한눈을 팔고 있는 건우에게 바깥 상황을 알렸다.
건우는 다시 아공간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마침 위위선생이 태솔진을 향해 쇠사슬 공격을 날리는 중이었다.
촤르르르르르르르! 파지지직!
위위의 쇠사슬에는 처음부터 검은 뇌전이 거칠게 휘감겨 있었다.
탑탑의 보호막 안에 있는 태솔진은 위위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태솔진은 위위의 쇠사슬에 칭칭 감겨서 검은 뇌전에 온 몸이 지져졌다.
“크으으으윽! 이 놈들! 탑탑, 위위 내가 너희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크하하. 태 수사, 그것도 살아 있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 아니겠소? 이제 세상 뜰 몸이 무에 그리 집착을 남기고 그러시오.”
“네 놈들이 우리 실편몽을 아느냐? 우리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반드시 다시 깨어나······.”
“태 수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은 믿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온전히 새로 시작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단기 이상나 되어야 겨우 실편몽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말입니다. 그 때가 언제이겠습니까? 그 때까지 이 탑탑이 이곳 인계에 있겠습니까? 그 전에 죽거나 영계 비승을 하거나 하겠지요.”
“맞습니다. 태 수사께서는 이후에 남은 우리와의 인연 따위는 그냥 잊으셔도 됩니다. 하아아아압!”
탑탑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위위선생이 기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위위선생이 뻗은 쇠사슬 중에 하나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며 그 위에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색의 그 뱀은 역시나 뇌전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가라!”
위위선생이 명령을 내리자 그 검은 뱀이 스르륵 쇠사슬을 타고 태솔진을 향해 기어갔다.
“이, 이러언!!”
태솔진이 위기를 느끼고 크게 고함을 지르는 듯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태솔진의 머리 위에서 크게 입을 벌린 검은 뱀이 몸을 부들거렸다.
“어어어? 이게 무슨? 우, 움직여라!”
그러자 위위선생이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이 당황한 소리를 냈다.
“무, 무슨 일입니까 위위!”
탑탑이 불길한 육감에 급히 위위선생을 불렀다.
“모, 모르겠소. 내 흑뢰망(黑雷?)이 통제를 벗어난 듯······.”
흑뢰망(黑雷?)은 위위가 부리는 검은 색의 뇌전 뱀을 말하는 것이었다.
“멍청한 놈들! 감히 용 앞에서 이무기 따위를 부려? 모든 뱀과 이무기의 주인이 용이란 사실을 몰랐더냐!”
그 순간 태솔진이 크게 고함을 질렀고, 흑뢰망(黑雷?)이 그 거대한 입을 섬세하게 놀려 태솔진의 이마에 있던 부적을 물어 뜯었다.
파지지지지직! 시싯 시시시싯!
그리고 그 부적의 반작용 때문인지 거대한 흑뢰망은 소금맞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어, 어찌. 그것은 진짜 뱀이 아닐진데!”
위위선생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망(大?:큰뱀)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형상과 이름이 곧 그 본질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그 경지가 되도록 깨닫지 못하다니. 하긴, 위위라 항상 거짓만 두르고 다녔으니 그걸 알기 어려웠겠지.”
우우우우우웅!
태솔진이 그렇게 위위를 비웃을 때, 그의 발 밑에 있던 붉은 진법이 크게 세를 넓혀 여의주 공간의 바닥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위위! 위위! 이제 어쩝니까? 이러다가 저 태솔진이 저기서 나오는 날이면 나나 위위선생이나 모두 죽은 목숨입니다.”
탑탑이 다급하게 위위를 보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위위가 망연했던 표정에 생기가 돌며 탑탑을 보았다.
“어쩌긴 뭘 어쩌겠습니까. 저 태 가가 저기서 나오기 전에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지요. 이 위위가 최후의 수법을 쓸 것이니 탑탑께서는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위위가 가부좌를 하고 쥘부채를 펼쳐 크게 부풀리자 탑탑은 기대를 가지고 그렇게 대답했다.
위위는 가부좌를 한 상태로 부채를 부풀려 그 뒤로 숨었다.
그리고 부채에선 예의 그 마귀 얼굴이 떠올라 태솔진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태솔진 역시 아직은 탑탑의 금제에 걸린 상황이라 긴장하며 부채의 마귀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
마귀의 얼굴과 태솔진은 여전히 노려보며 대치를 하고 있었다.
“······.”
둘의 대치는 길어졌다.
“허허허허. 허허허허허.”
어느 순간 탑탑이 허망한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즈음 태솔진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맥빠진 표정으로 그런 탑탑을 쳐다봤다.
탑탑을 바라보는 태솔진의 눈빛이 어쩐지 애잔했다.
“위위(僞瑋), 그 이름에 어울리게 어느새 종적(?迹)을 감췄습니다 그려.”
“허허허허. 이 탑탑이 이곳 여의주 공간에서 수도계의 파렴치를 정말 극한까지 보는 듯 합니다. 따지고 보면 고작 여섯 밖에 안 되는 일행이 어찌 이리······.”
탑탑은 말을 하다말고 태솔진을 바라봤다.
“태 수사.”
“말씀하십시오.”
“우리의 관계를 다시 복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하긴,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헛소리란 것은 알겠습니다.”
“그럼 선택을 하시지요. 그 보탑의 금제를 풀고 스스로 자결을 하시면 윤회의 기회는 얻을 수 있을 겝니다.”
“그렇습니까?”
“서둘러야 이 태 모가 그 위위를 잡을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사소하나마 그렇게라도 복수를 하셔야지요.”
“허허허허.”
탑탑은 다시 허허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태솔진의 말에 따라서 스스로 심맥을 끊고 영체를 흩어 버리고자 마음을 먹었다.
“참으로 대도의 길이 이러한가! 그래도 돌아보니 부질없는 것만도 아니었도다. 너희는 허망하다 하지만 내 마지막을 범인들 따위의 삶에 어찌 비길까. 다시 태어나더라도 대도에 발을 디디기를 진심으로······.”
탑탑이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는 진언을 외우고 있을 때였다.
“이보시오! 탑탑 멈추시오! 잠깐만!”
저 멀리 위위가 둔광을 번뜩이며 달려왔다.
탑탑은 외우던 진언을 멈추고 위위를 바라봤다.
“그, 탑탑.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 위위의 힘으로는 이곳 여의주 공간을 빠져 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탑탑께서 가지고 계신다던 그 비행 법보의 전송진을 이용해서 함께 빠져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뭐? 뭐라? 크하하하하하. 진정 위위(僞瑋)는 위위(僞瑋)로다. 그 낯짝의 두꺼움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 태 모 역시 진정 놀랐습니다. 위위 같은 이는 지금껏 만난 적이 없습니다.”
탑탑에 이어서 금제에 갇혀 있는 태솔진까지 위위에 대해 한 마디 평을 할 정도로 위위의 염치없음은 대단했다.
아공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건우조차 말문이 막혀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휴우우! 내 기가 막힌 꼴을 보고 잠시 현실을 잊었지만 그게 계속 될 수는 없겠지요. 이제 그만 끝을 내십시다.”
잠시 위위와 탑탑, 태솔진의 대치가 이어지던 중에 태솔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태솔진의 발 밑에서 넓게 세력을 펼치던 붉은 진법의 선(線)들이 갑자기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의주 공간 전체가 그 진법과 공명을 일으켰다.
웅웅웅! 웅웅웅웅! 우우우우웅!
“이, 이게 무엇입니까? 탑탑 수사? 이를 어쩝니까?”
“지금 그걸 나에게 물을 염치가 있습니까? 저리 꺼지시오!”
“아니, 탑탑 수사, 지난 일이야 그렇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둘이 힘을 모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
“닥쳐라! 내 너와 다시 상종을 하지 않으리라!”
탑탑은 위위를 벌레 보듯 혐오스럽게 쳐다봤다.
위위는 그런 탑탑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움츠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갑자기 태솔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보시오 태 수사. 내가 태 수사의 수족이 되겠······.”
꽈릉!
위위가 태솔진에게 애원을 마치기도 전에 하늘에서 번개가 내렸다.
붉은 번개는 그대로 위위의 정수리를 때리고 곧바로 위위를 땅에 고정시켰다.
붉은 번개는 그 형상이 사라지지 않고 위위를 관통한 상태로 땅과 하늘에 이어져 있었다.
파지지지지직!
그 때, 태솔진이 자신을 감싸고 있던 황금색 막, 보탑의 금제를 가볍게 손을 휘저어 바스러뜨리며 밖으로 걸어나왔다.
“커어억! 울컥!”
그와 동시에 금제가 파괴되는 반동을 받은 탑탑이 울혈을 토하며 비틀거렸다.
“그만 쉬시지요.”
꽈릉!
태솔진이 말과 함께 탑탑을 가리키며 손짓을 하자 위위에게 떨어진 것과 같은 붉은 번개가 내리쳤다.
탑탑은 그것을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위위처럼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번개에 꽂힌 상태로 굳어 버렸다.
“휴유, 이제야 겨우 진법을 완성했습니다 그려.”
태솔진이 굳어 있는 두 수사를 번갈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심호흡을 하며 심신을 안정시키더니 고개를 번쩍 들고 하늘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바닥에 그려진 것과 같은 붉은 색의 진법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애초에 태솔진이 만든 진법은 땅과 하늘 양쪽에서 상응하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땅의 진법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숨어 있던 하늘의 진법이 모습을 드러내어 일거에 상황을 역전시킨 것이다.
“그나저나 흑마원과 행려의 죽음은 분명한데, 길우몽, 이 자는 어찌 되었단 말인가.”
태솔진이 용의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겉으로 태연한 듯 행동하면서도 전력을 다해서 길우몽의 종적을 찾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길우몽을 찾으려 여의주 공간을 샅샅이 훑어도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이곳은 이미 내 의념과 일치된 곳인데 이곳에서 내 이목을 숨길 수 있다고?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불가능해.”
태솔진은 길우몽을 찾으려 애쓰다가 도저히 찾을 수 없자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혹시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이곳을 떠났다고? 안전한 것이 최고라 하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용의 영체란 말을 듣고 어찌 욕심을 다스리지? 그게 가능한가?”
태솔진은 길우몽이 여의주 공간을 떠났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듯 했다.
애초에 빠져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보다는 수사가 보물에 대한 욕심을 접고 몸을 사렸다는 것이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없다. 없어. 정말로 이곳에 길우몽 그 자는 없단 말이지!”
다시 한 번 태솔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담아 소리를 질렀다.
그 때마다 태솔진과 연결된 붉은 진법이 거칠게 요동을 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흘이 흐를 동안 태솔진은 계속 길우몽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진법의 힘을 최대로 끌어 올려도 결국 길우몽은 머리카락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쯤 되자 태솔진도 길우몽이 여의주 공간에서 도망졌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어도 진법의 힘이 극한에 이르러 더는 대법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태솔진이 진법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본체를 깨울 수 있게 되었구나. 고작 티끌같은 분혼으로 이런 대업을 완성하게 되었으니 실로 천기라 하는 것은 헤아리기 어려운 바가 있다. 천지법칙의 벌을 받았던 내 본체가 드디어 부활을 하게 되는구나.”
태솔진은 그렇게 말을 하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늘과 땅 사이로 엄청난 숫자의 붉은 번개가 내리치며 연결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하는 모양이군.”
건우는 아공간 안에서 바짝 긴장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