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29화 (129/499)

129. 내가 작정하면 어? 응? 마, 그냥 훅 가는 거야!

“별 것 아니오. 그저 이곳에 떨어진 용의 분혼이라고 할까. 용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이렇게 여의주 공간을 만들고 후일을 도모했는데, 그 때 분혼들을 밖으로 내보냈지.”

“그게 언제 일인데 그 분혼들이 지금까지?”

“분혼이라고 마냥 살아갈 수야 있었겠소? 때가 되어 천겁을 만나면 흔적 없이 지워질 뿐이오.”

“그렇다면 저리 남아 있는 것이 또 말이 안 되는데?”

“하하하. 본체가 존재하니 천겁에 지워진 분혼이 다시 그 자리에서 살아나는 것이오. 그 때는 미약하기 짝이 없어서 오랜 세월을 수련해야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일정 경지에 올라야 스스로 용이 꾸는 꿈의 조각임을 알게 되는 거지. 그것이 용의 꿈, 아니 꿈의 파편이오. 실편몽(失片夢).”

“실편몽? 잃어버린 조각 꿈인 겝니까?”

“시간이 흐르며 저들끼리 그리 부른 것이지 내가 붙인 이름은 아닙니다. 그나저나 이제는 시간을 끌만큼 끈 거 같지 않습니까?”

대화를 나누던 중에 흑마원이 길우몽을 보며 물었다.

그는 마치 길우몽이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말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내가 시간을 끌다니? 나는 그저 궁금한 것이 있어 물었을 뿐인데 말이오.”

“길 수사가 정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이 흑 모가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저 태 가가 움직이기 전에 이 여의주 공간을 장악해야 하니 말입니다.”

“용의 기운을 취한다는 뜻입니까?”

“그렇지요.”

“그걸 위해선 나를 치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쉽지 않을 텐데요?”

길우몽이 다시 금속 봉을 흑마원에게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길우몽의 등 뒤로 은행나무의 모습이 반투명하게 떠올랐다.

흑마원은 그 은행나무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흑성성패력 공법의 쇠약(衰弱) 능력이 저 은행나무 때분에 일부 줄어드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빠지지지지지직!

따다다다다당!

그 때, 행려와 위위선생이 대치하고 있던 곳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렸다.

위위선생의 검은 뇌전의 뱀들이 결국 행려의 소매에 핀 얼음꽃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위위선생의 쇠사슬이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마디마디가 터져 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지만 싸움은 한층 더 격해진 모습이었다.

어떻게든 빨리 결착을 보려고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데 의외로 서두르는 쪽은 위위선생 쪽이었다.

건우는 그 모습에 위위선생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크하하, 저 쪽은 그대로 둬도 되겠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보십시다.”

흑마원도 그런 상황을 짐작했는지 크게 웃더니 건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길게 자라난 날카로운 손톱, 그 손톱에 맺혀 있는 검은 기운.

볼 때마다 기괴한 포효를 터트려 기운을 끌어 내리는 하얀색 원숭이 문양.

건우는 금속 봉을 거칠게 휘두르며 저항했다.

하지만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얀 원숭이 문양을 내세운 흑마원의 힘이 나오금강체술을 펼치는 길우몽보다 강했다.

까강! 서걱! 까가강! 츠리릿!

“이익! 흑마워언!”

몇 번 부딪히며 연신 손해를 보던 길우몽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길우몽의 몸에서 흑금색의 빛이 더욱 강하게 일어났다.

길우몽이 나오금강체술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동시에 그 몸집도 3미터 정도가 더 커져 23미터의 크기가 되었다.

“크하하, 고작 그것이냐? 대단하긴 하지만 그 정도로 나를 어쩔 수는 없다. 이제는 정말 끝을 내자꾸나.”

흑마원이 그런 길우몽의 모습에 더는 기다릴 것이 없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흑마원의 가슴에 있던 하얀 원숭이 얼굴이 위로 올라가 흑마원의 얼굴에 가면처럼 씌워졌다.

또한 그 햐얀 원숭이 가면 아래로 뼈의 모습이 만들어져 흑마원의 검은 몸에 하얀 뼈대 모습을 만들었다.

그 하얀 뼈대는 흑마원의 피부에 도드라진 것이어서 건우는 지구의 기억에서 하얀 해골이 그려진 검은 옷을 입고 검은색 배경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쿠과과광!

“커어억!”

하지만 건우가 떠올린 그 우스꽝스런 사람들과 달리 흑마원의 변화는 너무도 극적이었다.

하얀 원숭이가 뿜어내던 쇠약의 기운은 몇 배가 강해져 건우의 힘을 절반 이상 꺾어 내렸다.

게다가 흑마원 본신의 힘은 두 배 이상 강해진 것 같았다.

“크하하하. 보기가 좋습니다. 길 수사. 그냥 그대로 누워 있으십시오.”

흑마원의 손톱을 막다가 날아가 뒹구는 길우몽을 향해 흑마원이 하얀 원숭이 얼굴에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길우몽은 뒹굴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며 소매로 입 가의 피를 훔쳐냈다.

한 번의 충격에 내장이 흔들려 피를 토한 것이다.

‘이대로 나오금강체술만 이용해서는 승산이 없겠어. 길우몽만으론 역부족이야.’

결국 건우는 눈앞의 흑마원을 상대로 연체술만 익힌 길우몽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흑 수사는 대단한 바가 있습니다. 그 성성이 공법은 확실히 무섭습니다. 상대를 약화시키는 그 힘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영체기일 뿐입니다. 이 길 모가 그 정도는 감당할 여력이 있지요.”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의념을 끌어올려 흑마원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의념의 힘은 곧 수사의 힘을 대표했다.

연체술을 익힌 길우몽은 그 의념이 힘이 그리 강한 편이 되지 못한다.

그런 제약을 두고 지금까지 활동했던 건우였다.

하지만 그 제약을 풀어 버리면 건우의 의념, 의식의 힘은 화신기 수사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하다.

“크으윽, 이게 무슨? 길 수사의 의념이 이토록 강하다고?!”

흑마원이 그를 찍어 누르는 길우몽의 의념에 경악하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길우몽을 노려 보며 소리를 질렀다.

“네 놈, 길우몽, 여, 연체술사가 아니었단 말이냐!”

“웃기십니다 흑 수사. 내가 지금껏 연체술로 그대들과 함께 한 것이 70년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연체술사가 아니라니, 그럼 제가 뭐란 말입니까?”

“거짓말 하지 마라. 연체술사가 어찌 이리 강력한 의념을 지닌단 말이냐. 연체술은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거늘!”

“하하하하. 이런 험한 세상에 어찌 수련 공법 하나로 버틸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연체술로 몸을 튼튼하게 하고, 의념 공법으로 의식의 힘을 함께 키우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둘을 함께 익혔다는 말이다.

그 말에 흑마원의 시커먼 낯빛이 한결 어두워졌다.

겉으로 드러난 연체술도 뛰어난 길우몽이 그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의념을 투사하고 있다.

이런 의념이라면 그 술법의 강대함도 능히 예상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자, 계속 해 보십시다.”

길우몽이 다시 금속 봉을 휘두르며 흑마원에게 덤볐다.

콰과과광! 콰과광! 콰광!

“커억! 커어어억! 크으윽!”

그런데 이번에는 흑마원이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건우의 금속 봉은 흑마원의 손톱을 가볍게 밀어내며 그의 내부에 충격을 주었다.

“이게 무슨? 어찌 흑성성패력 공법의 힘이 통하지 않는단 말이냐!”

흑마원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뒤로 물러나 여유를 만들려 했지만 건우는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따라붙었다.

“그냥 끝장을 보십시다 흑 수사.”

콰광! 콰광! 카드득! 콰직!

길우몽은 공격을 거듭했고 그런 중에 결국 흑마원의 손톱 하나가 부러지는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흑마원 얼굴의 새하얀 원숭이 가면이 크게 일그러졌다.

“이, 이럴 수는 없다. 죽여버리겠다. 킁킁!”

흑마원이 크게 흥분하며 고함을 지르더니 제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텅텅텅텅텅터더더더더더더!

콰지지지직!

그런데 점점 과격하게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던 흑마원이 어느 순간 양손으로 제 가슴뼈를 좌우로 뜯어 벌리더니 포효를 터트렸다.

쿠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그 순간, 흑마원의 가슴에서 검은 피가 뭉치더니 새로운 원숭이 얼굴을 만들어 냈다.

이번 것은 흑탄처럼 검은 색이었는데 눈동자는 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원숭이 얼굴이 갑자기 건우를 향해서 입을 벌리고 날아들었다.

“흐음.”

건우도 깜짝 놀라며 금속 봉을 휘둘러 그 원숭이 얼굴을 내리쳤지만 검은 원숭이 얼굴은 실체가 없는 듯이 금속 봉을 통과해서 계속 건우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흑마원은 그 모습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어딜!”

투화화화화황!

“삼켜라!”

하지만 그 순간 건우가 크게 호통을 치자 건우의 얼굴에 황금색 삿갓 모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황금 삿갓은 검은 원숭이 얼굴을 막아내며 큰 충돌음을 만들어 냈다.

흑마원은 어떻게 검은 원숭이 얼굴이 막혔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검은 원숭이 얼굴은 흑마원의 본명법보로 실체가 없이 흑성성패력 공법의 경지와 흑마원의 의념이 녹아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공간 술법이 아니면 막기 어려웠는데, 길우몽의 금속 봉을 통과한 것만 보아도 능히 위력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막히다니.

흑마원이 깜짝 놀랄 때, 길우몽의 ‘삼켜라!’라는 법언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흑마원은 절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경험을 해야 했다.

길우몽의 얼굴에서 황금색 삿갓이 나타나 빛을 뿜는 순간, 그의 흑성성패력 공법의 경지와 의념이 뒤엉켜 있는 본명법보가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과 당연히 이어져 있어야 할 본명법보와의 연계도 끊어져 버렸다.

“무슨! 이게 무슨!”

흑마원이 상상도 못한 상황에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할 때였다.

“가랏!”

다시 한 번 길우몽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푸확!

“뭐냐? 방금 그것은?!”

흑마원은 자신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미련을 남기지 말고 그냥 죽어라.”

그런 흑마원에게 길우몽이 달려들어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엄청난 악력으로 흑마원의 머리를 터트리려 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흑마원이 고함을 질렀다.

“길, 길 수사! 자, 잠깐만!”

퍽!

하지만 그가 말도 제대로 하기 전에 길우몽의 손이 흑마원의 머리를 터트려 버렸다.

그리고 그 머리속에서 손가락보다 작은 흑마원의 영체가 꼼지락 거리며 나타났다.

하지만 그 역시 건우가 노려보자 당황해서 움찔 거리더니 어느 순간 스스로 영체를 흩어 버렸다.

영체가 도망갈 길이 없음을 느끼고 스스로 소멸을 택해 윤회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길우몽은 그 모습에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곧바로 시선을 위위선생과 행려 쪽으로 돌렸다.

어차피 실력을 드러낸 것, 적들을 먼저 처리하고 이후에 위위와 태솔진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볼 생각이었다.

“아, 어찌 이런······.”

행려는 흑마원의 최후를 보고 크게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믿었던 흑마원이 그리 죽었으니 이제 자신과 탑탑이 어찌될 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동부에서 수련이나 할 것을, 괜한 욕심에 화를 자초했구나.’

행려는 위위선생의 공격을 버티면서도 이리저리 눈치를 보았다.

어디로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할까.

하지만 용의 여의주라는 특수 공간 안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내가 죽여주길 바라느냐.”

가까이 다가온 길우몽이 행려를 보며 말했다.

행려는 입술을 깨물다가 공간낭을 길우몽에게 던진 후, 스스로 심맥을 터트리고 영체를 흩어 버렸다.

혹시라도 길우몽이 자신의 자살을 막을까 걱정되어 공간낭을 던져 자비를 구한 것이다.

“커어어억!”

그 순간 흑연 속에서 위위선생의 피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흑연이 흩어지고 부채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수십 개의 부채살 중에서 남은 것이 고작 여섯 개 뿐이었다.

그만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부채에 그려진 마귀의 형상도 흐릿했는데 마침 그 형상이 지워지고 부채가 줄어들며 위위선생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땅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무릎 앞에는 그가 토한 피가 한가득 고여 있었다.

길우몽은 그런 위위선생의 모습을 일별하고 이번에는 탑탑과 태솔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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