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배신과 기습, 그리고 생사결전의 시작
푸우욱! 퍼벙!
“크윽!”
콰다다당!
건우는 급하게 손을 저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위위선생을 밀쳐냈다.
“이게 무슨?!”
따다다다당! 콰과과광! 터덩!
“이런 개 잡놈들이!”
콰과과과과광!
건우가 여의주의 벽을 뚫고 들어갔을 때, 본 모습은 위위선생이 피를 뿜으며 건우 쪽으로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깜짝 놀라서 위위선생을 슬쩍 밀어낸 건우를 향해 흑마원과 탑탑, 행려가 공격을 가해왔다.
흑마원은 수 십 개의 검은 창을 만들어 건우를 향해 쏘았고, 행려는 얼음 비수를 날렸다.
그리고 그 바로 뒤를 탑탑이 탑처럼 생긴 둔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던 것이다.
건우는 그 공격에 그대로 노출이 되고 말았다.
워낙 기습적인 상황이라 제대로 대처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나오금강체술을 끌어 올리고 있었던 덕분에 겨우 버텨낼 수는 있었다.
건우는 흑마원과 행려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낸 후, 급히 금속 봉을 소환해서 탑탑의 공격을 막아냈다.
쿠과과광! 타다다다당!
“크윽, 역시 굉장하십니다 길 수사.”
탑탑이 건우와 한 번 충돌하고는 주춤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하지만 건우는 탑탑과 말을 섞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죽어라!!”
건우의 봉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흑금색 길우몽의 몸이 쑥쑥쑥 커졌다.
순식간에 20미터 크기로 커진 길우몽.
그에 맞춰 부풀어 오른 금소 봉이 곧바로 탑탑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런!
탑탑이 그런 길우몽의 반응에 깜짝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16층 탑을 땅에 박아 세우고 손을 모아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16층 탑이 빛을 내며 길우몽의 금속 봉을 막아 냈다.
어느새 탑탑은 16층 탑이 만든 황금색 막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다.
“얼마나 버티나 보겠다!”
쾅쾅쾅쾅쾅!
길우몽이 그 모습에 분노를 터트리며 사정없이 금속봉을 휘둘렀다.
그 때마다 탑탑의 황금 보호막이 위태롭게 출렁이며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아울러서 16층 탑의 제일 아래층부터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면 탑탑의 16층 탑은 각각의 층마다 촛불이 있었는데, 탑을 땅에 박아 넣을 때부터 생겨난 것으로 보였다.
그 촛불이 벌써 네 개가 꺼졌다.
그것들이 모두 꺼지면 탑의 힘도 사라질 것은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만 설치시오!”
“주제를 모르고 날뛰기만 하니 명을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요!”
하지만 건우의 상대는 탑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뒤쪽에 있던 흑마원과 행려가 엄중한 표정을 지으며 건우를 향해 법술을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흑마원은 이제 완전히 검은 고릴라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체구가 길우몽과 비슷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그는 엄지손톱을 제외한 여덟 개의 손톱이 길게 자라나 있었는데 그 손톱들마다 현묘한 검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의 옆에는 행려가 허공을 밟고 서 있었는데, 그녀의 주변에는 얼음 덩어리들이 수없이 떠 있었다.
행려의 얼음덩어리들은 그녀의 뜻에 따라서 크기와 모양을 바꿀 수 있었고, 의념으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었다.
행려가 띄워 놓은 얼음덩어리 하나하나가 모두 강력한 공격 수단이라는 소리였다.
쒜에에에에엑! 쒜에에엑! 쒜엑!
쉬쉬쉬쉬쉬쉬쉬쉿!
아니나 다를까 행려의 얼음덩어리들이 일제히 비수의 형상을 갖추더니 길우몽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행려는 날려 보낸 만큼의 얼음덩어리를 그 즉시 다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대로 둔다면 얼마든 공격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라라랏! 킁킁킁! 내 언제고 길 수사와 이렇게 몸으로 대화를 해 보고 싶었지. 길 수사의 연체술이 과연 이 몸의 상대가 될 수 있는지 궁금했소이다. 크하하.”
그리고 흑마원은 뜻밖에도 커다란 체구를 이용해서 건우에게 육박전을 걸어왔다.
사실 흑마원의 진정한 힘은 지금처럼 거대한 고릴라로 변했을 때, 나오는 육체적인 힘이었던 것이다.
쾅! 쾅! 쾅! 까드드득! 카득!
건우의 금속 봉과 흑마원의 손톱들이 어지럽게 뒤엉키며 연이어 영기를 폭발시켰다.
흑마원은 의외로 영체기 급의 나오금강체술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길우몽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흑마원이나 길우몽이나 어지간한 충격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이 치고 박기를 멈추지 않았다.
물론 길우몽은 그런 중에도 여전히 행려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다.
“태솔진! 무엇하는 것이냐!”
건우는 뒤늦게 따라 들어온 태솔진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아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직후, 태솔진이 황금색 막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탑탑을 노려봤다.
탑탑은 16층 탑을 사용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이고, 뒤쪽에 있던 태솔진을 가둬두고 있었던 것이다.
태솔진은 황금색 막에 갇혀서 어떻게든 그것을 뚫고 나오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킁킁. 어딜 보는 것이냐! 그럴 여유가 있단 말이냐!”
건우가 잠시 태솔진과 탑탑을 곁눈질하자 흑마원이 고함을 지르며 분노했다.
자신과 싸우며, 행려의 공격을 받는 중에 그런 여유를 부리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흑마원, 이러는 이유가 뭐냐? 용의 기운을 독차지 하려는 것이냐?!”
말없이 싸우기만 하던 길우몽이 문득 금속 봉을 휘둘러 흑마원을 살짝 밀어낸 후, 뒤쪽으로 몸을 빼며 소리쳤다.
흑마원은 곧바로 길우몽을 따라 들어가려다가 문득 몸을 멈추고 길우몽을 노려봤다.
생각보다 어려운 상대라 쉽게 승부를 볼 수 없을 거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흑마원은 의념을 이용해서 행려에게 뭐라 뜻을 전하면서 길우몽을 향해 물었다.
“너냐? 네가 가지고 있느냐?”
“무슨 말이냐? 뭘 가지고 있다는 것이냐?”
길우몽이 아래 위도 없는 질문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그의 하회탈 같은 얼굴에도 어이없음이 분명하게 드러날 정도였다.
“네 놈이 이전에 만은사의 거래 목록으로 마수의 화신기 수련 공법을 올린 놈이냐고 묻는 것이다!”
“응? 마수의 화신기 수련 공법?”
건우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으로 흑마원에게 되물었다.
이럴 때에는 덩치를 크게 키운 것이 도움이 된다.
얼굴이 크니 표정 변화가 세밀하지 않은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번에도 그런 경우로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있었던 것이다.
“네가 아니라고?! 하긴 그런 무식한 연체술을 익힌 놈이 마수의 화신기 수련 공법에 손을 대지 않았을 리가 없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럼 너는 나에게 있지도 않은 수련 공법을 노리고 나를 공격했다는 말이냐?”
길우몽이 금속 봉을 흑마원에게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무척 억울하다는 듯이.
“그럼 다른 놈에게 있다는 건가? 위위? 아니면 태솔진?”
길우몽이 금속 봉을 겨누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흑마원이 쓰러진 위위선생과 황금빛 막에 갇혀 있는 태솔진을 한 번씩 훑어봤다.
그 때, 마침 행려가 쓰러져 있는 위위선생을 향해 기습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얼음 비수를 날려 보냈다.
그 비수는 하나같이 날카롭고 차가웠으며 품고 있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길우몽과 흑마원이 대화를 하는 동안에 행려가 준비를 단단히 해서 날린 공격인 것이다.
“크허허, 잠시 몸을 추스를 여유조차 주지 않는구려. 이 위 모가 오늘 죽을 날을 받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공격을 받은 위위선생도 그대로 끝장이 나지는 않았다.
갑자기 그의 앞에 거대한 부채가 떠올라 활짝 펼쳐졌다.
평소 위위선생이 손에서 놓지 않던 쥘부채의 등장이었다.
위위선생의 쥘부채는 십여 미터의 크기로 커져서 활짝 펼쳐져 행려의 공격을 막아냈다.
행려의 얼음 비수들은 펼쳐진 부채의 표면에 닿자마자 허깨비처럼 깨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얼음 비수를 막은 부채의 표면에서 뭔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래는 아무 문양도 없이 햐얀 종이만 있었던 부채에 어떤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음, 저것은?’
건우는 그 형상이 다름 아닌 마귀의 모습임을 알아봤다.
그것은 건우가 가지고 있는 마귀팔면호령(魔鬼八面呼令)에 새겨진 것과 비슷했던 것이다.
“이 위 모는 힘이 없지만 그냥 죽을 수는 없으니 어디 행려 수사는 이 위 모와 함께 생사를 다퉈 봅시다. 크허허허.”
부채 뒤에 있었던 위위 선생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부채의 마귀가 사나운 얼굴로 행려를 보며 말했다.
위위선생이 부채에서 나타난 마귀와 하나가 된 듯 했다.
그 모습에 행려의 두꺼운 면사 뒤 눈동자가 사나워졌다.
“호호호. 좋습니다. 어디 위위선생과 저 행려 중에 누가 살아남을지 가늠해 보지요.”
행려는 그렇게 외치고 다시 얼음 덩어리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위선생의 부채도 검은 기운을 뭉클뭉클 뿜어내더니 흑연(黑煙)으로 부채를 가려 버렸다.
“고작 마수의 수련 공법 따위가 뭐가 그리 중하다고 이런 일을 벌인단 말이냐? 또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나에게도 의논을 하고 행동을 함께 했으면 좋았지 않으냐!”
그 때, 길우몽이 뜬금없이 흑마원을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자신을 이런 상황에 끌고 왔느냐는 원망처럼.
“길 수사, 당신과 저기 태솔진, 위위. 셋 중에 하나는 반드시 그 마수 수련 공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오. 만은사의 견사가 확답을 한 것이니 분명하지.”
“만은사가 그런 짓을 했다고?”
길우몽이 믿기지 않는 다는 듯이 말했다.
“만은사의 견사는 규칙을 어기지 않았소. 나는 그저 내 탐험에 대한 정보를 마수 수련 공법을 지닌 수사에게 전해 달라고 했을 뿐이지.”
“그렇다면 그가 이야기를 듣고도 이번 원정에 참가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길우몽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흑마원과 길우몽은 서로의 빈틈을 노리며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 정도는 이미 확인을 했다. 분명 너희 셋 중에 마수의 수련 공법을 지닌 이가 있지.”
“그렇다면 위위나 태솔진이겠지.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지금은 의미가 없겠구나. 이미 나는 너희를 가만 둘 생각이 없으니까.”
길우몽이 괜한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다시 금속 봉에 영기를 가득 밀어 넣었다.
“크하하. 옳다. 옳아.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다시 관계를 회복하긴 어렵지. 나도 어서 너희를 죽이고 흑성성패력(黑猩猩覇力) 공법을 완성해야겠다.”
“흑성성패력 공법이라고?”
“궁금하냐? 킁킁, 하지만 너 따위가 알 필요는 없는 이름이다. 그냥 예서 죽어라!”
흑마원은 이제 할 이야기는 다 했다는 듯이 고함을 지르며 길우몽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흑마원의 가슴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은빛의 문양 하나가 나타나 있었는데, 그것은 흉악한 인상의 원숭이 얼굴이었다.
쿠웨에에에엑!
“크윽! 뭐냐?!”
그런데 그 하얀 원숭이 문양이 크게 포효를 터트리는 순간 길우몽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냥 죽어라! 감히 흑성성패력 공법을 본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그런 길우몽에게 흑마원이 여덟 손톱을 휘저으며 달려들었다.
흑마원이 양쪽으로 팔을 벌려 가슴을 드러낼 때마다 그 가슴의 하얀 원숭이 얼굴이 붉은 눈동자로 으르렁거리며 길우몽을 노려봤다.
그런데 그 하얀 원숭이 문양을 대할 때마다 길우몽은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크하하하. 쇠약(衰弱)의 술이 제대로 먹히는구나. 길 수사, 오래 버티지 말고 그냥 순순히 목을 내 놓으시오. 크하하하하.”
그런 길우몽의 반응에 흑마원은 너무도 즐거운 듯이 광소를 터트리며 손톱을 휘둘렀고, 그 때마다 길우몽의 몸에 깊은 상처가 줄줄이 새겨졌다.
나오금강체술의 엄청난 방어력이 흑마원의 손톱 앞에서 무력하게 뚫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다. 저 손톱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위험한 것은 바로 저 하얀색 원숭이 얼굴이다. 도대체 저게 뭐란 말인가.’
건우는 흑마원이 펼치고 있는 흑성성패력 공법이란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크으으, 어차피 끝장을 보자는 것이렸다! 이런 마당에 더 숨길 것은 없겠지.”
길우몽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다가 몸을 우뚝 세우고 흑마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런 길우몽의 몸을 반투명한 나무의 뿌리들이 나타나 휘감더니 그 뿌리 위로 커다란 은행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음? 압각수(鴨脚樹:은행나무)가 저 원숭이 문양의 힘을 조금은 막아주는군. 완전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더 버틸 수 있겠어.’
건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금속 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죽여버리겠다 흑마원!”
“덤벼라! 길우몽, 아무리 그래봐야 네 불리함이 사라지진 않는다. 곧 목을 뜯어주마! 킁킁!”
콰광! 까강! 까드득! 츠릿! 퍼벅!
그렇게 다시 흑마원과 길우몽의 난타전이 시작되었을 때, 행려와 위위선생, 탑탑과 태솔진의 대치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벌이는 일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