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령보(靈寶) 여의주? 형 왜 여기서 나와?
“우리가 드디어 용의 흉소(胸所)에 가까워졌습니다.”
“흑마원 수사의 말대로입니다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벌써 70년이란 시간이 흘렀단 말입니다.”
“하하, 위위선생. 지금까지 우리가 얻은 수련자원들을 생각하면 고작 70년이 대수겠습니까? 각자가 얻은 것을 달리 구하려 했다면 수백 년을 허비해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흑마원 수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여정이 길어진 것도 사실이지요.”
“위위, 뭐가 그리 심각하십니까. 좋습니다. 시간 낭비가 컸던 것이 문제라면 돌아가는 길에는 이 탑탑이 비행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탑탑 수사. 이곳 용해천에서 비행 법보를 날리다가 화신기급 비행 마수나 요수를 만나면 단번에 먼지가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위위선생은 너무 걱정이 많습니다. 제 비행법보에는 장거리 전송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상급 영석 네 개를 써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것을 이용하면 단번에 용해천 초입으로 돌아갈 수가 있지요.”
“오호라, 70년을 달려온 길을 단번에 돌아갈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거 정말 마음에 듭니다.”
“그런 기능을 쓴다면 법보에 적잖은 무리가 갈 텐데, 그런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말입니까?”
탑탑의 말에 조용히 듣고 있던 태솔진과 행려까지 놀란 반응을 보였다.
건우 역시 탑탑을 향해 엄지를 세워 보이며 그 희생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니 위위선생도 근심을 거두고 마지막 행사에 집중을 하십시오. 그래 주시겠습니까?”
“허허. 탑탑 수사가 그리 손해까지 감수하며 배려를 해 주신다고 하는데 당연히 이 위 모도 딴 생각을 할 수는 없지요. 약속하겠습니다.”
“크하하 좋습니다. 좋아요.”
위위선생이 한 걸음 물러나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자 탑탑이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다른 네 명의 수사들 역시 자연스럽게 녹아들려 애썼다.
이제 용해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용신의 흉소에 들어갈 일만 남았다.
* * *
인계에 떨어진 용의 몸뚱이가 천겁을 받아 흙으로 돌아간 곳, 용해천.
그곳 용신(龍身)의 흉소는 용해천의 중심이며 거대한 산맥의 가운데이기도 했다.
흑마원이 말한 용의 기운은 그 산맥 안쪽, 정확히는 지하 깊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곳으로 가는 길은 단순히 땅을 뚫는 것만으로 열리진 않았다.
“자, 여기입니다.”
일행은 조심스럽게 굴을 파고 지하 수 천 미터를 내려왔다.
그렇게 내려오면서 일행은 최대한 기척을 감추고 작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통로도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용해천 중심부에 자리 잡은 마수나 요수들을 눈을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땅을 파고 내려온 것이 다시 몇 개월.
드디어 흑마원이 묘한 빛깔의 암반 앞에서 굴 파기를 멈췄다.
건우는 눈앞에 드러난 암반의 색이 금속 빛을 띠는 것을 보고 슬쩍 암반을 두드려 봤다.
퉁퉁퉁!
그런데 의외로 암반이라 생각했던 것이 두껍지 않은 벽처럼 울리는 소리를 냈다.
“으음. 이건 벽이로군요?”
길우몽의 모습을 한 건우가 흑마원을 보며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킁, 항상 길 수사는 제가 준비한 것들을 조금씩 앞서 가시는 것 같습니다.”
“아, 미안합니다. 나는 원래 성격이 조금 급한 편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단단한 몸을 믿고 날뛰는 무식한 놈이라서.”
“킁, 무슨 그런 말을 합니까. 길 수사의 뛰어남을 여기 있는 우리 중에 모르는 이가 누가 있다고.”
흑마원은 평소처럼 길우몽을 추켜세우기를 서슴지 않았다.
사실 용해천을 들어온 이후로 항상 그래왔었다.
매번 앞장서서 싸워야 하는 길우몽을 다른 다섯 수사들이 입을 모아 추켜세우는 것이다.
그렇게 길우몽의 기분을 맞춰서 조금이라도 더 날뛰게 하는 것이 지금껏 이들이 취해 온 태도였다.
건우도 물론 그런 사실을 알았지만 모르는 척, 길우몽이 단순하고 자기 과시를 좋아하는 성격인 양 행세를 해 왔다.
“됐습니다. 내가 뭘······. 그만 이 벽에 대한 것이나 설명을 해 보십시오.”
길우몽은 흑마원의 칭찬이 싫지 않은 표정이면서도 아닌 척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용이 죽고, 그 용이 천겁을 맞이했지만 그렇다고 용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용이 아닙니까. 쉽게 죽거나 소멸할 리가 없지요.”
“그래서요?”
태솔진이 추임새를 넣으며 흑마원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킁, 모든 것을 내어줘도 영체만 살릴 수 있으면 후일을 도모해 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수사들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용의 영체가 살아 있다는 건가요?”
행려가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은 그저 죽은 용이 남긴 기운이나 얻어 볼까 하고 온 것이지 감히 용과 맞서 싸우겠다고 온 것이 아니었다.
화신기도 감당하지 못할 영체기 따위가 영계의 용에 맞서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행려의 목소리엔 그런 걱정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아, 계속 들어 보십시오. 그러니까······.”
흑마원은 에매한 말 시작에 발끈하려는 수사들을 진정시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 결론은 용의 영체가 반생반사의 상태라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
그래서 자극에 대한 반응을 하지 못하는 상태이며 당연히 용의 기운을 훔쳐간다고 해도 아무 일도 없을 거란 설명이었다.
“그거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겁니까? 정확하냔 말입니다.”
흑마원의 설명에 위위선생이 돌다리를 두드리듯 다시 물었다.
“물론입니다. 사실 이 정보를 얻기 위해서 꽤나 많은 지출이 있었습니다. 그건 여러분도 인정을 해 주셔야합니다.”
“그야 그 때문에 우리가 얻을 용의 기운을 여덟으로 나누어 흑마원 수사가 셋을 가지기로 한 것이 아니오? 우리 다섯이 하나씩 가지고.”
“그러게요.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설마 그것조차 부족하다는 건가요?”
길우몽의 모습을 한 건우가 조금 화가 난 듯이 흑마원에게 따지자 행려 수사 역시 차가운 눈빛으로 흑마원을 노려봤다.
“킁, 아닙니다. 절대 그런 것은 아니니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어째 길 수사께선 나날이 이 흑 모를 못마땅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흑 수사가 자꾸만 욕심이 커지는 것 같으니 그런 것이 아니오. 나는 그저 약속한 대로 믿고 따르는데, 어찌 자꾸 그것에 대해 여러 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오.”
“아, 길 수사께서 그런 마음이시면 제 잘못이 큽니다. 이 흑 모가 지금 이야기를 꺼낸 것도 우리의 약속을 기억해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여덟 중에 셋을 이 흑 모가 가지기로 했는데 그것을 마땅치 않게 여길 분이 계실까봐서요.”
“됐습니다. 나는 만약 약속을 어기는 분이 계시면 그 즉시로 응징을 할 뿐입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하하. 길 수사가 아주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이 위위 역시 길 수사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크하하하. 길 수사. 굳이 그리 말하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이 탑탑 역시 헛짓을 하는 이가 있다면 이 탑으로 머리를 터트려 버릴 것이오. 그것이 나라면 내 스스로 내 머리를 터트리지.”
“호호호. 통쾌하십니다 탑탑 수사. 비록 여자지만 저 역시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맹세하죠.”
“이 태솔진도 한 올 사심이 없음을 맹세합니다.”
“킁, 길 수사. 이제 되었소? 내 마저 이야기를 해도 되겠소?”
모두가 태연한 얼굴로 맹세를 거론하며 큰소리를 치던 중에 흑마원이 길우몽을 보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고, 길우몽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길우몽은 여전히 연체술을 끌어 올려 풀지 않았는지 피부 전체가 흑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실 길우몽은 용해천에 들어온 이후로 나오금강체술을 한 번도 풀어 버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길우몽의 피부색을 원래부터 흑금색이라 여길 정도였다.
“킁, 이 벽은 사실상 그 용의 영체가 마지막으로 힘을 써서 자신의 의념공간을 실체화 시켜 놓은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여의주의 껍질이라 할 수 있지요.”
“여의주!”
“여의주라면 용이 신통을 부릴 때에 쓴다는 영보급의 보물이 아닙니까.”
“정말 여의주란 말입니까?”
여의주란 한 마디의 수사들의 동요가 크게 일어났다.
건우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용의 여의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기(靈機)도 아니고 영보(靈寶)라니!
“여의주가 뭐겠습니까? 용이 신통을 부릴 때에 쓰는 영보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실상 그 여의주란 것은 용의 의념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흑 수사, 용의 의념이 곧 여의주라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태 수사. 그 의념을 실체화해서 드러낸 것, 다르게 용의 본명법기가 바로 그 여의주가 되는 것이지요. 아시는 것처럼 본명법기는 의념공간과 하나가 되어 실체와 비실체를 오가는 것이 아닙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용의 여의주가 그런 것이란 사실은 몰랐지만 이해는 했습니다.”
탑탑이 흑마원의 말에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흑 모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오래 전에 이 용이 마지막으로 힘을 써서 자신의 의념 공간을 실체화 하고 그 안에 자신의 기운을 뭉쳐 넣었습니다. 나중에 천겁이 가신 후에 부활을 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보아하니 부활을 하지 못한 것이군요?”
태솔진이 흑마원의 말을 받았다.
그는 평소와 달리 조금 흥분한 빛이 엿보이고 있었다.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안배를 하기는 했지만 힘이 많이 모자랐던 것입니다. 게다가 천겁이 너무 강해서 결국 용의 안배는 흐트러지고 말았지요.”
“안타까운 일이군요.”
“킁킁. 그렇기는 하지만 그게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용의 기운을 얻을 기회나 있었겠습니까? 우리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흑 수사.”
흑마원이 크게 기꺼운 표정을 짓고 있는데 문득 길우몽이 정식을 하며 그를 불렀다.
“또 무슨 일이십니까? 이 흑모는 길 수사께서 그리 부르시면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앞섭니다.”
“흑 수사가 거리낌이 없으면 될 일이지요. 아무튼 이 길 모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자꾸만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길우몽의 모습에 결국 참을성이 다 했는지 흑마원의 목소리가 까칠해졌다.
“우리가 비록 여기까지 고생을 하며 왔다지만 고작 영체기 여섯이 올 수 있었던 곳입니다. 이런 곳에 지금껏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지 않습니까. 이 길 모는 그것이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킁, 길 수사. 우리 이전에도 이곳을 찾은 이들은 숱하게 많았을 것입니다. 만은사에 큰 대가를 치러야 하기는 하지만 용해천에 얽힌 이야기를 알려고 하면 못 알아낼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요?”
“하지만 여기까지 온들 어쩌겠습니까? 영체기가 아니라 화신시 여럿이 온다고 해도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예서 더는 나갈 수가 없다는 이야기지요.”
“으음, 그러니까 이 벽을 넘지 못한다는 소리군요?”
“맞습니다 길 수사.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용의 영체가 마지막으로 의념을 실체화 시킨 여의주의 벽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여의주는 령보 중에서도 최상급의 보물입니다. 령보를 모르진 않으시겠지요?”
건우는 흑마원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인계의 수사는 법기와 법보를 쓴다.
영계에선 영기와 영보를 쓴다.
선계에선 선기와 선보를 쓴다.
당연히 기(機) 보다는 보(寶)가 훨씬 귀하고 가치가 높다.
그런데 영보(靈寶)?
단순히 영기라 하더라도 화신기의 깜냥으로 어쩔 수 없을 텐데, 영보라니 언감생심이다.
“그럼 흑 수사께서는 방법이 있다는 말이겠구려?”
생각을 정리한 길우몽이 흑마원을 보며 물었다.
다른 네 명의 수사 역시 흑마원의 대답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기다렸다.
“킁, 이 몸이 용의 기운 여덟 중에 셋을 가지겠다고 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 정도 되니 여러분들도 마땅히 인정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벌써 몇 번입니까? 약속대로 하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혹여 정말로 고잣 셋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려는 것입니까?”
길우몽이 다시 분배를 거론하는 흑마원을 보며 버럭 화난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흑마원도 길우몽을 너무 자극했다 싶었던지 손을 내저었다.
“킁, 알았습니다. 내가 또 말실수를 했습니다. 자, 그만 화를 푸시고 이것을 보시지요.”
흑마원은 길우몽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겠다는 듯이 허리춤의 공간낭에서 뭔가를 꺼내 여의주의 껍질에 가져다 댔다.
지이이이이이잉!
작은 은색 원뿔 모양의 그것이 여의주 껍질에 닿자 곧 은은한 공명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킁하하. 이것이 바로 제 마지막 패였습니다. 이곳 여의주를 통과할 수 있는 통행증과 같은 것이지요.”
흑마원은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이 크게 웃었고, 그 사이에 여의주의 껍질에 출렁거리며 액체로 변했다.
“자, 들어갑시다. 오래 유지되지는 않을 테니.”
그러자 흑마원은 곧바로 그 출렁이는 여의주 껍질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어엇?”
“이런!”
흑마원이 갑자기 여의주 벽을 뚫고 사라지자 남은 수사들이 깜짝 놀라며 어째야 할지 주춤거렸다.
그 때, 탑탑과 행려, 두 수사가 재빨리 흑마원의 뒤를 따라 여의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허어, 이런!”
“······.”
“결정은 빠르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만.”
남은 위위 선생과, 태솔진, 길우몽이 서로 눈빛을 나누었다.
그리고 곧이어 위위선생, 길우몽, 태솔진의 순으로 여의주 벽에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