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24화 (124/499)

124. 독을 품고 있더라도 처음에는 화기애애해야지.

“마수 수사의 수련 공법을 거래하고 싶다는 수사가 있다고요?”

건우는 혹설천 대성의 마사를 만나는 중이었다.

건우가 거래 목록에 올린 세 가지 수련 공법 중에 마수 수사의 공법을 원하는 이가 있다는 연락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래 무얼 가지고 거래를 하자고 합니까?”

어차피 상대는 알 수 없다.

건우가 세 공법을 올렸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건우 또한 자신의 물건을 사려는 이의 신분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거래의 대가뿐이다.

“고대 원(猿)의 진혈을 내어 놓겠다 합니다.”

“음? 진혈?”

건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용랑와 혈원을 위해서 진혈을 구입 목록에 올리기는 했다.

하지만 화신기 수사의 공법과 진혈은 가치의 차이가 심하지 않은가.

“진혈은 상고 영수의 것으로 능히 길 수사의 마수 수련 공법과 교환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만은사의 감정을 통해 확인을 한 바입니다.”

건우가 세 수련 공법을 판매 목록으로 올릴 때에도 만은사의 감정을 받았다.

물론 공법 전체를 공개한 것은 아니고 그 일부를 보여서 가치를 평가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 공법과 교환이 가능한 진혈이라니.

건우의 호기심이 불쑥 솟아올랐다.

“어떤 영수의 진혈인지 알 수 있소?”

“광혈마원(狂血魔遠)의 진혈입니다.”

“으음. 광혈마원? 어째 영수가 아니라 마수인 것 같소만?”

건우는 그 이름에서 전해오는 느낌만으로 그것이 마수 계열인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 마수 역시 경지가 높아지면 영수라 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수인데 감히 얕잡아 볼 수는 없지요.”

마사는 건우가 마수의 진혈이라 하여 거래를 거부할까 걱정인 듯이 사족을 달았다.

하지만 건우는 마수의 진혈이란 말에서 이미 거래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역시 마수의 수련 공법을 원하는 수사라 그런지 음흉합니다. 내가 마수의 진혈을 구해서 어디에 쓴답니까? 그런 것은 그쪽 수사나 쓰라고 하십시오.”

“음, 길 수사께는 전혀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마사는 건우의 차가운 반응을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내겐 마수의 진혈은 필요가 없습니다.”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그 쪽 수사가 혹여 마수의 진혈이라 망설이는 기색이 있으면 전해 달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

“사실 그 진혈은 그 수사가 영체기에 오르기 위해서 구했던 것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그 마수 수사가 썼던 진혈이다? 그게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랍니까?”

“그런데 그 진혈의 양이 넉넉해서 영체기 완경까지 쉽게 오를 수 있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으음?”

“이미 길 수사께서 마수의 수련 공법을 가지고 계시니, 이번에 그 광혈마원의 진혈을 넉넉히 얻을 수 있다면 영체기 완경까지 곧바로 오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광혈마원의 진혈을 이용해서 마수의 수련 공법을 익혀보는 것이 어떠냐, 이 말이군요?”

건우는 광혈마원의 진혈이 넉넉하다는 것에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다면 자신이 정말로 마수 공법을 익혀서 영체기 완경을 이루고, 곧바로 화신기에 도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경지의 완경에 이르기만 하면 수미산겨자씨의 반영세계에서 산적 스승을 만날 수 있다.

산적 스승은 이번에도 건우에게 화신기에 이를 가장 적합한 공법을 줄 것이다.

‘정말 그럴까?’

하지만 막상 그런 선택을 하려니 걸리는 것도 있었다.

지금껏 산적 스승에게 배운 공법은 정말 무난한 것들이며 또한 곧고 바르며 정심한 것들이었다.

마수 공법과는 전혀 다른 것.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지. 아무리 광혈마원의 진혈이 넉넉히 있다 해도 마수 공법을 새로 익혀 영체기 완경에 이르는 것은 적잖은 시간이 걸릴 터. 이미 영체기 후기에 이른 내가 그렇게 할 이유는 없다.’

마수 공법을 익히면 분명 파괴적인 힘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그 쪽 공법의 특성이 흉하고 파괴적이며 변칙적이다.

그런 점에서는 끌리는 면이 있긴 하지만 건우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필요 없소. 지금 내 경지에 새로 마수 공법 따위를 익혀 스스로를 혼잡스럽게 만들 이유가 없지.”

“음, 그렇다면 거래를 없던 것으로 하겠다는 겁니까?”

“광혈마원의 피에 더해서 내어 놓을 것이 없다면 거래는 파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협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거래를 하려면 광혈마원의 진혈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보물을 곁들여 내 놓아야 할 것이오. 내게 광혈마원의 진혈은 그 정도 가치 밖에 없는 것이니.”

“끄응. 알았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혹설천 대성의 마사는 앓는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하지만 건우가 거래를 파한다고 해도 마사로선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만은사에게 감정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가치란 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쪽에서 결정하는 것이니까.

* * *

망천유역의 또 다른 지역 만은사 밀실.

“적(笛) 견사(繭絲). 저 쪽에서 광혈마원의 가치를 그리 낮게 취급했다는 말입니까? 넉넉히 영체기 완경에 이를 정도의 양을 내 놓았는데요?”

흑은색의 털이 가득한 검은 얼굴의 수사가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묻고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이는 꼬챙이처럼 가는 몸을 지닌 적씨 성(姓)의 만은사 소속 견사였다.

“그렇습니다. 그쪽에선 광마혈원의 진혈이 그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킁! 일이 고약하게 되었군요.”

“말씀드린 것처럼 그만한 가치의 보물을 더하지 않으면 거래는 불가능합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거래가 무산되어 아쉽습니다.”

“킁!”

적 견사의 말에 마주 앉은 수사가 불쾌한 듯이 콧소리를 크게 냈다.

그는 얼굴에 털이 많았고, 얼굴 자체도 검은 색이었는데, 생긴 것이 고릴라에 가까웠다.

그는 원래 원숭이 마수에서 수사가 된 마수 수사였던 것이다.

“킁, 그럼 이렇게 좀 해 주시오.”

“무엇을 말입니까? 우리 만은사는 고객의 정보를 노출하지 않습니다.”

“킁, 그걸 누가 모릅니까? 대신에 적당한 사람에게 연락을 줄 수는 있지 않소.”

“그러니까 그 마수 공법을 지닌 수사에게 연락을 넣어 달라는 말입니까?”

“그렇소.”

“어떤 연락입니까?”

“이번에 내가 원정을 가려고 하오.”

“원정이요?”

“귀한 보물이 있는 곳을 알았는데, 그곳이 조금 위험한 곳이오. 망천유역의 금지들 중에 한 곳이니 위험이야 말해 무엇하겠소.”

“그러니까 망천유역의 금지들 중에 한 곳으로 보물을 찾아서 원정을 떠난다는 말이군요?”

“물론 가는 길에 보이는 수련 자원들을 취하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소. 금지에 사는 여러 고계 마수나 요수들을 잡으면 그 보상이 적지 않을 것이오.”

“그건 사냥과 보물 탐색, 두 가지 목적의 패를 만들겠다는 말이군요?”

“그렇소.”

“그래서 그 소식을 마수 공법을 가진 수사에게 전해 달라?”

“그게 만은사의 규칙을 어기는 것은 아니지 않소?”

“그렇기는 합니다만, 아슬아슬하긴 하지요.”

“그래서 어렵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말이야 넣어 볼 수 있지요. 하지만 그 쪽 마사를 통해야 하니 저쪽 수사도 어느 정도 흑마원(黑魔遠) 수사의 의도를 짐작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야 쓰겠소? 적 견사가 저 쪽 마사에게 적당히 언질을 주면 될 일이 아닙니까. 이번 원정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만 함구하면 저 쪽의 수사가 무얼 알 수 있겠습니까?”

“음, 그야······.”

“내, 성의 표시는 할 것이니 너무 그렇게 뜸을 들이지 마십시오.”

“하하. 이거 자칫하면 흑마원(黑魔遠) 수사에게 미움을 사겠군요.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십시다.”

“내, 이번 일이 잘 끝나면 더욱 후하게 선물을 할 터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어이구, 그 말이 참 좋습니다. 보상이 아니라 선물이라니 말입니다.”

“킁! 보상이라니요? 적 견사가 무에 보상 받을 일을 하기라도 한답니까?”

“그렇지요 그래요. 저는 항상 규칙을 잘 지키지요. 아무렴요.”

흑마원과 적 견사는 서로 얼굴에 금칠을 하며 좋다고 웃었다.

그리고 몇 달 후, 건우는 혹설천 대성의 마사로부터 새로운 연락을 받았다.

* * *

망천유역(忘川流域)은 굉장히 큰 역(域)이다.

그 안에는 엄청난 숫자의 천(川)이 있으며 그 중에는 화신기 수사들도 꺼려는 금지가 여럿 있다.

그 금지 중에 용해천(龍骸川)이란 곳이 있다.

뜻을 풀이해 보면 용의 뼈로 이루어진 강이란 뜻인데, 이곳 망천유역에서 강이란 그냥 하나의 지역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용해천은 용의 뼈로 이루어진 지역이란 뜻이 된다.

“수백, 수천 만 년 전. 사실 정확히 연원을 알기 어려운 과거에 이곳에 용 한 마리가 죽어서 떨어졌습니다.”

흑마원이 다섯 명의 수사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다섯 수사는 모두가 흑마원이 만은사를 통해서 이곳에 모은 수사들이었다.

다섯 수사는 흑마원 수사가 공고한 용해천 탐사와 사냥, 채취 제안을 받아들인 이들이었다.

물론 흑마원 수사는 그 보물의 존재를 어느 정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만은사에 제출했고, 만은사는 그것을 공증해 주었다.

그래서 이곳에 모인 수사들 중에 흑마원 수사가 말한 보물의 존재를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다만 그 보물이 있는 곳까지 가는 여정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할 거란 사실 때문에 긴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용의 정확한 정체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요. 그 용이 영계의 존재라는 것 말입니다.”

“그래요?”

흑마원의 말을 학자풍의 옷을 입은 인간 수사가 받아 주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계로 떨어지면서 법칙의 제약을 받아 죽음에 이른 것입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상위 계에서 하위 계로 오게 되면 제약이 굉장히 심하게 걸린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용이 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라면 말이 되지요.”

“뭐 용해천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야 다들 알 테니 그만하고 넘어갑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흑마원 수사.”

흑마원과 학자풍 수사의 대화에 새로운 수사가 끼어들었다.

“음, 소문에 듣던 대로 성격이 급하십니다. 탑탑(搭塔) 수사.”

“내가 누군지 알아차린 모양이오?”

“탑탑 수사의 외모야 워낙 유명하니 어찌 모를 수 있겠소?”

“그거야 흑마원 수사 역시 마찬가지 아니오?”

흑마원 수사는 흑은의 털이 가득한 검은 고릴라 얼굴에 체형도 고릴라와 비슷하다.

거기에 탑탑이란 수사는 피부가 돌로 된 듯이 거칠고 덩치가 컸는데 어깨에 16층의 탑 모양 둔기를 지고 있었다.

“둘 모두 서로 얼굴에 침 뱉는 이야긴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흑마원 수사 계속하시지요.”

이번에는 조금 전까지 흑마원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던 학사풍의 수사가 나섰다.

그는 손에 쥘부채를 드록 있었는데 그 부채에는 특이하게도 검고 서늘한 기운이 맺혀 있었다.

“킁, 알았소 위위(僞瑋)선생. 그럼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여유로 영계의 용이 이곳에 떨어져 죽었는데, 그 후 용의 몸은 천지법칙의 천겁을 수 백 년 동안 받아서 결국 이렇게 흙과 돌로 돌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용해천 전체가 원래는 용의 몸이었던 것이 천지법칙의 천겁에 의해서 흙과 돌이 되었다는 거요?”

이번에 흑마원에게 질문은 던진 이는 다부진 체격에 눈과 입의 끄트머리가 아래로 처진 우스꽝스런 얼굴의 사내였다.

그 역시 몸의 색이 검었는데 은빛이 아닌 금빛을 은은하게 머금고 있었다.

다른 아닌 건우의 변신인 길우몽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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