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22화 (122/499)

122. 으음, 겨우 이것뿐이라니, 줍줍의 아쉬움.

낙생역은 좁았다.

하루에도 십여 만 리를 유유히 날아다닐 수 있는 건우에게 고작 수 천만 리의 낙생역은 손바닥 만 한 크기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화신기 수사들이 거처로 삼았다는 곳을 찾는 것도 금방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화신기 수사들이 모두 낙생곡(落生谷)이라는 같은 장소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처음 왔던 화신기 수사가 동부를 지어 살다가 사라지고, 오랜 세월 지나 다시 온 수사 역시 같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후에 또 다른 수사도 와서 같은 곳을 사용했고.

“여기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놨나? 왜들 모여들고 그랬을까?”

건우는 낙생곡 입구에서 조심스럽게 의식을 펼치며 중얼거렸다.

건우의 의식이 계곡 안으로 밀려들어가자 그곳에 펼쳐진 갖가지 금제와 봉인들이 느껴졌다.

“으음. 제법 침입을 막기 위한 금제가 다양하긴 하지만 그리 대단할 것은 없군. 어째서 이런 식으로?”

건우는 계곡에 설치된 금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금제가 약했다.

그러다가 건우의 생각이 낙생역의 현실 상황에 닿자 의문이 풀렸다.

“그렇군. 이곳 낙생역엔 고작해야 성단기 꼬마 녀석들이 전부였지. 그런 놈들에겐 이런 정도의 금제도 감히 어찌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거야. 혹여 영체기라도 나온다면 모를까, 이곳 녀석들 중엔 성단기 후기에 이를 놈도 찾기 어려우니 뭐.”

건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가 낙생역을 가로질러 오면서 이곳의 수준을 파악해 본 결과가 그랬다.

이곳 수사들이 가지고 있는 수련 공법이나 축적된 수련 방법들을 보면 그 한계가 명확했다.

원래 그것들도 이곳을 찾은 세 명의 화신기 수사들이 이곳 수사들을 부려 먹기 위해 조금씩 가르침을 베푼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절대 영체기 수순이 될 여지는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가르침을 크게 베풀 이유도 없었겠지. 마땅히 받은 만큼 주는 것이 옳을 뿐.”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낙생역의 저계 수사들에 대한 연민을 떨쳐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낙생곡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제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해도 화신기 수사가 설치한 것.

수수깡 꺾듯이 바스러뜨리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건우가 낙생곡 안쪽까지 모든 금제를 풀어낸 것은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후였다.

입구에 들어선 지 석 달 후, 건우는 낙생곡 동부의 전실에 서 있었다.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 동부의 모습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건 뭐지? 뭔 폐허만 남았어?”

건우는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동부의 전실 안쪽은 불타고, 무너지고, 부서진 흔적만 가득했다.

그곳엔 금제나, 진법 혹은 술법도 흔적만 남았다.

“부서진 법보와 법기, 깨진 진법만 남았을 뿐이구나. 그리고 저 중앙에 흩어진 것은 화신기 수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인가?”

건우는 상황을 살핀 후에 한숨을 쉬듯 중얼거렸다.

“무슨 일인지 보지 않아도 알겠군. 말 그대로 생명이 떨어지는 곳이었어. 낙생(落生). 이곳에 온 수사들은 죽음을 직감하고 마지막으로 생을 정리하기 위해서 온 게야. 이곳 낙생역은 일종의 코끼리 무덤 같은 곳이었어.”

지구엔 코끼리들이 죽을 때가 되면 아무도 모르는 코끼리들의 무덤을 찾아간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 대천세계의 한 곳에 화신기 수사들의 코끼리무덤이 진짜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코끼리는 상아라도 남긴다지만 이곳 화신기 수사들은 남긴 것이 거의 없었다.

“이래선 남은 것도 거의 없겠네.”

건우가 투덜거렸다.

원래 마지막을 각오한 이들은 뒤를 남기지 않는 법이다.

설마 죽기를 각오하고 태연하게 천겁을 받아들이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천겁을 이겨내려 애를 썼을 것.

그러니 그 준비를 하느라 쓸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했을 것은 꼭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곳에 세 명의 화신기 수사들이 시기의 차이를 두고 찾아왔다지만 그들이 남긴 것이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했다.

아니 첫 번째, 두 번째 수사가 조금이라도 남긴 것이 있었더라도 세 번째 수사가 모두 끌어 썼을 것이다.

“그래도 수련 자원이니 보물 같은 것은 남기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의 지식은 좀 남지 않았을까?”

건우는 혹시 하는 생각에 동부의 전실과 부서진 연공실을 차근차근 살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으로 유명을 달리한 화신기 수사가 남긴 유언을 찾는데 성공했다.

물론 건우는 성급히 그것을 취하진 않았다.

최대한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은 없는지 살피고 또 살핀 후에 그것을 확인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군. 영계 비승의 꿈은 꺾이고, 천겁은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화신기 수사가 마지막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 거였어.”

마지막 수사는 자신을 령인완(笭引玩)이라 소개했는데 망천유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수사라 했다.

기록에 의하면 대략 7천 년 정도 전에 이곳에서 천겁을 맞은 이였다.

그의 기록에는 건우가 예상했던 그대로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천겁을 넘길 자신이 없었던 수사들이 마지막을 조용히 정리하기 위해 적당한 곳을 찾다가 이곳 낙생역으로 모였다는 것.

그것이 우연히 령인완 자신까지 셋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령인완은 천겁에 대비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에 대해서 주로 기록을 남겨 놓았다.

그 이유는 자신의 기록을 읽을 수사도 자신처럼 천겁을 넘기 어려워 마지막을 정리하기 위해서 왔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건우는 지금껏 모르던 천겁의 무서움을 한층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그것에 대비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들에 대해서도.

하지만 화신기에 오른 수사들은 대부분 세 번의 천겁은 어떻게든 이겨내는 모양이었다.

정말 능력이 부족한 경우엔 두 번째 천겁에서 죽음을 맞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인간 수사를 기준으로 하면 보통 천겁은 영체기 이후로 3천 년에 한 번씩 내린다.

그런데 영체기 수사는 첫 천겁도 이겨낼 수 없기에 영체기 수사의 수명이 3천년이라 하는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는 영체기임에도 천겁을 이겨낸 수사가 존재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건 중요한 것은 화신기가 되어 겪게 되는 다섯 번째 천겁.

세 번까지는 거의 대부분이 이겨낼 수 있고, 네 번째엔 절반 이상이 실패하고 죽는다.

하지만 다섯 번째의 천겁은 이겨 내는 이가 백에 하나도 되지 못한다.

그것을 일컬어 대천겁이라 했다.

건우도 대천겁에 대한 내용을 읽은 후엔 온 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화신기도 되기 전에 대천겁을 걱정하다니. 우스운 일이지.”

하지만 건우는 곧 정신을 추스르고 령인완(笭引玩)의 남은 기록을 수습했다.

령인완의 기록 대부분은 대천겁에 대한 내용이었고,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갖가지 전설 같은 보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런 보물들을 만드는 것은 지금 당장 급한 일은 아니야. 나는 7만년 수령의 형자수란과(炯紫水蘭果)를 먹어서 이미 영체기로도 1만 년을 살 수 있어. 천겁은 1만 년 후에나 찾아올 텐데, 벌써부터 걱정할 일은 아니지. 그 사이에 재료들을 모아서 대천겁을 이길 수 있는 전설의 법보들을 만들면 그만이야.”

건우는 그렇게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령인완의 남은 기록에서 이곳에서 죽은 세 명의 화신기 수사들이 익혔던 수련 공법을 찾았다.

다행히 령인완은 중요한 수련 공법들은 고스란히 기록해 남겨두고 있었다.

“첫 화신기 수사는 그 태생이 마수라서 그의 공법은 나와 맞지 않아. 그리고 두 번째 수사도 영족 출신이라 그의 공법은 참고할 만은 하지만 익힐 것은 되지 못해.”

결국 남은 것은 령인완이 수련했던 공법뿐이었다.

하지만 령인완의 수련 공법은 평범했다.

영체를 끝없이 단련해서 화신으로 만드는 그 공법은 그리 대단할 것이 없었다.

지금 건우가 끊임없이 영체를 수련하고 있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래서는 별 도움이 안 되는데? 이런 공법으로 화신기에 올랐으니 결국 천겁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서 죽었겠지.”

건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좀처럼 영체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련 공법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못마땅한 것이다.

자그마치 화신기 수사 셋의 수련 공법을 얻었는데, 그 중에 하나도 쓸 만한 것이 없다니.

“휴우, 결국 남은 것은 그저 참조할만한 수련 공법 몇 가지와 천겁과 그에 대비할 수 있는 여러 방책들 정돈가?”

그것만 하더라도 어디서도 쉽게 구하지 못할 큰 수확이다.

하지만 건우의 안타까움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명색, 화신기 셋의 유산을 수습한 격인데, 겨우 이 정도라니.

그런데 건우가 그렇게 령인완의 기록을 모두 수습했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령인완의 유언이 담긴 옥간 깊은 곳에 뭔가 또 다른 것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가히 영체기 수사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의식을 지닌 건우였기에 겨우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깊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었다.

건우는 극도로 집중하며 의념을 끌어올려 그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 * *

“어르신, 말씀하신 것들을 구해왔습니다.”

건우가 아공간에서 낙생곡의 입구로 나서자 성단기 수사 하나가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건우는 그가 내미는 공간낭을 끌어당겨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아공간으로 던져 넣었다.

“제법 충실하구나. 애를 많이 썼겠어.”

건우가 그 성단기 수사를 칭찬했다.

그러자 엎드려서 고개도 못 드는 성단기 수사가 기쁨에 몸을 떨었다.

건우의 칭찬 뒤에는 반드시 포상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여기 있다. 가지고 가거라.”

건우가 손바닥을 저어 아공간에서 옥간 하나를 꺼내 성단기 수사에게 날렸다.

그리고 그 옥간이 성단기 수사의 손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손을 저어 성단기 수사를 어디론가 보내 버렸다.

괜히 눈앞에서 감사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굽신 거리는 꼴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고작 성단기 따위가 구해오는 것이지만 나름 그 수준이 높아. 확실히 혼돈역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라 그런지 수련 자원이 풍부해.”

건우가 낙생곡에 머문지 벌써 백여 년이 흘렀다.

건우가 이곳에 자리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낙생곡의 새로운 어르신에 대한 소문이 낙생역 전체에 퍼졌고 성단기 수사들은 곧바로 찾아와 인사를 했다.

그때, 성단기 수사들은 선대의 조상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건우를 찾아오며 빈 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수천 년을 모아온 수련 자원을 바리바리 싸들고 건우를 찾는 것이다.

일종의 예물인 셈인데, 건우는 그것을 받고는 쓸 만한 수련 공법들을 던져주곤 했다.

건우에겐 그 동안 여러 경로로 영체기 수사들로부터 얻은 공간낭들이 많았다.

당연히 그들이 모아놓은 수련 공법이나 술법, 연단술, 제련술 등을 담은 옥간도 넘쳐날 지경이었다.

비록 지금의 건우에겐 별로 쓸모가 없지만 이곳 낙생역의 수사들에겐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것.

수련 자원이나 보물을 내어주지 못해도 공법이나 연단술, 제련술 따위의 지식 정도야 못 줄 이유가 없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건우가 던져주는 보상은 꽤나 후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낙생역 수사들은 벌써 수십 년 동안 쓸 만한 수련 자원이나 특이한 것들을 모으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었다.

조금 전에 건우를 만나고 간 성단기 수사 역시 낙생역에서 손에 꼽을 수도 문파 하나를 이끄는 자로, 그 동안 제자들을 동원해서 모은 자원들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준비는 거의 끝이 난 듯 하네. 이제 큰 역으로 나가서 만은사(萬隱絲)를 만나 봐야지. 가까스로 영체기 후기에도 발을 디뎠으니 한동안 경지 상승도 어려울 테니까.”

지난 백 년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다.

이제 영체기 후기까지 올라선 건우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자원이 소비되었으니, 이제 다시 수련을 위한 자원 마련에 나서야 할 때였다.

낙생곡의 어린 수사들이 도움이 되고 있지만 기본적인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 뿐, 특별한 재료는 거의 얻기 어려웠다.

아주 간혹, 가지고 온 놈들도 모르는 것이 섞여 있지만 그런 우연을 마냥 기대하며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시 수련도 혼자 할 수는 없는 거야. 경지가 높은 수사들이 많이 모여 있어야······.”

그래야 서로 도울 수 있다.

그건 수도계의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수도계 전체의 역량이 꺾일 정도의 혈겁은 힘을 모아 벌하는 것이 아닌가.

“만은사(萬隱絲)는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서비스 단체지.”

령인완의 옥간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내용.

그것은 바로 만은사에 대한 것이었다.

만은사는 아주 은밀한 집단으로 수사들 사이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실로 이어준다는 뜻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정보 수집, 판매, 연결, 거간 등의 일을 했다.

그들을 통한다면 굳이 거대 문파에 속하지 않아도 원하는 정보를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가 필요하지만 차라리 그 쪽이 어딘가에 묶여 지내는 것보다 나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 건우였다.

그리고 그런 결정의 바탕에는 만은사라는 집단이 그만큼 유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령인완의 기록에 따르면 만은사는 그야말로 세상 모든 것을 연결하는 집단이었다.

“게다가 이젠 루야나 용랑, 혈원도 깨어날 때가 되었고, 검선의 유산을 완성하기 위한 자원도 찾아야 하지.”

건우는 무엇보다 검선의 유산을 성장시키는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 동안 여유가 없어 내버려 뒀다가 낙생역에 머무는 동안에 검선의 유산을 성장시켰다.

그것도 갖은 재료를 투입해서 두 번의 성장까지 이끌어 냈다.

이제는 한 번의 성장만 남은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어찌 변할지 무척 궁금했다.

두 번의 성장만으로 벌서 최상급 법보의 위력을 보였다.

그런 것을 한 번 더 성장시킬 수 있다니.

건우는 어쩌면 영계 비승을 하기도 전에 영기(靈機) 급의 보물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것을 위한 재료는 엄청나서 건우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만은사와 접촉하려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만간 정리를 하고 떠나야겠군. 어린 것들에게 볼 일이 있으면 서두르라고 말도 전해야겠지?”

말없이 떠나버리면 낙생역의 어린 수사들이 적잖게 헛걸음을 할 것이다.

그 전에 정리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자원을 모으느라 수고한 공을 헛것으로 만들 수야 있겠나.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괴뢰 수십을 불러 낙생역 곳곳으로 날려 보냈다.

괴뢰들이 알아서 건우의 뜻을 낙생역 전역에 전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건우는 다시 낙생곡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아공간으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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