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21화 (121/499)

121. 법장두는 위험해, 그런데 여긴 어디?

“잘못 건들면 위험하다.”

건우는 아공간에 들어와 백일 동안 법장두(法杖頭)를 살폈다.

법장두(法杖頭)는 건우가 지팡이 머리에 붙인 이름이었다.

‘법칙을 담은 지팡이 머리’란 의미였다.

자신의 의념공간인 아공간에서는 밖에서 살피는 것보다는 훨씬 자세하게 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건우였다.

그럼에도 건우가 법장두(法杖頭)에 대해 알아낸 사실은 많지 않다.

그저 끝없이 생기 혹은 생장의 기운을 뿜어낸다는 것과 그 안쪽에 그것을 하나의 질서, 규칙으로 만든 힘이 깃들어 있다는 정도.

그것이 건우가 알아낸 전부였다.

법장두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일정 영역을 풍요롭게 만든다.

뭔가 생명체를 키운다면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보물인 것은 분명했다.

건우의 아공간에서도 영초를 키우는 곳과 연결한다면 더없이 좋은 효과를 낼 것이다.

“일단은 그냥 두는 수밖에 없나?”

말은 포기한 듯, 미루는 듯 하면서도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한 건우였다.

법칙의 힘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그 이상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건우의 인지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무엇인가였다.

“어떻게든 이것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건우는 눈을 감고 흥분을 가라앉히며 정신을 굳건히 했다.

그리고 한참 후 다시 번쩍 눈을 뜨며 말했다.

“영계 비승 따위도 하찮게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말을 마친 건우는 다시 눈을 감고 심신을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단지 법칙의 힘이란 것을 궁구할 결심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마음과 몸의 균형이 뒤흔들렸던 것이다.

며칠 후.

건우는 법장두를 아공한 한 곳에 격리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생기와 생장의 힘만 아공간에 흩어져 있는 영초밭으로 통하게 연결했다.

아공간이 의념공간이니 그런 식으로 공간을 나누고 또 기운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영초 재배가 수십 배는 쉬워지겠지. 그리고 법장두를 직접 무기로 쓰는 것은 곤란해. 차라리 그 종 선생처럼 괴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법장두의 생기나 생장의 힘이 유용하긴 하지만 생명체가 쓰다가는 자칫하면 녹주괴물의 꼴이 나기 쉬웠다.

나오금강체술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건우라 하더라도 그 법칙의 힘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되면 녹주괴물처럼 몸이 괴상하게 생장하다가 스스로 붕괴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괴뢰를 쓰면 재생이나 생장의 특별함을 버려야 하니 너무 손해가 커. 음, 결국 아직은 감당하기 어려우니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반 년을 법장두와 씨름하다가 내린 결론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한 번 결론을 내린 건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매달려 미련을 가져봐야 몸과 마음, 시간만 버릴 뿐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우는 곧바로 다시 아공간 밖으로 나와 부양도를 소환해 길을 나섰다.

그 사이에 보라색 사막은 혼돈역의 거친 바람에 날려갔는지 그 규모가 많이 줄어 있었다.

건우는 그것을 보고 보라색 사막이 사실은 녹주괴물이 먹이 사냥을 위해 만든 환경이었음을 깨달았다.

“혼돈역은 정말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곳이구나. 고작 녹주괴물 따위의 준비도 이러한데 다른 괴수들은 또 얼마나 대단할까.”

건우는 다시 한 번, 혼돈역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그리고 한층 조심스럽게 부양도를 움직였다.

* * *

30년 후.

쿠르르르릉! 콰과과과광!

“죽어랏!”

콰지직! 콰직! 콰직!

나오금강체술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고, 은행나무 분재 법보까지 띄운 건우가 금속 봉을 휘두르며 좌충우돌 하고 있었다.

건우가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은 부양도의 7층 누각 앞.

그곳까지 혼돈역의 괴수들이 밀고 들어온 다급한 상황인 것이다.

“고작 황황충(晃蝗蟲) 따위가!”

후우웅! 콰직! 콰자작!

건우가 봉을 휘두를 때마다 메뚜기와 잠자리를 섞어 놓은 것 같은 곤충 괴물들이 터져 나갔다.

크기가 사람보다 큰 그 괴충들은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부양도의 방어를 뚫고 들어올 정도였다.

수사들의 경지로 따지자면 고작해야 성단기 초기 정도.

하지만 그 숫자가 물경 수백 만을 넘어서니 영체기 중기의 건우와 부양도가 함께 나서도 조금씩 밀린 결과였다.

“끄응, 몸을 좀 풀어볼까 했더니, 결국 부양도까지 벌레들을 들이고 말았네.”

봉을 크게 휘둘러 주변의 벌레들을 날려버린 길우몽이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그리곤 손가락을 튕겨 아공간을 열었다.

“모두 죽여버려라!”

그리고 명령을 내리자 부양도의 넓은 평지에 길우몽을 닮은 괴뢰 수 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괭이나 낫, 모종삽, 물통, 쇠스랑, 망태기 따위를 든 모습으로 조금 전까지 밭에서 일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황황충들과 싸움을 벌이는 괴뢰들이었다.

생각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하는 괴뢰들이니 당연한 모습이었다.

“이걸로는 안 되겠지?”

건우는 아직도 부양도의 방어막 밖에 까맣게 들러붙어 부양도의 금제와 공방 진법, 영기 따위를 갉아 먹고 있는 황황충을 노려봤다.

“어디 한 번 시험을 해 보는 것도 좋겠지.”

건우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건우 앞에 괴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겉으로 보기엔 일반 일꾼 괴뢰와 다를 것이 없지만 이 괴뢰는 몸 속에 최상급 영석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부여한 능력 사용에 필요한 영기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건우가 조심스럽게 아공간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꺼낸 것은 바로 법칙의 힘을 품은 법장두였다.

“가랏!”

건우가 그것을 괴뢰의 손에 들려주고 명령을 내렸다.

최상급 영석을 품은 괴뢰는 법장두를 들고 훌쩍 날아올라 부양도의 공방 결계의 경계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경계에 자리를 잡더니 법장두를 앞으로 내밀고 영기를 부여했다.

스화화화화화확!

지이이이이이잉!

그 순간 법장두에서 엄청난 생기와 생장의 힘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힘은 부양도 밖으로만 뻗어나가 수많은 황황충들에게 스며들었다.

키키키킷 키릭 키릭! 키리릭!

키리 키리, 푸라, 라라라라락!

“역시!”

건우가 유심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허벅지를 치며 기뻐했다.

법장두에서 뿜어진 기운이 황황충들에게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황황충들은 순식간에 기운이 급증했다.

이전에는 성단기 초,중기였다면 이제는 중,후기를 넘어 완경에 이를 정도로 강력해지고 있었다.

당연히 상황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벌써 부양도의 방어가 크게 뒤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건우가 허벅지를 치며 기뻐한 것은 황황충들의 그 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덩치가 커지고 더 사나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이쯤에서 그만이라는 것이 없다.

이미 괴뢰는 법장두를 들고 건우의 곁으로 복귀했다.

그럼에도 한 번 그 기운을 맞은 황황충들의 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펑! 펑! 펑펑펑펑펑!

퍼버버버버버버버벙!

끔찍한 폭죽놀이가 시작되었다.

황황충들 대부분이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역시 위험해.”

건우는 다시 조심스럽게 법장두를 괴뢰에게서 빼앗아 아공간에 던져 넣었다.

법장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우가 몇 번의 실험을 통해 알아낸 바에 의하면 법장두를 자극해서 생기와 생장의 기운을 억지로 분출시키면 그 기운에 법칙이 깃든다.

그런데 문제는 그 법칙의 힘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생명체든 그 법칙의 힘을 맞으면 끝없이 생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걸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펑, 퍼버벙! 퍼버버버벙!

“저렇게 되는 거지.”

건우는 숫자가 확 줄어버린 황황충 무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쯧, 실험도 끝났으니 이젠 마무리 정리를 해야겠지?”

건우는 다시 나오금강체술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고, 이번에는 신체의 크기도 크게 부풀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20미터 크기의 길우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길우몽의 등 뒤로 크기가 커진 은행나무가 자리를 잡았다.

“흐아아아압!”

길우몽이 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 몸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은행나무가 은은하게 빛을 머금더니 일순간 사방 수십 리의 공간을 장악했다.

동시에 그 공간 안에 갇혀버린 황황충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원래 나무엔 벌레를 죽이는 성분이 있기 마련이다. 크하하하 어떠냐!”

길우몽의 모습을 한 거인이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런 중에 황황충들 대부분은 까마득한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고, 건우의 일꾼괴뢰들은 부양도에 들어왔던 황황충들을 모두 정리했다.

“별 것도 아닌 것들이!”

건우는 다시 몸을 줄이며 7층 누각의 지붕 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번엔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다.

사실 황황충 떼를 한 번에 죽인 은행나무 분재의 술법은 막대한 영기가 필요했다.

그 전에 법장두로 많은 수를 줄어 놓지 않았다면 아무리 의식의 힘이 강대한 건우라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은행나무 분재의 술법은 그 범위와 범위 안에 있는 대상의 정도에 따라 영기 소모가 달랐는데, 지금도 아슬아슬했던 상황이었다.

키리리리리리 키리리리리!

“음? 뭐지?”

그 때, 건우는 저 멀리 몇 마리의 황황충이 구름 너머로 날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서로 연결된 무리의 의지로 부양도를 공격하다가 그 의지를 유지할 숫자도 되지 않으니 도망을 가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 중에 몇 마리가 건우의 감각을 건드렸다.

건우는 급히 의식을 펼쳐 도망가는 황황충 무리를 살폈다.

“으음? 법칙의 힘을 맞고도 버틴다고?”

건우가 문득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도망가는 황황충 중에 몇 마리는 법장두의 기운에 노출되었던 놈들이었다.

그런데 워낙 뒤쪽에 있어서 그 기운을 극히 일부만 받은 것이다.

“그래봐야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그 법칙의 힘이 작용을 할 테니까.”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관심을 끊어버렸다.

혹시 법칙의 힘을 견디고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야 있나.

하지만 그것을 살피기 위해서 황황충들을 잡아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실험이 필요하다면 이후에 더 나은 대상을 찾아서 돌연변이를 만들어 보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혼돈역에 새로운 괴수가 탄생한다고 한들, 그게 건우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혼돈역에 어떤 괴수가 얼마나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텐데, 그 중에 괴수 하나 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건우는 멀어지는 황황충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다가 호흡을 가다듬고 부양도를 출도령패로 돌려보낸 후에 자신은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요양을 할 거라면 안전하게 아공간을 쓰는 편이 좋으니까.

* * *

“여기가 망천유역이 아니라고?”

“네, 어르신. 이곳은 망천유역이 아닙니다.”

“그럼 여기는 어디냐?”

“이곳의 이름은 낙생역(落生域)이라 합니다.”

“낙생역? 그런 곳이 있었던가?”

“네네, 어르신께서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고작해야 수 천만 리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작은 역(域)이라 다른 역과의 전송진도 없는 곳입니다.”

“역간 전송진이 없다고?”

“그렇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너는 다른 역들에 대해 제법 아는 듯도 하다만? 고작 축기기 주제에?”

건우는 발밑에 엎드려 고개를 처박고 있는 축기기 수사를 내려 봤다.

“그, 그것은 어르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수도계에 널리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음? 어르신들에 대한 이야기?”

“네, 그, 그렇습니다. 어르신.”

“말해 보거라.”

건우가 아공간에서 의자를 불러 앉으며 축기기 수사에게 명을 내렸다.

“이곳 낙생역에는 간혹 지고한 경지의 어르신 분들이 간혹 찾아오시곤 합니다.”

“그 경지가 어느 정도나 되느냐?”

“감히 전해 듣기로 화신기 어르신들이라 했습니다.”

“화신기 수사들이 가끔 이곳을 찾았단 말이지?”

“네, 그, 그렇습니다.”

“그들이 무슨 이유로 이곳을 찾았지?”

“그, 그건, 영, 영계 비승을 이루거나 처, 천겁을 이이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영계 비승이나 천겁? 으음. 그래서 그들은 어찌 되었느냐?”

“때가 되면 부리던 이들을 모두 내보내고 거처를 봉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그 후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죽었거나 영계로 올랐다는 소리겠군.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떠났거나.’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럼 그들의 거처가 어딘지도 모두 알려져 있겠구나?”

건우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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