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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120화 (120/499)

120. 녹주괴물, 이런 걸 숨기고 있었던 거냐?! 고맙기가!

퍼벅! 푸확! 퍽! 푸확! 퍽퍽! 푸화확!

나오금강체술로 물리력이 극대화 된 건우의 공격에 녹주괴물의 몸통은 연이어 터져 나갔다.

이리저리 민첩하게 적의 공격을 피하며 날카로운 공격을 쏟아 붓는 것이 샌드백을 때리는 복서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건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뭐야? 전혀 피해가 없어? 그렇게 두드리고 터트렸는데?”

건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처럼 지금까지 퍼부은 공격에 녹주괴물이 입은 피해는 전무해 보였다.

처음 몸을 일으켰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녹주괴물의 모습.

“이게 말이 되나?”

건우는 사방에 뿌려진 녹주괴물의 체액을 확인했다.

분명히 사방으로 흩어진 녹주괴물의 몸뚱이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 정도면 녹주괴물의 몸통 전체의 부피보다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멀쩡해? 아무렇지도 않다고?”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건우는 한참 녹주괴물을 노려봤다.

그리고 오아시스 바닥의 구멍을 노려봤다.

괴물의 뿌리가 그곳에 박혀 있었고, 거기에서 엄청난 생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회복력이 엄청난 거였군. 아무리 피해를 입어도 그대로 회복이 되는 거였어.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은 저기 저 구멍인 거고.”

건우가 상황을 파악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상태라면 아무리 공격을 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럼 결국은 약점을 공격해서 회복을 못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써야 했다.

“어디 다시 한 번 붙어 볼까?”

건우가 각오를 다지고 다시 녹주괴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몸통이 아니라 뿌리를 향해 달려든 것이 이전과 달랐다.

녹주괴물도 건우가 약점을 노린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인지 대응을 달리했다.

재빨리 몸을 비어있는 오아시스 공간에 채워 넣은 것이다.

“이 놈이?”

길우몽의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이렇게 되면 녹주괴물의 뿌리까지 닿기 어렵다.

그 전에 몸통을 모두 벗겨 내야 하는데, 회복 능력을 보면 그게 쉬울 거 같지 않았다.

“젠장, 그럼 이건 어떠냐?”

푸우욱!

길우몽의 검은 황금빛 몸통이 그대로 오아시스로 다이빙을 했다.

즉, 녹주괴물의 몸 안으로 뛰어들었다는 소리다.

‘크으으! 제법 아린 구석이 있군.’

녹주괴물의 몸 안, 즉 오아시스로 뛰어든 건우는 그 물이 보통 물이 아니라 강력한 산성을 띄고 있음을 알았다.

산성 기운에 피부가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건우는 나오금강체술을 더욱 극성으로 끌어 올려 그 산성 기운을 막아냈다.

나오금강체술은 본래 금속성과 토속성이 강한 연체술이다.

그래서 산성과 같은 기운에 약할 수밖에 없는데, 그 약점은 이전 주시원과 허미당의 대립에서 어부지리로 얻은 분재 법보, 흑심반(黑深礬) 압각수(鴨脚樹:은행나무)로 보완을 했던 건우였다.

은행나무 분재 법보는 원래 녹림도의 도주인 주시원의 것이었는데 그것을 본명법보인 천라패갑방패로 빼앗아서 연화한 후에 나오금강체술에 녹여 넣었다.

분재 법보가 생명을 가진 목속성 법보였기에 가능했던 일인데, 어쨌거나 그 덕분에 지금과 같은 일도 가능했다.

“흐아아아아아압!”

건우가 녹주괴물의 몸속에서 크게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건우의 검은 황금빛의 몸에, 은갈색의 뿌리를 박은 은행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는 피부 안쪽에 문신처럼 드러났던 것이 이번에는 반투명한 입체로 구현되었다.

연녹색 줄기와 갈색의 잎을 지닌 커다란 은행나무.

그것이 몸 밖으로 드러난 순간, 건우는 더욱 힘차게 날뛰기 시작했다.

은행나무 분재가 녹주괴물이 뿜어내는 해로운 기운을 모두 흡수해서 정화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면 거칠 것이 없지.’

건우는 다시 힘차게 금속 봉을 휘두르며 빠르게 오아시스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름이 십 미터에 가까운 구멍을 발견했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엄청난 생기가 뿜어져 나오는 중이었다.

“흐으으으으읍!”

길우몽이 구멍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양껏 생기를 빨아들였다.

길우몽의 의념을 받은 은행나무 분재가 맹렬하게 구멍에서 나오는 생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출렁, 출렁, 출렁!

녹주괴물도 이번에는 타격을 받은 듯이 거칠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이 보이는 빈 틈은 이쪽에선 찌르기 좋은 약점일 뿐이다.

건우는 쉬지 않고 금속봉을 휘들러 녹주 괴물의 이빨을 쳐 냈고, 그런 중에도 은행나무는 생기 흡수를 멈추지 않았다.

푸화화화화화화홖

“크으으으윽!”

그런데 다음 순간이었다.

구멍에서 갑자기 생기가 아닌 마기(魔氣)와 사기(邪氣)가 뿜어져 나왔다.

조금 전까지 그토록 맑고 깨끗한 생기가 나오던 곳에서 전혀 상반된 기운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건우는 미쳐 그것에 대응하지 못하고 적잖은 내상을 입고 말았다.

그것은 은행나무 분재도 마찬가지였다.

나오금강체술에 뿌리를 내렸던 은행나무 형상이 회색으로 물들며 흐려지고 있었다.

대책 없이 받아들인 마기와 사기를 정화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듯 보였다.

‘이래서는 압각수(鴨脚樹)의 정화 효과를 쓰기 어렵겠어. 그럼 이 사기와 마기를 다르게 해결해야지.’

건우는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아공간에서 새로운 법보를 불러냈다.

이번에 나온 것은 검은 색의 옥구슬.

다름 아닌 사망옥이었다.

사망옥은 이미 건우가 연화를 해 두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건우는 사망옥을 이용해서 녹주괴물의 몸에 퍼진 사기와 마기를 흡수했다.

사망옥의 주된 기능이 바로 이렇게 사기나 마기, 죽음의 기운 따위를 흡수해서 주인이 사용하기 좋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건우는 그런 류의 속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깊이 익히지 않았지만 사망옥을 이용해서 기운을 흡수하는 정도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과연 화신기 수사가 지녔던 법기로 손색이 없구나. 이렇게 빠르게 기운을 흡수하다니.’

건우는 사망옥의 성능에 크게 만족하며 기뻐했다.

사망옥은 녹주괴물의 몸에 있는 것은 물론 오아시스의 바닥 구멍에서 나오는 사기와 마기까지 깔끔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구멍에서는 더 이상 사기와 마기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이번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생기가 뿜어져 나왔다.

순간, 건우의 머릿속에는 경고등이 켜졌다.

‘과한 것은 모자란 것보다 훨씬 위험할 수도 있지’

생기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과하면?

건우의 머릿속에 ‘돌연변이’란 단어가 떠오른 순간, 건우는 이미 녹주괴물의 몸에서 빠져나와 수백 미터 떨어진 허공으로 옮겨져 있었다.

정말 다급하게 둔술을 극성으로 펼친 것이었다.

스르르르 푸르르르르 푸화화확!

“그럼 그렇지.”

건우가 빠져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녹주괴물이 기괴한 꼴로 녹아내렸다.

짧은 순간 엄청난 크기로 부풀어 오르더니 어느 순간 그 몸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녹주괴물의 몸 곳곳에 종기가 생겨 부풀고 그것이 또 터지고 하더니 결국에는 생명체로서의 연결이 끊어져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그 나뉜 조각들은 제 각각 살아 움직이며 꿈틀거렸다.

건우는 엄청난 숫자의 거머리를 보는 것 같은 역겨움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대로 사막을 떠날 수도 없었다.

오아시스의 바닥 구멍 안에 뭔가 있었다.

그것을 확인해야 했다.

건우가 한숨을 쉬며 사망옥을 넣고 십이부십육진궤(十二符十六陣櫃)를 소환해 공격 진법을 만들었다.

이후 거머리 같은 것들로 뒤덮힌 보라색 사막을 향해 강력한 화염 공격을 시작했다.

오아시스와 사막을 가득 덮고 있는 거머리 같은 것들을 치우기엔 그만한 것도 없다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나절 후, 건우는 드디어 오아시스의 바닥 구멍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건우는 드러난 구멍 밑으로 곧바로 내려갔다.

이미 녹주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게다가 구멍 밑에서 느껴지는 것도 단순한 기운일 뿐, 어떤 의지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딱히 위험할 일은 없어 보였고, 일이 생긴다고 해도 건우에겐 언제나 든든한 아공간이 있었다.

* * *

구멍 속 수백 미터 아래.

건우는 그곳에서 드디어 바닥을 만났다.

그리고 그 바닥은 건우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조금 넓게 파인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구멍 지름의 두 배 정도 되는 공간은 거친 바닥과 벽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땅 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빈 공간일 뿐, 특별히 다듬거나 가공한 흔적은 없었다.

“흐음, 저게 도대체 뭘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따위 공간이 아니었다.

건우의 시선은 땅바닥에 받침대 하나 없이 놓여 있는 나무토막에 꽂혔다.

그것은 정(丁)자 모양의 지팡이 머리 부분처럼 보였다.

촌 늙은이들이 대충 깎아서 짚고 다니는 지팡이 윗부분이 부러진 것처럼.

분명히 그랬다.

“으으음.”

그렇게 별 것 아닌 것 같은 나무토막을 두고 건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비슷해. 아주 비슷한 힘이 있어.”

건우는 연신 중얼거리며 바닥에 놓여 있는 그 지팡이 머리를 노려봤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 지팡이 머리는 청명하고 맑은 기운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건우는 그것이 바로 녹주괴물을 무한재생 시킨 그 힘이었던 생기(生氣)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풍부한 생명의 기운, 그 안쪽에 건우도 경험한 바가 있는 묘한 힘이 숨어 있었다.

건우는 그 힘에 경각심을 느끼고 함부로 지팡이를 잡지 못하는 것이었다.

“뭐지? 분명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건우는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던 수많은 영초와 수련 자원, 법기, 법보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중에 어느 것도 건우가 궁금해 하는 눈앞의 기운을 설명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건우는 문득 깨달았다.

“아! 갱과 굴! 그 석상괴뢰의 이빨과 발톱에 있던 법칙의 힘! 바로 그거다!”

건우는 크게 탄성을 내질렀다.

분명히 그것이었다.

법칙의 힘.

갱과 굴, 두 석상괴뢰가 가지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갈래의 힘이지만, 법칙의 힘이라는 큰 분류에는 분명히 포함될 그것이 나무 지팡이 머리에 깃들어 있었다.

석상괴뢰들이 가졌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한 상태기는 하지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그러니까 생명 법칙의 힘? 아니면 생기 법칙의 힘? 이름을 붙인다면 아무튼 그런 종류겠지?”

건우는 지팡이 머리에서 조금 떨어진 상태로 의념을 뻗어 그것을 꼼꼼하게 살폈다.

하지만 절대 그것을 자극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녹주괴물이 어떻게 자멸했는지 목격했다.

그것은 분명 너무나 과도한 생기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자극을 주는 것은 위험했다.

“녹주괴물이 여기 들러붙어서 그렇게 성장을 했던 거군. 법칙의 힘인지 뭔지를 빼더라도 이 생기 가득한 영기만 하더라도 이건 정말 보물 중에 보물이야.”

건우는 세심하게 지팡이 머리를 살펴 위험 요소를 찾았다.

하지만 지팡이 머리는 끝없이 생기를 뿜어내는 이외에는 어떤 위험도 없어 보였다.

법칙의 힘도 고요해서 직접 닿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 같았다.

결국 건우는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슬쩍 지팡이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 쳐서 아공간으로 넣어 버렸다.

“음, 못 먹어도 고! 이걸 그냥 둘 수야 있나.”

다행히 지팡이 머리는 아무 이상 없이 아공간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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