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18화 (118/499)

118. 움직여 보자, 재앙출행(災殃出行)

“흠, 깨어나라(起)!”

건우가 법언을 외우자 석상에 영기가 감돌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암석이 살아 있는 듯이 느껴지며 실제로 이리저리 몸을 꿈틀거려도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건우는 자신이 만들어낸 석상괴뢰를 유심히 살폈다.

드디어 괴뢰선의 비전으로 첫 괴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재료는 돌이지만 완벽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석상괴뢰는 우두커니 서서 창조자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우는 그런 석상괴뢰에게 옥간 하나를 던져 흡수시켰다.

그러자 석상괴뢰는 따로 명령이 없었는데도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아공간 어딘가로 사라졌다.

영체기 중기가 된 건우의 아공간은 지름만 200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방대해졌다.

괴뢰는 건우가 심어준 옥간의 내용에 따라서 목 속성이 강한 영역으로 가서 영초밭을 관리할 것이다.

“진작 만들어 뿌려 뒀으면 신경을 덜 써도 됐을 텐데 말이지.”

사실 아공간 안은 건우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쉽게 할 수 있는 곳이다.

건우의 아공간 곳곳에는 영초를 재배하는 약초밭들이 여럿 있었다.

속성을 타는 것들은 속성에 맞춰서 따로 재배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중앙 지역에서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를 키운다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

그 대상에 따라서 다양한 관리 방법이 있고, 그에 맞춰서 뭔가를 해 주지 않으면 죽거나 혹은 약효가 떨어지거나 변질된다.

그래서 건우는 때때로 직접 움직이거나 혹은 의념을 써서 그런 것들을 관리해 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대부분의 일을 괴뢰에게 맡기고 그 결실만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면 괴뢰를 여럿 만들어야겠군.”

지금 보낸 괴뢰는 목속성 영역의 영초밭을 관리하라고 보냈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곳이 많았다.

건우는 다시 괴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건우가 만드는 괴뢰는 하나같이 길우몽을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각의 다부진 체격에 하회탈처럼 웃는 듯, 우는 듯 묘한 표정의 얼굴.

건우의 석상괴뢰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뛰어난 것은 아니어서 그 표정은 고정된 것이었다.

“역시 일꾼은 일꾼답게 만들어야지.”

건우도 길우몽의 모습이 전형적인 일꾼 모습이란 자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건우는 한동안 일꾼 석상 괴뢰를 만드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익숙해질 무렵에는 그저 영석 몇 개를 던지고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으로 그와같은 괴뢰 수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아직은 수준이 낮다. 하지만 기본은 완성이 되었으니 이후에는 조금씩 시간이 날 때마다 개선을 해 나가면 된다.”

그 즈음 건우는 괴뢰 제작을 멈췄다.

많은 숫자의 괴뢰를 아공간 곳곳에 흩어 놓았으니 일꾼은 충분했다.

이후로는 건우의 괴뢰술이 늘어날 때마다 그것들을 업그레이드 해 주면 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드디어 종 선생의 수작을 알아냈다는 것이지.”

건우는 수미산겨자씨 밑에 가부좌를 한 상태로 괴뢰술의 비전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에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자 종 선생이 자신에게 심어 놓은 인(印)이 보였다.

그것은 괴뢰를 만들 때에 자신의 괴뢰를 인지하기 위해서 찍어 놓는 식별표시 같은 것이었다.

종 선생은 그것을 건우에게 찍어서 마치 자신의 괴뢰를 찾는 것처럼 건우를 찾아냈던 것이다.

“이런 걸 나한테 찍었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건우는 그 표시를 찾아내고 깜짝 놀랐다.

화신기 수사의 수법이라 영체기인 건우가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데다가, 괴뢰술을 모른다면 더더욱 알 수 없는 수작이었다.

“문제는 이걸 지우려면 내 괴뢰술의 경지가 더 높아져야 한다는 건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종 선생은 오래도록 괴뢰술을 익혀 온 자였다.

더구나 그 태생이 괴뢰였으니 그 쪽으로 특화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괴뢰술에서 그런 종 선생과 비슷한 경지에 오르는 것은 쉽지도 않지만 시간도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괴뢰술에만 매달려 있기는 싫지.”

건우는 결국 꼼수를 이용해서 종 선생을 추적을 벗어나기로 했다.

“같은 대상에게 유사한 술법을 겹쳐서 걸면 서로 간섭을 해서 효과가 흩어지겠지.”

건우의 생각은 간단했다.

종 선생이 괴뢰를 찾는 수법을 자신에게 걸어 뒀다면 그와 비슷한 것을 자신에게 또 걸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괴뢰 하나가 두 주인이 있을 수 없다는 맹점을 파고 든 방법이었다.

결국 엇갈린 두 술법이 건우라는 괴뢰의 주인을 특정하지 못해서 위치 감응 따위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내가 거는 술법이 약하니 일정 기간마다 갱신을 해 줘야겠지만, 뭐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물론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몸에 건 술법이 흩어질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종 선생이 건우의 위치를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종 선생이 바로 가까이 있어 건우의 덜미를 잡기 위해 나타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런 낮은 확률이 무섭다면 아공간 밖으로 나서질 말아야 할 것이다.

건우는 결국 괴뢰술을 익힌지 7년 만에 종 선생의 추적을 피할 방법을 마련하고 밖으로 나설 결심을 했다.

“조모명이나 경려주도 봉인이나 결계, 금제에 대한 것 이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법칙의 힘이 뭔지도 모르다니.”

건우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길우몽의 모습을 하고 아공간 밖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주인님, 함께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런 건우를 배웅하기 위해 용랑과 혈원이 수련을 멈추고 와 있었다.

“됐어. 너희들 수련이 고비를 맞는 모양인데, 굳이 나서서 함께 할 이유가 없지. 성단기 완경에 이르면 영체기는 한 걸음이야. 필요한 수련 자원은 아낌없이 지원을 해 줄 테니까 정진해 봐.”

“감사합니다. 주인님.”

우끼끼끼끼끼.

건우는 그렇게 용랑과 혈원에게 인사를 하고 의념을 집중해서 루야의 상태를 살폈다.

루야는 아직도 혼원석과 인공영체를 절반도 연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보다는 속도가 붙었으니 오래지 않아서 어엿한 수사의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이것들이 수작을 부릴 때도 멀지 않은 거 같은데 말이지.’

건우는 마지막으로 조모명과 경려주가 들어 있는 호리병박을 살폈다.

그 둘은 호리병박의 봉인을 풀기 위해서 오래도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체 둘이 힘을 모아서 금제를 깨트릴 진법을 만드는 모양인데, 그것을 건우에게 들키지 않게 하려니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미 들킨 것을 모르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쯧, 배울 거 다 배웠을 때 그냥 죽여서 윤회시켜 버릴 걸.”

건우는 선뜻 손을 쓰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아공간 밖으로 나섰다.

차종과 륜종이 배치했던 활차종의 영체기 제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얼마 전에 감시 임무를 마무리하고 돌아간 것이다.

거친 황무지에 영기조차 희박한 곳에 머무는 것이 꽤나 괴로웠을 것이다.

스스슥!

아공간 밖으로 나온 길우몽은 갈색의 둔광을 남기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당연히 생색을 내기 위해 배치해 놓은 활차종의 성단기 수사들은 건우의 종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건우는 둔술을 펼쳐 수백 리를 이동한 후에 허공을 밟고 섰다.

“으음. 일단은 평량역을 떠나야 하니까 역간 전송진을 찾아가야겠지.”

그렇게 말한 건우는 허공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건우의 손에 부양도의 출도령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라(出)!”

건우가 출도령패를 들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허공이 갈라지며 작은 섬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건우도 실물은 처음 보는 부양도였다.

처음이라 하는 이유는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지우고 다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전 대원본성에서의 일로 부양도는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그 때문에 건우는 적잖은 자원을 투자해서 부양도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당연히 이전 부양도의 모습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그 복구 과정을 하면서도 건우는 부양도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건우는 출도령패를 통해서 부양도에 자원을 밀어 넣었고, 섬의 모습이나 기능 등에 대해서도 출도령패를 통해서 지정했다.

모든 과정이 출도령패를 통해서 공간 너머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건우의 통제를 벗어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건우도 이번이 새로운 부양도와의 첫 대면인 것이다.

쿠르르르르르르릉!

“으음. 예전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군. 게다가 크기도 많이 작아졌고.”

건우는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부양도의 모습에 살짝 실망했다.

모양은 아래쪽이 뾰족한 원추 모양으로 윗면이 평평했다.

그리고 그 평평한 윗면 중앙에 7층 누각이 서 있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

팔각형 탑을 닮은 누각은 지름만 3백 미터는 넘어 보였고, 각 층마다 높이가 100미터 가까이 되었다.

그런 건물이 섬의 중앙에 오색구름을 휘감고 서 있는 것이다.

그 첫 인상은 좋았다.

그런데도 실망감이 든 것은 원래 부양도에 비해서 크기가 너무 많이 줄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 만들어진 부양도는 고작해야 지름이 1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성채 수준이었다.

이전 부양도의 전체 면적에 비하면 1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것이다.

밀어 넣은 복구 자원을 생각하면 당연히 아쉬울 수밖에 없다.

건우는 혀를 차며 부양도 위, 칠층 누각의 꼭대기로 올라섰다.

그리고 의념을 집중해서 부양도를 자신의 것으로 연화시켰다.

이미 출도령패를 지니고 있기에 연화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쿠르르르르르릉!

주인을 맞이한 부양도의 공명음이 사납고 거칠었다.

“이거 성격 있는 놈이네.”

건우는 그런 부양도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연화를 하고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전보다 크기가 작아지긴 했지만 이동 속도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부양도의 속도라면 화신기와도 추격전을 벌일 만하다.

게다가 특별한 비행 법보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공간 이동 능력도 탁월했다.

그만큼 소비되는 영기가 많긴 하지만 순식간에 10만리 이상을 뛰어 넘을 수 있었다.

게다가 무리를 하면 그런 공간 이동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도 가능했다.

“거기에 기본 비행 속도도 어마어마하고 은폐 기능도 뛰어나군. 내가 투자한 자원들이 허투루 사라진 것은 아니야.”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건우는 부양도를 연화하며 알게 된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부양도에는 엄청난 공방 진법이 담겨 있었다.

건우가 부양도를 다시 복원하면서 극금문과 풍수문의 봉인, 결계, 금제의 비전을 배워 고스란히 부양도로 옮긴 것이다.

건우가 부양도를 재건하면서 주머니가 홀쭉해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쯧, 이전에 천절노자란 늙은이가 영계의 존재와 소통했던 그 기능은 완전히 지워졌네. 어떻게든 흔적이라도 남길까 했더니.”

건우가 부양도를 모두 살피고는 혀를 찼다.

영계와 관련된 기능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니지, 그런 걸 남겨 뒀다가 그 완합종의 전대 종주인가 뭔가 하는 것들이 내 부양도를 이용하려 들면 그게 더 곤란하지. 차라리 잘 되었네.”

하지만 곧 건우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괜한 위험을 남기느니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긍정회로를 돌린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 전송진을 탈 수 있지? 그리고 어느 역으로 가야 배움을 얻기 좋을까?”

건우는 자신의 견문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번 남의 주머니나 털어서 경지를 높여 왔지만 결국 제대로 된 배움을 얻은 적이 없었다.

건우가 소속되었던 곳은 완합종이 유일한데, 그곳에서 배운 것은 거의 없었다.

사실 완합종은 그래 대단한 수련 문파도 아니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당시에나 대단해 보였을 뿐.

그러니 건우도 이번에는 제대로 된 거대 세력에 들어가고 싶었다.

“음, 맞다. 무기도 필요하지. 나오금강체술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공법이기는 하지만 동급 수사들에게나 통하지, 윗급 수사들을 상대하는 건 어렵단 말이지. 게다가 방어는 몰라도 공격 법술도 부족해. 확실한 한 방을 먹일 공법도 있어야 하고, 법보도 있어야지. 확실한 한 방을 지속적으로 날릴 수 있으면 더 좋고.”

건우는 별 거 아닌 듯이 말을 하고 있지만 정작 욕심내는 것은 법칙의 힘이었다.

명품을 보고 나니 다른 것은 눈에 차지 않는 상태라고 할까.

“역시 문제는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거야. 정말 이번에는 좀 제대로 배워보자. 이대로는 어려워.”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둔술을 펼쳐 7층 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직후 부양도의 모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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