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16화 (116/499)

116. 안에서는 나름 승승장구, 그런데 밖에선 또 무슨 오해가?

“후아, 후아. 미친!”

건우는 수미산겨자씨 밑에서 깨어나자마자 한동안 심호흡을 했다.

그러면서도 건우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떠돌았다.

‘반영세계, 거기에 누군가 있었다.’

건우는 과거에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영초 밭에서 영초를 캘 때에 누군가 엄청난 존재가 있음을 느끼고 몸을 피한 경험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상대를 직접 확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건우는 눈을 감고 조금 전의 상황을 다시 한 번 자세하게 떠올렸다.

‘흐릿한 모습을 한 그 자가 나에게 고함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지. 하지만 당시 그 수사의 움직임은 무척 느렸다.’

건우는 상황을 돌이켜보며 이상했던 점을 찾아냈다.

‘느린 움직임. 하지만 그것은 내가 보기에 느린 것일 뿐, 실제론 다를 수도?’

건우는 드디어 반영세계의 진실 일부에 다가섰다.

하지만 자신이 반영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이 실제 그곳 수미세계의 사람들에겐 촌음에 불과하다는 것은 쉽게 추측해 내지 못했다.

‘무슨 이윤지는 모르지만 내가 가는 곳에 움직이는 생명체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없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곳에 있는 이들도 대부분은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테고.’

몇 번이고 상황을 되돌려 본 후에 건우는 결국 그런 추측까지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우가 반영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게 된 것은 아니었다.

수 백 번 드나들던 중에 건우가 이상을 느낀 것은 고작 두 번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눈앞에서 상대를 확인한 이번 경우에도 몸을 빼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럼 된 거지. 이번에 만난 그 자는 화신기 수사가 분명했다. 그런 자를 몇 걸음 앞에서 마주치고도 무사했으면, 어지간해선 반영세계에서 내가 위험할 일은 없다고 봐야겠지.’

건우는 이번 경험을 통해서 도리어 반영세계가 그리 위험할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반영세계의 보물들에 주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좀 나눠 쓰고 그러는 거지.’

건우는 슬쩍 찔리는 양심을 그렇게 설득하고는 파리 잡아먹은 두꺼비처럼 시치미 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한동안 반영세계를 들락거리며 수미세계 수사들의 원성을 쌓았다.

하지만 반영세계에 드나드는 것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시들해지고 말았다.

간혹 괜찮은 보물을 얻는 경우도 있어서 나름 이득이 많은 일이긴 하지만 봉인과 금제, 결계에 대한 배움을 갈무리 하는 과정이 끝난 것이다.

게다가 건우의 아공간에는 한동안 영체기 수련에 쓰고도 남을 수련 자원이 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운을 시험하는 반영세계를 오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쯤 하고, 이제는 수련을 좀 해야지.’

3년에 가까운 시간.

정확히 천 번의 시도 후에 건우는 반영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공간 내의 용랑과 혈원, 루야의 상태를 살피고는 3년 전과 다를 바가 없음을 확인했다.

건우는 확인이 끝나자 슬그머니 아공간 입구를 열었다.

작게 밖을 내다볼 정도의 입구는 투명하게 만들어 화신기 수사라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쯧, 아직도 저러고 있네?’

건우는 종 선생이 두 마리의 석상괴뢰를 거느리고 정자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내심 혀를 찼다.

벌써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한 올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종 선생이었다.

건우는 다시 아공간 입구를 닫고는 의념을 집중해서 한쪽 구석에 던져 놓은 호리병박을 살폈다.

조모명과 경려주가 혹여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작 3년 정도가 지났을 뿐이라 그런지 특별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모양이군.’

건우는 별다른 소득 없이 호리병박에서 의식을 거두었다.

그렇게 아공간 내부에 대한 확인이 끝나자 이번에는 극화조 연단로를 불러냈다.

건우의 앞으로 소환된 극화조 연단로는 그 동안 화속성 영역에서 화기를 충전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확실히 수사들의 수련은 뭣보다 약빨이 중요하지. 솔직히 영단 없이 수련을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니까.’

건우는 극화조 연단로의 열쇠인 쇠막대까지 소환해서 연단로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연단로의 겉면에 극화조가 나타나 유영하기 시작했다.

건우는 그런 연단로를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또 다른 한 손으로는 갖가지 영단 재료를 연단로 안에 쏟아 넣었다.

“음, 일단은 이걸로 기본 영단을 만들고, 그 후에 거기에 다른 재료를 더해서 상급 영단을 만들어야 되겠군. 마침 영체기 수사들의 수련에 적합한 여러 약방문들을 얻었으니 한동안 영약의 내성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겠지.”

건우는 지금껏 여러 영체기 수사들의 공간낭에서 얻은 영단 비법들과 수미세계의 반영세계에서 얻은 약방문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영단을 만들 레시피인 약방문과 비법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고, 거기에 쓸 재료들도 충분했다.

거기에 극화조 연단로는 최상급의 연단로라 연단 성공 확률도 높여 줄 것이다.

“이런 데도 경지를 올리지 못하면 그건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거겠지.”

건우는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영약 연단에 들어갔다.

그 후, 다시 십여 년.

건우는 오로지 영단을 만드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 사이에 용랑과 혈원에게 영체기 영단을 만들다 실패한 것들을 던져 준 이외에는 영단 제조에만 전념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 이제는 정말로 수련에만 집중할 준비가 끝났다.

건우는 용랑과 혈원에게 각각 자신이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갈 것임을 알리고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루야의 상태를 살폈는데 여전히 혼원석과 인공영체, 루야가 균형을 이룬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루야가 혼원석과 인공영체에 대한 연화를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우는 그것을 알아낸 순간 활짝 웃었다.

‘혼원석과 인공영체를 연화하다니, 그 말은 루야가 의념을 발현했다는 이야기지. 정말로 루야가 수사로서의 자격을 얻어가고 있구나. 다행이야, 다행.’

건우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영체기 수련에 들어갔다.

당연히 수미산겨자씨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설정하고 아공간의 일부를 격리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특히 조모명과 경려주가 들어 있는 호리병박은 특별하게 공간을 나누어 보관했다.

건우가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편한 마음으로 영체기 수련에 들어간 이후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 * *

평량역 남부 지역을 지배하는 거대 수도문파 활륜종(滑輪宗)의 심처.

그곳에 활륜종의 두 종주(宗主)가 마주 앉아 차(茶)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활륜종은 다르게 활차종(滑車宗)이라고도 하는데, 륜(輪)과 차(車)는 모두 바퀴의 의미로 썼다.

다시 말해 바퀴로 상징되는 대도 수행을 매끄럽게 하자는 의미의 문파명인 셈이다.

이 활차종에는 당대에 화신기 수사가 두 명이나 되어서 종주가 둘인 상태였다.

“그 화신기 수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그래요? 누구랍니까?”

두 종주 중에 륜종이라 불리는 수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앞에 앉은 차종 수사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아는 이들은 모두 아는 이름이더군요. 종 선생이라 합니다.”

륜종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종 선생이요? 아니, 그 이름은 본인도 알고 있는 이름입니다. 저 무량동천의 수호자가 아닙니까?”

차종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확인하듯 물었다.

“쯧, 그렇지요. 무량동천의 화신기 괴뢰, 십여 만 년 전에 현기관자라는 선배 수사가 만들었다는 바로 그 괴뢰입니다.”

륜종이 얼굴에 노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지금 두 종주가 이야기하는 것은 약 백 년 전에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화신기 수사에 대한 것이었다.

화신기 수사가 뜬금없이 활차종의 영역에 들어오더니 진법을 겹겹이 두르고 칩거를 해 버렸다.

그런데 그 소식이 꽤나 늦게 두 종주에게 알려졌다.

화신기 수사가 터를 잡았는데 그 진법이 워낙 고명해서 일반 제자들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활차종의 영체기 수사들이 그 지역에 이상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확인한 끝에 엄청난 진법이 펼쳐진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종주들은 둘 중에 륜종이 나서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로 했었던 것이다.

“륜종, 그 말은 지금 무량동천에서 우리 땅에 들어와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소리입니까?”

차종 역시 얼굴이 붉어지며 화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저 역시 종 선생이 만든 진법의 내부를 모두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종 선생과 마찰을 일으켜야 하니까요.”

“지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 종 선생이란 놈이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허락도 없이 우리 종문의 땅을 차지한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야 차종의 말이 백번 옳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대뜸 종 선생과 싸우기에는 또 무량동천이 문제가 아닙니까.”

“결국 무량동천 그 놈들이 우리 활차종의 땅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수작이란 것이 뭐겠습니까?”

“음, 그야 그곳에 무슨 보물이 있으니 그것을 지키는 것이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그토록 엄중한 진법을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진법이 특이합니까?”

차종이 뭔가 떠올린 듯이 확인하듯 륜종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겹겹한 진법 모두가 내부에 있는 뭔가가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큰 것들입니다.”

“결국 무언가를 잡아두기 위한 진법을 두르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차종이 말을 하다말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륜종을 바라봤다.

“으음. 그렇습니다. 저도 차종과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 그 곳에는 우리 활륜종이 파악하지 못한 어떤 영수나 괴수, 혹은 영성을 지닌 보물 같은 것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그 종 선생이 무량동천의 뜻에 따라서 그곳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 분명 그럴 겁니다.”

차종이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륜종은 그런 차종의 성급함에 고개를 저었지만 차종의 말에 어느 정도는 가능성이 있음을 부정하진 못했다.

결국 직접 확인을 해 봐야 할 일이었다.

“갑시다. 가서 종 선생을 만나서 따져보고 여차하면 그 놈을 쫓아내든 죽이든 해 버립시다.”

결국 차종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륜종을 재촉했다.

그렇게 종 선생과 활차종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으음? 이게 무슨 일이지?”

엄청난 영단의 힘을 빌려 빠르게 영체기 중기까지 경지를 끌어 올린 건우가 경지를 안정시키고 있다가 눈을 떴다.

갑작스럽게 아공간에 진동이 느껴진 탓이었다.

건우는 눈을 뜨자마자 그 진동이 아공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전해지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미친, 밖에서 싸우는데 왜 여기까지 여파가 미쳐?”

건우는 저도 모르게 거친 말을 쏟아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건우는 과거에도 한 번 아공간 내부까지 외부의 충격이 전해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십이비선봉 밀역에서 화공공이란 화신기 수사와 다도해역의 화신기 수사들이 맞붙어 싸운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전투 장소에서 아공간으로 몸을 피했던 건우는 밖에서 벌어지는 화신기 수사들의 싸움이 아공간에도 영향을 준다는 걸 경험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설마 종 선생이 누군가와 싸우는 건가? 같은 화신기 수사와?’

건우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일단은 아공간을 먼저 다독였다.

의념 공간인 아공간에는 아직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외부의 힘이 자신의 의념공간인 아공간에 영향을 주고 있음은 확실했다.

건우는 아공간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아공간 입구를 열었다.

콰과과과과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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