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어라라? 존버? 그럼 나도 존버!
건우는 현원보고로 들어갔던 지하 전송진으로 다시 나오자마자 곧바로 하늘로 날아올라 청옥비선을 띄웠다.
그리고 수시로 방향을 바꿔가며 비행한 것이 꼬박 1년.
건우는 평량역의 남동부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 사이에도 건우는 몇 번이나 아공간으로 들어가 며칠 씩 시간을 보내며 종적을 숨겼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동안 건우는 누군가 뒤쫓아 오는 기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마음을 놓아도 될 때가 된 듯 했다.
“이제는 종 선생이나 무량동천을 염려할 필요는 없겠지?”
“그럴 겁니다. 지금까지 추적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래, 그럼 이제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우르르르르릉!
항상 입이 화를 부르는 것인지, 건우가 그렇게 말을 하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뇌성이 은은하게 울리며 엄청난 기운이 전해져왔다.
“찾았다. 이 노옴!”
그리고 동시에 까마득히 머나먼 곳에서 종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게 무슨?!”
건우는 깜짝 놀라며 급히 청옥비선을 회수하고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건우가 지상에 닿기도 전에 허공이 갈라지며 종 선생과 두 마리의 석수괴뢰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아앙! 시시시싯!
“드디어 찾았구나!”
석상괴뢰가 포효를 터트리고 종 선생이 고함을 질렀다.
건우는 지상으로 빠르게 내려가는 도중에 종 선생과 눈빛이 마주쳤다.
“으으윽!”
“주인님!”
건우가 눈빛을 마주치고 의식에 충격을 받아 신음성을 흘릴 때, 함께 떨어지던 용랑이 다급하게 건우를 불렀다.
언제 펼친 것인지 건우와 용랑을 중심으로 은갈색의 진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종 선생의 손에서 시작된 진법은 마치 투망을 던져 건우와 용랑을 잡으려는 듯이 보였다.
건우는 순간, 무슨 수를 써도 그 진법의 그물을 벗어나지 못할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제기랄!”
건우는 어쩔 수 없이 아래쪽에 아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열었다.
“뭐? 뭐냐? 어떻게 된 것이냐? 또 사라진 것이냐?”
종 선생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우와 용랑의 모습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이, 놈이 또 무슨 수작을 부려서 몸을 숨겼군.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안다. 네 놈은 들어간 곳에서 다시 나올 수밖에 없음을.”
종 선생은 건우와 용랑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건우의 뒤를 쫓으면서 몇 번이나 종적을 놓치곤 했었다.
하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위치에서 건우에게 심어 놓은 인(印)이 나타났었다.
종 선생은 그런 경험을 통해서 건우가 신묘한 수법으로 몸을 감출 수는 있지만 그 상태로 멀리 이동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노옴!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 보자.”
종 선생은 곧바로 손바닥을 뒤집어 땅을 융기시켰다.
화신기 수사가 마음먹고 이적을 행하자 순식간에 수백 미터의 흙기둥이 솟아올랐다.
종 선생은 같은 모양의 원형 흙기둥을 연이어 뽑아 올려 거대 진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기둥 꼭대기마다 괴뢰 하나씩을 만들어 올리고, 영석을 이용해서 핵을 심었다.
“크하하하. 이제 네 놈은 갈 곳이 없다. 감히 내 보물을 노려?!”
종 선생은 건우가 사라진 곳을 중심으로 하늘과 땅을 모두 아우르는 진법을 겹겹이 쌓아 올렸다.
그리고 그 진법의 중앙, 건우가 아공간으로 사라진 위치 바로 앞에 정자 하나를 세우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고작해야 영체기 초기 놈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나는 괴뢰라 천겁도 느리게 오는 몸이다. 네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네 수명이 다할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리라.”
종 선생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런 종 선생의 정자 옆에는 갱과 굴을 닮은 석수괴뢰 두 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 * *
“독한 놈.”
건우는 아공간 밖을 내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 건우 님께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한 거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 자가 건우 님을 쫓아 왔겠어요?
“그나마 화신기 수사의 손에서 벗어난 것이 다행입니다. 저 자가 은밀하게 움직여 기습을 했다면 무척 위험했을 겁니다.”
루야와 용랑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이 말을 했지만 밝은 음성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화신기 수사에게 갇혀 버린 꼴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 괴뢰가 펼친 진법 밖으로 아공간 입구를 여는 것은 불가능하네.”
그 사이 건우는 아공간 입구를 들어온 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열어 보려는 시도를 해 봤다.
하지만 아공간 자체의 성향이 그런 것이라 영체기 수사의 능력을 빌어도 들어온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출구를 만들 수는 없었다.
- 그럼 이제 어쩌실 거예요?
루야가 물었다.
“어쩌긴, 다른 수사들이라면 곤란했겠지만 나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잖아. 그냥 여기서 수련을 하면 되는 거지.”
루야의 무거운 어조에 비해 건우의 표정은 밝았다.
- 네? 그냥 수련을 하신다고요?
“뭐가 문제야? 어차피 영체기 경지도 끌어올려야 하는데.”
- 그야 그렇지만요.
“솔직히 루야 너에게 혼원석을 구해 주는 문제만 아니었다면 벌써 수련에 몰두하고 있어야 할 시기였다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한동안 수련을 하며 상황을 지켜보면 될 일이었다.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주인님께서 이제 혼원석을 얻으셨으니 루야 님께 인공 영체를 드린 후에 개인 수련을 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습니다.”
“그렇지. 어차피 영체기 수사의 수명이라고 해 봐야 3천 년 내외잖아. 정 안 되면 이곳에서 수련을 하며 그 정도 시간을 버티면 그만이지. 저 괴뢰도 그 정도가 되면 내가 죽었겠거니 하고 포기하지 않겠어?”
- 하지만 그렇게 오래 이곳에 갇혀 계셔도 되시겠어요?
루야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이런 상황이 모두 루야를 위해 혼원석을 구하다 벌어진 것이라 책임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갇혀 있는 것은 아니지. 수련이야 대부분 좁은 동부에 틀어박혀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하면 내 아공간은 훨씬 넓지. 게다가 갑갑하면 수미산겨자씨와 의식 연결을 해도 되고.”
“주인님께서 그 복불복이라고 하시는 반영세계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여러 날을 다녀와도 이곳에선 하루 밖에 안 지나니 나름 시간 절약도 되고 좋지 않으냐. 게다가 운이 좋으면 엄청난 보물을 얻을 수도 있고.”
건우는 밖을 지키고 있는 종 선생을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사실 마음만 굳게 먹으면 아공간에서 화신기라고 못 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수련자원이 부족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반영세계로 들어가 운을 시험하다보면 수가 날 것이다.
지금은 성단기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지녔으니 반영 세계에서 뚫지 못했던 금제들 중에 뚫을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이다.
“자자. 일단 바깥 상황은 잠시 잊고 루야의 일부터 해결을 하자. 혼원석을 이용해서 인공영체를 루야에게 흡수시켜야지.”
건우는 종 선생의 모습이 보이도록 열어두었던 아공간 입구를 닫았다.
그리고 아공간 한 곳에 곱게 넣어 뒀던 인공영체와 혼원석을 끌어왔다.
솔직히 추적을 완전히 따돌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 고맙습니다 건우님.
루야가 혼란스러운 빛을 뿌리며 건우 앞으로 다가왔다.
건우는 그런 루야와 인공영체, 혼원석을 삼각 구도로 배열하고 영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랑은 혈원을 어깨에 올리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건우가 용랑과 혈원에게 부를 때까지 따로 수련을 하라는 의념을 보냈기 때문이다.
* * *
평량역 중앙 지역의 하늘 위.
알록달록한 무늬를 지닌 커다란 이무기 위에 무량동천의 화신기 수사 둘이 올라 앉아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머리에 붉은 점이 찍힌 것 같은 홍태(鴻泰)라는 수사였고, 다른 하나는 학사풍의 석수자(釋水者)라는 수사였다.
“일이 고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종 선생이 완전히 우리 무량동천의 품을 벗어나 버렸군요.”
석수자의 말에 홍태가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종 선생과 싸움을 벌이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현원보고(賢園寶庫)에 보관하고 있던 보물들이야 아쉬운 대로 잊을 수 있지만, 화신기 괴뢰는 참으로 아깝습니다.”
“커엄, 그렇다고 우리 둘이 목숨을 걸고 종 선생을 제압할 수도 없지 않았습니까. 그토록 광기를 보이는 괴뢰를 잡자면 자칫 동귀어진의 수를 썼을 수도 있습니다.”
“그야 그렇지요. 종 선생을 몰아붙이다가 종국에 동귀어진의 수라도 썼다면 얻는 것은 없고 손해만 막대했을 겁니다.”
“그게 아니어도 문제지요. 우리가 천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종 선생과 싸우느라 자원을 많이 소비하면 그 후에 천겁을 어찌 넘을 것입니까?”
홍태와 석수자는 종 선생을 제압하지 않고 놓아준 것에 대해서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화신기 수사 둘이, 한 명의 화신기 수사를 제압하는 것은 분명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종 선생은 이미 십 만년 이상을 화신기로 살아온 괴뢰였다.
그런 종 선생을 아무 손해 없이 제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혹여 싸움 끝에 제압이 아니라 파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모든 것이 헛것이 되고 만다.
결국 종 선생과의 싸움은 득보다 실이 많은 일이었다.
“제압을 한다고 해도, 이미 종 선생을 만들었던 현기관자 선배는 영계로 비승해 인연이 끊겼잖습니까. 제압한 종 선생을 과거처럼 부려 먹을 방도도 마땅치 않았지요.”
“이를 말씀입니까? 어차피 종 선생은 우리 손을 떠난 상황이라고 봐야지요. 또 굳이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종 선생과 굳이 원수지간이 되어서야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옳고말고요. 그나저나 무량동천의 동도들이 우리의 이런 뜻을 이해해 줘야 할 텐데 말입니다.”
“커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들 제깟 것들이 또 어쩌겠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눈을 흘긴단 말입니까?”
“허하하. 그야 그렇지요. 그저 우리 스스로 체면이 깎였다는 것이 조금······.”
대화 끝에 홍태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렸다.
“그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혈관모가 찢어진 상태였음을 떠올리면, 일은 이리 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하지만 석수자는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음, 그렇긴 하지요. 그런데 보아하니 보고(寶庫)에서 죽은 다섯 놈 이외에 또 다른 한 놈이 있었던 듯한데 이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홍태가 껄끄러운 화제를 덮으려는 듯이 또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야 종 선생이 알아서 하지 않겠습니까? 종 선생이 보물을 훔친 그 놈을 쫓아갔으니 어떻게든 하겠지요.”
“그래도 일단 무량동천의 이름으로 수배를 하긴 해야겠지요? 현원보고를 몽땅 털어간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종 선생을 보고 밖으로 유인해서 싸우는 동안에 그리 약삭빠른 짓을 할 줄이야 누가 알았답니까. 하지만 수배는 좀 그렇습니다.”
“아, 우리가 그 쥐새끼 같은 놈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 흠이 되겠군요?”
“그러니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어쨌거나 연이 얽혔으니 다시 보는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일단은 묻어 두는 걸로 하지요.”
“자자, 이만 갑시다. 돌아갈 길이 짧지 않습니다.”
“커엄, 그럽시다. 서두르지요.”
홍태와 석수자는 평량으로 넘어와 종 선생과 한바탕 격전을 치렀지만 얻은 것은 거의 없었다.
현원보고도 거덜이 났고, 종 선생은 광기를 보이며 누군가를 쫓아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무량동천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