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12화 (112/499)

112. 승자는 종 선생? 정말?

“자, 그럼 정리를 하고 여기를 떠나는 걸로······.”

“크하하하하.”

려모원이 상황을 정리하려 할 때였다.

그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던 종 선생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르릉

“크읏!”

“엄청난 기운!”

“어, 어찌. 이런 힘이!”

종 선생의 웃음소리에 본원 내부 전체가 뒤흔들렸고, 다섯 영체기 수사는 몸을 비틀거렸다.

그 중에서도 려모원은 상황이 더욱 나빴다.

그는 혈관모를 손에 쥐고 영기를 밀어 넣으며 종 선생을 통제하려 애썼다.

려모원의 영기는 혈관모를 통해서 정상적으로 그의 의지를 종 선생에게 보내고 있었다.

려모원은 혈관모를 연화시켜 완벽하게 장악했기에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종 선생을 마음대로 부릴 수가 없다니!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어리석은 놈! 크흐흐흐흐. 네 놈 따위가 감히 나를 멋대로 부릴 수 있을 거 같았더냐!”

스팟!

“커억!”

하늘을 보며 웃던 종 선생이 려모원을 노려보며 그렇게 말을 하더니 순식간에 공간을 이동해서 려모원의 목을 움켜잡았다.

“커어어억, 이, 이게 어떻게······.”

려모원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믿기 어렵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며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 혈관모에 심겨 있는 명령은 하나뿐이다. 무량동천의 명에 따를 것. 그런데 네 놈이 그걸 벗겨 냈으니 이제 누가 있어 나를 부릴 수 있을 거 같으냐! 네가 그것으로 나에게 무슨 명령을 내릴 수가 있단 말이냐? 무량동천의 제자도 아닌 놈이!”

종 선생이 려모원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더하며 그를 비웃었다.

우두두두둑!

“케에에에.”

그리고 종 선생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려모원의 목을 부러뜨렸다.

려모원은 목구멍이 막힌 상태로 짧게 비명을 지르고 늘어져 버렸다.

하지만 영체기 수사가 그리 쉽게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는 법.

려모원의 정수리에서 황토색의 빛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왔다.

그것은 려모원의 모습을 한 한 뼘 정도 크기의 영체였다.

-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려모원의 영체는 어떻게든 도망가려 애를 쓰는 모양이지만 본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좌충우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종 선생은 그런 려모원의 영체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이내 관심이 없다는 듯이 혈관모를 찢어 버리고는 남은 네 수사를 노려봤다.

“마, 막아!”

“공격! 공격해야······.”

“멍청한 려모원!”

“끄응!”

웅주와 원시경, 타타파파, 현패검.

모두의 얼굴빛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들은 앞서 종 선생과 싸우며 빈틈을 만드느라 원기를 많이 소비한 상태였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종 선생과 다시 싸우지 않기를 바랐던 것인데, 일이 우습게 되어 려모원이 영체만 남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지금 상황에서 려모원의 도움을 바라기는 어려운 상황.

그렇다면 종 선생을 그들 넷이 다시 상대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호호호홋, 잠시 꿈을 꾼 모양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꿈에서 깨고 싶지 않으니 어떻게든 미몽을 이어가야겠지요.”

타타파파가 다시 정좌를 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런 타타파파의 머리 위에 영체가 스스륵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영체는 앞서의 영체보다 많이 빈약하고 기운이 약해 보였다.

“끄응! 웅 수사와 원 수사께서 힘을 좀 쓰셔야겠습니다. 이 현 모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듯합니다.”

현패검이 타타파파의 앞을 막아서며 다시 세 개의 검을 종 선생을 향해 겨눴다.

그 모습에 웅주와 원시경도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의념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웅주는 사망옥을 얻어 이전보다 강한 기운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원시경도 한 쌍인 근시경을 얻어서 힘이 늘어난 상태였다.

둘만 따지자면 처음 본원에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강력해진 셈이다.

다만 웅주가 부리던 세 구의 사체가 없으니 그 쪽에선 전력 감소가 불가피했다.

“크하하핫 모두 죽여 주마.”

네 수사가 다시 종 선생을 향해 공세를 가다듬자 잠시 조용하던 종 선생 역시 살기를 뿜으며 몸을 날렸다.

까가강! 까강! 깡! 까드드득!

종 선생의 움직임을 막은 것은 이번에도 현패검이었다.

그는 세 개의 검을 자유자제로 놀리며 종 선생과 접전을 벌였다.

종 선생은 둔두검을 빼앗긴 상태라 맨 손으로 현패검과 싸웠는데 검과 부딪히고도 그의 손이 멀쩡했다.

그 때, 현패검 뒤쪽에 있던 타타파파의 영체가 작열하는 아름다운 빛과 함께 타올랐다.

화르르르르르르륵!

- 왔다가 가는 것이 순리라지만

- 대도에는 역천의 길이 있었네.

- 가다 가다 가다 막다른 길에 닿았으니

- 돌아보니 짧고도 긴, 한 나절 봄꿈이라.

- 꿈에서 깨기보다 꿈과 함께 사라지리니.

- 대도에 이르지 못하면 누구나 이리 허망하리라.

타타파파의 정수리 위에 올라선 영체가 환한 빛 속에서 담담하게 법언을 외우더니 일순간 그 몸과 함께 재가 되어 풀썩 무너져 버렸다.

“크하하하핫, 요망 한 년. 드디어 죽었구나!”

그리고 타타파파의 죽음과 함께 종 선생의 몸에서 수십 배의 영기가 치솟았다.

그 동안 타타파파가 억누르고 있던 화신기 영체가 제약을 벗어 던진 것이다.

파차차차창! 파캉! 파카칵!

“크아아악!”

현패검은 그렇게 강력해진 종 선생의 공격을 단 한 합도 막아내지 못했다.

그의 세 자루 검은 강철과 부딪힌 유리처럼 박살이 났고, 종 선생의 손은 현패검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현패검 역시 어쩔 수 없이 영체만 간신히 몸을 벗어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결국 남은 것은 원시경과 웅주.

사실상 네 명의 수사 중에 종 선생을 막는데 가장 큰 역할을했던 것은 타타파파였던 셈이다.

“죽어! 죽어!”

파각! 파각!

“히이이이익!”

종 선생의 다음 목표는 원시경이었다.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원시경은 이전 보다 훨씬 빠르게 달려드는 종 선생의 공격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가슴에 매단 청동 거울로 강력한 빛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도 역시 종 선생의 주먹질 두 번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본체라 할 수 있는 청동 거울이 두 번의 주먹질에 쩍쩍 갈라졌고, 원시경의 영체는 그 순간 소멸을 맞이했다.

영족은 그 본체가 훼손되면 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이 그런 경우였다.

운이 없게도 본체인 청동거울이 훼손되며 원시경의 영체 자체가 타격을 입은 것이다.

“비, 빌어먹을! 어떻게 일이 이렇게 꼬여!”

웅주는 다급하게 고함을 지르며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혼자서 화신기의 종 선생과 싸워 이길 가망이 전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본원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지만 지금은 종 선생을 피해 다니는 것도 벅찼다.

“아무리 봐도 저 종 선생, 정상이 아닌데?”

그런 모습을 아공간에서 지켜보던 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 선생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려모원과 다른 수사들이 기습적으로 보물을 빼앗은 후부터였다.

그 때부터 종 선생은 조금씩 광기를 보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광기가 훨씬 더 심해진 것처럼 보였다.

지금만 하더라도 웅주 따위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모습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화신기 수사가 영체기 따위를?

“크아아아악! 죽여 버린다! 이 노오옴!”

종 선생은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웅주를 뒤쫓아 다녔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확실히 영체기 따위가 좁은 곳에서 화신기 수사를 피한다는 것은 요행에 불과했다.

결국 웅주 역시 종 선생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끄아아아아악!”

종 선생은 웅주가 들고 있던 사망옥을 웅주의 손과 함께 거머쥐었다.

그러자 곧바로 이변이 일어났다.

쭈우우우우우욱!

사망옥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웅주의 모습은 만약 소리가 났다면 그렇게 들렸을 거라고 건우는 생각했다.

껍질만 남기고 내용물은 사라진 웅주의 가죽이 땅바닥에 너부러졌다.

투둑!

이후 종 선생은 뭔가에 홀린 듯이 죽은 수사들을 순례하며 청동 거울과 둔두검을 회수했다.

그리고 가루가 되어 주저앉은 타타파파의 재에서 미처 소화되지 않은 연명천도의 일부를 수습해 냈다.

사망옥, 근시경, 연명천도, 둔두검이 모두 다시 원래 주인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종 선생은 본원의 중앙, 복숭아나무 분재가 있던 곳으로 돌아와 그 네 가지 보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힐끗 허공을 보더니 손을 휘저었다.

- 이, 이런! 사, 살려주십시오.

- 조, 종 선배님. 용서를······.

종 선생의 손짓 한 번에 허공을 날아다니며 갈 곳을 찾던 려모원과 현패검의 영체가 끌려왔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네 놈들 때문에 내가 정신을 잃고 자칫 미치광이가 될 뻔 했다.”

- 서, 선배님!

“그나마 너는 내 머리에서 혈관모를 벗겨낸 공이 있구나. 하지만 네 놈이 다른 놈들을 끌고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니 그 공이 의미가 없구나.”

-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그리고 너, 너는 내 검을 탐낸 죄가 있지. 너희는 모르지만 내가 가진 다섯 보물은 내 정신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물들이다. 그것이 없으면 제 정신을 유지하기 어렵지.”

-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저 윤회라도 하게 해 주십시오.

현패검의 영체는 그나마 상황 파악을 했다는 듯이 종 선생에게 용서를 빌었다.

“되었다. 어차피 악연이 이어졌으니 그것을 길게 끌어 무엇을 하겠느냐. 그저 운명이라 여기고 받아들이어라.”

종 선생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두 영체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벌리고 털어 넣어 우물우물 씹어 먹어 버렸다.

려모원과 현패검의 영체는 그렇게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종 선생의 입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건우는 그 모습을 아공간 안에서 지켜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혈관모가 벗겨진 덕분에 무량동천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니 이참에 나도 내 길을 걷는 것이 좋겠지.”

두 영체를 씹어 삼킨 종 선생은 잠시 생각하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의 가슴에서 백색과 흑색의 광채가 뒤엉켜 흘러 나왔다.

그것은 종 선생이 모아 놓은 네 가지 보물 곁에 느린 속도로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상반된 두 광채를 머금고 있는 그것은 엄지손톱 크기의 작은 돌이었다.

그 돌을 보자마자 건우는 ‘혼원석(混元石)’을 떠올렸다.

- 건우 님! 저거 혼원석이죠!

루야 역시 그것을 알아봤다.

건우는 당장이라도 그것을 가져 오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건우가 아공간 밖으로 나가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건우가 갈등을 하는 사이에 종 선생의 머리 위에 영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종 선생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영체는 스르르 미끄러져 사망옥과 혼원석을 비롯한 다섯 보석들 위에 멈춰 섰다.

- 이참에 이것들의 기운을 모두 흡수해서 갈무리 하는 것이 좋겠어.

종 선생의 영체가 신중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하더니 다섯 보물들 위쪽 허공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의념을 집중하여 다섯 보물의 기운을 하나로 엮어가기 시작했다.

건우는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문득 천라패갑방패(天羅貝甲防牌)를 불러왔다.

건우가 불러 온 것은 천라패갑방패의 본체.

지름이 수백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패갑이었다.

- 그, 그건 왜요?

루야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님, 설마 저 종 선생을 공격하실 생각이십니까?”

용랑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그 곁에 혈원도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건우를 말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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