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09화 (109/499)

109. 누가 주인이 없다고 해!

“총관! 총관!”

“으음. 무슨 일인데 대장로께서 저리 급하게?”

무량동천(無量洞天)의 총관 호군자(好君子)는 밖에서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집무실 문이 터질 듯이 열리며 대장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그렇게 여유로울 수 없었던 대장로가 얼굴이 대추빛처럼 붉어진 상태로 흥분해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장로께서 이리 흥분을 하시다니요?”

“현원보고!”

“네??”

“현원보고에 침입자가 생겼네. 지금 현원보고에서 경보가 울렸어!”

“현원보고라면 저희가 잃어버린 보고가 아닙니까. 거기서 경보가 울리다니요?”

“현원보고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넣은 봉인을 잃어버려 그 동안 찾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 보고에 경보체계까지 망가진 것은 아니지.”

“그러니까 현원보고에서 경보가 울려서 그곳의 위치를 파악해 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이를 말인가? 곧바로 출발해서 현원보고를 확보하고, 쥐새끼 같은 도둑들을 잡아 죽여야 할 것이야.”

“하하하. 그거 참. 그 쥐들 덕분에 현원보고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군요. 그러니 너그러히 목숨만 취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뭐가 되었건 서둘러야 하네. 현원보고에는 다른 것도 아닌 ‘그것’이 있네.”

“아! 그렇습니다. 거기에 종(種) 선생이 있었습니다.”

총관은 대장로의 말에 뭔가를 떠올리고 눈빛을 번뜩였다.

현원보고에는 꽤나 많은 보물들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종 선생이라 불리는 그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무량동천 전체를 통틀어도 그만한 보물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을 떠올리자 총관도 마음이 급해졌다.

“곧바로 전송진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대장로께서도 도와주시겠습니까?”

“허어, 이젠 보따리까지 내 놓으라는 겐가? 이 정도 했으면 내 할 일은 다 했다 싶은데?”

“대장로님!”

“에잉, 나는 모르는 일이네. 상황을 알려줬으니 총관이 알아서 하게.”

뭔가 잔뜩 흥분해서 뛰어왔던 것과는 다르게 대장로는 총관의 부탁을 슬그머니 거부하고는 총관 집무실을 떠났다.

총관은 어떻게든 대장로를 붙잡고 싶었지만 마땅히 강제할 힘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장로와 실랑이를 벌일 시간도 아까웠다.

“여봐라! 밖에 누가 있느냐!”

총관이 고함을 지르고 총관부의 제자들에게 엄청난 일거리가 생겨난 것은 그 직후였다.

현원보고의 이상을 알리는 신호가 들어왔고, 그 신호를 추적해서 현원보고의 위치를 파악해 냈다.

그리고 무량동천의 전송진 중에 하나를 현원보고로 이동할 수 있도록 개조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전송진을 만들려고 하니 현원보고의 위치가 무척 멀었다.

그렇게 되면 전송진을 개량하는 일도 쉽지 않고,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인원도 줄어든다.

또 그 때문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기존의 전송진으로 평량역까지 이동한 후에, 그곳에서 다시 전송진을 개조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그보다는 이곳에서 직접 소수의 정예를 보내는 것이 낫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다가 무량동천의 대회의까지 열리고서야 결정이 내려졌다.

두 명의 화신기 수사가 무량동천에서 직접 현원보고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남는 것은 이제 전송진을 빠르게 개조하는 것 뿐이었다.

“하하하. 종 선생께서 오시면 우리 무량동천의 기세가 더욱 불타오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우리 무량동천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총관은 전송진 개량을 직접 지휘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종 선생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 * *

갱(坑)과 굴(掘)을 닮은 두 마리의 짐승.

호랑이와 표범을 섞어 놓은 것 같은 갱은 오른쪽 앞발이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큰 모습이었다.

그리고 도마뱀 형상을 한 굴은 짧은 가시털이 몸 전체에 나 있고 앞발이 넓고 커서 땅을 파기에 좋아 보였다.

건우는 두 짐승의 조각을 올려보며 문을 여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해답을 찾아냈다.

“주인님, 방법을 찾으셨습니까?”

건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용랑이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건우는 갱이 있는 문짝으로 다가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갱과 굴의 관계를 알면 어렵지 않게 밝혀 낼 수 있는 방법이다.”

건우는 먼저 갱의 두툼한 발에 중급 영석 하나를 던져 넣었다.

영석은 건우의 의념을 받아 천천히 날아가 갱의 발에 닿았고, 그 즉시 물처럼 녹아서 스며들었다.

스르르르르르릉! 스스스슷!

그러자 갱이 앞발부터 생기를 머금더니 잠시 후에는 몸 전체가 살아 있는 동물이 되었다.

그 모습에 용랑이 깜짝 놀라 경계를 했다.

“걱정할 거 없다. 저 녀석은 문에서 나오지 못한다.”

건우가 그런 용랑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 말대로 갱을 닮은 짐승은 문짝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일 뿐,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건우가 다시 중급 영석 하나를 던져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급 영석이 문짝 안의 공간으로 들어갔고, 갱을 닮은 짐승은 그것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다가 땅을 파고 묻어 버렸다.

“어?”

용랑은 기껏 준 영석을 땅에 묻어 버리는 짐승의 모습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지금껏 꼼짝도 않고 있던 굴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리고 갱이 중급 영석을 묻어 놓은 곳을 노려봤다.

건우가 다시 하나의 중급 영석을 갱을 닮은 짐승에게 던졌다.

그리고 그 짐승은 중급 영석을 잠시 가지고 놀다가 다시 이전의 그 자리를 파고 묻었다.

굴의 눈빛이 한층 강렬해지고 굴의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시 하나의 영석이 투입되었고, 갱을 닮은 짐승이 세 개째의 영석을 땅에 묻었을 때, 굴이 풀풀풀 기어서 갱이 있는 문짝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갱이 영석을 묻어 둔 자리를 파내기 시작했다.

머리를 땅에 처박고 앞발로 흙을 퍼내는 굴.

건우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 사이에 굴이 파낸 흙들이 굴이 있었던 문짝으로 가서 쌓여 언덕을 만들었다.

“어어어?”

그리고 어느 순간 용랑이 깜짝 놀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건우는 용랑이 가리키는 곳을 보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땅을 파헤치던 굴이 일을 마치고 다시 제가 있던 문짝으로 돌아가는데, 굴이 지금껏 머리를 처박고 있던 부분에 커다란 구덩이가 나 있었다.

그런데 그 구덩이는 문짝 내부의 공간에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짜로 문에 구멍을 만들어 내성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열어주고 있었다.

“자, 이만 들어가자.”

건우가 용랑에게 말하며 훌쩍 몸을 띄워 굴이 뚫어 놓은 구멍으로 날아갔다.

용랑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건우를 따라서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후, 문에 남은 갱과 굴은 서로 투닥거리며 싸우다가 서로 힘을 모아서 뚫린 구멍에 흙을 메웠고, 문에 뚫렸던 구멍은 처음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당연히 갱과 굴을 닮은 두 짐승도 원래 조각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 * *

“이리로 가면 되겠구나.”

건우가 내성으로 들어오자 경려주에게 받은 지도를 떠올리며 말했다.

내성의 모습은 조금 전의 복도와 크게 달랐다.

천정은 끝도 없이 높아져서 눈으로 확인이 되지 않을 정도였고, 내부 공간은 사방이 확 트여 있었다.

다만 여기저기 굵은 기둥들이 서 있어서 이곳이 실내임을 알 수 있었다.

“곧바로 본관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용랑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음, 그렇게 해야지. 어차피 그곳에 가장 귀한 보물들이 있을 텐데.”

“그렇습니까?”

“물론 가는 중에 취할 수 있는 보물들을 그냥 지나칠 생각은 아니다.”

건우가 얻은 지도는 내성의 입구에서부터 본관까지 이르는 지름길을 표시한 것일 뿐, 내성 전체를 그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가는 길에 취할 수 있는 보물도 적지 않았다.

다만 보물이라 하지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차차차창! 크라라라랑!

지도를 통해 내성의 금제를 피해 이동하던 건우는 드디어 첫 난관이자 보물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건우와 용랑이 등장하자 곧바로 그곳을 지키던 금제가 발동했다.

“석수괴뢰 두 마리에, 인간형 괴뢰가 여섯입니다.”

용랑이 전면에 돌짐승 둘을 내세우고 뒤쪽에서 검을 겨누는 괴뢰들을 보며 건우에게 말했다.

용랑은 언제든 싸움을 벌일 수 있도록 양쪽 팔이 녹각독랑의 그것처럼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팔에는 검은 광채의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성단기 중, 후기 정도의 위력을 지닌 괴뢰들이다. 조심하거라.”

건우가 용랑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건우 역시 오랜만에 칠부팔진궤를 불러내었다.

크와와와왕! 콰르르르릉!

콰과과과광! 차자자자장!

먼저 두 마리의 돌짐승 괴뢰가 달려들자 용랑이 표효와 함께 맞서 나갔다.

그리고 건우는 뒤쪽에 있는 여섯 인간형 괴뢰를 향해 법부들을 날려 보냈다.

이제는 열두 종료의 법부를 만들고 그것을 열여섯 종류의 진법을 구축할 수 있게 된 칠부팔진궤라 이름도 십이부십육진궤(十二符十六陣櫃)로 바꿔야 할 터.

법보의 위력을 갖춘 십이부십육진궤(十二符十六陣櫃)에서 날아간 법부들은 여섯 인간형 괴뢰를 진법에 가두었다.

여섯 괴뢰는 검을 매섭게 휘두르며 어떻게든 돌짐승들과 연계를 해 보려 했지만 진법에 갇힌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건우는 진법 안에서 좌충우돌하는 괴뢰들을 살피며 도리어 괴뢰선의 비전을 가다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 현원보고는 괴뢰들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곳인 모양이군. 말 그대로 일종의 보물 창고로 사용되던 곳이고.“

건우는 다시 한 번 현원보고의 이름이 지닌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보물 창고의 주인이 누구일지 궁금해졌다.

‘주인이 있었다면 봉인이 떠돌지도 않았겠지. 주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극금문에서 봉인을 풀지도 않았을 것이고.’

건우는 무량동천이라는 세력에 대해서 몰랐고, 그곳의 배신자가 봉인을 가지고 도망가다 다급한 상황에서 봉인을 아무렇게나 내던진 것도 몰랐다.

당연히 이곳 현원보고의 주인인 무량동천에서 다급하게 이곳으로 오려고 준비 중인 것도 알 수 없었기에 자기 편한 쪽으로 결론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건우는 드디어 돌짐승 두 마리와 인간형 괴뢰 여섯을 처리하고 그 괴뢰들이 품고 있던 핵과 그것들이 지키던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운이 좋구나. 처음부터 괜찮은 것이 나왔어.”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무량금석(無量金石)이라는 것이다. 무게가 전혀 없으면서도 아주 단단하고 또 변형성이 좋기도 하지. 이것은 부양도를 수리하는데 사용하면 더없이 좋겠구나.”

“귀하기도 한데, 주인님께 필요한 것이라니 더없이 좋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렇구나. 이거 본관에 가기 전에 될 수 있으면 거칠 수 있는 창고는 다 거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보물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아.”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어차피 려모원 일행이야 내성까지 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겠습니까?”

“음, 그래도 지도를 벗어나는 것은 위험하니 지도에 나온 곳만 최대한 거치는 것이 좋겠다.”

“네, 주인님.”

“자, 그럼 가자.”

건우는 다시 용랑을 이끌고 현원보고의 내성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은 보고(寶庫)를 지키는 괴뢰들은 물론이고 침입자를 찾아 움직이는 괴뢰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우는 때로 괴뢰와 싸우고, 때로는 아공간에 숨어서 피하면서 차근차근 현원보고의 본관을 향해 나아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건우의 주머니는 두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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