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08화 (108/499)

108. 현원보고(賢園寶庫)

= 역시 맞아요. 려모원은 제가 짐작했던 그곳으로 향하고 있어요.

경려주가 건우의 설명을 듣고는 확언을 해 주었다.

“거기 정말 혼원석이 있나?”

건우가 물었다.

= 그건 저도 몰라요. 하지만 그곳에 보물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죠.

“그런데 왜 그런 곳을 그냥 둔 거지? 너나 과아분도 알고 있었던 내용인 모양인데.”

= 찾으려고 했지요. 하지만 단서가 끊겨 있었어요. 그곳에 대한 이야기나 자료는 많은데, 그 입구로 가는 방법에 대한 것은 하나도 없었죠.

“그러니까 존재하기는 하는데 정작 가는 길은 알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는 소리네?”

= 그렇죠. 게다가 그곳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해봉당에서 어떤 주인 없는 금은연리의 봉인을 풀었을 때, 그 안에서 나온 내용이었거든요.

“그 봉인이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는 모르고?”

= 대략 10만년 이상은 되었을 거라 추측했을 뿐이에요. 그 금은연리의 봉인이 근래에 사용하는 형태가 아니었거든요.

“봉인 형태를 확인했는데도 시기를 특정하지 못했다고?”

= 사실 극금문의 봉인은 주기적으로 유형이 바뀔 뿐이에요. 비슷한 것이 반복되기도 하죠. 그래서 유형만 가지고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려워요.

“이건 뭐 복고풍이 유행한다는 말이 떠오르네.”

= 네?

“아니야. 그래서 입구만 발견하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확실하지?”

=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을 말하자면 그 보물창고에 대한 기록들 중에서 일부는 제가 숨겼고, 또 일부는 려모원이 숨겼고, 나머지는 과아분 그 놈이 숨겼어요.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호호호홋, 뭐겠어요? 다들 그 보물창고가 욕심이 나니까 기록에 접근할 기회가 생기면 슬쩍 내용을 바꾸거나 혹은 지워버리는 거죠. 그래야 누군가 그곳을 노리지 못할 거 아닌가요?

“결국 려모원 그 놈이 그곳으로 가는 길을 지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네? 그리고 너나 과아분이 숨기고 지운 것을 려모원은 모를 가능성이 높고?”

= 그런 거지요. 그래서 따지고 보면 려모원 보다는 길 수사가 유리한 입장이 되겠네요.

“네가 그곳 내부의 상황을 려모원 보다는 더 자세히 알고 있으니까?”

= 그렇지요. 보물창고의 지도를 제가 가지고 있는 셈이랍니다.

“그거 나쁘지 않군.”

= 그렇지요? 호호호홋.

“그래, 그래.”

건우는 경려주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속으로는 그녀를 비웃었다.

어쩌면 조모명과 경려주는 호리병박의 금제에서 벗어나 탈출하는 것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확실히 그럴 것이다.

아직 그들에게 배울 것도 많이 있으니 시간 여유를 두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게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들이 나와봐야 아공간 안이다.

아공간은 건우의 의념공간으로 티끌 하나라도 건우의 의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호리병박을 벗어나 아공간으로 나온들 영체 상태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영체 상태에서 원래의 몸을 회복하고 경지를 안정시킨다면?

그래도 어떻게 공간 전체를 장악한 건우와 싸울 수가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건우는 조모명과 경려주의 탈출을 걱정하지 않았다.

가능성도 없지만 성공해 봐야 아공간 안이니까.

* * *

평량역의 동쪽 끝자락.

모든 역들의 경계가 그러하듯 그곳 역시 혼돈역과 이어져 있었다.

려모원이 일행과 함께 도착한 곳은 그 중에서도 사화산 분화구에 깊은 연못이 들어차 있는 곳이었다.

려모원 일행은 분지의 연못 수면에 비행 법보를 내려 앉혔다.

그리고 배를 돌려보내기 전에 뒤쪽 정자에서 커다란 관 세 개를 꺼내 허공에 띄웠다.

관의 주인은 곰의 체구를 지닌 웅주 수사였다.

그리고 비행 법보의 주인은 타타파파로 일행이 모두 수면에 내려서자 타타파파가 소매 안으로 법보를 당겨 넣었다.

“자, 이미 말씀을 드린 것처럼 이 물 밑에 전송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송진을 발동하면 우리들은 현원보고(賢園寶庫)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움은 그 이후부터입니다.”

려모원이 다른 일행 넷을 한 번씩 쳐다보며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알았소이다. 긴장을 늦추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물론입니다. 이 늙은이 역시 경거망동 하지 않을 겝니다.”

“나 역시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

“어서 갑시다. 이제 내가 힘을 쓸 때가 머지않은 것 같아서 피가 끓는 것 같소이다.”

웅주, 타타파파, 원시경, 현패검이 차례로 제각각 각오를 밝혔다.

려모원은 그런 반응에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수면 밑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남은 네 수사들 역시 수면 아래로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웅주의 관 세 개가 뒤를 따랐다.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분지 위에 건우의 청옥비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즉시 청옥비선을 소매에 챙겨 넣은 건우가 아공간 안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건우의 우려와는 달리 려모원 일행의 모습이 다시 수면 위에 나타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결국 하루를 기다린 건우가 다시 밖으로 나와 수면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랑은 당연하다는 듯이, 길우몽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우 곁을 따르고 있었다.

얼마 후.

“역시 전송진이 발동하는 것과 동시에 훼손되도록 손을 쓰고 떠났군.”

건우가 연못 바닥에서 커다란 전송진을 발견하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지 않습니까. 주인님께선 이 전송진이 아니라 다른 것을 쓰실 테니 말입니다.”

그런 건우를 보며 용랑이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건우는 피식 웃고는 훼손된 전송진을 힐끗 쳐다보고 연못 바닥의 한쪽 구석으로 미끄러져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경려주가 말한 금제의 흔적을 찾아냈다.

건우는 그곳에 영기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바닥이 갈라지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생겼고, 그 안으로 들어간 건우는 위에 있던 것보다 작은 규모의 전송진 하나를 발견했다.

“이것이군요. 현원보고의 내성으로 통하는 전송진이.”

용랑이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건우에게 말했다.

“려모원 일행은 현원보고의 성문 앞으로 갔겠지만 우리는 이 전송진으로 내성 입구로 간다. 당연히 그 놈들보다 빠르게 현원보고를 털어 먹을 수 있겠지.”

“그래도 과아분이 지워버린 내용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 아쉽습니다. 혹시 거기에는 내성문 앞이 아니라 성의 안쪽으로 곧바로 들어갈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없는 것을 아쉬워 할 이유는 없지. 지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유리한 입장이니까.”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 영석 주머니를 꺼내 전송진 곳곳에 영석을 날려 끼워 넣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자 곧바로 영기를 주입해서 전송진을 발동했다.

화화화화홧!

잠깐 건우와 용랑의 모습이 아지랑이 속에 있는 듯이 일렁거리다가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이 내려왔던 계단 입구가 닫히며 흔적을 감췄다.

그렇게 건우와 용랑이 사라진 전송진 바닥 중앙에는 붉은 핏방울 하나가 물방울 다이아처럼 반짝거리며 놓여 있었다.

* * *

스화화홧.

“여기가 현원보고?”

“내성문 앞이라 했는데 실내일 줄은 몰랐습니다.”

건우의 놀람에 용랑도 비슷한 감상을 드러냈다.

“내성의 문 앞으로 가는 것이라고만 했지, 경려주도 현원보고가 이런 곳일 줄은 몰랐겠지.”

“그렇습니까?”

“그래. 지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 실내인지 실외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성 내부의 지도라서 복잡한 복도들이 이어진다고만 생각했었지.”

건우는 경려주의 영체로부터 의념으로 전해받은 현원보고의 지도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이 문이 내성으로 들어가는 문입니까?”

“그렇겠지.”

건우는 길게 이어진 복도를 가로막고 있는 문을 보며 말했다.

지금 건우와 용랑이 있는 복도는 좌우의 폭만 십여 미터에 이르고 높이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

게다가 벽과 천정, 바닥이 모두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장식이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모두 갖가지 색의 돌을 연이어 짜 맞춰서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어 놓았고, 벽과 천정 여기저기에는 돌출된 장식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드러나 있기도 했다.

“주인님, 저 장식들은 모두가 인물상인 모양입니다.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의 흉상입니다.”

그 장식들을 보던 용랑이 새삼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이 건우에게 말했다.

건우도 벽과 천정의 장식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 흉상들은 모두가 가슴 부분 아래로는 벽과 천정에 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으음. 마치 살아 있는 이들을 그대로 돌로 만들어 옮겨 놓은 것 같구나.”

건우가 그 흉상들에 대한 감상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건우는 자신의 말이 반쯤은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석상들이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우는 복도를 관찰하는 것을 금방 그만두었다.

자신이 그 복도로 들어갈 일은 없었다.

거기에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건우에겐 내성으로 들어가는 문이 중요했다.

“맹수와 도마뱀이라.”

건우가 문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내성으로 통하는 문은 좌우 두짝으로 되어 있었고, 모양으로 보면 밀어서 여는 형태였다.

그런데 각각의 문짝에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 보는 모습의 맹수와 도마뱀이 각각 양각되어 있었다.

그 두 짐승은 문앞에 있는 건우와 용랑을 향해 언제라도 몸을 날릴 듯이 몸을 긴장시킨 상태였다.

“주인님, 이 짐승들은 정체가 뭘까요? 저는 이것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용랑이 두 짐승들과 눈싸움을 벌이며 건우에게 물었다.

“맹수는 갱(坑), 도마뱀은 굴(掘)이라 불리는 신수의 갈래로 보이는구나.”

확신할 수는 없지만 비슷할 거라고 건우는 생각했다.

그러면서 용랑에게 갱과 굴에 대해 아는 것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건우가 지금껏 여러 경로로 얻은 지식들 중에 신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 중에 여러 신수의 대략적인 모습이나 능력, 성향에 대해서 밝힌 것도 있었는데, 거기 갱과 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갱이나 굴이나 모두 땅을 파고 묻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신수였다.

태고에 갱(坑)은 수많은 세상을 구덩이에 파묻었고, 굴(掘)은 묻힌 것을 파내어 언덕을 만들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갱이 파고 묻으면 굴이 다시 파내어 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반복하면 희생되는 이들이 많아지는 만큼 거름이 잘 된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특별히 선과 악을 구별하지는 않았다 했다.

“갱과 굴이라니,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그럼 여기 두 조각이 그 갱과 굴이겠습니까?”

“음? 그럴 리는 없지. 고작 이런 조각 따위로 신수를 표현할 수 있겠느냐? 혹여 갱과 굴을 문에 담고자 했어도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이 둘은 갱과 굴의 아주 먼 후손 정도로 보면 되겠구나.”

“그렇군요.”

용랑은 알아 들어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중에 건우도 뭔가 알아차렸는지 눈빛을 반짝였다.

“이곳의 이름이 현원보고(賢園寶庫)라 했지. 현원은 현명한 정원 혹은 울타리 있는 밭을 이야기 하지. 그렇다면 이 두 짐승도 나름 어울리긴 하는구나.”

“갱과 굴이 거름을 잘 주기 때문입니까?”

용랑이 물었다.

“갱과 굴은 세상을 거름으로 삼아 새로운 밭을 일구었지. 그렇게 보면 정원이나 밭을 일구는데 적합하지 않겠느냐?”

“갱과 굴에서 비롯한 핏줄이 고작 인계에서 정원 관리나 한다니 도리어 서글퍼지는 느낌입니다.”

건우의 말에 용랑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문에 걸린 금제를 풀어야 한다.”

“경려주나 조모명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습니까?”

“그건 나중으로 미루자꾸나.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의지와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또 그런 과정이 쌓여서 경지도 높일 수 있는 것이고.”

“알겠습니다. 주인님.”

“게다가 우리는 아직 급할 것이 없다. 려모원 일행은 이제 현원보고의 정문에서부터 안쪽으로 들어오는 중일 게다. 또 그게 쉬운 일도 아니겠지.”

건우는 자신이 려모원 일행보다 훨씬 앞선 입장임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갱과 굴을 닮은 짐승이 있는 문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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