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대 놓고 하는 미행
“려 수사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저를 지켜보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건우의 목소리에 불쾌감이 담겼다.
려모원이 그런 건우의 반응에도 웃는 표정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사실 며칠 전에 대각점(臺閣店)에서 길 수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혼원석을 찾고 있다고 말입니다.”
대각점은 이 성에서 제일 큰 수도계 상점이었다.
당연히 일반 범인들은 얼씬거리지 못하는 곳이기도 했다.
“으음, 이 길모가 혼원석을 찾는 것이 어째서 려 수사의 관심을 끌었는지 모르겠군요.”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려모원이 혼원석에 대한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건우를 찾아올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짐작하시겠지만 제가 혼원석의 행방을 알고 있습니다.”
“으음.”
건우는 려모원의 확인에 살짝 신음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려모원은 그런 건우를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잠시 후, 건우가 려모원을 노려보며 물었다.
설마하니 이득도 없는 행동을 했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길 수사께 이미 말씀을 드린 것처럼 저는 극금문의 해봉당 당주입니다. 하지만 당주가 된 것이 고작 십여 년이 지났을 뿐이라 아직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그럼 이번에 저를 찾은 것은 해봉당에서 려 수사의 입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겠군요? 그걸 도와주는 조건으로 혼원석에 대한 것을 알려주겠다는 뭐 그런.”
건우는 려모원이 자신을 찾은 이유를 그렇게 짐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별로 틀리지 않은 예상이었다.
“정확하게는 제가 가려는 곳에 혼원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무척 위험한 곳이지요.”
“그렇습니까?”
까짓 위험 따위야 건우에겐 별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껏 건우의 아공간은 그런 자신감을 가지게 할 정도의 충분한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려모원의 말에도 건우는 그리 걱정보다는 도리어 설레는 기대감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사실 해봉당에는 봉인과 결계에 대한 여러 정보들이 쌓여 있습니다. 이 려모원은 그런 정보들을 모두 찾아볼 자격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그 정보들 중에서 그럴듯한 것을 찾아서 려 수사께서 공략을 하기로 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요. 아울러서 해봉당은 물론이고 본문의 도움도 받지 않기로도 했고요. 혼자 해야 실력을 인정받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를 불렀다? 그러기엔 려 수사가 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그저 이름이나 알 정도의 사람을 그런 공략에 데리고 가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만.”
건우는 려모원에 대한 의심을 숨기지 않고 직접 드러내며 물었다.
“위험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극금문과 연관이 없는 수사라면 누가 되었건 상관없습니다. 사실 누구라도 도움이 될 실력만 있다면 모두 모시고 싶은 마음이지요. 다만 그곳에 있는 보물 중에 이 려모가 취해야 할 것만 건드리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저 혼원석만 챙기란 말입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또 다른 수사들도 각자 그들이 원하는 것을 취하면 됩니다.”
“함께 갈 수사가 여럿인 모양이지요?”
건우가 다시 경계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물었다.
여러 수사가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이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예상하기 어렵다.
낯선 수사들과 동행하며 함께 뭔가를 한다는데 그게 순조롭게 끝날 수 있을까?
건우는 문득 드는 그런 생각에 속으로 고개가 저어졌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모시는 수사들은 모두 서로 다른 보물을 원하는 분들입니다. 같은 것을 원하는 분은 모시지 않았지요.”
“그 말은 려 수사가 가려는 곳에 그렇게 다양한 보물들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정말 그런 곳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건우는 려모원의 말을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그곳에 혼원석이 없다면 길 수사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더구나 다른 수사들 역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가만히 계실 분들이 아니지요.”
려모원은 감히 그런 수사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믿기 어렵습니다만······.”
건우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고 려모원에게서 뭔가 더 알아내려 말을 끌었다.
하지만 그런 건우의 태도에 려모원은 코웃음을 쳤다.
“이보시오 길 수사. 내가 듣기로 길 수사가 혼원석을 애타게 찾는다 들었소. 그래서 내가 그대에게 기회를 주려는 것인데, 그대는 도리어 이런 내 호의를 의심하기만 하는구려?”
려모원은 웃는 표정이었지만 목소리에는 비꼬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으음.”
건우는 마땅한 대꾸를 찾지 못했다.
“정 그렇다면 그냥 못 들은 걸로 하시지요. 내키지 않는 분을 억지로 모시고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려모원은 결국 건우에게 최종 통보까지 하며 물러날 뜻을 밝혔다.
건우는 순간 이번에는 그가 려모원의 소매를 잡을 뻔 했다.
하지만 건우는 애써 그런 충동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혼원석이 탐나긴 하지만, 려 수사의 준비를 믿기 어렵습니다. 얼마나 많은 수사들을 데리고 가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렇게 한꺼번에 여럿이 몰려다니는 것이 내키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지난 포란처만 하더라도 많은 수사들이 몰려갔고, 나 역시 함께 했었지만 결국 큰 손해만 보았을 뿐입니다. 그 때문인지 려 수사의 제안이 탐탁찮습니다.”
“하아아, 길 수사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인연이 있으면 또 봅시다.”
려모원은 결국 불쾌한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며 그렇게 인사를 하고 멀어졌다.
건우는 떠나는 려모원의 등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수사들의 개인 상점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면 주인님께서 그 려모원이란 수사의 뒤를 쫓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까?”
얼마 후, 건우의 곁으로 복귀한 용랑이 려모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물었다.
“려모원을 왜 쫓는단 말이냐?”
건우가 웃는 얼굴로 용랑을 보며 되물었다.
“그야, 그 놈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함께 하는 이는 어떤 이들인지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너는 내가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했어?”
건우가 웃으며 물었다.
“당연합니다. 주인님께서 혼원석에 대한 실마리를 그냥 버리실 리가 없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렇지. 혼원석의 위치를 안다는 수사가 나왔는데 쉽게 포기할 수는 없지.”
“그런데 어째서 미행을 붙이거나 쫓아가지 않으셨습니까?”
용랑은 자신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혈원이라도 불러내서 미행을 시켰어야 한다고 생각기에 그렇게 말했다.
그런 용랑의 반응에 건우의 얼굴에서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내가 려모원이면 당연히 나를 경계했을 거다. 내가 자신의 뒤를 쫓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안 그래?”
“그렇긴 하겠습니다.”
“그래서 놈의 뒤를 쫓지 않은 거야. 대신에 놈이 내 주변에 안배해 놓은 것을 찾으려 애썼지. 려모원이 나를 그냥 내버려 둘 놈이 아니지. 반드시 나를 감시하고 있었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만, 그게 놈을 쫓는 것과 무슨 상관이······. 설마 주인님을 감시하는 놈들이나 법기를 통해서 역추적을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는지 용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하. 그런 거지. 려모원을 직접 쫓은 것보다 려모원이 나에게 붙인 감시자를 통해서 려모원 그 놈을 찾는 것이 빠르고 안전하겠지.”
“역시 주인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용랑은 건우의 말에 기뻐하며 활짝 웃었다.
* * *
3년 후.
스스슷.
황토색의 둔광이 솟구치며 려모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한참 후,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분명 누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와 보면 아무것도 없단 말이지.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쯧쯔.”
려모원은 자신이 꾸린 공략대의 뒤를 쫓는 은밀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게 누군지는 감도 잡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 사실을 함께 움직이는 수사들에게도 알려서 어떻게든 뒤를 쫓는 이를 잡아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매번 놈은 흔적도 없이 몸을 감추곤 했다.
그러니 뻔히 꼬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씩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네 놈이 언제까지 우리를 쫓을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 나는 네 놈이 끝까지 우리를 따라올 능력이 있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려모원이 허공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 황토색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그 후 려모원은 정자(亭子) 두 개가 있는 비행 법기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행 법기는 배의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양쪽으로 지네의 발처럼 생긴 노가 열두 개씩 달려 있었다.
“어찌 되었습니까? 이번에도 잡지 못했습니까?”
려모원이 배의 앞쪽 정자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곳에 앉아 있던 수사 중에 하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곰을 닮은 체형의 수사는 고개를 어깨 사이에 파묻어 잔뜩 웅크린 모습이었다.
“웅(熊) 수사. 면목이 없습니다. 도움을 주셨는데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려모원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실 이번에 미행자를 잡기 위해 웅 수사라 불리는 이의 도움까지 받았다.
려모원이 해봉당의 봉인술을 이용해 몸을 숨기고, 그 위에 웅 수사의 은폐 결계까지 더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미행자를 놓쳤으니 얼굴이 뜨거울 일이었다.
“그리 말씀을 하시면 이 웅주(熊呪) 역시 부끄러울 일이지요. 제가 걸어드린 결계도 상대에게 들킨 것이 아니겠습니까?”
웅주는 그렇게 말을 하며 작게 손사래를 쳤다.
“어차피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 않소. 우리가 이제 목적지에서 전송진을 사용하고 그것을 폐한다면 그 놈이 무슨 수로 우리를 계속 쫓을 수 있겠소?”
그런 중에 정자에 있던 또 다른 수사가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어린 소동의 모습을 하고 있는 수사로 가슴에 커다란 청동 거울을 붙이고 있었다.
“원시경(遠視鏡) 수사의 말이 옳아요. 이전에 려 수사가 한 말대로라면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전송진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것을 우리가 폐한다면 미행자는 닭 쫓던 개 꼴이 되겠지요.”
이번에 나선 수사는 여성 수사로 매부리코가 인상적인 노파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 보자기를 쓴 것 같은 노파는 얼굴에서 코만 살짝 드러나 보였다.
“원 수사와 타타파파(??婆婆)의 말이 옳습니다. 려 수사가 제대로 말을 했다면 미행자의 문제는 그리 해결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그러니 이제는 괜한 일로 심력을 허비하지 마십시다.”
마지막으로 입을 연 것은 등에 세 개의 검을 꽂고 있는 수사로 검(劍)은 등에 진 커다란 방패 사이에 엇갈려 꽂혀 있었다.
“물론입니다. 현패검(玄貝劍) 수사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려모는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려모원은 손을 모아 쥐고 앞으로 내밀어 흔들며 하늘에 맹세하듯 말했다.
그런 려모원의 행동에 다른 네 수사들은 미심쩍은 표정을 감추며 의심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제 곧 감춰진 전송진에 도착하게 될 테니, 그곳에서 확인하면 드러날 일이었다.
* * *
- 조금 더 떨어져서 쫓으면 안 되는 거예요? 이번엔 정말 들킬 뻔 했다고요.
루야가 건우와 나란히 아공간 통로를 통해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내가 아무리 영체기 초기의 일반 수사보다 의식의 힘이 강렬하고 그 범위가 넓다고 해도, 저기엔 영체기 후기의 수사가 둘이나 있어. 그리고 나머지도 모두 영체기 중기지. 그런 이들을 쫓는데 거리를 뒀다가는 종적을 놓칠 가능성이 높아.”
건우는 려모원 일행을 두 번이나 놓칠 뻔 한 경험이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뒤를 쫓다가 어느 순간 려모원 일행이 비행 법기와 함께 공간을 건너뛰는 바람에 깜짝 놀랐었다.
결국 비행법기가 사라진 곳에 남은 공간 이동의 흔적을 더듬어 겨우 방향만 알아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정말 미친 듯이 날아간 후에 겨우 다시 려모원 일행의 비행 법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이 두 번.
그 때문에 건우는 그들에게 들킬 것을 알면서도 일정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하지만 벌써 몇 번이나 들켰잖아요. 이러다가 저들이 계획을 포기하면 어떻게 해요?
루야는 걱정스런 기색이 가득했다.
이번 일이 자신이 쓸 혼원석을 구하기 위한 것임을 알기에 조바심을 내는 것이다.
“그럴 것 같았으면 그만 둬도 벌써 그만 뒀겠지. 뭔가 대책에 있으니까 한쪽 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는 거 아니겠어?”
- 하긴 그건 그렇죠. 언제 부턴가는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는 일도 그만 두긴 했어요.
“그러니 저들이 중간에 포기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게다가 우리에겐 경려주가 있어.”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
사실 건우는 려모원이 어디로 가려는지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다.
건우가 호리병박에 들어 있는 경려주에게 려모원의 이야기를 하자, 경려주가 뭔가 짐작이 가는 것이 있다고 알려줬다.
려모원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보면 거의 확실하다는 말도 들어 놓은 상태였다.
건우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 네, 건우 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금 마음이 놓이네요.
루야는 여전히 불안해 보였지만 건우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했다.
건우는 근래에 꽤나 다소곳해진 루야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그 빛덩이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 걱정할 거 없어. 이번에 혼원석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언젠가는 구해 줄 테니까.”
- 꺄아아, 그런 불길한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제가 얼마나 새로운 몸과 수사의 능력을 기대하고 있는데요!
결국 루야는 루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