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05화 (105/499)

105. 인공영체에 담긴 강렬한 통수!

= 어험.

“어? 뭐? 뭐지?”

그런데 수미산겨자씨 위의 영체에 다가간 인공영체가 갑자기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사람은 뒷짐을 지고 오연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건우는 깜짝 놀라 경계심을 끌어 올리며 인공영체를 노려봤다.

어디선가 본 기억에 있는 모습이었다.

= 어떤 녀석인지 모르지만 고생했다.

인공영체는 여전히 영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 어차피 의념공간으로 내가 들어온 이상, 나를 어찌할 방법은 없을 테니 그냥 이야기를 들어라.

“뭔 개소리야? 내가 뭘 했다고?”

건우는 인공영체의 말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은 마치 녹음되어 있는 내용을 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건우는 급히 용랑과 혈원을 불러 인공영체를 에워쌌다.

그리고 건우는 수미산겨자씨 위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는 자신의 영체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인공영체는 그저 제 할 말만 이어갔다.

그것으로 인공영체가 하는 말이 사전에 저장된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 나는 괴뢰선이라 한다. 혹시 들어봤을지 모르겠구나.

“괴뢰선!”

건우는 그 인공영체의 모습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해 냈다.

십이비선봉 은밀역의 열두 동상 중에 저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십이비선봉 밀역, 은밀역의 혈사(血史)를 만들어 냈던 원흉인 유운이 그의 후예를 자처했었다.

= 우리 십이 선문의 일을 네가 아는지 모르겠다. 우리들이 영계로 비승한 후, 갖가지 모함을 거쳐서 결국 멸문을 당했지. 사실 이것은 그 징조를 알아차리고 미리 준비한 것들 중에 하나다.

“괴뢰선이 미리 준비했다고?”

“주인님, 이게 다 무슨 소립니까?”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저 인공영체는 정상이 아니야. 원래 인공영체는 순수해야 하는데, 이미 괴뢰선이란 놈의 의념이 깃들어 있어.”

건우는 무척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헛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영계로 오르는 것을 미루거나 취소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우리 열두 사람의 상황과 생각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어?”

건우는 결국 인공영체 주변을 의념으로 차단하고 그것을 끌어 내리려 했다.

그런데 건우의 의념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그 때서야 건우는 조금 전에 인공영체가 영체가 있는 곳에 들어온 자신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큰소리치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하지만 건우는 다른 수사들과 달랐다.

다른 수사들은 영체가 있는 의념공간에 물리적인 힘을 투사할 수 없다.

혹시 가능하다면 영체를 직접 움직여서 힘을 써야 하는데, 영체기 초기의 영체는 그야말로 복중에 든 태아와 같은 상황이다.

그런 영체로 낼 수 있는 물리력이 보잘 것 없을 것은 당연하고.

=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는 당시의 상황에 무척 분노했다. 그래서 내 능력을 사용해서 여러 괴뢰를 만들었지. 그리고 지금 이 영체 역시 그 중에 하나다.

“이런 빌어먹을!”

건우는 와락 성질이 났다.

그 고생을 했는데 괴뢰선이란 놈이 준비한 함정에 빠지다니.

= 이제 나는 너와 한 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내 뜻에 따라서 십이선문의 원수들을 징벌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고.

“하아, 기가막히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건우는 스윽 손을 내밀어 인공영체를 직접 잡았다.

그러자 뒷짐을 지고 근엄한 표정으로 떠드는 인공영체가 쉽사리 건우의 손에 잡혔다.

나오금강체술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검은 황금빛 손에 잡힌 인공영체.

하지만 인공영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이 제 할 말을 했다.

= 그리고 나와 하나가 되더라도 너는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그저 네 생각이 항상 십이선문의 복수를 우선하게 된다는 것 말고는 다른 변화는 없을 것인 즉.

“지랄한다. 결국 나를 네 꼭두각시로 만들겠다는 소리잖아!”

건우는 인공영체를 잡고 수미산겨자씨 위, 자신의 영체로부터 멀어졌다.

파지지지지직!

그런데 영체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갑자기 인공영체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인공영체를 감싸며 영기의 파동이 일어나 쥐고 있는 손을 밀어내려 한 것이다.

하지만 나오금강체술을 끌어올린 건우의 손을 작은 인공영체가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인공영체를 들고 건우가 수미산겨자씨에서 멀어졌을 때였다.

지지지지직.

=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도 내 시도가 실패했군.

갑자기 인공영체의 말이 달라졌다.

건우는 손에 쥔 인공영체를 눈 앞으로 끌고 와서 노려봤다.

= 누군지 모르지만 의외로구나. 인공영체에 혹했다면 고작 영체기에 불과했을 텐데 어찌 의념공간에 들어온 인공영체를 다시 꺼낼 수 있었지?

“꺼낸 거 아니다. 멍청한 놈.”

건우가 손에 쥔 인공영체를 노려보며 이죽거렸다.

= 쯧, 아깝게 되었군. 이리 실패하다니.

인공영체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건우는 다시 무슨 말이 있을까 싶어서 이리저리 흔들어 봤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에 인공영체를 수미산겨자씨에 있는 자신의 영체로 가까이 가지고 가 봤다.

그러자 곧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 어험.

= 어떤 녀석인지 모르지만 고생······.

= 어차피 의념 공간을 내가 들어온 이상······.

그리고 앞서 했던 말들을 반복하는 괴뢰선 인공영체.

건우는 이번에는 그 말을 막지 않고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대신에 인공영체가 자신의 영체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실패 했다는 말이 나오기 직전의 거리까지 떨어뜨려 놓았다.

그 상태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들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없었다.

인공영체를 이용해서 아무 수사나 꼭두각시를 만들어 십이선문의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나마 건우의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는 인공영체의 말이 끝나기 조금 전에 나왔다.

= 이제 나와 네가 하나가 되면 이 인공영체에 담아놓은 내 괴뢰술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이면 네가 복수행을 하는 데에 적잖은 도움이 될 터. 혹여 복수를 마치고 영계 비승을 하게 되면, 내가 너를 제자로 맞아 후히 대접해 줄 것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거라.

“제자? 꼭두각시가 무슨 제자야? 결국은 영계로 비승한 쓸만한 노예 하나 거느려 보겠다는 소리 아냐?”

건우는 괴뢰선 인공영체의 말에 혀를 찼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말까지 모두 확인했다.

괴뢰선 인공영체는 말을 끝낸 후, 영체와 하나가 되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건우의 손에 잡혀 있는 상태에서 영체로 다가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의념공간에서 외부의 어떤 힘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모종의 수법이 인공영체에 깃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설마하니 아공간 의념공간 같은 것이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 * *

“뭐 이런······. 하아, 미치겠네.”

건우는 수미산겨자씨 밑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손에 쥐고 있는 괴뢰선 인공영체를 노려봤다.

몇 번이나 인공영체의 말을 반복해서 들었지만 같은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 건우 님?

- 끽끼끼끼

용랑과 루야, 혈원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건우의 눈치를 살피며 배회하고 있었다.

건우는 셋의 존재를 깨닫고 크게 한숨을 쉬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쩌긴, 죽을 고생을 했는데 헛고생이 된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건우는 손을 저어 하얀색 옥으로 만든 작은 병을 하나 불러왔다.

그리고 그 병의 입구를 열고 괴뢰선 인공영체로 향했다.

그러자 인공영체가 액체처럼 병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 그냥 그렇게 넣어 두시게요?

루야가 물었다.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할 동안 봉인을 해 두려는 거다.”

건우는 조모명과 경려주에게 배운 봉인과 결계를 떠올리며 백옥병에 금제를 걸기 시작했다.

- 저어기요.

그런 건우를 루야가 묘하게 늘어지는 목소리로 불렀다.

“뭐? 할 이야기라도 있어?”

건우가 물었다.

- 그, 인공영체요. 그거 제가 쓸 수는 없을까요?

건우가 루야를 만난 이후로 가장 다소곳해 보이는 루야의 말이었다.

- 아니, 건우 님도 이제는 제법 경지도 높아지고 아는 것도 많아졌으니까, 그 인공영체를 제가 쓸 수 있게 해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루야는 마치 못할 말이라도 하는 듯이 건우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으음. 그러자면 일단 인공영체에 들어 있는 괴뢰선 놈의 흔적부터 지워야지. 그러자면 괴뢰선의 괴뢰술을 익혀야 하고.”

- 그 인공영체에 괴뢰선의 괴뢰술이 들어 있다고 했잖아요. 그걸로 어떻게 안 될까요?

“나도 그건 어떻게든 뽑아서 배워볼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당장은 어렵지.”

- 네? 왜요?

“왜긴, 아직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 급한 일이······.

“영체를 안정시켜야지. 그리고 반영세계의 건우도 영체기로 끌어 올려야 하고. 그 다음에 형자수란과(炯紫水蘭果)를 섭취해서 수명도 늘려야 하고. 조모명과 경려주에게 배워야 할 것도 많이 남았고.”

- 다, 다른 건 몰라도 조모명이랑 경려주에게 배우는 건 뒤로 좀 미뤄도······.

“뭐, 그건 미뤄도 되겠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포란처를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 이미 알이 부화하고 포란제단이 허물어진 상태라 포란처도 불안정해지고 있으니까.”

- 어, 어쨌거나 그 인공영체를 제가 쓸 수 있게 해 주실 거죠? 네?

“그래봐야 아공간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할 텐데 굳이 인공영체가 필요하냐?”

- 하지만 제게 영체가 생기면 저도 수련을 할 수 있을지 모르고, 그러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는 어차피 건우 님께 속해 있는 존재라 건우 님께 해를 끼치진 못하는데요?

“으음?”

- 설마, 그걸 어떻게 믿어. 뭐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죠?

“대천 세계가 워낙 흉흉하니······.”

- 건우님! 정말 너무해요!

“쩝, 알았다.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하자. 포란처를 벗어나는 것부터.”

건우는 슬쩍 루야의 눈치를 보며 아공간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포란처를 유지하는 결계가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제단 꼭대기로 올랐다.

그 곳에 포란처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열 방법이 있었다.

* * *

몇 개월 후.

난란성에서 멀리 떨어진 포란산맥 기슭의 작은 계곡 안.

건우는 포란처를 벗어난 후, 난란성으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임시 동부라도 하나 만들까 했지만 다른 수사와 교류를 할 것도 아니어서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포란처에서 벗어나자마자 아공간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쯧, 일이 번거롭게 되었네.”

“그래도 루야 님을 위한 것이니 애를 써 보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혀를 차는 건우의 말에 중년 수사의 모습을 한 용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야 그렇지만. 그걸 어디서 구하냔 말이지.”

건우는 다시 한 번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반영세계에서 크게 고생을 하셨으니 당분간은 쉬시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형자수란과를 드셔서 이제 수명이 1만년에 이르는데 급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하긴 수명이 1만년이라. 그것 참, 실감이 안 나긴 하지.”

건우는 아공간에 머무는 동안에 반영세계에 들어가 반영세계의 건우를 영체기로 끌어 올렸다.

이미 본체가 영체기라 반영세계의 건우를 영체기로 만드는 것은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본체가 여덟 개의 영근과 하나의 위영근까지 모두 아홉 개의 단을 뭉쳐서 영체 하나를 완성한 것처럼 반영세계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필요했다.

게다가 여덟 속성을 지닌 건우를 영체기로 만들었는데 뭔가 미진하다 싶었더니, 나오금강체술을 익힌 건우가 반영세계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 건우까지 영체기로 만드니, 이번에는 그 아홉을 하나로 묶어야 했다.

반영세계에서 얼마의 시간을 보내든 밖에선 하루가 지날 뿐인데, 건우는 몇 달을 반영세계를 오가느라 보냈다.

그만큼 아홉 영체를 하나로 묶어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쨌건 성공했고, 아공간은 다시 아홉 배가 늘어났다.

영체기에 오르면서 이미 수백 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넓어졌던 아공간이 이번에는 지름만 거의 세 배가 넘게 커졌다.

당연히 의념의 힘이 그만큼 강대해 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는 특별한 방해가 없는 상태라면 가만히 의식을 집중하는 것만으로 앉은 자리에서 주변 수백 킬로미터를 살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마무리 한 건우는 곧바로 7만년 수령의 형자수란과를 먹었고, 그 1할인 7천년의 수명을 얻었다.

영체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수명이 3천년 정도가 늘어나는데, 거기에 형자수란과의 7천년이 더해지니 1만년의 수명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것은 화신기 수사의 수명과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건우의 마음에 이전과는 다른 여유가 가득했다.

그냥 아공간에 처박혀 있기만 해도 1만 년은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 정도면 아무리 못난 재능이라도 화신기를 넘보지 못할까.

“화신기에 오르면 또 수명이 1만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많을 수도 있고. 크흐흐흐.”

건우는 늘어난 수명을 떠올리고 저도 모르게 경박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잠시 루야를 위해 구해야 할 재료의 부담을 잊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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