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100화 (100/499)

100. 격안관화(隔岸觀火:강 건너 불구경) 클라이맥스

5년 후.

‘역시! 이제부터 시작인가?’

건우는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며 몸에 힘을 주었다.

포란 제단의 해체는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그 동안 백여 개의 갖가지 수련 자원과 진법, 법구와 법부 등이 제단에서 출토되었다.

게다가 피라미드의 상부로 갈수록 결계를 푸는 것이 어려워져서 시간도 많이 걸렸다.

남은 것은 피라미드 최상부에 있는 세 개의 보물과 그 위에 있는 여섯 겹 광채의 알(卵) 뿐이었는데, 그에 대한 해체 준비도 마무리가 되었다.

보물을 빼 낸 피라미드에는 열네 명의 수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새로운 진법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그 진법은 최후의 세 보물을 알과 분리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알이 폭주하지 않도록 만드는 안전장치였다.

이제 그 진법만 발동시키면 세 가지 보물과 알을 취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이제 서로 협력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거겠지.’

건우가 긴장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보물을 앞에 두고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도자는 없다.

지금껏 백여 종의 보물이 제단에서 나왔고, 그것을 열네 명의 수사들이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쳐도 알(卵) 하나만 못할 것이고, 그 아래의 세 보물 또한 지금까지 나온 보물들과는 격이 다를 것이다.

“과 수사. 이제 일이 마무리가 되는데 분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아분과 대치하며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조모명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홍후모가 함께 하고 있었다.

홍후모는 과아분과 함께 결계를 넘어왔던 다섯 수사 중에 하나로 영체기 중기의 수사였다.

그는 붉은 원숭이 얼굴을 가진 수사로 원인(猿人)족이라는 소수 일족의 태생이라 했다.

그런 조모명과 홍후모 뒤로 형설구, 해주분, 구치곤, 고태여, 아로, 망부구가 서 있었다.

두 명의 영체기 중기 수사와 여섯 명의 초기 수사가 뜻을 모은 것이다.

그에 비해서 과아분은 경려주와 금희매, 육추주, 상시연을 거느리고 그들과 대치했다.

그 중에 건우만 어정쩡한 위치에 빠져 있는 꼴이었다.

매 번 수사들이 건우를 회유하려 할 때마다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유지한 것이 그런 결과를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하네. 과아분 쪽에는 모두가 여자 수사들이고, 반대쪽에는 모두 남자 수사네.’

건우는 두 세력의 대치를 보면서 속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경려주, 금희매, 육추주, 상시연은 모두가 여성 수사였던 것이다.

“보물은 지분 점수로 경매를 하기로 한 것이 아니었나? 이제 진법을 발동해서 보물 세 개가 나오면 그 주인을 경매로 정하고, 마지막으로 알도 같은 방법으로 주인을 정하면 되겠지.”

과아분이 뭐가 문제냔 듯이 조모명을 보며 말했다.

과아분은 어린 소동의 모습이고, 조모명은 일반인의 무릎 크기 밖에 되지 않은 소인이었다.

이런 둘이 대치하는 장면은 겉보기엔 우스워 보였지만 실상은 영체기 완경의 수사와 중기의 수사가 힘을 겨루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조모명이 과아분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조모명은 홍후모와 함께 힘을 모으고 있었고, 그 뒤로 뜻을 모은 수사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그러니 아무리 영체기 완경의 과아분이라도 조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영체기 초기와 중기, 후기의 차이가 작은 것은 아니지만 영체기 정도 되면 비장의 수단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이들 중에 누군가가 짧은 시간이라도 경지를 상승시킬 공법이나 영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과아분이 화신기로 경지를 끌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걱정하지는 않았다.

같은 영체기 안에서 경지를 상승시키는 것과 영체기가 화신기의 힘을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결국 영체기 초기라도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소리지.’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두 무리의 대치를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다보니 건우는 자연스럽게 다른 두 무리와 떨어져 외따로 있어, 하나의 세력 축 꼴이 되어 버렸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그럼 이렇게 하지요.”

과아분의 말에 조모명이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쩌자는 것이냐?”

“이미 일의 마무리에 이르러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드러난 마당이 아닙니까.”

“그래서?”

“진법을 발동시키기 전에 먼저 경매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경매 먼저?”

“그렇지요. 그래서 저 보물들의 주인을 미리 정하는 것입니다.”

“으음. 이야기를 계속 해 봐라.”

“경매로 보물의 주인을 정한 후에, 그들만 남고 나머지는 이곳 포란처를 떠나는 것입니다.”

“뭐라?”

“어차피 모두들 이미 어지간한 이득은 보았지 않습니까. 남은 보물은 넷 뿐인데 사람은 열넷이니 분쟁의 씨앗만 될 뿐입니다.”

“그래서 경매로 저것들의 주인을 정하고 나머지는 깔끔하게 물러나자?”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이곳에 끝까지 남은 이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떠난 이들은 피해가 없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건 그렇구나.”

조모명과 과아분의 대화가 그렇게 이어졌다.

그런데 그런 중에 건우는 과아분의 뒤에 있는 수사들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조모명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과아분을 계속 힐끔거렸다.

그 때, 과아분이 뒤를 돌아 경려주와 금희매 등을 보았다.

“너희 생각은 어떠냐? 우리의 지분 점수를 모두 모은다면 세 가지 보물 중에 하나와 알은 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주님께서 원하시면 당연히 그리하겠습니다.”

과아분의 말에 경려주가 곧바로 승복할 뜻을 보였다.

그러자 금희매와 육추주, 상시연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과 수사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저도 따르겠습니다.”

“과 수사께서 원하시면 그리 하십시오.”

금희매 육추주, 상시연은 그렇게 대답하고 한 걸음 물러났다.

“그렇다는 데? 그러니 이제 경매를 하면 되겠군. 어디 보자 우리 점수를 다 모으면 어찌 되나?”

과아분은 일이 뜻대로 된 것이 즐거운 듯이 웃는 얼굴로 조모명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일행의 지분 점수에도 자신이 있는 듯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푸욱! 푹!

“커억!”

과아분의 가슴으로 은빛과 금빛이 핏줄기와 함께 솟아났다.

건우는 그 광경에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과아분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것은 경려주의 비녀 열쇠였던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콰과과과광! 카카카칵!

과아분이 고함을 지르며 몸을 휘돌리자 그의 어깨에 있던 금은 열쇠의 견장이 크게 부풀어 그를 보호했다.

“역시 대단하세요. 그 짧은 순간에 봉인을 많이도 푸셨습니다. 하지만 3할의 힘이 봉인되었으니 그만 패배를 인정하시지요.”

경려주는 과아분의 등에 비녀 열쇠를 그대로 꽂아둔 상태로 훌쩍 뒤로 몸을 날렸다.

그녀는 자신의 본명법보를 이용해서 과아분의 영체 3할을 봉인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하하. 성공하셨습니다. 경 수사.”

그 모습에 조모명이 크게 웃엇다.

그리고 경려주는 금희매와 육추주, 상시연을 이끌고 조모명 패거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과아분은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이, 이, 이게 어찌?!”

과아분은 돌아가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는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귀여운 소동의 모습을 한 과아분의 머리가 오이처럼 길쭉하게 변하며 사나운 표정이 되었다.

그의 금은 열쇠 견장도 영롱한 빛이 줄어들고 대신에 검고 붉은 스산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제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당주께서 이곳에 비밀스럽게 결계를 더해서 아무도 이곳 포란처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신 것을요.”

“그, 그것을 알아냈다고? 고작 너 따위가?”

“호호호. 당주, 제가 해봉당의 부당주입니다. 저를 너무 하찮게 보신 것이 아닌지요. 뭐, 사실을 말하자면 여기 조 수사의 도움을 크게 받기는 했지만요.”

“조모명? 네가 내 결계를 알아봤다고?”

“그게 무에 대수랍니까?”

과아분의 물음에 조모명이 히죽 웃으며 답했는데, 그런 그의 머리 위로 나경패철(羅經佩鐵:지관이 쓰는 나침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 너는? 풍수문에서 나온 놈이더냐!”

그 모습에 과아분이 깜짝 놀라며 고함을 질렀다.

“하하하. 이제야 알아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풍수문의 조 모입니다.”

“경려주! 네가 감히 풍수문과 내통을 해?!”

“호호호. 당주님, 누가 내통을 했다고 하십니까. 저는 원래 풍수문이 사람입니다. 이럴 때에는 내통을 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잠입을 했다 하지요.”

“이 녀언!”

콰릉!

과아분의 고함소리와 함께 그의 몸을 보호하던 금은 열쇠의 견장들이 크게 팽창하며 삼십육 면의 입체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변화를 보자마자 경려주가 깜짝 놀라며 고함을 질렀다.

“막아요! 저건······.”

하지만 경려주가 고함을 지르고 그에 반응해서 수사들이 과아분을 공격했을 때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과아분은 삼십육 면의 입체 구조물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고, 서른여섯 면의 구조물은 그 한면 한 면에 강력한 영기를 품고 수사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콰과광! 콰릉! 번쩍! 번쩍!

“크으!”

“이런!”

“으윽!”

게다가 삼십육면의 입체 구조물은 공격에 반응해서 반격까지 가해 수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저건 쉽게 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게 되었습니다. 과아분은 저 안에서 몸을 회복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깰 방법이 없나?”

“우리가 힘을 모으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게.”

경려주의 말에 조모명과 다른 수사들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경려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저건 과아분의 자충수에 불과해요.”

“음? 그게 무슨 소리지?”

경려주의 말에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홍후모가 물었다.

“저건 한 번 발동하면 좀처럼 깰 수 없는 요새가 되지만 거꾸로 꼬박 여섯 달이 지나기 전까지는 스스로 풀고 나오지도 못해요. 그러니 이제 과아분의 처분은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는 거지요.”

경려주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했다.

“으음? 그게 정말인가?”

“호호, 그렇다면 정말 과아분이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네요.”

“어리석다 하긴 좀 그렇지. 어차피 그 홀로 우리 모두를 상대로는 승산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도 그렇군요. 급한 상황에선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도 합니다.”

경려주의 말을 들은 수사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럼 이제 과아분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겠군.”

조모명이 마음이 놓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리 위에 있던 나경패철(羅經佩鐵)이 폭발하듯 파편이 되어 비산했다.

피피피피핏 피핏 피피피핏!

“크악!”

“아악!”

“으아악!”

“죽어!”

“너, 네가?”

“이, 이럴 수가!”

그것은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조모명의 법구가 가까이 몰려 있던 수사들을 공격하고, 그 틈에 몇몇 수사들이 또 앞과 옆의 수사를 기습했다.

조모명과 경려주, 해주분, 육추주.

이 넷이 다른 수사들을 기습한 것이다.

가장 먼저 목이 날아간 것은 붉은 원숭이 얼굴의 홍후모였다.

홍후모는 조모명의 나경패철 공격의 삼할을 받았고, 이어서 해주분과 육추주의 합공을 받았다.

느닷없는 조모명의 기습 직후에 해주분이 그를 뒤에서 끌어안고, 육추주가 커다란 검은색 대도로 그의 목을 베었다.

목이 베인 홍후모는 급히 영체를 일으켜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되는대로 몸을 날렸는데, 하필 그 방향이 건우가 홀로 있는 곳이었다.

“길 수사! 나를 도와주시오. 그리하······.”

홍후모의 영체가 건우를 향해 날아오자 건우는 당황했다.

한참 강 건너 불구경을 하던 참인데, 홍후모 덕분에 자신도 불구덩이 안으로 끌려들게 된 것이다.

“그냥 죽어라!”

그 때, 경려주가 양손에 작은 나침반을 꺼내 날카로운 빛을 홍후모의 영체에 내쏘았다.

그리고 그 빛은 몸을 날리던 홍후모의 영체를 그대로 증발시켜 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

“이런!”

건우는 홍후모의 영체가 증발한 것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경려주의 공격이 홍후모의 영체를 증발시키고도 전혀 힘이 줄어들지 않고 건우를 향해 뻗어왔다는 것이었다.

“크하아아압!”

건우가 크게 기합 소리를 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나오금강체술로 검은 황금빛을 머금은 길우몽의 주먹이 경려주의 광선 공격을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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