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99화 (99/499)

99. 굳이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마다할 이유는?

“으음.”

건우는 경려주가 만든 문으로 포란처의 결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긴장시키고 경계심을 끌어 올렸다.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인인 조모명이 앞에 서고, 그 뒤에 형설구와 해주분, 그 뒤로 구치곤 금희매, 육추주가 삼각 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건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조모명과 대치하고 있는 상대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여섯 명의 수사가 이쪽을 노려보며 서 있었다.

“당주님!”

그 순간, 마지막으로 결계를 넘어 온 경려주가 반가운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반대쪽에서 대치하고 있던 이들 중에 하나가 활짝 웃으며 경려주를 불렀다.

“이야, 부당주? 부당주가 왔군? 헤헤헷.”

그는 어린 소동의 모습을 한 수사였다.

그가 앞으로 나오자 다른 수사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복장이 드러났다.

그는 양쪽 어깨에 금은의 열쇠를 견장처럼 올리고 있었다.

건우는 경려주가 그를 당주라고 부른 것에서 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해봉당(解封黨)의 과아분(瓜兒憤) 당주(黨主)였다.

“자, 다들 경계를 푸세요. 저 분은 해봉당의 당주님이에요.”

경려주가 그렇게 말을 하며 당주가 포함된 무리로 걸어갔다.

순간 건우를 비롯한 일곱 수사들은 눈빛을 주고받으며 짧게 의논을 마쳤다.

그리고 상대를 경계하는 태도를 감추었다.

그런 이쪽의 태도에 과아분의 무리도 경계태세를 누그러뜨렸다.

그런 중에 과아분과 경려주는 결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그렇군. 이번 결계는 수사의 경지에 따라서 차별을 두는 것이었어.”

“당주님도 그리 보셨습니까?”

“그럼, 그렇지. 그게 아니라면 영체기만 유독 이리 몰릴 이유가 있겠어?”

“그럼 화신기 선배님들은 또 다른 곳으로 갔을까요?”

“설마? 내가 알기로 이번 포란처에 화신기 선배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없었는 걸?”

“저도 듣기는 그리 들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뭐, 그야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선배들께선 관여하지 않으신 거 같아. 여길 보라고.”

과아분이 작은 몸으로 과장되게 팔을 저어 주변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경려주가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수사들도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한 표정이었다.

지금 모두가 있는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지름이 십 리도 되지 않는 원형의 대지가 현묘한 공간 결계로 분리되어 있었다.

수사들은 모두 그 변두리 부분에 모여 있는 중인데, 저 멀리 공간의 중심에는 돌로 만든 제단이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이곳이 포란처의 중심, 즉 포란심처임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그 돌 제단으로 모였다.

“굉장한 영기가 응결되어 있군.”

“알을 보호하기 위한 껍질이 굉장히 두터워.”

“저 알껍질이 지금껏 우리가 뚫어 왔던 결계들보다 훨씬 강력해 보이는데요?”

“도대체 어떤 진혈을 품은 알일지 궁금하군.”

“그보다는 알을 품고 있는 보물들도 대단해 보이는군요.”

“영기를 품은 갖가지 보물들이 많이 있는 것 같군.”

“일단 가까이 가서 파악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럽시다. 이곳이 이번 포란처의 심처라면, 이제 보물을 나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사들은 제각각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겸양 따위를 하는 것은 스스로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비록 영체기 완경의 과아분이 있지만 다른 수사들도 쉽게 양보할 마음이 없음은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일단 가서 보물을 확인합시다. 여기서 우리가 서로 싸워 하나만 남는다고 저 보물이 그 사람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다들 진정하세요. 아직 저기 있는 알이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한 보물들이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헤헤헷, 그렇지. 어디 나 없이 너희가 저것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리고 나도 혼자서 저것을 어찌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다들 아시겠지만 포란처의 알을 취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부화를 위해 준비해 놓은 갖가지 결계를 풀어야 함은 물론이고, 알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도 파훼해야 하죠. 벌써부터 욕심을 낼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도 모두가 보물에 정신을 빼앗기진 않았는지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특히 과아분은 가장 경지가 높다는 것과, 봉인 해제에 가장 뛰어난 실력자라는 점에서 지분이 컸다.

거기에 경려주까지 뜻을 함께 하니 모든 수사들이 과아분과 경려주에게 주도권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열네 명의 수사들이 모두 함께 알이 있는 제단을 향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돌로 만든 제단은 높이가 백여 미터에 이르는 피라미드 형태였다.

그 꼭대기에 알이 놓여 있었는데, 알은 여섯 가지의 광체가 겹겹이 둘러진 상태로 맥동을 하고 있었다.

과아분은 그 여섯 겹의 광체가 알을 보호하고 또한 부화시키기 위한 힘임을 파악해 냈다.

그리고 그 여섯 겹의 광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제단에 들어 있는 보물들임도 알아냈다.

결국 일행들이 해야 할 일은 제단에 박혀 있는 그 힘의 근원들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알의 부화를 위해서 제단에 심어진 보물들은 모두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자칫 실수를 하는 날에서는 연쇄 작용으로 모든 것이 허물어질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씩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쌓이면 하나씩 제단 안에 들어 있는 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딸깍!

“오오오, 이건 보기드문 속성석이 아닙니까. 이런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또 하나의 제단 돌벽돌이 떨어져 나오며 그 안에서 속성 영기가 담긴 보석이 나왔다.

그러자 수사들이 모두 모여들어 그것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감정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희귀하긴 합니다. 보십시오. 이것은 가뭄과 메마름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커엄. 그에 대해선 내가 좀 아는 바가 있소.”

특이한 속성 영기가 담긴 보석에 해주분이 호들갑을 떨자 고태여가 헛기침을 하며 아는 척 손을 내밀었다.

해주분은 보석을 고태여의 손에 올려주며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감정을 할 수 있는 이가 있으면 그에게 보물의 감정을 맡기는 것은 암묵적인 규칙이 되어 있었다.

고태여는 머리에 두건을 둘러서 두 눈만 겉으로 내 놓은 이였는데,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이곳에 있는 많은 이들이 본모습을 감추고 있는데 두건 따위는 애교 수준일 뿐이었다.

“이런 속성은 자연스럽게는 사막 깊은 곳에서 간혹 만들어지는 것이오. 그게 아니라면 특별한 공법을 익힌 수사가 영기를 불어 넣어 만들어야겠지요. 하지만 이건 확실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맞소. 특정 수사의 의념이 전혀 가미되지 않았으니 말이오.”

“자연적인 것이라, 그렇다면 그것을 잘 궁구하면 가뭄과 메마름에 대한 것에 깨달음을 조금 얻을 수는 있겠습니까?”

해주분이 고태여의 말에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가능하겠지요. 여기 담긴 기운이 매우 강렬하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혹시 이것을 제가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중에서 이 보석을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해주분은 고태여의 대답에 안달이 난 모습으로 보석에 대한 욕구를 드러냈다.

그러자 다른 수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사실 그것이 무엇이든 보물인 이상에야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제단에서 나오는 보물에 대해서는 모두가 그만한 대가를 내 놓아야 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이곳의 열네 수사가 합의한 지분이었다.

모두가 힘을 모아서 제단의 결계를 풀기로 하면서 일행들은 지분을 분배했다.

그리고 그 지분에 따라서 일종의 점수를 나누어 가졌는데, 그 점수로 보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보물을 구입하기 위해 내어 놓은 점수는 남은 사람들이 지분에 따라 나누어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 참, 해 수사. 미안하게 되었소. 나도 그것에 관심이 있소이다.”

“저도 끼어야 할 거 같네요.”

“나도 한 발 걸치지.”

해주분이 조바심을 드러낸 탓인지, 다른 수사들의 참여가 늘어났다.

그리고 결국 경매가 진행된 후, 해주분은 생각보다 많은 점수를 지불하고 속성 영기가 들어간 보석을 차지했다.

이후 해주분이 내 놓은 점수는 남은 열세 수사가 지분에 따라서 나누어 가졌다.

당연히 지분률이 제일 높은 과아분에게 가장 많은 점수가 흘러가고, 이후 경려주나 조모명, 홍후모 같은 영체기 중기 수사가 다른 영체기 초기의 수사들보다 많은 점수를 가져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모두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열네 명의 수사들이 합의를 거쳐서 만든 지분율이었다.

그것에 불만을 가지면 협력은 산산조각 나는 상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사들 사이에는 이런저런 이합집산이 수시로 반복되었다.

꼭 가지고 싶은 보물을 취하기 위해서 지분 점수를 빌리기도 하고, 둘, 혹은 셋이 점수를 모아서 보물을 취한 후에 따로 보물의 처분을 의논하기도 했다.

“재미있지 않나?”

“뭐가?”

건우는 문득 말을 걸어오는 구치곤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구치곤은 건우와 함께 모래폭풍을 넘어 온 여덟 수사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무척 과묵해서 좀처럼 대화를 나누는 일이 없었다.

오죽하면 건우의 나오금강체술의 위력을 본 후로 대련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이 가장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었던 수사다.

그는 늑대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수인족 수사였다.

수인족 수사는 늑대가 영성을 얻어 수사가 된 용랑과 달리, 수인족이라는 종족에서 유래한 이들을 말했다.

수도계에는 의외로 많은 종류의 수인족이 있었는데 구치곤은 그 중에 늑대 수인족 출신의 수사였던 것이다.

“모두가 소꿉장난을 하는 듯 하지 않나?”

구치곤이 건우의 심드렁한 대꾸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꿉장난이라고?”

“그렇지. 사실 제단을 허무는 과정에서 나오는 보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하나같이 밖에서는 보기 힘든 귀물들인데?”

“그래봐야 진정한 보물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나. 길우몽 자네는 그걸 모른단 말인가? 진정?”

구치곤이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 듯이 건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미 그들 주위에는 단단한 막이 생겨 둘의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막아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비밀스러운 대화는 이미 모든 수사들이 수시로 하는 행동이라 특별할 것도 없었다.

경매 한 번을 진행할 때마다 그런 모습이 몇 번씩 보이곤 하니까.

“제단을 허물수록 등급이 높고 귀한 것이 나온다는 것은 나도 알아. 그리고 가장 위쪽, 알을 받치는 부분에 세 개의 엄청난 보물이 있다는 것도 알지.”

“역시, 이미 알고 있었군.”

“하지만 그게 어떻다는 거지? 이미 우리는 모든 보물을 경매로 구하기로 약속을 했을 텐데?”

“길우몽 자네는 그 약속이 끝까지 지켜질 거라고 생각하나?”

“······.”

건우는 구치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건우도 그것에 대한 확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열에 아홉은 무슨 사달이 나도 날 것이다.

건우 역시 그 때를 대비해서 여러 궁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길우몽, 사실 나는 제단의 보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알겠지만 나는 지금껏 경매에 거의 참가하지 않고 있지.”

“그래. 좀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이긴 하다.”

“나는 솔직히 경매가 끝까지 약속대로 제대로 진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점수를 모은 내가 마지막 경매에서 이길 수 있을 테니까.”

“으음. 그러니까 알을 원한다고?”

건우는 뜻밖이란 표정으로 구치곤을 바라봤다.

알은 이 포란심처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다.

그것을 구치곤이 노린다니.

사실 별로 가능성은 있어 보이진 않는 이야기였다.

고작 영체기 초기의 수사가 중기와 완경의 수사들이 버티는 상황에서 최고의 보물을 탐하다니.

“자네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게 사실이니까.”

“그런가?”

“누가 있어 과아분과 경려주의 연합을 깰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들이 지분 점수를 모은다면 그 또한 감당할 수 없지. 그래서 나는 딱히 그에 대한 욕심은 부리지 않아.”

“그래서 자네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과 친하게 지내려 하는 건가?”

“으음. 그건 좀 다른 문제인데 말이지.”

건우는 구치곤이 자신을 두고 오해를 하는 것 같아 뭐라 설명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다른 문제라고?”

“사실 나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을 정도의 보물만 챙기면 되거든. 그 대신에 과아분과 경려주를 보며 이것저것 배우려는 것이고.”

“결국 길우몽 자네는 그들과 한 편이란 소리군.”

“쯧, 그렇게 편을 가르면 곤란한데?”

“어쨌든 알았다. 나는 네 입장만 확인하려던 것이었으니까.”

“입장 확인이라? 그럼 내가 확답을 해 주지. 나는 욕심이 크지 않아. 그래서 지금 상황에 불만이 없어. 그리고 해봉당의 당주와 부당주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알았다.”

구치곤은 건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등을 돌려 멀어졌다.

건우는 자신이 구치곤의 울타리 안에 들지 못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구치곤은 여러 수사들과 개별적인 접촉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접촉은 거의 모든 수사들이 시도하는 것이라 특별할 것은 없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제단의 해체가 진행될수록 수사들 사이의 긴장감은 점점 높아졌다.

“어휴, 이게 또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그냥 좀 상식적이고 또 순리적으로 일을 풀어 나가면 안 되는 건가?”

그런 모습에 건우는 남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물론 내심으로는 수사들의 충돌이 사뭇 기대되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뭐 굳이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마다할 이유는 없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