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94화 (94/499)

94. 영체기 그까이꺼 200년이면 되는 거 아냐?

다도해역에서 일어난 역(域) 간(間) 전송진의 오작동.

관리 수사의 성급한 일처리가 부른 참사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파헤치는 동안에 십이비선의 유산에 대한 것이 다른 많은 역들에 널리 알려져 버렸다.

그 전에도 십이비선의 유산은 많은 화신기 수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다도해역과 가까운 몇몇 역들에만 퍼졌을 뿐이었다.

회회전과 삼맹 등이 정보를 빠르게 차단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전송진 사고로 그 벽이 허물어져 버렸다.

- 열두 명의 화신기가 동시에 영계로 비승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 그게 말이 되는가? 수사 하나가 영계로 가는 것도 엄청난 일이거늘 열두 명이 한 번에 갈 수 있다니.

- 전례가 있는 일이니 부정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 십이 비선의 유산을 성장시키면 그 자체로 영기(靈機) 수준의 법구가 된다지 않소. 그런 것이 열두 개가 모이고, 각각에 심어진 진법이 발동되면 영계 비승의 안전한 통로가 열리지 말라는 법도 없지.

- 그렇지, 자그마치 영기 수준의 법구란 말이지. 아니 어쩌면 영보(靈寶) 수준일지도 모르지. 아직까지 십이비선의 유산을 끝까지 성장시키면 어떻게 되는지 확인을 못했다니 말이야.

- 한 번의 성장으로 법보 수준이 되었다니, 두 번 성장시키면 영기가 될 것이고, 세 번이면 영보가 되지 않을까 싶소만.

- 그게 또 그렇게 생각대로 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

- 여하튼! 열두 유산이 모두 모이면 열두 수사가 영계로 오를 수 있다는 것에는 이견들이 없는 모양이오.

- 그렇다면 이리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어떻게든 그 중에 하나는 취해야 하지 않겠나.

- 우리 종문에서는 벌써 자리를 비운 분들이 많이 있소. 다들 십이비선의 유산을 찾아 나선 것이오.

- 그것 참. 그래서 그 유산들이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이오?

- 회회전과 삼맹, 다도해역 연합이 가지고 있고, 더러는 주인을 바꾸며 이리저리 떠도는 중이라오.

-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겠소? 회회전이든 삼맹이든 알 게 뭐겠소. 게다가 다도해역의 수사 따위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고.

- 하지만 벌써부터 수많은 화신기 수사들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다지 않소. 그런 곳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겠소?

- 언제 우리가 그런 것을 따졌소? 내가 수사가 된 이래로 모든 것은 천운에 따른 것이었소. 타고난 재능조차 천운이 없었으면 받지 못했을 것인데, 역천의 길을 걸으면서 무얼 두려워한다는 말이오?

- 하긴 그도 그렇소. 좋소, 이참에 나도 다도해역 구경을 좀 해 봐야겠소.

- 그럼 한동안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소? 유산은 열두 개나 되니, 우리가 그것을 나누는 것도 생각해 봄직 하지 않소?

- 좋소이다. 어차피 우리처럼 무리를 짓는 이들이 많을 터. 홀로 여러 손을 당해내긴 어렵겠지요.

- 자자, 가 봅시다.

일은 그렇게 진행이 되었다.

건우가 평량역으로 넘어가면서 만들어진 균열이 인세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높은 가치 평가를 받게 된 십이비선의 유산을 노리고 엄청난 숫자의 화신기 수사가 다도해역으로 들어왔다.

그 후, 다도해역은 오래도록 고계 수사들의 싸움으로 몸살을 앓았다.

[모년에서 모년까지 모처에서 십이비선의 유산을 지닌 이들이 만나기로 했다. 그 기간 동안 그곳에서는 일체의 분쟁을 금지하며 또한 십이 비선의 유산이 없이 출입하는 것도 불허한다.]

그러던 중, 다도해역 전체에 여러 화신기 수사들의 이름이 들어간 포고문이 나붙었다.

열두 개의 유산이 흩어져 있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수사들이 일종의 약속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약속된 시기까지 누가 어떤 수를 써서 유산을 확보하든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기, 그 장소에서는 약속을 위반하는 이가 있으면 이름을 올린 모든 수사들이 그를 함께 징치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시기를 천 년 후로 잡아서 최소 영체기는 되어야 의미가 있는 약속이고, 실제로는 화신기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것은 따질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어차피 십이비선 유산의 가치는 영계 비승이라는 것이 가장 큰 것이었고, 그것은 화신기만 누릴 수 있는 효능이었으니.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그, 그렇습니다 선배님.”

“그럼 평량역과 다도해역 사이의 전송진은 다시 열렸느냐?”

“백여 년 전부터 운영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배가 고작 성단기에 불과해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흐음.”

길우몽의 모습을 한 건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눈을 찌푸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서, 선배님. 전송진은 선배님 같은 영체기 수준이 아니면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후배가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건우의 표정에 바짝 엎드린 성단기 중기 수사가 목소리를 떨며 눈치를 봤다.

“그 전송진 사고가 난 것이 200년 전이라고?”

“네, 선배님.”

“그리고 백 년 만에 전송진의 보수가 완료되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것 참, 오래도록 동부에서 수련을 하다 보니 놀랄 일이 많이 생겼구나. 하지만 그 십이비선의 유산이란 것이야 어차피 나같은 영체기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군.”

“그, 그······.”

그렇다 할 수도 없고, 아니라 할 수도 없고.

건우의 말을 들은 수사는 그냥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다른 것을 좀 물어보자꾸나.”

그 모습에 건우가 화제를 돌렸다.

“무엇이든 하명하십시오. 후배, 성심을 다해 답변드리겠습니다.”

“그래, 내가 궁금한 것은 극금문에 대한 것인데······. 마침 네가 극금문의 제자로 보이는구나.”

“마, 맞습니다. 후배 극금문에 속한 제자입니다.”

“그러면 허미당이라고 아느냐?”

“허 사숙이라면 후배가 조금 알고 있습니다. 원래 대외 장로로 바깥일을 많이 보시던 분이신데, 아! 전송진 사고가 있던 무렵에 문으로 돌아와 칩거를 하셨습니다.”

“칩거를 했다고?”

“그렇습니다. 후배가 그 당시 성단기에 겨우 올랐을 때라 경황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심한 부상을 입고 돌아오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상? 극금문의 영체기 장로를 누가?”

“그건 후배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소문으로는 다도해역의 전송진 사고에 휘말려 큰 부상을 입었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송진 때문에 다친 것이란 말이냐?”

“그렇게 소문이 났습니다. 진위는 후배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느냐?”

“그건 확실합니다. 허 사숙께선 장로의 자리도 내려놓으시고 동부에 칩거하시며 부상을 치료하고 계십니다.”

“무슨 부상 치료가 200년이나 걸린단 말이냐? 분명 경지를 올리기 위해서 수련을 하는 것이겠지.”

“그, 그건 후배도······.”

“되었다. 굳이 말할 필요 없다.”

건우는 손을 저어 극금문 수사의 입을 막고 생각에 잠겼다.

주시원을 피해 도망쳐 평량으로 들어온 것이 200년 전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평량에 들어오자마자 인적이 드문 곳을 다시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허름한 동부를 세우고 곧바로 아공간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마침 허미당과 주시원의 공간낭에서 수련에 필요한 충분한 자원을 얻은 참이었다.

그런데 굳이 또 사람들과 부대끼며 심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대천세계의 수도계는 실력이 곧 목숨줄이었다.

자칫 운이 없으면 고계 수사의 심심풀이 변덕이나 화풀이 손찌검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곳이 수도계였다.

그러니 경지는 올릴 수 있을 때에 최대한 올려 두는 것이 답이었고, 건우는 그에 맞춰서 행동한 것이다.

그리고 수련에 들어간 건우는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

허미당과 주시원이 가진 여러 비방과 자원을 이용하여 수련 영단을 만들었다.

그 중에는 영체기 수사의 수련에 사용될 수준의 재료들도 있었지만 건우는 아낌없이 극화조 연단로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허미당과 주시원에게서 얻은 수련 공법과 술법들을 낱낱이 훑었다.

그리고 수련을 통해서 여덟 속성의 영근의 단과 나오금강체술의 경지로 만들어낸 위성단(僞成丹)까지.

건우는 그 하나하나를 성단기 완경까지 끌어 올렸다.

사실 그것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이루어졌다.

성단기 초기에서 완경에 이르는 길이 마치 잘 닦인 고속도로처럼 뚫려 있는 듯 했다.

조금 막히는 듯하면 곧바로 영단을 먹었고, 궁구가 필요한 공법 구결이 있으면 참고할 자료가 넘쳐났다.

게다가 주시원의 은행 나무 분재와 허미당의 만시금은결궤(萬匙金銀結櫃)는 건우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허미당의 만시금은결궤는 허미당의 본명 법보였다.

그래서 건우는 아직도 그것은 연화해 내지 못했다.

본명 법보는 주인과 영혼을 나눈 법구라 허미당이 살아 있는 상태에선 좀처럼 의념을 씻어내고 자신의 것으로 물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연화를 시도 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무궁했다.

더구나 건우는 허미당 덕분에 극금문의 온갖 공법들을 알게 된 상황이었다.

허미당의 본명 법보는 건우에게 극금문의 공법 스승으로서 더 없이 좋은 교보재였던 것이다.

덕분에 건우가 주력으로 익히는 속성별 수련 공법의 경지도 빠르게 올라갈 수 있었다.

* * *

수련을 시작하고 200년이 지날 무렵, 건우는 성단기 완경까지 경지를 끌어 올릴 수 있었고, 다시 수미세계의 산적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산적 스승을 만났을 때, 수미세계의 소년 건우는 이제 이십대의 영민한 수사가 되어 있어, 건우를 즐겁게 했다.

어린 아이나, 청소년이 아니라 성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동화되는 것도 쉬웠던 것이다.

건우는 그 만남을 통해서 다시 여덟 영근 속성에 대한 수미세계의 새로운 공법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 새로 익힌 수련 공법은 속성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성단기 완경에서 영체기로 넘어가는 수련 공법의 핵심은 단 하나였다.

엄청난 영기를 응축시켜 완성한 단(丹) 안에 영체를 형성하는 것.

그것은 알(卵)에서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았다.

지금껏 완성한 단은 알이고, 그 안에서 생명을 만들어 내면 영체기가 되는 것이다.

사실 영체를 만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건우는 그것을 쉽게 해 냈다.

의식 한 귀퉁이에 있던 지구의 기억이 도움이 된 것이었다.

보통 생명의 탄생을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세포의 형성과 분열이고, 건우 역시 그랬다.

그래서 건우는 자신의 단 안에 영체가 될 무엇을 넣는 것이 먼저란 사실을 쉽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영체가 자신의 근원이 된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혼을 나누어 그 분혼을 영체의 근원으로 삼아 단에 밀어 넣었고, 그것이 정답이 되었다.

단에 들어간 분혼은 그 단이 지닌 속성의 힘과 결합해서 기존의 영혼과는 다른 영체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건우는 그 과정을 모두 아홉 번이나 반복했다.

각각의 단에 하나씩의 영체를 만들려 한 것이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웠지.’

건우는 그 때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덟 개의 속성별 단과 연체술의 위성단까지 아홉 개의 단에 영체를 완성했다.

그런데 그 아홉 개의 단을 모두 아공간에 불러낸 순간에 문제가 생겼다.

아홉 영체가 모두 튀어 나오더니 수미산겨자씨 위에서 하나로 결합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 건우의 영체는 그렇게 하나가 되어서 수미산겨자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크기도 고작해야 엄지손가락 크기에 지나지 않았고, 생긴 것도 서너 살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사실 영체기가 된 것이 아니었지. 아홉 영체가 합일되어 수미산겨자씨 위에 오르는 순간에야 나는 비로소 영체기에 발을 디뎠으니까.’

건우는 영체기에 오르는 순간 닥쳐온 천겁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영체는 실상 수사의 격 자체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타고 난 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몸을 만드는 일.

인간을 벗어던지고 역천이 존재로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천지법칙이 그것을 그냥 두고 볼 턱이 있나.

곧바로 천겁을 내렸다.

우주의 준엄한 법칙이 내리는 벌이자 시험.

건우는 그것을 겪으며 수도자에 대한 인식이 또 한 번 달라졌다.

‘진리를 찾는 역천의 존재.’

건우는 불로불사의 첫 걸음인 영체를 만들면서 수사에 대해서 그런 정의를 내렸다.

“흐음. 너를 어찌할까?”

건우가 잠시 생각에서 벗어나 앞에 엎드려 있는 극금문의 수사를 보며 말했다.

“서, 선배님.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극금문 수사가 몸을 떨며 애원했다.

“감히 내가 영체기에 오르는 것을 겁도 없이 지켜보고, 호시탐탐 내가 죽기를 바란 네 놈을 내가 살려줘야 할 까닭이 있느냐?”

건우가 피식 웃으며 극금문 제자를 더욱 압박했다.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후배는 그저 영체기 경지에 오르는 광경을 처음 보는지라 정신이 없었을 뿐입니다. 갑작스럽게 몰려드는 천지 영기와 그 천지영기가 끌어들인 노란 뇌전의 기운이 한참 번지고 나서야 선배님께서 경지를 높이는 과정이란 것을 알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늦어 손끝 하나도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맹세코 사실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러면서 내가 승급에 실패하면 어떻게든 기회를 보아서 나를 도모하려 했겠지.”

극금문의 수사는 열성적으로 자신을 변호했지만 건우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쯧, 애석하구나.”

건우가 혀를 차며 중얼거리자 극금문 제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검은 비늘의 늑대가 그 극금문 제자를 한 입에 물어 삼켰다.

“가진 것과 공간낭을 살펴서 내가 쓸 만한 것이 있으면 가려 두고, 나머진 용랑 네가 가지거라.”

- 크릉. 네 주인님.

대답한 것은 지난 200년 사이에 성단기 중기에 오른 용랑이었다.

“그나저나 극금문에 가긴 해야 하는데 괜찮을까 모르겠네.”

건우는 대충 극금문과 허미당의 일을 알아보고 고민에 빠졌다.

극금문에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허미당 때문에 마땅치가 않았던 것이다.

“안 갈 수도 없는데, 거기다가 경지를 안정시키기 전에 가야 하니 시간까지 촉박하네. 적어도 50년 내로는······.”

검은 빛을 남기고 둔술을 펼쳐 사라지는 길우몽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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