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고 알아? 내가 지금 그래.
“너희가 속으로 불복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조금 자세히 설명을 해 주마.”
그 때, 원주 수사가 앞으로 나서며 다섯 성단기 수사들을 보며 말했다.
“하하. 원 수사께서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이거 감사합니다.”
원주 수사의 말에 허미당이 감사를 표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전송진 발동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모두 알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
원주 수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표정을 굳혔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 너희 성단기 따위가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은 1할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 같은 영체기라 하더라도 절반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
“그, 그렇게나······.”
원주 수사의 말에 수류화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런 중에 다행히 허 수사의 금시가 신통을 부렸다.”
“조금 전의 그 금시 말입니까?”
도부치 수사가 물었다.
“그래, 저 금시가 소멸의 상황에 처하자 그것과 짝이 되는 무엇과 감응하여 공간을 뛰어 넘으려 한 것이다.”
“금시에 그런 신통이 있었습니까?”
“아니, 원래 금시의 신통이 아니라 그 금시를 사용했던 선배 고인의 안배라 봐야겠지. 한 번 맞춤한 금시와 은시를 만들었다가 그것을 잃어버리면 상황이 곤란하니 언제든 금시와 은시를 소환할 수 있도록 해 두었던 모양이지. 사실 정확하게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군요. 그럼 허 선배님께서 그 금시의 신통을 이용하여 전송진 발동의 위험에서 저희를 구했다는 말씀이군요?”
“그러하다. 마침 금시가 비틀린 전송진의 공간을 뚫고 공간 좌표를 구했다. 원래는 금시만 이동을 할 것이지만 허 수사가 금시의 신통을 확장시켰고, 그 덕분에 나와 너희가 이리 이곳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저희가 허 선배님께 큰 은혜를 입은 것이 맞군요?”
“그러니 너희는 허 수사가 너희에게 시키는 일을 성심을 다해 이행해야 할 것이다.”
“그, 그야 당연하지요. 죽을 목숨을 살려주셨는데.”
“맞습니다. 저희는 어떤 일이라도 불만 없이 이행하겠습니다.”
“당연합니다. 절대 불만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성단기 따위가 영체기 선배님께 도움을 드릴 것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키실 일이 있다면 얼마든 시키십시오.”
원주 수사의 설명에 건우를 제외한 네 수사가 모두 한 목소리로 허 수사의 심부름을 마다치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흐름에서 건우만 빠질 수 없으니 건우 역시 깊이 고개를 숙이고 다른 수사들과 뜻을 같이했다.
“크으음. 원 수사 덕분에 내가 너희 마음을 돌리려 애를 쓸 필요는 없겠구나. 그럼 이제 우리를 따르거라.”
대충 이야기가 정리되자 허미당이 다시 앞으로 나서 다섯 성단기 수사에게 그리 말을 하고는 원주 수사와 함께 앞장서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허미당과 원주는 가볍게 펼치는 둔술에 성단기 수사들은 힘겹게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이틀을 이동한 후, 허미당과 원주가 운무가 가득한 산봉우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건우를 포함한 다섯 성단기 수사가 그들 뒤에 내려섰다.
이틀 동안 숨 가쁘게 둔술을 펼치느라 모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했다.
건우는 의념 공간이 워낙 넓고, 그 넓이만큼 활용할 영기도 충만해서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다른 수사들처럼 땀을 흘리는 척 하고 있었다.
“들어라. 이 앞에는 아주 오래 전에 입적한 선배 고인의 거처가 있다.”
그 때, 허미당 수사가 손을 들어 운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허미당의 머리 위에 커다란 궤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궤짝은 절반은 금색이고 절반은 은색인데, 수많은 구멍들이 있고, 구멍마다 금은(金銀)의 열쇠들이 꽂혀 있었다.
다섯 성단기 수사들은 특이하게 생긴 법구에 놀라 눈이 커졌다.
“크음. 나는 본래 평량 극금문(極禁門)의 장로다.”
특이한 법구를 내보인 마당이라 숨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허미당이 말했다.
“그건 나도 짐작만 했던 것인데 역시 허 수사는 극금문의 수사였구려?”
원주 수사도 몰랐던 일인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 극금문은 주인을 잃은 금은연리 봉인을 풀기 위해 금시와 은시를 만들었다. 그것이 벌써 수 억 년의 역사다.”
허미당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오랜 역사에서 주인 잃은 봉인을 풀기 위해 금시와 은시를 계속 만들었더니, 이제는 금시와 은시를 잃은 봉인이 또 문제가 되었다.”
“그러니까 맞춤한 열쇠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거로군?”
원수 수사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춤 열쇠를 잃거나 훼손한 경우에는 정말 우리 극금문을 찾아오지 않으면 봉인을 풀 방법이 없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허미당이 잠시 말을 끊었다.
“하지만, 완전한 것이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극금문의 몇몇 수재들이 모여서 연구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맞춤 열쇠의 한 쪽만 있어도 봉인을 풀 수 있는 공법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지금껏 몇몇만 그것을 익히고 이렇게 주인 없는 봉인을 찾아다니곤 했지.”
허미당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슬쩍 다른 수사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허미당의 이야기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듣자니 사용된 금시나 은시를 가지고 그것의 대상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낸 듯 하군. 허 수사, 사실 전송진에서 좌표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소?”
원주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사실 맞춤한 열쇠로 그 대상 봉인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요. 설렁설렁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극금문의 비처에 있는 거대한 술법진을 이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저도 이번에 그것을 써서 다도해역의 십이비선봉 밀역에 금은연리의 봉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것이 감쪽같이 사라져서 허탕을 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구려.”
“하여간, 전송진 사고에서 빠져나온 것은 모두가 이 금시에 담긴 신통 덕분으로 그것은 확실히 이곳 거처의 선배 고인이 금시에 심은 안배일 뿐입니다.”
“좋습니다. 이 마당에 그런 일을 숨길 이유는 없으니 믿겠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시지오.”
원주가 허미당에게 그렇게 말을 하자 허미당이 산봉우리 앞쪽의 운무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머리 위에 있던 반반의 금은색 궤짝에서 열쇠들이 쏟아져 운무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운무 안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산봉우리에서 운무 안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운무가 좌우로 갈라져, 양쪽에 운무의 폭포가 생긴 듯 했다.
그리고 바닥에는 투명한 수정판이 깔린 듯이 매끄러웠다.
그 통로가 멀리 운무 안으로 뻗어가며 희미해지고 있었다.
“내 숨김없이 말하거니와 이제 저 안으로 들어가면 네 곳의 통로가 나타날 것입니다.”
허미당이 원주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른 성단기 수사들도 모두 들으란 소리였다.
“원래 네 개의 통로는 그 끝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네 통로가 모두 뚫리면 끝에 있는 마지막 문이 열리는 구조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그 네 개의 통로들에 위험이 없지는 않겠습니다?”
“제 경험에 영체기인 우리 수준에서는 그리 위험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단기 수준이라면 다르겠지요.”
허미당이 다섯 성단기 수사들을 보며 말했다.
당연히 대상이 된 수사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럼 네 개의 통로 중에 둘은 우리가 각각 하나씩 맡고, 저 아이들에게 남은 통로 둘을 맡길 생각이겠군요?”
“누구 하나가 여러 통로를 번갈아 뚫을 수 없도록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저 아이들이 남은 둘을 책임져야 하겠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혹시 실패하면 어찌 되는 겁니까?”
“그럼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것뿐입니까?”
“그렇습니다. 대신 다시 도전을 하려면 꽤나 준비가 필요하지요. 사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무척 위험한 일입니다. 혼돈역이 만만한 곳은 아니니까요.”
“그렇기는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성공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이요?”
“그렇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성단기도 재주가 있으면 충분히 통로를 뚫을 수 있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쨌거나 저 아이들이 실패를 한다고 해도 다음 단계로 들어가지 못할 뿐, 수사나 제게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는 거지요?”
원주 수사는 다시 한 번 확인하듯이 허미당에게 물었다.
그리고 허미당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전에 한 번 왔던 적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 번이요?”
“보물을 탐내서 혼자 왔었지요.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최소 넷은 필요한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온전히 믿고 보물을 나눌 사람을 셋이나 더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마침 이렇게 기회가 되었다, 그런 말이군요.”
“저는 천운이 닿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성공하리라 기대도 하고 있고요. 하하하하.”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기분이 좋은 듯이 크게 웃었다.
하지만 막상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야 할 성단기 수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너희는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이미 죽을 목숨을 건진 것이 아니냐. 그리고 너희가 성공하면 선배 고인의 거처로 함께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너희도 보물 한두 개 정도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허미당은 그런 성단기 수사들에게 달콤함 미끼를 내밀었다.
그런 허미당의 모습에 다섯 성단기 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서 도망을 칠 수도 없는 상황이데, 굳이 허미당이나 원주에게 밉보일 이유가 없었다.
그럴 때에는 차라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나았다.
“자, 그럼 이제 들어가 봅시다.”
허미당이 원주 수사에게 길을 권하며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섯 성단기 수사는 군소리 없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들이 운무의 통로를 지날 때마다 뒤쪽 길이 흩어져 사라졌다.
다섯 성단기 수사들은 흠칫 놀랐지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다섯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어떻게든 서로 도와 이 겁난을 뚫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자, 저기 갈림길이 있소.”
얼마쯤 안개 속을 걸었을까.
허미당이 손바닥을 뒤집어 근처의 운무를 밀어내자 넓은 공간이 만들어지며 안개 동굴 넷이 나타났다.
“이전에 나는 제일 왼쪽 통로로 들어갔었소.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건 의미가 없는 듯 했소.”
“어찌 그렇습니까?”
“매번 내용이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내용은 바뀌어도 수준까지 바뀌진 않을 겁니다.”
“그 말이 맞았으면 좋겠구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미 한 번 지난 경험이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허허허. 알았습니다. 허 수사의 말을 믿지요.”
허미당과 원주는 그리 대화를 나누고는 다시 다섯 성단기 수사를 돌아봤다.
“자, 이제 너희도 선택을 하거라. 나는 왼쪽 통로로 들어갈 것이고, 원 수사께서는?”
“나는 오른쪽으로 하지요.”
“그럼 가운데 왼쪽과 오른쪽이 남는군요. 너희는 어찌 하겠느냐?”
허미당이 다섯을 보며 물었다.
“사람이 다섯이니 둘과 셋으로 나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단기 중기가 둘이고, 초기가 셋이니 그 둘과 셋으로 나누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허미당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적효였다.
적효가 성단기 중기이니, 도부치와 함께 가겠다는 소리다.
그리고 남은 수류화화 갈후봉, 건우가 함께 가고.
“중기 둘과 초기 셋이라. 그것 참, 쉽지 않은 결정이군.”
허미당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 때였다.
“거기 사족의 꼬마와 네가 함께 가고, 나머지 셋이 함께 가거라.”
원주가 앞으로 나서더니 건우와 적효를 묶고, 나머지 셋을 따로 묶었다.
“원 수사. 그리되면 저 둘이 너무 처지지 않겠습니까?
허미당이 원주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저 녀석은 제가 좀 아는데 성단기 초기라도 제법 재주가 있습니다. 아마도 저 놈 혼자서 같은 성단기 초기 둘 정도 몫은 할 겁니다.”
그런자 원주가 뭔가 안다는 듯이 건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원주의 말에 허미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니 원 수사의 뜻에 따르기로 하지요. 자, 너희는 이에 불만이 있느냐?”
허미당이 물었지만 감히 누가 불만을 토로할 수 있을까.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뜻에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저 늙은이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저러는 거지?’
그 때, 고개를 숙인 건우는 원주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했다.
일면식도 없는데 도대체 왜?
‘클클, 재미없는 아이야. 너는 종문의 사조를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구나. 클클클.’
그 때, 건우의 뇌리에 원주의 음성이 전해졌다.
건우는 번쩍 고개를 들다가 급히 다시 숙였다.
여기서 원주를 아는 척 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
‘재미없는 아이야, 무사히 끝까지 도착하거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보듬어 줄 것인즉.’
원주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곧바로 네 개의 통로 중에 제일 오른쪽 통로를 향해 걸어들어갔다.
그러자 그 통로가 주변 안개와 섞여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럼 모두 안으로 들어가거라.”
이에 허미당이 다섯 성단기 수사들 재촉했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적효를 따라서 중앙 오른쪽 통로로 들어갔다.
적효가 앞장섰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어서 도부치와 수류화, 갈후봉이 중앙 왼쪽 통로로 향했고, 모두가 통로로 들어가고 홀로 남은 허미당이 마지막 통로로 향했다.
“하하하. 이번에는 반드시 보물을 취할 수 있겠지. 아무렴. 아무렴.”
그렇게 중얼거린 허미당이 마지막 통로로 들어갔다.
그리고 네 개의 안개 동굴이 모두 사라지고 자욱한 운무만 가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