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88화 (88/499)

88. 평량역과 혼돈역의 경계랍니다.

“크으으,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다들 괜찮습니까?”

“으음. 전송진에 백여 분이 계셨는데 이곳에는 고작 다섯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전송진이 전송 대기 상태로 안전한 방을 만들고 전송이 시작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전송진 전체가 뒤흔들리더니 불안정한 이동이 진행된 것이다.

그것은 전송진 위에 있던 모든 이들이 알아차릴 수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함께 있던 이들이 사라지더니 결국 몇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전송이 마무리 된 것인데.

“이곳이 어딘지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나는 다도해역 출신이라 평량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혹시 다도해역 출신이 아닌 분이 계십니까?”

백발 흑염의 수사가 그리 물었지만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건우는 조용히 자신을 제외한 네 명의 모습을 살폈다.

백발 흑염의 인간 수사와 얼굴에 비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요족 수사는 성단기 중기로 보였다.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수사는 평범한 얼굴의 중년 여수사와 십대 외모를 지닌 청년 수사로 모두 성단기 초기였다.

건우는 그 중에 십대 외모를 지닌 청년 수사에게서 인간과는 조금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받아, 그가 영족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전송진이 제대로 발동되었다면 그들은 평량대륙의 중앙 지역에 도착해야 했다.

당연히 대응하는 전송진이 있었으니 그 위에 내려서야 맞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산세가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었다.

전송이 잘못되어 엉뚱한 곳에 도착한 것이 분명했다.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어딘지도 모를 곳에 떨어지다니요.”

백발 흑염의 수사가 관우처럼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실 저는 그리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얼굴에 비늘 흔적이 있는 요족 수사는 태연한 기색이었다.

“수사께서는 어찌 그리 담담하십니까?”

그런 요족 수사를 향해 십대 외모의 청년 수사가 물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저는 다도해역을 떠날 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평량에 따로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 뭐, 저도 그렇긴 합니다만.”

백발흑염 수사가 요족 수사의 말에 슬그머니 동조했다.

“그렇다면 어차피 평량에서 새로 출발할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굳이 그곳이 중앙 지역일 이유가 있습니까?”

요족 수사가 말했다.

“하지만 이곳이 그 평량인지 조차도 불확실하지 않나요?”

중년의 외모를 지닌 여성 수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거꾸로 물어보지요. 굳이 평량일 이유가 있습니까?”

요족 수사가 중년 여성 수사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중연 여성 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활짝 웃었다.

“가르침에 감사드려요. 그러네요. 어차피 고향을 떠나 남모르는 곳을 찾는 처지에 굳이 어딘지를 따질 이유는 없겠네요.”

“하하. 바로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될 일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니 걱정이 덜어지긴 합니다.”

여성 수사의 말에 다들 동감을 표하고 있을 때, 건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모습에 화기애애하던 네 명의 수사들이 건우를 쳐다봤다.

“수사께서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요족 수사가 건우를 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도 달리 이견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가까운 곳에 위험이 있는지는 파악을 해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각자 흩어질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요. 아, 서로 통성명부터 합시다. 얼마나 함께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럽시다. 나는 도부치라 합니다.”

요족 수사의 말에 백발흑염 수사가 먼저 도부치라는 이름을 밝혔다.

“저는 수류화라 해요.”

“저는 갈후봉이라 합니다.”

“이 몸은 적효라 하네. 보다시피 사족(蛇族)의 한 갈래지.”

여성 수사와 청년 수사, 요족 수사도 각각 자기 소개를 했다.

“건우라 불러 주십시오.”

건우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슬쩍 공수를 해 보였다.

그런데 그 때였다.

“이런, 어린 것들이 눈치가 없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이곳이 어떤 곳인줄 모르고 통성명 따위나 하고 있습니다 그려.”

갑자기 허공에서 녹색과 갈색의 둔광 터지며 두 명의 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우는 그 중에 녹색의 둔광 속에 모습을 드러낸 이가 전송진에서 출발하기 전에 등 뒤에 있던 수사임을 목소리 덕분에 알아차렸다.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선배 ······.”

“후배가 선배님을 ······.”

그리고 건우를 포함한 다섯 수사는 곧바로 그들에게 예를 표하며 인사를 올렸다.

두 수사가 모두 영체기 수사인 것을 알아본 것이다.

“재미없는 어린 것아 다시 보게 되었구나.”

그런 중에 영체기 수사 하나가 건우에게 아는 척을 해 왔다.

건우의 등 뒤에 있던 그 수사였다.

“원주 수사께서 아는 아이입니까?”

그러자 함께 나타난 영체기 수사가 그 수사를 보며 물었다.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인연이 좀 있는 아이입니다. 클클클.”

원주라 불린 수사는 그렇게 대답하며 건우를 지그시 쳐다봤다.

얼굴은 물론이고 드러난 손까지 모두 나무뿌리들이 엉킨 듯이 기괴한 모습의 수사였다.

목속성의 특별한 공법을 익혔더나 혹은 요목이나 영목이 영성을 얻어 수사가 된 경우로 보였다.

“그렇습니까? 그럼 어쩔 수 없이 이 어린 것들을 버리고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려.”

“그렇지요. 이런 황량하고 위험한 곳에 이 어린 것들을 두고 갈 수야 있겠습니까. 데리고 가야지요.”

금과 은으로 무늬를 넣은 갈옷을 입은 수사와 원주라 불린 수사는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건우를 비롯한 성단기 수사들을 압박했다.

한 마디로 앞으로 자신들을 따라 다니며 수발을 들라는 소리다.

이곳에 있는 다섯 수사 중에 그 뜻을 짐작하지 못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 거부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 긍정적인 것은 아닐 테니까.

“요 놈들아.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 여기는 평량대륙과 혼돈역의 경계니라.”

다섯 성단기 수사가 조용히 그들의 뜻을 따르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금은갈의의 수사가 말했다.

“혼돈역이 어디입니까?”

그러자 백발흑염의 도부치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

“쯧, 다도해역 출신이라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구나. 역과 역 사이에 있는 지역을 부를 때에 그리 부른다.”

“견문이 짧았습니다. 저희는 그저 금역이라 할 뿐인지라.”

“되었다. 변경 놈들이 다 그렇지.”

“어허. 허 수사. 듣기가 거북합니다.”

“하하하. 원주 수사. 내가 수사를 두고 말하는 것이겠소?”

“다도해역이 평량에 비해서야 우물과 호수처럼 차이가 있음은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굳이 이 몸이 듣는데 그리 격하할 이유는 없지 않겠소?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이런. 원주 수사께서 많이 노하신 모양입니다. 이 허미당이 이렇게 공수 백배하며 죄를 청하겠습니다. 노여움을 푸시지요.”

원주가 불쾌감을 드러내자 허미당이 그를 달래려 애를 썼다.

다섯 성단기 수사는 그 모습을 못 본 척 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일단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듣지 못한 것으로 하겠소. 하지만 앞으로는 조심해 주시오.”

“하하하.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리 하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체기의 두 수사는 화통하게 앙금을 털어냈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마. 이곳은 혼돈역과 평량의 경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돈역에 조금 들어와 있는 상태지.”

허미당은 원주를 달래자마자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건우는 그의 행동에서 자신들 다섯이 꼭 필요한 일이 있음을 짐작했다.

그렇지 않다면 애를 써 가며 그들에게 뭔가를 설명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곳은 원래 내가 잘 아는 곳이다.”

허미당은 그렇게 말을 하며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금은연리 금시가 아닙니까? 이번 경매에서 그것을 본······.”

적효가 그것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말을 하다 말고 적효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허미당의 사나운 눈초리가 그를 쏘아 본 것이다.

“이 놈. 이것은 경매에 나왔던 그 금시가 아니다.”

허미당이 말했다.

“네, 네. 그렇습니다. 제가 잘못 보았습니다.”

“쯧, 미련한 놈.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것을 경매에 내 놓은 적이 없다. 이것은 일반적인 금시가 아니라, 이미 사용된 금시이기 때문이다.”

“사용된 금시라니요?”

적효가 어떻게든 허미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다.

“금은연리로 봉인한 상자나 궤는 사용하지 않은 금시와 은시가 있으면 열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그렇게 사용한 금시와 은시는 이후로 그 상자나 궤에 맞는 맞춤 열쇠가 된다.”

“그럼 그 맞춤 열쇠 대신에 사용하지 않은 금시나 은시를 쓰면 어찌 되는지요?”

허미당의 말에 이번에는 수류화가 조용히 물었다.

“열 수 없다. 한 번 금시 은시로 개봉한 경우엔 그 맞춤한 금시와 은시가 있어야한다.”

“아, 그렇군요.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한 번 사용한 금시다. 그런데 이것을 경매에 내 놓을 수가 있겠느냐?”

“죄, 죄송합니다. 견문이 미천한 요족이라 죄를 지었습니다.”

적효가 다시 한 번 허미당의 앞에 엎드렸다.

“되었다. 어쨌거나 이 금시 때문에 우리가 이곳에 있게 되었다.”

그런 중에 허미당이 놀랄만한 이야기를 했다.

다섯 성단기 수사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허미당을 바라봤다.

“전송진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공간이 제 멋대로 비틀렸다. 잘못했으면 그곳에 있는 이들이 모두 공간의 폭발이나 붕괴, 찢김 현상에 제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수사들을 향해 허미당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건 허 수사의 말이 옳다. 그런 순간에 허 수사가 가지고 있던 저 금시가 큰 역할을 했지. 너희와 우리 둘을 이곳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네?”

“그게 무슨······.”

“갈! 조용히 하고 듣거라. 그대로 있었으면 열에 아홉은 죽을 상황이었다. 그런 중에 허 수사의 금시 덕분에 이곳으로라도 이동이 된 것은 천운이다.”

원주가 큰 소리로 야단을 치며 말하자 건우를 비롯한 성단기 수사들이 꼼짝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결국 자신들이 허미당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뜻임을 알았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구명지은을 입었습니다.”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다들 허미당 앞에 엎드려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건우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건우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전부터 알고 있던 곳, 게다가 금시가 가리킨 곳. 그렇다면 저 허미당이란 영체기 수사가 노리는 보물이 이곳에 있다는 뜻이겠지. 그가 지금껏 취하지 못한 어떤 이유가 있는 보물이. 그런데 우리를 이리 대하는 것을 보면 그 보물을 취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하다는 뜻일 테고.’

건우는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일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

‘여차하면 아공간으로 숨지 뭐.’

화신기 수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공간이 있는 이상, 어지간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은 걱정도 되지 않는 건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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