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86화 (86/499)

86. 금은연리(金銀連理) 금시(金匙)

빙담흑혈리의 비늘은 용랑의 손에 들어갔다.

그 비늘에는 독룡의 피가 은밀하게 스며 있었다.

그 때문에 원래의 용도로 쓰기 어려운 재료가 되었지만 용랑에게는 더 없는 보물이기도 했다.

녹각독랑인 용랑은 푸른 늑대의 피와 독룡의 피가 섞인 영수다.

그 중에 청랑(靑狼)의 피가 짙어 늑대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독룡의 피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어서 사슴의 뿔을 닮은 뿔을 가졌다.

게다가 힘을 끌어 올리면 온 몸에 검은 색의 비늘이 돋아나는데, 그것이 바로 독룡의 흔적이다.

그런 용랑에게 독룡의 진혈(眞血)은 일종의 진화 코드와 같은 역할을 했다.

좀 더 독룡의 형질을 강화시킬 수 있는, 성장 가이드 맵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까.

“그럼 진혈이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움이 되겠네?”

“그렇습니다 주인님.”

“그럼 다른 신수나 영수의 진혈들은? 있어도 못 쓰는 거야?”

“제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단이 없으니 무용지물이라 할 것입니다.”

“아, 그래. 그런 내용을 어디서 보긴 했었지. 수련 공법 중에 뛰어난 진혈을 흡수해서 그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도 있다고. 어디 보자, 그래, 한민이 남겼던 검은 옥간에 그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건우는 말과 함께 손바닥을 뒤집어 어디선가 검은 색의 옥간을 불러왔다.

아공간 한 쪽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의식의 힘으로 당겨 온 것이다.

“음, 여기 그런 내용이 있네. 피를 흡수하는 여러 공법이 있는데 그 중에는 범인들의 것과 같은 수준 낮은 피를 쓰는 것에서부터 희귀한 영수의 진혈을 쓰는 것까지 다양하게 있다는군.”

- 역시 검은색 옥간이라 그런지 흉흉한 내용이네요.

“피를 이용하는 것을 그리 백안시하여 볼 일은 아닙니다. 피는 생명이 아닙니까.”

- 멍뭉! 지금 나한테 따져?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수사가 된 후로는 타인의 생명을 탐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누구든 타인이 생명으로 자신의 생을 연명합니다. 그것을 나쁘게 볼 수는 없습니다.”

- 쳇, 그래 나는 날 때부터 그런 건 모르는 몸이다.

루야는 용랑의 말에 토라진 듯이 아공간 저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 우끽!

그러자 아공간 한 쪽에서 작은 핏덩이 원숭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혈원이었다.

혈원은 진혈과 피에 대한 이야기에 무척 관심이 많은 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혈원의 본신인 우끽끼가 피를 이용한 선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 그럼 우리 혈원도 흡수할 수 있는 진혈들이 있겠는데?”

건우는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혈원에게 도움이 될 진혈도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 *

“역시 빙담흑혈리의 특이한 비늘을 얻은 것은 운이 좋았던 거였어.”

경매장 2층의 개인실에 용랑과 함께 앉은 건우가 중얼거렸다.

그는 오늘도 길우몽의 모습으로 용랑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지난 두 번째 경매에서도 그랬고, 수사들의 개인 좌판이나 상점에서도 그랬습니다. 제 피와 상응하는 것은 더 이상 찾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그래, 내가 혈원과 함께 다니며 찾아봐도 혈원의 피가 당기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지.”

건우는 길우몽의 모습일 때에는 용랑과 함께, 건우 본연의 모습일 때에는 혈원과 함께 대원본성을 돌아다녔다.

혹시라도 용랑이나 혈원의 피와 감응하는 뭔가가 있는지 찾기 위해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빙담흑혈리의 비늘 하나를 흡수한 덕분에 용랑의 기운이 3할이나 커진 것을 보니 욕심이 안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번은 가장 규모가 큰 세 번째 경매이니 기대를 가져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 더구나 이번 경매엔 내가 맡긴 일선도도 나오니까 관심을 안 가질려야 안 가질 수가 없지. 뭐 경매 순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쉽게도 건우의 일선도 경매는 앞쪽 순서에 있었다.

그 말은 그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것들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다.

일선도가 그런 취급을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게다가 중반 이후에 나올 물품들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나와 있지 않았다.

경매 진행은 150번째까지 있지만 80번째 이후로는 물품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이다.

그 말은 81번부터 150번까지의 물품들은 참가자가 알아서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밝혀지지 않은 경매물품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경매장을 찾은 이들은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자, 이제부터 다도해역 대교류회의 3차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첫 물품은······.”

수사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다.

건우도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서른두 번째, 자신이 올린 일선도가 나올 때까지 건우는 하나의 물건도 입찰 받지 못했다.

생각보다 물건에 비해서 가격이 높게 치솟아서 건우가 일찌감치 포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덕분인지 건우의 일선도 역시 생각보다 높은 가격을 받았다.

“주인님 축하드립니다.”

일선도 경매가 상급 영석 이백육십 개로 마감되자 용랑이 축하의 말을 건넸다.

상급 영석은 영체기 수사도 그리 많이 가지고 다니지 못하는 귀물이다.

그런 것이 이백육십 개.

건우의 예상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었다.

때문에 건우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져 있었다.

그런데 그 웃음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여든한 번째 경매 물품에서 굳어졌다.

그 경매 물품은 금색의 몸체에 은색 선이 들어가 있는 손가락 크기의 열쇠였다.

“이것은 다도해역에서 가까운 평량대륙(平?大陸) 물건입니다. 역을 건너온 것이지요. 아시겠지만 평량대륙은 평량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평량?”

건우는 그 경매물에 관심이 있었기에 진행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주인님, 저것을 얻으려 하십니까?”

용랑이 그런 건우를 보며 물었다.

“저거, 금은연리의 진액으로 만든 열쇠다.”

건우가 침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십이비선봉 밀역에서 얻었던 금은연리옥함.

건우의 육감이 경매에 나온 열쇠와 그 옥함이 관계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것은 금은연리의 수액으로 만든 봉인을 풀 때에 쓰는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 하나로 어디에 쓰나? 금색과 은색, 두 개의 열쇠가 같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뿐이지 않나?”

경매 진행자의 말에 2층에 있던 수사들 중에 하나가 딴지를 걸었다.

인식 장애 술법 때문에 정체는 알 수 없지만 2층에 있으니 최하 성단기의 수사임은 분명했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평량의 극금문(極禁門)은 지난 수억 년 동안 금은연리의 수액으로 여러 봉인함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함들은 인계를 거쳐서 때론 영계까지 흩어져 있지요.”

“사설이 길지 않나.”

“물건의 가치를 아셔야 하니 조금만 참고 들어 주십시오. 어쨌거나 금은연리의 수액으로 봉인한 갖가지 함이나 궤들이 수억 년에 걸쳐서 퍼져 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열 수 없는 함들이 곳곳에서 발견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열 수 없는 함이 생겼다고?”

“주인이 아니라면 금은연리의 봉인을 쉽게 열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주인을 잃은 함들은 계속 늘었는데 그것을 열 수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보물이 들어 있는 상자는 있는데, 그것을 열다가 보물이 상하는 일이 벌어지면.”

“극금문에 그것을 열어 달라 할 수도 없으니 난감하긴 하군.”

“그렇다고 극금문에서도 그런 상자들을 자신들이 거둬서 열 수도 없지요. 그랬다가는 수도계의 공적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그 열쇠란 말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것을 들고 극금문에 가면 짝이 되는 은색 열쇠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은색 열쇠는 극금문의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은색 열쇠 역시 이 금시(金匙:황금열쇠)처럼 세상에 떠도는 것이 있습니다. 운이 좋아서 두 가지를 한꺼번에 얻는다면 굳이 극금문을 찾을 이유가 없지요.”

“그렇군.”

“자, 그럼 이제 경매물에 대해 모두 이해를 하신 듯 합니다. 원래는 정보 공개를 하지 않고 경매를 진행해야 하는데, 비공개 물품의 첫 경매라 제가 조금 도움을 드렸습니다. 앞으로 제가 정보를 드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끼리 적당히 의논해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번 경우처럼 이런 식으로”

“하하하. 그야 손님들께서 알아서 하시면 될 일이지요. 스스로 정보를 숨기고 싶으시면 그리 하셔도 되고 아니어도 되고. 저야 그저 경매 진행만 할 뿐입니다.”

진행자는 그렇게 모든 책임을 입찰자들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곧바로 금은연리(金銀連理) 금시(金匙)라는 명칭의 매물에 대한 경매를 시작했다.

건우는 시작과 동시에 상급 영석 쉰 개를 호가로 시작하는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추이를 지켜봤다.

생각보다 값이 비싸다 여긴 것이다.

하지만 건우가 지켜보는 가운데 금은연리 금시의 입찰가는 상급 영석 백 개를 넘었다.

“자, 이제부터 호가는 상급 영석 열 개 이상 높여 불러주십시오. 상급 영석 백 개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백열 개 있으십니까?”

“백열 개.”

“백스무 개.”

“백오십 개.”

“······.”

갑작스럽게 상급 영석 서른 개를 더한 호가가 나왔다.

그러자 과열 된 듯이 주고받던 입찰이 뚝 끊겼다.

건우는 그 모습을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누군가 다시 호가를 하면 이번에는 상급 영석 이백 개를 부를 생각이었다.

“백팔십 개.”

그런데 3층의 누군가가 삼십 개를 더해서 불렀다.

건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서 이백 개를 부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3층이면 영체기 이상의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수사가 욕심을 내는 물건인데 굳이?

“주인님.”

용랑이 불렀다.

건우는 용랑의 표정에서 한 번 더 질러 보라는 뜻을 읽었다.

“이백오십 개.”

건우가 한꺼번에 칠십 개의 상급 영석을 더했다.

그러자 경매장의 수사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건우의 그런 노력은 의미가 없었다.

“삼백 개.”

다시 3층에서 상급 영석 쉰 개를 더한 호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건우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만한 영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쓸 수도 없는 것에 쓰기엔 과한 액수였다.

결국 건우가 더 이상 입찰에 응하지 않아서 금은연리 금시는 상급 영석 300개에 3층의 수사에게 낙찰이 되었다.

“담도 크구나. 감히 내 경매를 이렇게 망쳐?”

그런데 낙찰 결정이 나자 3층에서 묵직한 암경이 건우가 있는 칸으로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 기운이 건우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영체기 이상의 수사가 경지가 낮은 수사에게 경고를 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영체기나 화신기 경지의 수사라도 회회전의 경매에서 난동을 부릴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일을 벌인다면 회회전의 응징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도 회회전이 진출해 있는 모든 역에서 수배가 될 것이니 아주 곤란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3층의 수사도 뭔가 불만이 있어도 당장 건우를 어쩌지는 못하는 것이다.

“크크크. 제 물건의 값을 올리다가 호되게 당했군. 수수료가 1할이니 한 순간 서른 개의 영석을 손해 보았군. 게다가 팔고자 하는 것을 팔지 못했으니 다음 경매를 기다려야 할 것이고.”

건우가 음습한 암경에 시달릴 때, 3층의 또 다른 방에서 누군가 재밌다는 듯이 일의 진상을 떠들었다.

자기 물건의 값을 올려 팔려다가 건우가 포기하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건우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괜한 관심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혹시 경매장의 술법을 뚫고 자신을 특정하려는 수작이 있다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급했다.

하지만 그 후로 다시 3층의 수사들이 건우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화를 냈던 수사도 그 이후로는 아무 기척도 드러내지 않았다.

자리를 떠난 것인지, 아닌지는 건우도 알 수 없었다.

“하여간 바람 잘 날이 없네. 이거 또 한 동안 몸을 사려야 하나?”

그럼에도 경매장을 벗어나는 건우의 움직임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경매가 끝나고 사흘이나 아공간에서 숨어 있다가 나오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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