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85화 (85/499)

85. 용랑이 원하는 사소한 경매물품

파지지지지지지!

화신기 수사들이 모습을 감춘 후, 오래지 않아서 장원 지하에 있던 진법에서 천겁의 뇌전이 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진법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걷혔는데, 그 안의 모습이 참혹했다.

진법 안에 있던 열 명의 성단기 수사와 백 명이 넘는 축기기 수사가 모두 약간의 뼛가루만 남기고 사라졌다.

게다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법구나 공간낭 따위도 남은 것이 없었다.

건우는 영기를 돌려 천겁의 뇌전에 타들어간 팔을 회복하며 아공간 밖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뭐 하나 건질 것이 있을까 했더니 하나도 없네.”

- 천겁뢰가 그렇게 강하게 내리쳤는데 뭐가 남아나겠어요?

“그래도 귀한 보물이 있었으면 천겁뢰도 견딜 수······.”

- 고작 성단기 수사들에게 뭘 바라세요? 건우 님이 저 안에 있었어도 남아 나는 것이 없었을 걸요?

“야, 그건 아니지. 적어도 몇 가지는 천겁뢰를 견뎠을 걸? 우선 천라패갑방패가 있고, 극화조 연단로도 있고, 토령영삼과 형자수란과, 일선도 같은 것들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을 거 같지 않냐? 아, 금은연리옥함도 있네.”

- 아, 그거요. 금은연리옥함이요. 그걸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어차피 열어볼 수도 없는 거라서 그랬지. 성단기가 된 후에도 여전히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방치해 둔 거지.”

- 그런데 거기 무슨 생명체가 들어 있다고 했잖아요.

“살아 있는 뭔가가 있는 건 분명한데, 열지도 못하고 정체도 알 수가 없지. 그건 아마도 내가 영체기는 되어야 손을 대 볼 수 있을 걸?”

- 그림의 떡이네요. 형자수란과도 영체기는 되어야 하는 거고, 토령영삼도 그렇고.

“그래도 일선도는 이번에 성단기 벽을 넘을 때, 써먹을 수 있을 거다.”

- 그거 두 개 있잖아요. 하나 밖에 못 쓰는 건데, 하나는 어쩌실 거예요?

“그러고 보니, 대교류회 본경매에 그걸 하나 내 놓아 볼까? 제법 영석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차피 두 개는 먹어봐야 소용도 없는 물건이다.

축기에서 성단으로 오를 때에는 크게 도움이 되고, 성단에서 영체기에 오를 때에도 도움이 된다.

게다가 영체기에서 화신기로 오를 때에도 쓸모가 없지는 않은 것이 일선도다.

아주 조금이라도 경지를 올릴 가능성을 늘릴 수 있다면 값을 따지지 않을 수사들이 많이 있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시도를 하는 수사라면 더더욱.

- 그건 그렇고 부양도는 어떻게 해요?

그 때, 루야가 아공간 밖에 있는 부양도에 대해서 물었다.

“어쩌긴, 그냥 둬야지. 지금 출도령패에는 그 늙은이의 의념이 가득해. 진짜 독하게 물들여 놓은 상태지. 게다가 그 늙은이가 영체기 후기였잖아. 이 패를 연화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어.”

- 연화가 끝날 때까지는 부양도를 쓸 수 없다는 말씀이죠?

“주인이 죽은 상태라 일부만 연화해도 쓸 수는 있지. 제 성능을 모두 꺼내진 못하겠지만.”

- 그럼 언제쯤 부양도를 타고 다닐 수 있는데요?

“그건 연화를 해 봐야지. 하지만 금방 되지는 않을 거다.”

- 네에, 그렇군요.

“자, 당분간은 회복에 전념을 해야겠다. 이 천겁뢰란 거, 꽤나 무서운 놈이야. 쉽게 뿌리가 드러나지 않아.”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수미산겨자씨 밑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여덟 개의 영근과 연체술로 만든 위영근을 불러냈다.

그러자 성단을 이룬 영근 아홉이 원형으로 건우를 둘러쌌다.

당연히 아공간은 영근 영역까지 모두 개방이 되어 엄청난 크기로 넓어졌다.

천겁의 기운이 담긴 뇌전.

몸에 스며든 그 기운을 뿌리뽑기 위해서 건우도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념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꼬박 100일 동안 건우는 천겁뢰의 기운을 몸에서 뽑아내는데 투자해야 했다.

* * *

<일선도(一選桃)가 경매에 나왔다.>

부양도의 출현과 천겁, 영계 비승 수사의 목소리 등으로 홍역을 겪은 대원본성에 새로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대교류회의 2년 차에 진행되는 경매에 일선도(一選桃)라는 귀물이 물품으로 등록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경매에 나온다는 소문으로 떠들썩한 물건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일선도가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그것이 십이비선봉의 밀역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과거 십이비선봉 혈사가 벌어졌을 때, 그곳에서 열두 그루의 만년일선도목(萬年一選桃木)이 발견되었다.

물론 그 때는 이미 일선도는 모두 사라지고 없어서 그 누구도 보물을 차지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곳에서 일선도를 취했을 거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경매에 그것이 나온다니 자연스럽게 십이비선봉 밀역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십이비선의 마지막 유산 때문에 밀역이나 은밀역에 대한 이야기가 주목을 받는 상황이어서 더욱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주인님, 경매에 나오는 것들 중에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으음. 1차 경매의 물품 중에는 그다지 끌리는 것이 없구나.”

“그렇습니까?”

“왜? 네가 바라는 것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주인님.”

“호오? 용랑 네가 무엇을 보았는지 궁금하구나. 그래 어떤 것이냐?”

“목록 중에 손바닥 크기의 검은 비늘이 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아, 그래. 잉어의 비늘로 추정된다 했던가?”

“그렇습니다. 정확하게는 빙담흑혈리(氷潭黑血鯉)의 비늘이라 합니다.”

“음? 그런데 그건 왜?”

“그게 실은······.”

“뭐? 잉어의 비늘이 아니란 거냐?”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 빙담흑혈리의 비늘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그다지 쓸모가 많아 보이진 않던데? 중하급 재료 정도가 아니더냐.”

“다른 이들에겐 그렇겠지만 특별한 경우엔 아주 귀한 보물이 되기도 합니다.”

“그 말은 용랑 너에게 그 비늘이 귀하게 쓰일 수 있다는 소리겠구나?”

“그렇습니다. 제가 그 비늘을 직접 보아야 정확해지겠지만 이 경매 소개의 내용만 보더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럼 너를 위해서라도 1차 경매에 참가를 해야겠구나.”

“그리 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면 네가 직접 구해 와도 좋고.”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용랑은 자신이 성단기에 올라 인간으로 변신이 가능해졌고, 어지간해서는 수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그렇다면 당연히 경매에 참가해서 경매물을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님.”

“왜?”

“문제가 있습니다. 제겐 영석이 없습니다.”

용랑이 빈털터리만 아니라면.

“으음. 내가 무심했구나. 앞으로 네 몫도 떼어 줘야겠구나.”

건우는 용랑의 말에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종이라지만 그래도 용돈은 쥐어 줬어야 했다는.

* * *

“중급 영석 서른다섯 개 나왔습니다.”

“아, 저기 서른여섯.”

“저 쪽 분께서 마흔을 부르셨군요.”

경매는 건우도 익히 아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경매에 참가하는 이들은 인식 장애가 걸려 있는 좌석에 앉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물론 경지가 높다면 그런 술법 정도야 간단하게 깰 수 있겠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경매를 주관하는 세력과 척을 지게 될 것이다.

“보잘 것 없는 비늘에 경쟁이 치열하구나.”

“저들도 비늘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 분명합니다.”

건우의 말에 대답한 용랑의 안색이 밝지 않았다.

고작 중급 재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빙담흑혈리의 비늘을 노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건우도 몰랐는데 경매가 과열되면서 다른 수사들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빙담흑혈리의 비늘이 십이비선의 유산을 성장시키는 재료들 중에 하나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 입찰에 열을 올리는 이들은 모두 그 유산을 지닌 이들이나 세력의 대리인이라 볼 수 있었다.

“이건 생각보다 경매가 과열된 것 같습니다. 중급 영석 백삼십 개. 백삼십 개가 나왔습니다. 더 없으시면 호가 후에 선언하겠습니다. 백삼십, 백삼십, 백삼십! 네네, 빙담흑혈리의 비늘 중급 영석 백삼십 개를 부르신 분께 낙찰되었습니다.”

결국 중급 영석 백삼십 개로 경매가 끝났다.

그리고 용랑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건우가 빙담흑혈리의 비늘을 중간에 포기한 것이다.

중급 영석 여든 개를 넘어선 순간, 건우는 깔끔하게 경매를 포기했다.

그가 보기에 입찰에 참여한 이들은 서로의 정체를 알고 감정적으로 경쟁을 하는 중이었다.

거기에 끼어들어 건우 자신이 물건을 확보한다면 당연히 그들 모두에게 찍히게 될 터였다.

그러느니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옳았다.

“실망하지 마라. 다 방법이 있다. 어떻게든 저 비늘을 구해주마.”

건우가 용랑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번 경매에 나온 빙담흑혈리의 비늘은 사실 특별한 구석이 있는 물건이었다.

그 비늘에 독룡의 진혈이 스며 있었다.

사실 그 때문에 이번 빙담흑혈리의 비늘은 적어도 기존의 용도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아마도 경매에 물건을 내 놓은 이나, 경매를 진행하는 곳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비늘에 기이한 독성분이 스며 있어 가치가 거의 없다는 판정이 내려지지 않았을까?

건우는 그렇게 추측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경매 시작 전에 이례적으로 입찰자들에게 물품을 확인할 기회를 주고 판단은 입찰자들에게 맡기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딜을 해 볼 여지는 충분하지.’

건우는 빙담흑혈리의 비늘을 낙찰받은 수사를 멀리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비록 인식 장애로 상대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는 없지만, 그건 경매장 밖으로 나가면 해결이 될 문제였다.

* * *

“빙담흑혈리의 비늘을 원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건우는 대로변의 찻집에서 한 명의 수사와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런 건우 뒤에는 용랑이 호종을 하듯이 서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나는 수사께서.”

“길우몽이라 합니다.”

“좋소이다. 길 수사. 길 수사께서는 도대체 내가 그 비늘을 낙찰받은 것을 어찌 알았소? 경매장의 인식 장애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닌데?”

깡마른 대머리 수사는 눈에 흰 자위 대신에 붉은 색이 들어차 있었고, 눈동자는 먹을 찍어 놓은 듯이 검었다.

그는 건우가 자신을 쫓아 온 것이 무척 마음에 걸리는 듯 했다.

경매장에서 물건을 낙찰받는 심부름을 많이 하는데, 그가 무엇을 낙찰받았는지 모두 알려지게 되면 곤란할 일이 많을 것이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수사를 쫓은 것이 아니라 그 빙담흑혈리의 비늘을 쫓은 것입니다.”

“으음? 비늘을? 하지만 그것은 금제가 쳐진 상자에 넣고 다시 공간낭에 넣었는데 어찌 그것을 알아차린단 말이오?”

그나마 자신이 아닌 물건을 쫓았다니 마음이 놓이긴 하지만 궁금증이 다 풀린 것은 아니다.

“비늘, 거기에 독이 있습니다.”

길우몽의 모습을 한 건우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눈과 입이 모두 쳐진 각진 얼굴은 워낙 특이한데, 광대뼈에 커다란 검은 점까지 있어 우스꽝스러운 외모의 길우몽이 우울한 표정까지 지으니 기괴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독이라고요?”

하지만 그런 외모 보다는 말의 내용이 더 중요한 법이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사실 그 빙담흑혈리의 비늘에 들어 있는 독이 필요해서 그것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자, 잠시만. 비늘에 독이 있다면······.”

“원래 쓰고자 했던 곳에 쓰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 말, 정말이오?”

“확인을 해 보시지요. 이제 비늘이 수사의 손에 있으니 조금만 더 세밀히 살피면 그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깡마른 수사도 성단기의 경지에 있었다.

그러니 비늘에 담겨 있는 독을 찾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수사는 건우 앞에서 그대로 공간낭 속의 상자를 꺼내 빙담흑혈리의 비늘을 확인했다.

그는 한참 진중하게 비늘을 살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집중해서 비늘을 살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뭔가 더 숨겨져 있는 것이 없는가 살피는 모양이군. 하지만 독룡의 진혈을 알아보긴 어려울 것이다.’

건우는 그의 행동을 짐작했지만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으으음. 확실히 기묘한 독이 스며 있군요. 이대로라면 쓸 수가 없겠습니다.”

깡마른 수사는 결국 건우의 말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사실이 그러한데 아니라고 해 봐야 소용이 없고, 뭔가 거래를 하기 위해서 왔다니 쓸모없는 비늘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할 수도 있겠다는 계산까지 마친 것이다.

“그래서 그 비늘, 파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건우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제가 구입한 가격 그대로 드리지요.”

건우의 말에 깡마른 수사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대답을 들은 건우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랑, 돌아가자.”

“네에, 주인님.”

건우의 말에 용랑은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거역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순간 다급해진 것은 깡마른 수사였다.

“자, 잠깐 길 수사. 어찌 그리 성급하게 그러시오.”

“그럼, 내가 수사의 헛소리를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겁니까?”

건우가 그런 수사를 향해 까칠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어허, 길 수사. 말이 과하십니다.”

“쓸모도 없는 비늘을 그 값에 사라는 것이 말이 과한 것이지요. 도대체 무슨 생각이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 그건······.”

“중급 영석 마흔 개로 사겠습니다.”

“아니, 그렇게나······.”

“서른여덟 개.”

“길 수사!”

“서른여섯 개.”

“끄으으응!”

“서른······.”

“조, 좋소이다. 서른여섯. 알았소. 서른여섯 개에 넘겨 주리다.”

“그게 아니면 인화초와 바꿔 줄 수도 있소이다.”

깡마른 수사가 결국 항복을 하자, 건우가 슬쩍 당근을 내밀었다.

그리고 결국 건우는 인화초와 빙담흑혈리의 비늘을 맞바꾸었다.

인화초가 십이비선의 유산을 성장시키는 재료 중에 하나였기에 가능한 교환이었다.

“주인님, 그런데 그 인화초, 전에 좌판에서 덤으로 얻으신 것이 아닙니까?”

“덤은 아니었지. 거스름으로 받을 중급 영석 여섯 개 대신에 받았던 거니까.”

“그렇군요.”

“하하하. 그렇지.”

건우가 기분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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