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혼란 중에 도박수로 줍!
파지지지지직!
안개로 휩싸인 진법에 천겁의 노란 뇌전이 구렁이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그 뇌전의 구렁이들은 서로 몸을 휘감고 위로 치솟아 오르며 천정을 허물었다.
그 때문에 지상에 있던 장원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그 안에 있던 범인들이 횡액을 당했다.
하지만 수사들에게 그런 것은 전혀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장원이 허물어지며 나타난 진법과 그 진법을 휘감은 천겁의 뇌전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럴 수가. 부양도, 부양도와 진법이 연결되었다.”
“천겁의 기운 때문에 부양도에 접근할 수가 없겠소.”
“애초에 부양도의 방어 금제와 결계가 허투른 것이 아니오. 천겁의 기운이 아니어도 쉽게 범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그건 그렇소. 저 부양도가 과거 완합종의 섬들 중에 가장 신비로운 곳이었소. 완합종이 멸문을 하는 중에 부양도를 탐낸 이들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 종적을 감추었지.”
“지금 보니 저 부양도 자체가 아주 강력한 법보라 할 수 있겠소. 기껏 허공에 떠 있는 섬 정도로 여겼더니 그게 아니었던 거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저 밑에 있는 진법을 보십시오. 저것을 보면 심상치 않은 일임은 분명합니다. 수사들 백여 명의 정혈과 혼까지 갈아 넣어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으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진법인데 말입니다.”
장원이 허물어지며 드러난 진법을 두고 수사들의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때, 건우는 조금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갑자기 천정이 모두 사라지고, 수많은 수사들의 눈길을 받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대로 출도령패를 훔쳐야 하나?”
- 그럼 건우 님의 모습을 모두가 보게 될 텐데요?
“그러게 말이다. 비록 길우몽의 모습이긴 하지만.”
“주인님, 그럼 저만 나서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를 아는 수사는 세상에 없으니 말입니다.”
“용랑, 네가 나가서 저 출도령패를 들고 다시 아공간으로 들어온다고?”
“네, 주인님.”
“미안하지만 그래도 함께 나가야 한다. 너 혼자 나가는 것은 내가 내보내면 되지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는 내가 밖에 있어야 하지.”
“아, 그렇군요.”
- 그래서 어쩌시게요?
“어쩌긴, 이럴 때는 눈치를 보는 거지. 봐라, 저기 드디어 엉덩이 무거운 놈들이 등장하잖아.”
건우는 눈앞에 있는 출도령패에 군침을 흘리면서도 자제심을 가지고 상황을 살폈다.
그러던 중에 부양도를 포위하듯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을 발견했다.
언제 왔는지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고 나타난 이들.
하지만 정작 모습을 발견하고 인지한 순간부터는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의 압력이 느껴지는 이들.
화신기 수사들의 등장이었다.
그 중에는 건우도 익히 알고 있는 화공공과 능염선자, 미우천왕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그들 셋 이외에도 처음보는 화신기 수사가 다섯이나 더 있었다.
“어떻게 한 번 건드려 보실 분이 계십니까?”
그런 중에 미우천왕이 다른 화신기 수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사슬에 매달린 작은 쇠우리가 들려 있었다.
“궁금하면 미우천왕 당신이 한 번 해 보는 게 어때요?”
안면이 있는 능염선자가 요염한 표정으로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미우천왕은 과장되게 두 손을 내저었다.
“하하하. 감히 그런 도박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록 온전한 천겁이 아니라 하더라도 쉽게 받아낼 수준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야 그렇지요. 그런데 천겁을 일으킬 정도의 진법이란 도대체 뭘까요?”
이번에는 머리에 뿔이 달린 장대한 체구의 수사가 물었다.
붉은 색 얼굴에 물소의 뿔을 지닌 그는 미우천왕과 같은 요족의 화신기 수사였다.
“천겁은 쉽게 일어나지 않지. 그렇다면 저 진이 그만한 역천의 효과를 지녔다는 뜻일 것이고.”
“보아하니 진법에서 일어난 기운이 모두 부양도로 몰리고 있으니 정작 핵심은 부양도에 있다 해야겠지.”
“그럼 이제 뭔가 일이 벌어지겠군. 진법의 기운이 정점에 이른 듯 하니.”
이번에는 건우가 처음 보는 화신기 수사 셋이 모여 저마다 한 마디씩을 했다.
그들 셋은 한 편인 듯 다른 수사들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보아하니 화신기 수사들은 세 개의 무리로 보였다.
화공공과 한 편인 낯선 수사가 하나, 미우천왕과 능염선자 그리고 물소 뿔의 수사가 한 편, 그 외에 세 명의 화신기 수사가 또 한 편을 이루고 있었다.
둘, 셋, 셋.
건우는 대교류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들은 이야기로 그들의 소속을 대충 헤아렸다.
화공공이야 당연히 회회전이고, 낯선 화신기 수사 셋은 아마도 삼맹의 수사들일 것이다.
세 개의 세력이 손을 잡은 까닭에 삼맹이라 하는데, 정확한 소속들은 건우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삼맹이 다도해역 밖에 있는 다른 역에서 온 이들임은 확실했다.
그리고 미우천왕과 능염선자와 물소 뿔 수사.
이들은 다도해역의 수도계 연합이라 할 수 있는 세력의 대표들일 것이다.
건우가 거기까지 추측을 했을 때였다.
삼맹의 화신기 수사들이 말했던 것처럼 부양도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부양도에서 하늘로 치솟는 영롱한 빛의 선이 나타난 것이다.
건우는 그것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래 더듬을 필요도 없이 답이 나왔다.
“은밀역의 열두 동상이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데?”
- 그러게요.
“그럼 저거 또 하늘에서 천겁뢰가 떨어지는 거 아냐?”
- 그건 아니네요. 이번에는 지상에서 하늘로 천겁뢰가 역류를 하는데요?
“그렇군.”
루야의 말처럼 이었다.
장원에 드러난 진법과 부양도를 휘감고 있던 천겁 뇌전이 빛의 길을 타고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공간을 뚫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뻗어간 빛의 길을 따라가는 천겁의 뇌전.
“드디어!”
그 모습에 맹호준이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콰릉! 버언쩍!
“크아악!”
하늘로 역류해서 약해지던 천겁의 뇌전이 수십 배로 증폭되어 공간의 구멍에서 되돌아 나왔다.
그리고 그 뇌전은 부양도를 지나 맹호준이 지키던 진법까지 한 번에 관통했다.
맹호준은 그 천겁의 뇌전이 진법을 두드리는 순간 짧은 비명과 함께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미친.”
건우는 그 순간 감히 아공간 밖으로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차하면 밖으로 나가 출도령패를 훔칠 생각을 하고 있던 용랑도 움찔하며 건우의 눈치를 봤다.
“너한테 나가란 소리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네, 주인님.”
용랑은 건우의 말에 꽤나 마음이 놓인 모양인지 표정이 풀렸다.
파지지지지직! 파지지지직!
“크아아악!”
“피해!”
“살려 줘!”
“미쳤군!”
그 때, 대원본성에는 난리가 났다.
천공에서 떨어진 천겁의 뇌전이 부양도와 진법을 관통하고도 힘이 남아 대원본성으로 넓게 퍼진 것이다.
그 한 번의 뇌전으로 범인들 수 십 만이 죽었고, 저계 수사들 수백이 가루가 되었다.
그 중에는 장원과 가까이 있던 영체기 수사 서넛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어째 요즈음 액이 끼었나. 심심하면 천겁을 당하는 느낌입니다 그려.”
“그러게요. 도대체 겨우 백년 내로 천겁뢰를 두 번이나 경험하다니, 이럴 수도 있답니까?”
“확실히 강력하군요. 몇 번 감당하라면 차라리 도망을 가고 말겠습니다.”
미우천왕과 능염선자, 소뿔 수사가 훌쩍 멀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내며 투덜거렸다.
그들은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던지 크게 낭패를 본 모습은 아니었다.
그에 비해서 회회전의 수사 하나와 삼맹의 수사 셋은 번개를 맞은 탓에 꼴이 무척 사나웠다.
그나마 화공공은 이전의 경험 덕분인지 말끔한 모습이었다.
= 감히! 인계의 하찮은 것들이 영계를 범하려 들다니!
우르르르르르릉!
하지만 그런 여유는 곧바로 이어진 목소리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천겁뢰가 내려온 빛의 길을 따라 목소리 하나가 강림했다.
그것은 목소리가 들린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목소리 자체가 존재감을 가지고, 의식을 가지고, 맹렬한 저의를 담고 있었으며 아울러 흉흉한 힘을 지녔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일순간 대원본성 전체를 장악했다.
그 때였다.
부양도의 바닥이 깨어지며 4척 단구의 수사가 구르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합종의 전대 종주께 미천한 부양도의 도주가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허공에 몸을 엎드리고 고개를 처박으며 절을 올렸다.
= 부양도의 도주?
그런데 부양도의 도주란 말에 목소리의 기운이 가라앉았다.
“그렇습니다. 오랜 맹약에 따라서 부양도의 도주로서 전대 종주님께 맹약의 이행을 간청드립니다.”
= 맹약의 이행이라.
“그렇습니다. 제발 이 불쌍하고 가련한 후손들을 굽어 살펴 주십시오.”
= 말하라.
“저희 완합종이 다도해역과 다른 역(域) 세력들의 모함에 멸문을 당했습니다.
= 멸문이라? 하긴 그랬으니 부양도의 금기를 깨트렸겠지. 허면 바라는 바가 무엇이냐?
“선조님의 보살핌을 내려주십시오. 그것이면 족합니다.”
= 보살핌이라. 영계의 우리에게 인계의 너희를 보살펴달라?
“제발, 굽어 살펴 주십시오.”
= 크하하하하!
콰르르르르릉! 콰르르르릉!
“꺄악!”
“커억!”
“울컥! 우웩!”
목소리의 굉소(轟笑)가 터지고 그 순간 부양도를 둘러싸고 있던 여덟 화신기 수사들이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고작 웃음소리에 크게 내상을 입고, 영체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 어리석은 것. 영계가 어찌 인계에 간섭을 한다는 말이냐?
“하지만 부양도의 도주가 받는 전승에 따르면 분명······.”
= 이익이 크다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투자는 할 수 있음이다. 하지만 이미 완합종의 쓰임은 다했다.
“그, 그러면···.”
= ······.
천절노자가 되물었지만 다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부양도에서 치솟던 빛의 길이 조금씩 기세를 잃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허공에 엎드린 천절노자는 절망한 표정으로 어두워지는 빛의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어억!”
“겨우 목소리였을 뿐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한동안 요양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저 어리석은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크게 징치를 해야겠지요. 감히 대교류회를 크게 어지럽힌 죄를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뿐입니까? 우리들이 저 놈 때문에 본 피해가 크니,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겠지요. 저 놈이 가진 모든 것으로 말입니다.”
넋을 놓은 천절노자를 두고 화신기 수사들이 너나없이 뜻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누, 누구냐? 누가 내 출도령패를 가지고 간 것이냐!”
천절노자가 황망한 표정으로 맹호준이 있던 자리에 내려서며 소리를 질렀다.
그곳에 있어야 할 출도령패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으음? 그것이 어디로 갔지?”
“그러게 말입니다. 저기 분명히 패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우리의 이목을 속이고 누군가 패를 취했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저 늙은 어린놈이 수작을 부리는 것이겠지요.”
“하긴, 그 쪽이 의심스럽긴 합니다.”
화신기 수사들이 천절노자를 노려봤다.
의심을 받은 천절노자는 억울했지만 변명을 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을 체념한 천절노자가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아직 꺼지지 않은 빛의 길, 그리고 부양도와 진법을 이어주는 희미한 천겁의 뇌전.
천절노자는 그 뇌전에 몸을 던져버렸다.
파지지지지지직!
스스로 어떤 방어도 하지 않은 천절노자는 순식간에 천겁뢰의 힘에 소멸되어 사라져 버렸다.
천겁뢰는 역천을 벌하는 힘이라 영혼까지 소멸시키는 힘을 지녔다.
그 때문에 화신기 수사들이라도 죽은 천절노자의 영혼을 잡아서 고문할 수도 없게 되었다.
어차피 나이가 들어 미래가 없으니 그런 식으로 끝을 보고 만 것이다.
“허어, 이게 무슨 일인지.”
“이리 되면 어찌 되는 겁니까? 저 부양도는?”
“그야 알 수가 없지요.”
“아마도 오래지 않아서 공간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저것을 불러낼 패가 나타날 때까지는 세상에 나오지 않겠지요.”
“조금 전에 죽은 늙은이가 패를 숨겼다면 부양도는 영원히 공간 너머로 사라졌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려?”
“그게 아니라면 훗날 누군가 운이 좋아서 공간의 틈에서 부양도를 발견할 수도 있고, 부양도를 불러낼 패를 주울 수도 있겠지요.”
“그것도 아니면, 늙은 아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패를 숨겼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저는 조금 불쾌한 느낌이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군요.”
“화 수사가 그렇다면 뭔가 있을 수도 있겠군요.”
“그냥 느낌일 뿐입니다. 솔직히 우리 여덟의 이목을 속이고 일을 벌였다면 화신기 후기나 완경은 되어야 할 텐데, 그렇다면 도리어 우리가 몸을 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하긴 그렇게 따질 수도 있겠습니다.”
“자자, 그만 물러들 나십시다. 어차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해서 나와 봤을 뿐이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지금 부양도가 중요합니까?”
“커엄. 그렇지요. 지금 중요한 것은 십이비선의 유산이지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 하나, 검선의 유산 말입니다.”
“쯧, 그게 없으면 다른 유산들의 가치가 1할로 줄어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반드시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해역 안에 있기는 하다니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습니까?”
화신기 수사들은 그렇게 몇 마디를 더 나누고는 훌훌히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건우는 물론이고 다른 수사들도 유산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화신기 수사들이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저들끼리만 들리도록 대화를 나눈 까닭이었다.
“휴우, 진짜 미친 짓이었다.”
그 때, 건우는 한쪽 팔이 새까맣게 그을린 상태로 출도령패를 들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 맞아요. 미친 거죠. 어떻게 화신기도 무서워하는 천겁뢰에 뛰어들 생각을 해요?
루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천겁이잖아. 그건 정말 죄가 많은 이들에게 강하게 내리는 거 아니겠어? 나야 고작 성단기 초긴데, 그 정도면 천겁도 약하겠다 싶었지.”
- 맹호준과 다른 수사들이 죽었는데요?
“그걸 보고 도박을 한 거야. 그 강력한 천겁뢰에도 비명을 지를 여지가 있었단 말이지. 그럼 그보다 훨씬 약해진 지금이면 뭐, 어떻게든 버텨 볼 만 하다 싶었던 거고. 덕분에 이걸 얻었잖아.”
건우는 시커먼 손에 쥔 출도령패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