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대원본성의 상공에 부양도가 날아들다
‘전신부로 날아가면 내가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건우는 맹호준이 완합종의 옛 제자들을 어디서 만나는지 찾아냈다.
혈원의 피 한 방울을 이용한 술법으로 그 피가 있는 곳을 혈원이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맹호준은 자신의 옷자락에 혈원의 핏방울이 스며든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혈원의 경지가 성단에 이르지 못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같은 성단 경지의 수사라 피 한 방울을 어렵게 숨겨 놓을 수 있었다.
물론 만약 들켰다 하더라도 맹호준은 그 피가 누구의 것인지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건우와 피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을 것이니.
‘보아하니 성단기가 여섯에, 축기기가 쉰이 넘는군. 대부분은 부양도의 제자들인가?’
건우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회합을 버젓이 앉아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공간 입구를 활짝 열고 보는 것이라, 그 누구도 건우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성단기가 아니라 영체기, 화신기라 하더라도 건우의 아공간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고작 성단기와 축기기 따위가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대교류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대원본성에 머문다는 계획은 그대로인 것입니까?”
“그래야지요. 지금도 수사들이 계속 몰려들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제 다도해역의 수도문파들도 굳이 우리 완합종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리 뭉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코웃음만 치고 말 것입니다.”
“그게 무슨? 우리가 그리 하찮다는 말입니까?”
“그야 어쩔 수 없지요. 솔직히 우리 중에 제일 경지가 높은 이가 성단기 후기에 겨우 걸친 정도입니다. 영체기 선배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힘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떼를 지어도 그리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는 말이군요?”
“그런 거지요.”
“듣자니 안심이 되면서도 비참함이 밀려듭니다 그려.”
“하지만 장작을 베고 누워 쓸개를 핥는 보상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벌써 이리 많은 동문이 모였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모이면 비술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모두 희망을 가집시다.”
“그래야지요. 대교류회가 깊어지면 더 많은 동문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숫자만 모이게 되면 그 때는······.”
“완합종의 새로운 개파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번 일만 제대로 되면 그 어떤 세력도 우리 완합종을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시라니! 그 놈들 모두 바닥에 엎드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할 것이야. 그리고 감히 우리 종문에서 약탈한 것의 수백 곱을 뱉어 내야 할 것이고.”
“하하하. 그렇지요.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건우 앞에 있는 넓은 대청에는 수사들이 많았지만 연이어 떠드는 이들은 모두 성단기 경지의 수사들 뿐이었다.
하지만 공손한 자세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축기기 수사들 역시 눈빛에 번들거리는 욕망을 감추지는 못했다.
건우는 그것이 궁금했다.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뭘까?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영계에 비승한 완합종의 옛 종주를 불러내어 그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걸까?
그리고 그게 성공하면 도대체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기에 저리 욕심을 드러내는 것일까.
사실 건우는 그것 때문에 저들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물론 그 외에 대교류회에서 딱히 도움이 될 것을 찾지 못한 이유도 있었고.
* * *
“그래, 다들 돌아갔느냐?”
“네, 사부님.”
“아직 수가 모자란 걸 알고 있겠지?”
“워낙 조심스러운 일이라 끌어들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영혼 맹약을 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맹약 내용이 고작 이번 일에 대해서 함구하는 것일 뿐인데, 그걸 마다하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건 그렇습니다.”
맹호준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이는 영체기 경지의 수사였다.
건우는 회합이 끝나고 맹호준만 남은 상태에서 오래지 않아 그가 나타났을 때, 깜짝 놀랐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눈앞에 나타난 4척 단구(短軀)의 노인은 그 외모만으로도 유명한 수사였다.
예전 완합종의 부양도 도주였던 천절노자(天絶老者)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뭔가 꾸미고 있구나.’
깊이 생각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둘을 바라보는 건우의 눈빛이 우목하게 깊어졌다.
“스승님,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이곳 대원본성에는 대교류회 때문에 화신기 선배들이 여럿 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뭐?”
“저희가 진법을 발동시키고 부양도를 불러들인다고 한들, 그 화신기 선배들이 나선다면 일이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걱정할 것 없다.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준비된 진법을 발동시키기만 하면 그 진법은 천겁의 보호를 받는다.”
“처, 천겁이라니요?”
“쯧, 영체가 가장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천겁이다. 역천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수사들을 막기 위해 천지의 기운이 응결되어 내리는 벌. 그것이 천겁이다.”
“그, 그런 것이 진법에서 나온다는 말입니까?”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8할은 근접한 천겁의 기운이 진법을 보호하고, 그 사이에 부양도가 날아들어 진법 위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 또한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다. 화신기라 하더라도 진법의 힘으로 현현하는 부양도를 어찌 막을까.”
“부양도만 자리를 잡으면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완합종 동문들의 염원이 진법과 부양도를 거쳐서 증폭되고, 부양도에 있는 금제를 발동시켜 영계에 계신 분들을 현현케 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지.”
“그렇게만 되면 완합종의 비밀 보고도 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게다가 영계의 선조들께서 보호하는 우리 완합종을 누가 건드린단 말이냐. 영계로 비승한 선조들께서 인세에 관심을 두시는 것만으로 완합종은 향후 수백 만년은 무탈할 것이다.”
“그리되면 스승님께서도 화신기에 오르시고, 새로운 수명을 얻게 되실 것이니 정말 감축드릴 일입니다.”
“나는 이미 화신기를 포기하고 입적을 준비하던 몸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생겼으니 어찌 놓칠 수가 있겠느냐.”
“그 덕분에 못난 제자도 희망을 보았습니다.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그래, 그래.”
“그런데 진법을 이룬 동문들은······.”
“쯧, 종문의 발전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니 마음 쓸 것 없다. 그리고 그 놈들도 개인적인 욕심이 없었겠느냐? 그나마 종문에 대한 소속감이 필요해서 어르고 달래서 쓰는 것일 뿐이다. 잊거라.”
“네, 네.”
“그리고 진법이 발동되면 출도령패는 반드시 챙겨야 하느니라.”
“물론입니다. 스승님.”
“그것이 부양도를 제어하는 중추이니 그것을 잃는다면 부양도 전체를 잃는 것이다. 이번 일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면 내 품에서 떼지 않았을 것이니, 항상 눈을 떼지 말거라.”
건우는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일을 꾸미는 것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다지 도움이 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출도령패란 말에서 귀가 번쩍 뜨였다.
부양도를 제어하는 중추라니.
부양도는 말 그대로 허공을 떠다니는 섬이다.
크기는 고작 세절도의 서너 배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그것이 허공을 떠다닌다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그것이 비행 법보란 소리도 있고, 그보다 뛰어난 영기란 소리도 있었지. 만약 그걸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렇지 않아도 청옥비선보다 뛰어난 비행법구가 있었으면 했다.
그런데 부양도?
취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건우에게 갑작스런 고민이 생긴 참이다.
* * *
성단기 열 명.
축기기 백여 명.
맹호준과 천절노자가 끌어모은 완합종 제자들의 숫자였다.
그들을 모두 모으는데 1년의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대원본성에선 다도해역의 대교류회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고, 십이비선의 유산을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자원은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고 있었다.
그런 중에 은밀하게 수사들을 모으는데 성공한 맹호준과 천절노자.
건우는 그들이 드디어 마지막 계획을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맹호준은 대원본성의 중심지역에 범인의 장원 하나를 취했다.
수사들에겐 전혀 의미가 없는 곳.
하지만 제법 넓은 공간만은 쓸모가 있는 곳이었다.
맹호준은 그곳에 거주하는 범인들의 정신을 조작하고 장원 지하에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복잡한 진법을 만들었는데, 사실 그 진법의 대부분은 어디선가 떼어온 것을 조립하는 수준이었다.
건우 역시 그 과정을 지켜봤는데, 그 진법들은 원래 부양도의 금지에 있던 것을 천절노자가 나눈 것이라 했다.
맹호준은 회유한 동문 수사들과 함께 그 진법을 하나하나 다시 끼워 맞췄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 건우가 보는 중에도 두 번이나 다시 뜯었다가 맞추는 과정을 겪었다.
그렇게 하고도 다른 수사들이 없을 때, 천절노자가 몇 번이나 새로 손을 보아야 했다.
건우는 그런 과정을 지켜보며 나름 그 진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파악했다.
진법을 발동하는 이들의 의념을 받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동시에 그 진법 안에 위치한 이들의 영기, 생기, 혼까지 갈취하여 발동 에너지를 충당하는 괴악한 진법이다.
‘어쨌거나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지.’
그렇다.
진법이 어떻고, 거기에 희생될 수사들이 어떻고, 건우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 맹호준의 앞에 놓여 있는 출도령패라는 것이다.
출도령패(出島令牌).
섬이 나는 것을 명하는 패.
쉽게 따지자면 거대한 부양도를 불러내는 패이며, 그 부양도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이며, 그것을 부릴 수 있는 통제장치다.
그것이 지금 맹호준이 가부좌를 하고 있는 앞쪽에 놓여 있다.
그리고 건우는 그런 맹호준의 오른쪽 뒤에 아공간 입구를 열어놓고 기회를 보는 중이고.
“시작합시다.”
맹호준이 웅혼한 목소리로 의식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완합종의 제자 백여 명이 일제히 진 안으로 걸어 들어가 정해진 위치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모두의 의념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우리는 간절하게 영계에 계신 선조들께 지금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념이 하나가 되어 영계로 가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진법이 완성된 후에 그들이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각기 정해진 자리에서 방금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바람을 담아 강렬한 염을 뿌리면 된다.
그 이후는 진법이 알아서 할 것이다.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이런 맹신의 이면에는 영혼 맹약의 허점이 있었다.
그들 모두는 한 자리에서 관계자들끼리 이외에는 이번 일에 대해서 함구할 것을 약속하는 영혼 맹약을 맺었다.
그래서 다들 같은 맹약을 맺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인데, 실제로 그것이 함정이었다.
맹호준이 그들을 제물로 삼아 속이는 것은 그 맹약 어디에도 제약을 받지 않으니까.
우우우우우웅!
스스스스스스스스!
영기가 울리는 낮은 공명음과 함께 진법 전체에서 희미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진법 전체를 감싸고 모든 감각을 차단했다.
그런 중에도 진법 안에서 념을 모으는 이들은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다.
의념의 집중, 그 이외의 모든 감각을 상실시키는 숨겨진 효과가 발동된 것이다.
이제 진법 안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몸에서 영기가 빠져 나가고, 피가 빠져 나가고, 영혼이 빠져 나가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아주 평온한 소멸.
백 명이 넘는 수사들이 그렇게 조금씩 말라비틀어지는 때, 홀로 진법의 영향 밖에 있던 맹호준이 수십 개의 상급 영석을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던져진 영석들은 넓은 진법의 테두리 곳곳에 날아가 박혔고, 이어 진법의 빛이 한층 강해졌다.
본격적으로 진법이 가동되고, 제물들이 소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너라!”
이어서 맹호준이 출도령패를 향해 영기를 튕기며 진언을 외웠다.
그리고 그 순간 지상의 대원본성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원본성을 지키는 대규모 결계가 흔들리며 뭔가가 공간을 가르고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냐!”
“감히! 대교류회 중에 소란을 일으키다니!”
“저기다! 저곳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둔광이 맹호준이 일을 벌이는 장원의 상공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지상을 향해 술법을 사용하려 했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으아악! 피해라!”
“천, 천겁이다!”
“피해!”
하지만 그들이 뭔가를 하기 전에 지하에서 장원 전체로 구렁이 같은 노란 뇌전이 번져 나왔다.
그리고 그 기운을 느낀 수사들이 분분이 장원을 벗어나 거리를 벌렸다.
모두 영체기 이상의 수사들이라 천겁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영체기 수사는 천겁을 겪을 일이 없지만 대신에 천겁의 기운 한 올이라도 맞는다면 영체의 소멸을 각오해야 한다.
화신기 수사조차 두려움에 떠는 것인 천겁의 기운인데, 영체기 따위가 감히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게 무슨 일이람. 천겁의 기운이라니!”
“어허, 기운이 더욱 성해져 번지는 중이요. 조금 더 멀리 피해야 할 것 같소.”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였단 말입니까.”
“그러게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 아, 아니. 저, 저것은?”
“부양도! 부양도가 나타났다.”
여러 영체기 수사들이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중에 느닷없이 대원본성의 상공이 갈라지며 거대한 부양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 모든 수사들이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피했다.
장원에 번지던 천겁의 기운이 하늘로 뻗어 올라 부양도와 연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게 대체 무슨?”
그렇게 지상에서 대교류회의 여러 수사들이 놀라고 있을 때, 건우는 슬그머니 길우몽으로 모습을 바꾸고 아공간 밖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오금강체술(娜烏金剛體術)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길우몽의 몸은 시커먼 금속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그 곁에는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용랑이 바짝 붙어 있었다.
“준비!”
“네, 주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