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82화 (82/499)

82. 완합종 재건이라고? 흥!

-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거죠.

“뭐가?”

- 건우 님이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뭐예요?

“그야 대교류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지.”

- 그러니까 왜요?

“가진 것도 좀 바꾸고, 사람들도 좀 만나고.”

- 하지만 건우 님은 오는 사람도 막고 그러시잖아요. 게다가 회회각에 처박혀서 두문불출하고 계시고요.

“야, 그건 아니지. 그 맹가 놈은 아무리 봐도 의심스러웠잖아. 그렇게 대 놓고 접근을 하다니. 그리고 나도 외출은 좀 하는 편인데?”

- 정말 의심스러운 사람이면 누가 그렇게 대놓고 들이대겠어요? 게다가 건우 님이 외출을 하면 뭐 해요? 겨우 상점에서 물건을 찾는 것이 고작인데요.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

- 사람들 좀 사귀시라고요. 매일 이렇게 아공간에 들어와서 공부만 하지 마시고요.

“쯧, 뭐가 그리 급한지. 아직 대교류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 에휴, 그리고 멍뭉이는 왜 계속 여기 놓고 다니세요? 핏덩이는 데리고 다니시면서.

“멍뭉이 아니고 용랑! 이젠 용랑이라고 불러야지. 그리고 우끽끼 분혼도 혈원이라 부르고.”

- 그러니까 왜 혈원만 데리고 다니시고 용랑이는 외면하시냐고요.

“쯧, 내가 길우몽으로 있을 때, 멍뭉이와 함께 활동을 했지?”

- 그렇죠.

“그래서 그런 거잖아. 나는 혈원을 데리고 다니고, 길우몽은 용랑을 데리고 다니는 거지.”

- 우와, 그런 것까지 생각을 하신 거예요?

“설렁설렁 하다가는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르는 세상 아니냐.”

- 그야 뭐······.

“이제 며칠 후면 정식으로 대교류회가 시작된다. 그 때가 되면 지금껏 열리지 않던 큰 상점도 문을 열 것이고, 경매장은 물론이고 수사들 개인이 여는 좌판도 열릴 거다.”

- 네네. 그렇겠죠.

“그 때가 되면 나도 바쁠 거야.”

- 그런데 그건 어떻게 됐어요?

“뭐?”

- 그 십이비선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요.

“아, 그거······.”

건우는 며칠 전에 수사를 상대로 하는 약초상을 찾았다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

십이비선의 은밀역이 붕괴할 때에 많은 수사들이 죽고 실종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열두 유산은 멀쩡하게 다도해역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었지만 그 열두 개의 유산을 두고 거대 세력들이 서로 다투고 있다고 했다.

건우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동안 아공간 한쪽에 처박아 뒀던 검선의 유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요즈음 가끔씩 그것을 불러서 살펴보기도 했는데, 아무리 봐도 그것을 성장시키기 위한 재료들이 부담스러웠다.

1차 성장에 들어가는 재료들만 알 수 있는 지금도 허리가 휠 정도라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런데 그 후에는 또 얼마나 엄청난 것들이 필요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 다른 유산들도 검선의 그것처럼 파편을 성장시키는 그런 형태일까요?

생각에 빠진 건우에게 루야가 다시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알 수 있겠지.”

- 네? 이번에 알 수 있다니요?

루야가 건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이 되물었다.

“대교류회에서 거래되는 자원들 중에서 검선의 파편을 성장시키는데 사용되는 재료들을 살펴보면 안다는 소리다.”

- 아, 다른 유산들도 같은 형식이면 그 재료들의 가격이 무척 높아지겠군요?

“그렇겠지. 그렇잖아도 밖에 나갈 때마다 슬쩍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 그래서 알아낸 게 있어요?

“음. 벽청송진(碧靑松津)의 거래가 거의 막혔더라.”

- 그게 유산을 성장시키는 재료 중에 하난가요?

건우의 말 뜻을 짐작한 루야가 물었다.

건우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지만 루야도 더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벽청송진은 벽청송이라는 특별한 소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이다.

영단을 만들거나 법부, 법기를 만들 때에도 많이 쓰이는 기본 재료이고, 때로 상급의 자원들을 쓸 때에 보조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벽청송은 사실 수도계에 흔한 나무라 벽청송진이 모자라는 일은 없다.

그런데 대교류회가 시작되는 이 대원본성에서 벽청송진이 씨가 마르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재료가 귀해졌다면 누군가 그것을 사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게 필요한 일 중에 하나가 십이비선의 유산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의외로 그 과정에 벽청송진이 많이 들어 간다.

- 건우 님도 좀 사 모았어요?

루야가 물었다.

“아니, 그러다가 덜미라도 잡히면 어쩌라고? 난 이 물건을 성장시킬 생각이 전혀 없어.”

- 그럼요?

“기회가 되면 경매에 올려버릴 수도 있지.”

- 우와, 십이비선의 유산인데 그걸 경매에 올려요?

“내가 정말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럴 수도 있지. 솔직히 이 검선의 파편은 아직 나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되잖아. 당장 쓰지 못할 것을 쓸만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 않냐?”

- 흥, 그래도 안 속아요. 건우 님이 그런 귀한 물건을 함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니죠. 네, 그럼요.

“크음. 그래도 정말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꿀 수도 있다.

건우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검선의 유산을 내 주고 뭔가를 얻기 보다는 ‘다른 방법’을 먼저 찾아볼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음, 스스로를 속이는 건 좋지 않지. 역시 그래도 아직은 내 선량한 양심이 살아있긴 한 모양이군.’

애초에 ‘다른 방법’이 전혀 양심이나 선량과는 관계가 없을 듯 하지만 건우는 마음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뭔가를 사뿐하게 무시했다.

* * *

“어허, 중급 영석 열다섯, 그 이하로는 안 된다지 않소?”

“갑자기 이렇게 비싸게 부르다니,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급 영석 열 개에 팔던 것이 아닙니까?”

“가격이야 수요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 아닙니까. 열다섯 개에 사지 않을 거면 이만 물러나 주십시오.”

“허어, 이런 고약한 경우가 있나. 내 중급 영석을 구하기 위해서 그리 애를 썼건만.”

“사정은 알겠지만 나도 손해를 볼 수는 없지 않소. 중급 열다섯 개를 받을 수 있는데 열 개에 넘기는 것이 말이 되오?”

“그야 그렇지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오? 갑자기 많은 수련 자원의 가격이 급등하다니.”

“회회전과 삼맹, 해역회는 물론이고 일부 수사들이 특정 자원을 쓸어가고 있는 상황이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서로 수사들을 풀어서 보이는 족족 웃돈을 주고 가져가지 않소. 내가 가진 연연회류초(鉛緣懷溜草)······.”

“뭐라? 네가 연연회류초를 가졌다고?”

좌판을 벌이고 있다가 실랑이를 하던 수사의 말에 문득 둔광이 터지며 누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불이 튀는 듯한 눈초리로 그 좌판 상인을 보며 물었다.

“그, 그렇습니다. 후배가 연연회류초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타난 수사는 성단기 후기, 좌판 수사는 축기기 후기.

극명한 경지 차이에 좌판 수사가 급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연연회류초를 내어 놓거라. 그것의 질을 보고 가격을 치를 것이다. 당연히 후하게 치를 것이니 너는 걱정할 것이 없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좌판 수사는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급히 약초가 든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오호? 제법 괜찮구나. 최상품이야.”

상자를 받은 성단기 수사는 생각보다 질이 좋은 약초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영석 주머니를 좌판 수사에게 던졌다.

“여기 있다.”

“가, 감사합니다.”

주머니를 받은 좌판 수사는 그 안에 중급 영석 스무 개가 들어 있는 것을 알고는 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하지만 약초를 구한 수사는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녹색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아주 이제는 대 놓고 유산 성장 자원을 끌어 모으고 있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건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대교류회가 시작되고 3개월이 지난 지금, 대원본성은 일정 자원에 대한 쟁탈전으로 시끄러웠다.

아직 무력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점차 경쟁 수위가 높아지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것은 십이비선의 유산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재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 유산들 때문에 대교류회가 시들해지고 있어. 대부분의 관심이 그 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제대로 된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단 말이지. 게다가 화신기 수사들의 설법이 취소되기도 하고.’

여섯 명의 화신기 수사가 6개월씩 돌아가며 설법을 한다던 계획이 첫 설법부터 무산되었다.

설법을 해야 할 화신기 수사들이 유산에 관심을 가지면서 설법을 외면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영계로 비승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후배들을 위한 설법 따위를 취소하는 것이 대수겠는가.

물론 그렇게 취소된 설법에 아쉬워하는 후배들의 심정 따위야 화신기 수사가 고려할 이유는 없는 것이고.

“쯧, 세 번째 설법은 아직 취소가 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건 그대로 진행이 되려나.”

“하하하, 건우 형.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그 세 번째 설법도 오늘 취소가 되었습니다.”

건우가 혼잣말을 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옆으로 맹호준이 따라 붙었다.

“남의 말을 엿듣는 취미가 있습니까?”

건우가 불편한 표정으로 맹호준을 보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멀리서 건우 형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급히 오다가 형의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쯧, 되었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맹 수사와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하하하. 너무 까칠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으면 좀 관심이 생기실 겁니다.”

“거 참, 그냥 가시라는 데도요.”

“정말이십니까? 제가 어디 가서 건우 형이 완합종 출신이라 떠들고 다녀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뭐라고요?!”

건우가 걸음을 멈추고 맹호준을 노려봤다.

“하하하. 그렇게 화를 내실 일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어쩌다보니 건우 형이 녹림도의 제자였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절대 이 일을 입밖으로 떠들고 다니진 않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요. 사실 건우 형은 모르시지만 제가 부양도 출신입니다. 하하하.”

“부양도!?”

“하하하 사실 제가 어찌어찌 녹림도에 아는 동기가 몇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이곳에서 만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저를 알아봤다는 겁니까?”

“그렇지요. 솔직히 멸문을 당한 완합종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 안면이 있는 수사들끼리 어울려서 나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제 대부분 산수의 신분이 된 마당에요.”

“그럼 서로 떳떳치 못한 마당에 맹 수사가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뭡니까? 왜 자꾸 싫다는 사람을 아는 척 하며 다가오는 겁니까?”

“하아, 그것 참. 건우 형은 어찌 그리 까칠하십니까. 아닌 말로 완합종의 제자로서 서로 교류를 하며 세를 갖춰 보자는 것이 나쁠 것이 뭐가 있습니까.”

결국 변함없이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우의 모습에 맹호준도 화를 참지 못했는지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관심없습니다. 이미 종문이 멸망한 마당에 그 제자들이 무리를 지어서 좋을 것이 뭐랍니까?”

“어허!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러십니까? 사실 멸문도 회회전의 화신기 수사가 그리 정한 것일 뿐이지 않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설마 완합종을 다시 세우자거나 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수백 만 년을 이어온 종문입니다. 그 이름을 잇는 것만으로 얼마나 무궁한 득이 있을지 모르십니까?”

“득이 아니라 독이겠지요.”

“어허어! 보십시오 건우 형.”

“그 형이란 소리도 그만하십시오.”

“완합종에서 영계로 비승하신 분들이 어디 한 두 분입니까? 그걸 생각하십시오.”

“뭐라고요?”

“쯧, 이리 보는 시야가 좁아서야 어쩝니까? 자, 잘 들어보십시오. 과거 완합종의 종주들 중에 영계로 비승한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요?”

“그 분들이 완합종의 멸문을 그냥 받아들이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요?”

“영계에서 인계에 직접 손을 쓰지는 못해도 무슨 수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간혹 일어나기도 합니다.”

“핵심만 이야기를 하십시오. 핵심만.”

“영계로 비승한 종주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사람들을 모으는 중입니다. 그러니 건우 형께서도 도움을 주십시오.”

“뭐? 뭐라고요?”

건우는 빠르게 용건을 밝히는 맹호준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영계로 비승한 종주의 도움을 받다니.

한참 넋이 나가 말을 하지 못하는 건우였다.

화신기가 되어도 영계 비승에 성공하는 것은 다섯에 하나도 어렵다.

하지만 일단 영계로 올라가면 같은 화신기라도 전혀 다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인계에서 제약을 받던 힘의 리미트가 풀린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영계에선 화신기 이후로의 성장도 가능하다.

단 한 단계만 더 올라가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작은 인계 하나는 손짓으로도 멸망시킬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런데 그런 존재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다.

“어찌, 이제 관심이 생기셨습니까?”

맹호준이 물었다.

“처음 대원본성의 성문 앞에서부터 제가 녹림도 출신임을 알아봤습니까?”

건우가 물었다.

맹호준은 그저 빙긋 웃고 말았지만 건우는 그것이 긍정임을 알아봤다.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습니까? 그랬으면 지금처럼 불신이 쌓이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 말씀은 결국 함께 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미안합니다. 이미 종문의 제자복을 벗어 던지고 산수가 된 마당에 다시 종문의 규율에 묶이고 싶지 않습니다.”

“으으윽.”

건우의 냉정한 대답에 맹호준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럼 이만.”

건우는 다시 보자는 이야기도 없이 작별을 고하고 둔술을 펼쳐 자리를 떠났다.

좌판 거리에 홀로 남은 맹호준은 매서운 눈빛으로 건우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제법 성장이 빨라 데리고 가려 했더니, 제 복을 제가 차는구나. 어디 두고 보자.”

맹호준은 그렇게 홀로 중얼거리고는 전신부 하나를 꺼내 찢으며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맹호준이 사라진 후, 머지않은 곳에서 손바닥 크기의 붉은 원숭이 한 마리가 좌대들 사이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가 훌쩍 허공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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