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대원본성(大原本城)에 들다
“안녕하십니까? 뭘 그리 유심히 보십니까?”
건우가 성문을 오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영석이나 영석 조각을 던져 넣는 바구니를 보고 있을 때, 누군가 건우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건우가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영준하게 생긴 젊은 수사가 거기에 있었다.
“누구신지?”
건우가 물었다.
상대의 수준은 성단기 초기.
건우와 같은 경지의 수사였다.
“하하하. 맹호준이라 합니다.”
건우의 물음에 맹호준이 슬쩍 두 손을 모아 턱 밑까지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간략화 된 공수의 예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건우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사이는 아닌데, 혹시 맹 수사께서 저를 아십니까?”
자신은 몰라도 상대는 나를 알 수도 있는 것이 세상 일이 아닌가.
건우는 조심스럽게 맹호준이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아닙니다. 저도 건우 수사를 지금 처음 봅니다.”
“그래요? 그런데 무슨 일로?”
건우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맹호준을 쳐다봤다.
래자불선(來者不善), 선자불래(善者不來).
온 자는 선하지 않고, 선한 자는 오지 않는다.
건우는 대천세계에 온 후로, 기본적인 생각이 그것이었다.
한 마디로 모든 대상을 경계한다는 의미다.
“하하 별 것 아닙니다. 그저 제가 건우 형에게 작은 도움을 드릴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도움이라. 제가 도움이 필요해 보였습니까?”
“그렇지요. 제가 오지랖이 좀 넓은지, 딱 보니까 건우 형이 곤란해 하시는 것이 보이더군요.”
“그래요? 그래서 제가 무엇을 곤란해 하고 있던가요?”
건우가 슬쩍 팔짱을 끼며 어디 맞춰 보라는 듯이 맹호준을 보며 물었다.
“지금 성으로 들어가는 통행료에 대해서 고민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제가 보기엔 그렇게 보였는데요?”
“그래요? 그렇다면 그 통행료에 대해서 제게 알려주시겠다는 말씀이군요?”
“하하하. 바로 그렇습니다.”
건우의 말에 맹호준이 활짝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데 건우는 그 웃는 얼굴을 향해 짧고 단호한 한 마디를 던졌다.
“필요 없습니다.”
“네? 뭐라구요?”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살펴 가시길.”
건우는 당황한 표정의 맹호준에게 두 손을 모아 살짝 들어 올려 인사를 하고는 휘적휘적 성문을 향해 걸었다.
“아, 아니. 건우 형제! 잠깐만!”
그러자 맹호준이 급히 건우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건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성문으로 다가가 바구니 안에 영석 하나를 던져 넣고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건우는 자신의 몸을 관통하는 영기의 파동을 느꼈다.
그 파동은 건우의 몸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염극종이 관리하는 성의 이름이 대원본성이란 것과 그곳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울러서 성문의 통행료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사람에 따라서 통행료가 달랐다.
범인들은 금이나 은, 동 따위의 화폐로 통행료를 내었고, 수사들은 영석이나 영석 조각으로 통행료를 내었다.
그리고 그 통행료도 범인은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다르고, 수사는 경지에 따라 달랐다.
성단기 초기인 건우는 하급 영석 다섯 개로 1년가 대원본성에 머물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조금 전에 하급 영석 하나를 던졌으니 대략 두 달 조금 넘는 기간을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기간을 더 연장하려면 영석만 더 지불하면 되고, 그것도 대원본성 안에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아니, 뭐가 급하다고 그러 서둘러 가십니까.”
건우가 머릿속에 들어온 내용을 정리하는데 맹호준이 건우의 옆으로 따라 붙었다.
“제게 아직도 볼 일이 있습니까?”
건우가 그런 맹호준을 돌아보며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하하. 호의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너무 대우가 박하십니다 그려.”
그런 건우를 보며 맹호준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저는 남모르는 수사의 갑작스런 호의를 편히 받아들일 정도로 녹록한 세월을 살지 못했습니다.”
“아, 그, 그렇습니까?”
“그래서 제가 맹 수사를 편히 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좀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건우는 맹호준을 향해 명백한 거절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맹호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렇군요. 제가 건우 수사의 입장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저는 그저 대교류회에서 될 수 있으면 많은 분들을 사귀고 싶은 욕심에 대원본성 입구에서부터 친교를 시작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맹호준은 아쉬운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건우에게 미련이 남은 듯이 뒷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제가 처음으로 교분을 맺고자 했던 분이 건우 수사니, 이후에 다시 얼굴을 보게 되면 아는 척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역도 할 것이고, 상점도 오갈 것이고, 경매도 참가할 것이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참, 설법에도 참가를 하시겠지요?”
“설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헤어지기 전에 정보 하나를 드리지요. 대교류회 3년 동안에 6개월씩 나눠서 여섯 분의 화신기 선배님들이 수련에 대한 조언을 베풀어 주신답니다. 최소한 성단기는 되어야 청을 할 수 있고, 그것도 늦으면 자리가 없다니 잘 알아보고 참석을 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화신기 선배님들의 가르침이라면 당연히 욕심이 날 일이군요. 좋은 정보입니다. 고맙습니다.”
“하하. 그저 저를 잘 봐 달라고 드리는 인사일 뿐입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맹호준은 건우가 고맙다고 하면서도 좀처럼 살가운 기색을 보이지 않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작별을 고하고 안쪽 대로를 따라 모습을 감추었다.
건우는 사라지는 맹호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 역시 걸음을 옮겨 대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대원본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이제부터 발품을 팔아 정보를 얻어야 할 판이었다.
맹호준이란 수사와 함께 있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를 일이지만, 이유 없이 보이는 호의는 달갑지 않았다.
그런 것을 받느니 조금 피곤해도 제 발품을 파는 것이 속 편한 일이다.
* * *
범인과 수도계 수사가 공존하는 곳, 대원본성.
그곳을 잘 보면 범인들 중에서도 수도계와 연이 있는 이들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
수 천 리의 대원본성에 살고 있는 범인의 수만 3천만이 넘는다.
그리고 그 범인들 위에 군림하는 염극종의 수사가 대략 천 명 정도 된다.
평소에는 그 천 명 가량의 수사들이 범인들에게 신선 소리를 들으며 대원본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물론 염극종의 수사들이 실제로 범인들과 얽히는 일은 거의 없다.
대원본성이든 대원도 전체든, 범인들이 마주치는 대부분의 수사들은 연기기, 잘 쳐 줘야 축기기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물론 그조차도 범인들이 보기에는 넘볼 수 없는 신선의 위상일 수밖에 없고.
하지만 천 년에 한 번.
대원본성에서 다도해역의 대교류회가 열릴 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원본성 곳곳에 성단기 이상의 수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신선이 되고픈 열망을 품은 이들이 대원본성에 떼를 지어 몰려든다.
그 결과 실제로 대교류회 3년의 기간 동안 제법 많은 범인들이 수도계 문파나 수사의 제자가 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범인과 수사가 이리 얽히는 것도 재미있군.”
범인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신선.
그들이 1천 년에 한 번 대원본성에 모인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니.
건우는 그런 상황이 재미가 있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범인들의 이목을 피해서 대교류회를 여는 것이 어려울 일도 아니다.
그런데 굳이 대원본성 전체를 교류회장으로 삼아서, 수 천 만의 범인들에게 수사들의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그 이유를 고민하다가 결국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행사가 향후 1천 년 동안 범인들에게 수사들의 위상을 드높이는 자극이 되는 거겠군. 그저 상상 속의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신선이 아니라, 실존하는 신선. 대원본성의 대교류회는 그런 광고 효과도 있는 거였어.”
건우는 범인들과 얽힌 대교류회의 성질을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역시 건우가 범인들과 얽힐 일은 없었다.
제자를 키울 것도 아니고, 범인들의 음식이나 문화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무슨 요괴나 마물처럼 인간의 피와 혼, 념(念) 따위를 탐낼 일도 없다.
“제법 많이 죽기도 하겠군.”
아마도 대교류회 3년 동안 희생되는 범인의 수가 제법 될 것이다.
대교류회에 인간 수사만 참가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범인들의 희생이야 뻔 한 일이다.
또 어지간한 일에 범인들을 위해서 수사들이 나설 일도 없을 것이고.
다만 너무 심한 피바람을 일으키다간 공적이 될 테니, 교류회에 참가하는 요족이나 마족 수사들도 정도 이상의 일은 벌이지 않겠지.
건우는 그렇게 짐작을 해 보며 걸음을 옮겨 수사들이 많이 찾는다는 숙소를 찾아 움직였다.
회회각(回回閣).
대원본성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객사의 현판은 그러했다.
당연히 건우가 알고 있는 회회전(回回展)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어서 오십시오. 회회각입니다. 어떻게 모실까요?”
건우가 회회각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바로 점원 하나가 들러붙었다.
연신기 후기의 경지를 지닌 수사였다.
“대교류회 기간동안 머물 별채가 있느냐?”
건우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선배님께 꼭 맞는 별채가 여럿 있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어떤 곳을 원하시는지요? 누각, 동부, 전각, 모옥의 형태를 호변, 강변, 산정, 계곡 등의 지형에 맞춰 준비를 해 뒀습니다.”
“당연히 외부의 간섭은 받지 않아도 되겠지?”
“그야 이를 말씀이겠습니까? 저희가 비용은 좀 비싸게 받아도 손님의 안전은 보장해 드립니다.”
“그래, 그럼 동부 형태로 하나 내어 다오.”
“기간은 대교류회가 끝날 때까지로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지.”
“네네, 알겠습니다. 이리로 오시지요.”
회회각의 점원 수사는 건우를 안내해서 복도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벽에 걸린 몇 개의 목패들 중에 하나를 떼어 건우에게 건넸다.
“이곳을 쓰시면 되겠습니다.”
“으음?”
건우는 점원이 내어주는 목패를 받아 의식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목패의 사용 방법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거 자주 드나들면 파산을 하겠구나.”
건우가 목패를 확인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목패는 숙소로 가는 전송부의 역할을 하는데, 그 전송부를 쓸 때마다 회회각에 비용이 청구되는 형태였던 것이다.
대신에 목패가 없이는 그 숙소를 찾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여기 있다. 일단 기본 숙박비니라.”
건우는 점원에게 주머니 하나를 꺼내 던지고는 목패에 영기를 불어넣어 연화를 시켰다.
점원은 그 모습에 허리를 접고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어째 고객이 호객으로 들릴꼬.”
건우는 생각보다 비싼 숙박비에 혀를 차고는 목패를 발동시켜 숙소로 이동했다.
건우의 모습이 사라지자 허리를 숙였던 점원이 고개를 들고 허리춤에서 옥패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별채 손님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다.
* * *
그 시간, 어딘지 모를 비밀스런 곳에서는 십여 명의 수사들이 모여서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십이비선의 유산이 대원본성으로 모이고 있소.”
“우리가 둘, 회회전이 셋, 삼맹이 셋. 나머지 네 개 중에 파악된 것이 셋.”
“오직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
“도대체 그 하나는 어찌 된 것일까요?”
“어딘가 있기는 하겠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고명한 수법으로 감춰져 있는 것이야.”
“하지만 그게 말이 됩니까? 십이비선의 유산들은 모두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그 중에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있습니까? 저 회회전이나 삼맹에서도 그것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그렇지. 회회전과 삼맹에서도 우리가 두 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서로 다 아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하나는 그리 꽁꽁 숨어 있는 것인지.”
“그래도 다도해역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나.”
“그것도 확실치는 않지요.”
“아니, 확실해. 그게 한계지만 딱 그것까지는 확인할 수 있어.”
“휴우, 어렵습니다. 십이비선의 유산이 영계 비승의 열쇠라는 소문이 벌써 파다하게 퍼진 마당입니다. 우린 그 중에 겨우 두 개를 확보했을 뿐이고 말입니다.”
“돌고 돌아, 언젠가는 모두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될 거네.”
“정말 그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갖가지 복장의 수사 십여 명은 모두 형상이 흐릿해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본신을 감추고 허상으로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자, 대교류회도 중요하고, 십이비선의 유산도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좀 더 집중들 하십시다.”
“그래야지요. 그런데 이번에 다른 역에서 유독 많은 고계 수사들이 넘어온다는 이야기가······.”
“저도 그런 이야기를······.”
“그게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