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무형투선(無形偸仙)이란 이름이 생긴 걸 본인은 모른다
“그 소문 들었습니까?”
“무슨 소문 말입니까?”
“무형투선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아, 그 쥐도새도 모르게 나타나서 보물을 훔쳐간다는 수사에 대한 이야기 말이지요?”
“아무래도 수준은 성단기 정도 되는 거 같은데, 묘하게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털어간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또 일정 수준 이상의 곳은 손도 대지 못한다면서요?”
“그게 더 이상하지요. 어떻게 들어왔는지 금지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는 금제가 걸리지 않은 하찮은 것만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다더군요.”
“그래서 그 놈의 수준을 성단기 정도로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게 또 이상한 것이 저번에 어떤 수사는 눈앞에서 약초를 강탈당하기도 했다지 않습니까.”
“그 이야긴 저도 들었습니다. 자그마치 화신기 수사가 눈앞에서 영초 세 가지를 빼앗겼다지요?”
“그게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래서 무형투선이라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꺼내시는 겁니까?”
“그 녀석이 다시 나타난 모양입니다. 근래에 여기저기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네? 무형투선이 다시 나타나요?”
“한 백 년은 보이지 않았던 거 같은데, 다시 여기저기서 출몰해서 도둑질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럼 그 동안에 실력은 많이 늘었답니까?”
“하하하. 그게 또 그렇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이전보다 조금 는 것도 같은데 여전히 성단기 수준인 듯 합니다. 대략 성단 후기나 완경 정도가 아닐까 한답니다.”
“여전히 영체기 수준은 안 된다는 거군요?”
“그렇지요. 하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으음?”
“왜 그러십니까?”
“저기, 저곳에 뭔가 있는 듯 하지 않습니까?”
“네?”
“허엇?! 가알(喝)!”
쿠르르르르릉!
“이게 무슨 일입니까? 냉 수사. 뭐가··· 허어어, 저기 있던 요단이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허어어어어, 사라졌습니다.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지금 우리 둘의 이목을 속이고 요단을 훔쳐갔다는 겁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수사께서는 그 자의 기척을 느끼셨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느낀 것은 요단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그것을 가지고 가는 자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이······. 이것이 바로 그 ‘무형투선의 다녀감’인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허억!”
“아니 수사 왜 또?”
“다른 방에 있던 영석 상자가 사라졌군요.”
“네에? 그럼 가서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제 동부에서 무엇이 얼마나 사라졌는지는 굳이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걸 제가 파악하지 못하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리고 가본들 뭘 하겠습니까? 우리 둘이 함께 있는 곳에서 들키지 않고 요단을 취한 자입니다. 가 봐야 그 자가 거기 있다고 우리가 알 수나 있겠습니까?”
“허어, 그것 참.”
“됐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 보십시오. 무형투선에게 창피를 톡톡하게 당했으니 당분간은 동부를 폐하고 부끄러움을 씻어야 하겠습니다.”
“끄응, 알겠습니다. 냉 수사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동부 주인의 축객령에 손은 앓는 소리를 내며 동부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동부의 주인인 냉 수사는 곧바로 동부를 폐하고 주인이 아니라면 한 발도 떼지 못할 금제를 동부 전체에 걸어 버렸다.
일명 무형투선을 막는 방법이라 하는 것이었다.
무형투선은 은밀하게 들고 나는 데에는 재주가 있지만 성단기 이상의 금제를 파하는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요즈음 수도계에선 냉수사처럼 일정 영역 전체에 금제를 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중이었다.
또한 그것이 아니어도 실력이 있는 수사들은 귀물들은 반드시 금제나 결계를 만들어 보관하거나 공간낭에 넣어 직접 관리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무형투선이 누군가와 부딪혔다는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 무형투선의 경지가 올라 영체기나 화신기가 되면 어찌할꼬? 어지간한 방법으론 그를 막지 못할 것이니, 그 때에는 귀한 것은 어떻게든 직접 지니고 다니는 것이 당연시 될 수도 있겠군.”
냉 수사는 동부 전체에 새로운 금제를 걸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왕 동부를 폐쇄한 김에 그 동안 미뤘던 수련 삼매에 들기로 했다.
* * *
- 나오셨어요? 이번에는 성과가 좀 있으셨어요?
“끄응. 제법 괜찮은 요단이랑 중급 영석이 들어 있는 상자를 하나 얻었지.”
- 와아. 중급 영석을 투자하시더니 꽤나 남는 장사를 하셨네요?
“그렇기는 한데, 요단의 주인이 나를 알아차린 거 같기도 해.”
- 네?
“이번에도 요단을 챙기자마자 엄청난 영기가 실내를 두드리더라고. 재빨리 피하지 않았으면 내상을 입었을지도 몰라.”
- 위험했군요?
“아마도 요단이 사라지는 순간을 알아차린 거겠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이번에 얻은 요단과 영석 상자를 아공간 한쪽에 넣어 두었다.
그곳에는 지난 3년 동안 반영 세계를 드나들며 얻은 전리품들이 꽤나 쌓여 있었다.
하지만 의식으로 그것을 훑어보는 건우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때로 귀한 것을 얻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십이비선봉의 밀역과 은밀역에서 수사들의 공간낭을 챙겼던 것에 비하면 수확이 시원찮았다.
게다가 3년 동안 매일같이 반영 세계를 드나드느라 제대로 된 수련이나 연구도 하지 못했다.
“이젠 좀 지겹네.”
건우가 중얼거렸다.
컹컹컹, 끽끽끼끼!
- 하루에 한 번인데 그걸 천 번이나 했으니 지겨울 만도 하죠.
“역시 그만 둬야 하나?”
- 성과가 나쁘지 않으니 그만두시란 말씀을 드리기도 어렵네요. 역시 선택은 건우 님이 하시는 거죠.
우끼끼끼끽!
컹컹컹.
루야의 말에 혈모원 우두머리의 분혼과 멍뭉이가 동시에 이제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우끽끼의 분혼은 피로 이루어진 소인의 모습인데, 우끽끼가 성단에 이른 후에 깨워서 우끽끼의 본신과 경지를 공유하게 했다.
멍뭉이도 우끽끼와 비슷한 시기에 성단을 이루어 인간의 형상을 변신할 수 있게 되었지만 평상시엔 작은 늑대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역시 그만 하는 게 좋겠다.”
건우가 결정을 내렸다.
반영 세계에 들어가도 결국 얻을 수 있는 수련 자원의 수준은 고만고만했다.
그리고 당장 그런 수준의 자원이 크게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정말 필요할 때가 되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반영 세계였다.
- 그럼 이제 뭘 하실 거예요?
루야가 빛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흥분과 호기심이 담긴 빛이었다.
“일단 얻은 것들을 정리하고,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도 수습을 해야겠지. 그 다음에는 교류회나 교역소를 좀 다녀와야겠다.”
- 다른 수사들과 교류를 하신다는 건가요?
“그래, 내게 필요 없는 것이 많이 생겼으니 그것으로 필요한 것을 구해야지. 게다가 이미 배우고 익힌 것들을 품고 있을 필요도 없잖아.”
- 건우 님이 가지고 계신 공법들을 파시겠다는 건가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겠지. 그리고 사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이 좋거든. 이렇게 혼자 수련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렇게만 살 수는 없지.”
- 그렇군요.
“그래도 당장 떠나겠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 경지 안정도 더 시켜야 하고, 반영 세계에서 얻은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 그게 수련이지 뭐 딴 게 수련인가요? 결국 수련을 할 수 있을만큼 하고 할 게 없으면 나서겠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나? 하하하. 그래도 이왕 얻은 것들이니 살펴봐야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아공간에 쌓여 있는 책과 옥간, 가죽 조각, 죽간, 그림 따위를 먼저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다시 십여 년이 흘러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 * *
다도해역에는 많은 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섬 대원도(大原島)는 방원 수 천만 리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그 곳을 섬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땅이 다도해역 전체의 넓이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작기 때문이다.
실상 다도해역의 대부분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고, 그 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있는 모습이다.
섬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 다도해역 전체 면적의 5푼도 되지 않으니 그것을 대륙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그래서 대원도(大原島)를 포함해서 다도해역의 모든 땅들은 섬(島)이라 한다.
“드디어 대원도(大原島)에 도착했군.”
“꼬박 십오 년이 걸렸습니다. 주인님.”
갈색의 장삼을 입고 청옥비선의 선수에 선 건우가 멀리 수평선 위에 나타난 땅을 바라보며 말하자, 곁에 있던 삼십대 장년 수사가 건우를 주인이라 부르며 대답했다.
그 삼십대 장년 수사는 비늘무늬가 들어 있는 검은 장삼을 입고, 머리에는 녹색의 작은 관을 쓰고 있었다.
그 장년 수사는 바로 성단기가 된 녹각독랑이 인간의 형상을 취한 모습이었다.
“그러게. 아무래도 이참에 비행 법기도 좀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구나.”
“이 청옥비선도 상급의 법기인데 이보다 좋은 비행 법기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안 되면 재료를 구해서 청옥비선을 개조해야겠지. 한계가 있어서 그리 대단하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지금 보다는 낫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 용랑?”
“그야 주인님의 실력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실 수 있겠지요. 다만 법보 수준의 비행 법구는 쉽게 구하기 어려울 거란 말씀이었습니다.”
“나도 이제 성단기 수사인데 축기기 때와는 다르겠지.”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대원도를 향해 청옥비선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런 건우의 소매에서 붉은 색의 작은 소인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러내고 멀리 다가오는 대원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 과묵한 모습을 보이는 우끽끼의 분혼이었다.
우끽끼는 세절도에 남고, 분혼만 건우와 함께 세상으로 나왔지만 과거와는 달리 우끽끼의 분혼도 제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세절도에서 성단에 이른 우끽끼에게 단의 절반을 넘겨받은 까닭이었다.
서로 혼을 공유하지만 또 사고와 판단은 개별적인 존재.
우끽끼와 분혼의 관계는 그러했다.
우끽끼의 분혼은 소매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대원도의 모습을 보며 기분 좋은 듯이 웃는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땅을 보니 저절로 즐거움이 솟는 모양이었다.
건우도 우끽끼의 분혼에게서 전해져오는 기쁨을 느끼고 슬쩍 소매를 쳐다봤다가 다시 시선을 대원도로 향했다.
다도해역에서 가장 큰 섬이라 당연히 수사들의 왕래도 활발하다고 들었다.
게다가 다도해역에서 천 년에 한 번 있다는 대교류회란 행사도 있다고 들었는데, 마침 그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건우가 세절도를 나선 것은 바로 그 대도해역의 대교류회에 맞춘 것이었다.
크고 작은 경매는 물론이고 개개의 수사들이 얽히는 거래가 넘치는 기간이라 이 때는 다도해역 뿐만이 아니라 다른 역(域)에서도 가끔씩 수사들이 넘어온다고 했다.
꼬박 3년에 거처서 이루어지는 대교류회는 기회가 닿는다면 반드시 참석해야 할 행사라고 했던가.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문득 유운을 떠올렸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해 준 것이 바로 유운이었던 까닭이다.
‘천겁뢰에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었지.’
건우는 두 번째 천겁뢰가 떨어질 때, 괴뢰선 동상의 어깨에 있던 유운이 가루가 되는 것을 분명히 보았었다.
그 직후 동상들이 폭발하면서 건우도 검선의 파편을 맞았었고.
‘이미 끝난 인연을 되새기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
건우는 문득 떠오른 유운의 잔상을 털어 버리고 다시 대원도 내륙으로 청옥비선의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다시 6개월 후, 건우는 대원도의 중앙에 있는 거대 분지에 도착했다.
방원 수천 리에 이르는 거대 분지는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다도해역의 대교류회가 열리는 것이 바로 그곳으로 염극종(炎極宗)이라는 수도 문파가 다스리는 곳이었다.
건우는 성벽 10리 밖에서부터 청옥비선을 거두고 둔광을 펼쳐 성문으로 다가갔다.
성과 그 주변에서는 비행 법기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건우가 성문 가까이 다가가니 많은 이들이 성문을 드나들고 있었고, 딱히 검문 검색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성문으로 들어갈 때에는 저마다 일정한 비용을 내는 모양인지 영석 조각들을 바구니에 던져 넣고 있었다.
건우는 유심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